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환(작곡가)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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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3월 18일 (61세) ~
대한민국의 대중음악 작곡가, 프로듀서. 보성고등학교(서울)를 졸업했고 경희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김창'''완'''과는 다른 인물이므로 헷갈리지 말자.
현재 미디어라인 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의 회장직에 있으며 첫 데뷔는 1987년 가수 김수철의 음반에 스태프로 참여한 것이다. 이후 신승훈, 김건모, 노이즈, 박미경, 터보, 클론, 홍경민, 디토 등에게 곡을 줬다.
또한 작곡가 윤일상과 양대산맥을 이룰 정도로 꾸준한 히트곡들을 배출했으며 그가 작곡한 곡들은 가요톱10에서 거의 1위를 탈 정도로 꾸준한 인기를 얻었다.[1] 다만 그에게 오점이 있다면, 신승훈의 '날 울리지 마'를 작곡할 때 Sam Harris의 Don't Look In My Eyes를 표절하여 신승훈이 표절곡을 부르게 한 사건이 있다.
2016년에는 마이다스이엔티 총괄 프로듀서로 'Midas-T'라는 예명으로 활동 중이며, EDM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프로듀스 101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곡 'PICK ME'도 그의 작품.
2016년 11월, 수년만에 최연소 밴드 그룹 더 이스트라이트를 데뷔시켰고, 지금까지 프로듀싱했던 아이돌 그룹들과는 다르게 많은 팬층이 생기면서 좋은 반응을 얻었으나, 아래 언급될 사건으로 제대로 빛을 보기도 전에 해체하였다.
2. 활동
2.1. 데뷔 이전
izm과 한 인터뷰에 따르면, 80년대 대학 진학 후 나이트클럽을 다니며 흑인음악에 빠졌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대전 "다운타운" 클럽의 DJ가 되어 활동하던 중, 마돈나의 데뷔 앨범 Madonna의 프로듀서 "젤리빈" 베니테즈[2] 가 DJ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본격적으로 프로듀서로서의 길을 걷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다운타운에서 활동하던 무명 가수 신승훈을 발탁한 것이 김창환의 프로듀서로서의 첫 행보였다. 신승훈의 데모 테이프를 들고 6~7곳의 음반사를 찾아갔지만 퇴짜를 맞은 끝에, 어학 테이프 제조사였던 덕윤산업에서 신승훈을 주목하여 가까스로 데뷔 앨범을 제작할 수 있었다. 이 덕윤산업이 라인음향의 모체이다.
2.2. 1990년대
1990년대 가요계는 그의 영향력을 지워놓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 그는 숱한 히트곡들을 만들어낸 작곡가이자, 데뷔시키는 가수들 모두를 스타로 만드는 최고의 프로듀서였다. 70~80년대 해외에서 주류였던 디스코를 바탕으로 하는 음악에 랩 등을 가미하며 90년대 가요 트렌드를 이끌었다.'''댄스 음악을 주류로 끌어올린 일등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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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민일홍 PD
그가 발탁한 대표적인 가수들은 역시 신승훈과 김건모. 물론 신승훈은 싱어송라이터이기에 프로듀서의 영향력이 적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신승훈을 발탁하고 통기타를 치는 포크 싱어였던 신승훈에게 지적이고 감성적인 발라더의 이미지를 만들어준 것은 분명 김창환의 힘이었다. 신승훈의 1집부터 4집까지는 모두 김창환이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3집과 4집 때는 신승훈도 프로듀싱에 참여하였으며 5집부터 신승훈의 단독 프로듀싱이 이뤄지지만, 제작 자체는 김창환의 라인음향에서 계속 담당했다. 김건모는 확실히 김창환이 만든 스타로 초기 히트곡 '핑계', '잘못된 만남' 등은 모두 김창환의 작품이며 그 뒤 김건모는 3집 '잘못된 만남'을 끝으로 김창환의 둥지를 떠났다.
