신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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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가수.
1988년 MBC에서 주최한 제2회 MBC 신인가요제에서 '그대 그림자'로 금상을 수상하여 데뷔했다. 1989년 1집 'Shin Hyo Bum'으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대표곡은 '언제나 그 자리에', '난 널 사랑해',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등이 있다. '한국의 휘트니 휴스턴'이라 불리기도 했다.
프로듀서들과 가수들을 포함, 알 만한 사람들은 인정하는 엄청난 가창력의 소유자이며 송곳처럼 찌르는 고음이 인상적이다. 큰 성량과 완급조절로 정평이 나있었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파워가 조금 감소한 대신 호흡조절의 본좌급에 다다랐다고 볼 수 있다. 한 소절 내에서도 발성과 호흡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목소리의 질감마저 바꿔버리는 실력을 발휘한다.
대표곡 중 하나인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는[2] 잔잔한 느낌의 발라드인데, 부르기 쉬워 보이지만 음정마다 목소리 질감을 바꿔 부르는 그녀의 가창이 빠지면 굉장히 밋밋해져 노래의 느낌을 살리기 어려운 곡으로 알려져 있다. [3]
대표곡도 있고, 가창력도 본좌급이지만 30대 미만의 젊은 세대에서는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4] 하지만 국내 여가수들 중 단연 원탑으로 꼽힐 만큼 잘 나가던 때가 있었다. 1년 넘게 뮤직박스 순위에서 밀려나지 않았던 3집 대표곡 '언제나 그 자리에'(1992)부터 대부분의 가요 순위프로그램에서 1위를 기록한 4집 타이틀곡 '난 널 사랑해'(1994)에 이르는 시기. 어떤 의미에선 80년대말~90년대초의 대표적인 디바 이선희와 아이돌가수 김완선의 활동이 뜸해진 틈을 잘 비집고 들어온 셈이다.
또한, 90년대 3대 디바로 불리던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 셀린 디온이 팝 음악 시장을 휩쓸던 시기였던만큼, 이들과 비슷한 분위기의 신효범이 더 각광받았던 면도 있는 듯하다. 방송에서 자주 휘트니 휴스턴이나 셀린 디옹의 곡들을 커버하곤 했고, 그것이 대중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러다가 1995~96년 사이에 김창환 사단의 막강한 지원을 받고 댄스 디바로 재탄생한 박미경과 언더그라운드 출신으로 맨발의 투혼이라 불릴 만큼 극강의 무대매너로 무장한 이은미, 거기에 이제는 전설이 된 이소라 등 말이 필요없는 무시무시한 신인들이 등장하면서 점차 존재감이 사라져간 것이다.[5] 대중적 인지도가 낮았다기보다는 잠시 반짝 빛났다가 뒤이어 나온 개성파 가수들에게 '묻혔다'고 하는 편이 보다 적절할 듯하다.
2012년 나는 가수다 시즌 1에 합류하면서 4곡을 불렀다. 인순이의 이별연습으로 출연과 동시에 1위, JK김동욱의 색이 짙지만 자신만의 색으로 소화한 '미련한 사랑', 펄 시스터즈의 '떠나야 할 그 사람'으로 2위, 그리고 펑키한 리듬으로 선보인 이광조의 '세월가면'까지.
2019년 불타는 청춘 콘서트에서 '난 널 사랑해'를 불렀는데, 50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본좌급 가창력을 과시했다. 금속성 음색과 높이, 파워도 그대로에 노련한 기교로 노래를 가지고 놀았다. 이 날 최대의 화젯거리는 김부용, 감동적인 김혜림의 무대와 프레디 머큐리로 분한 김광규와 내시경 밴드였지만, 가창력만큼은 역시 신효범이 최고였다는 반응이 대다수. 게다가 타 가수에 비해 댓글 관심도가 유독 40대가 아닌 30대에서 많았다.
2020년 tvN의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전미도가 부른 노래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가 아름다운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로 많은 사랑을 받자, 원곡자인 신효범 역이 재조명을 받고 있다. 전미도가 부른 곡은 각종 음원차트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원곡자인 신효범의 노래 역시 역주행하며 차트 인 하고 있다. 신효범은 인터뷰에서 '곡 발매 후 홍보랑 활동이 거의 없어서 개인적으로 미안한 곡이었다.'고 말하며, '전미도 덕에 다시 노래가 사랑받게되어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좋은 노래는 시간이 지나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 좋은 사례이다.
2. 나는 가수다
3.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11차 경연에서 '밤에 피는 장미'로 참여해 준우승을 했으며 매경연마다 치열한 접전을 벌였는데 축하해요 생일케이크, 빛의 전사 샤방스톤, 전설의 기타맨과의 표 차이가 각각 1, 5, 3표였다. 출연 계기는 한 번 참여해서 후배들과 대결하고 싶었다고 했으며, 콘서트장에서 노는 기분이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결승전 선곡 '술이야'는 선곡 미스라는 평이 있었으며, 초반에 박자도 살짝 틀렸지만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4. 음반
- 1집
(1989년) - 2집 <슬픈 빛깔의 추억>(1991년)
- 3집 <신효범>(1992년)
- 4집
(1994년) - 5집
(1995년) - 6집
(1996년) - 7집
(1998년) - 8집 <마음에 메모>(2001년)
- 9집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2006년)
5. 영상
6. 수상
- 1988 MBC 신인가요제 금상, 가창상
- 1992 CIS 국제가요제 금상, 레코딩상
- 1993 서울가요대상 본상
- 1993 제8회 골든디스크 시상식 대상
- 1994 제21회 한국방송대상 가수상
- 1995 서울가요대상 본상
- 1995 한국최고인기연예대상 신세대가요부문
- 1995 제10회 골든디스크 시상식 본상
- 1996 제3회 대한민국연예예술상 가요상
- 1997 제29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연예부문
- 2006 제7회 대한민국영상대전 솔로가수부문 포토제닉상
- 2010 제17회 대한민국연예예술상 연예예술발전공로상
- 2014 대한민국창조문화예술대상 대중가요발라드부문 대상
- 2015 제10회 대한민국 나눔 대상 국회 상임위원장상
7. 홍보대사
- 2001.02 한국방문의 해 명예홍보사절
- 2007.12 국기원 태권도 홍보대사
[1] 장성공파 31세손 ◯범(範)자 항렬이며, 여성이면서도 항렬자를 썼다. 참고로 언니들도 여성이면서도 항렬자를 써서 이름이 태어난 순서대로 신정범(愼貞範), 신금범(愼金範), 신미범(愼美範)이다. 다음은 출처 사진이다. [image][2] 휘트니 휴스턴의 1987년 앨범 수록곡 Didn't we almost have it all과 매우 흡사한 곡이다.[3] 그 외에 다른 노래들은 그냥 부르기 어려우니 조심할 것.[4] 나는 가수다 출연 후로 몇 달이나 지나서야 문서가 만들어졌을 정도. 불타는 청춘에서 별명이 신형이다. 신씨성을 가진 형님[5] 신효범의 노래들은 전형적인 팝 발라드로, 후술한 3명의 음악에 비하면 다소 심심한 편이다. 짧은 전성기 이후 불과 2년만에 여가수 지형도가 완전히 바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