신승훈과는 대중적인 발라드 음악을, 김건모와는 R&B, 레게 등 흑인음악을 선보인 김창환은 이후 노이즈와 박미경의 곡들을 통해 댄스 뮤직과 가요를 융합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 노이즈와 박미경 앨범의 커버 뒷면에는 트랙리스트와 함께 곡들의 세부 장르가 함께 표기되어 있다. 당시 대중들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댄스 음악의 여러 세부 장르들을 알린 것은 김창환 사단의 분명한 공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후 데뷔시킨 클론을 통해서는 화려한 댄스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한 "보는 음악"의 진수를 만들어냈다. 90년대 가요계는 김창환과 라인음향의 시대였다. 김창환, 천성일, 김우진 등 댄스 음악으로 특화된 작/편곡진과 우수한 가수들이 뭉친 90년대 초중반의 "김창환 사단"은 그야말로 적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후 야심차게 기획한 콜라가 히트를 치지 못했고, 97년 이후 H.O.T., 젝스키스, S.E.S., 핑클 등 10대 아이돌 그룹들이 가요계를 점령했다. 이러한 트렌드에서 성인 취향(트로트[3] )에 가까운 음악을 만들어온 김창환은 예전만한 영향력을 가지지 못했고, 90년대 후반에는 절대적이었던 그의 영향력도 쇠퇴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98년에는 라인음향의 대표였던 사맹석이 국세청의 탈세자 리스트에 오르고 라인음향이 세무조사를 받더니 탈세와 횡령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데뷔 이전" 문단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라인음향은 김창환이 대표가 아니었고[4] , 경영진이 잡혀가자 김창환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때 김창환도 조사를 받았고 애꿎은 신승훈까지 탈세에 연루된 것이 아니나며 소환되었다. 이 사건으로 라인음향은 몰락하였는데, 훗날 나온 박미경 8집 앨범 소개글에 따르면 이때 유일하게 김창환을 따라 나온 것이 클론이었다.[5]
1999년에는 일본 시장에 진출을 시도하였다. 당시 아뮤즈 소속이었던 일본인 여성 4인조 그룹 "COLOR"의 1집 앨범을 프로듀스하였으며, 2번째 싱글 "Why?"는 소년탐정 김전일의 주제가로 타이업되었다. 그러나 COLOR는 별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6] . 이후에 "Why?"는 2008년에 와서 베이비복스 2기(리브)가 한국어 버전으로 다시 불렀다. 2000년에 베이비복스가 불렀던 Why는 작곡가부터 다른 전혀 다른 노래[7] . 또한 COLOR의 원곡에 있던 랩이 빠졌다.
2.3. 2000년대
라인음향이 "공중분해"된 이후, 김창환은 클론과 함께 우퍼엔터테인먼트를 창립한다. 일단 라인음향 자체는 세무조사 사건 이후로도 한동안 존속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김창환이 아닌 천성일이 프로듀스한 박미경 5집에 라인음향 로고가 붙어있다. 하지만 김창환 프로듀스가 없는 라인뮤직이란 의미가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김창환이 세운 우퍼엔터를 라인음향의 실질적인 후신으로 본다. 참고로 라인음향의 모기업이었던 덕윤산업 자체는 원래의 사업 분야인 어학 교재 녹음을 위주로 2020년 현재도 운영중이다.
2000년, 록발라더였던 홍경민을 발탁. '흔들린 우정'이라는 대히트곡을 탄생시키며 프로듀서로서의 감각을 재확인하였다. 2001년에는 예능인이자 가수로서 무난한 인기를 끈 심태윤을 프로듀싱하였다. 그러나 이 해 강원래의 교통사고와 홍경민의 입대로 김창환의 우퍼엔터는 위기를 맞았다.
2003년에는 CJ미디어라인 아래에서 채연을 데뷔시키며 무난한 성공을 맛봤고, 같은 해 떠나간 옛 제자를 연상시키는 이정의 1집 앨범도 프로듀싱했다. 이 시기 가요계는 급격하게 R&B, 발라드 위주로 흘러가게 되면서 김창환이 이끌던 하우스 댄스 음악의 수요는 줄었으나, 이정을 프로듀스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김창환의 프로듀싱이 꼭 하우스 댄스 장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인지도 있는 신인 가수를 여럿 발굴해내며, 김창환의 프로듀서로서의 입지나 영향력은 건재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 본격적인 2세대 아이돌 시대가 도래하면서 다시금 김창환의 영향력은 줄어들었다. 이 시기 모처럼 다시 김건모, 박미경과 의기투합해 김건모 12집과 박미경 8집을 프로듀스했지만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묻혔다.
2.4. 2010년대
아이돌 시대를 맞아 김창환의 미디어라인에서도 2010년 걸그롭 VNT와 2011년 보이그룹 엔트레인[8] 을 내보냈으나 시대착오적인 기획을 보여주며 각각 1장, 3장의 싱글을 발표한 후 활동을 중단했다. 김창환 본인은 엔트레인을 육성하면서 아이돌보다는 노이즈같은 남성그룹을 키우는 감각으로 임했다는데, 가면 갈수록 고도화, 팬덤화되어가던 아이돌 시장과는 맞지 않는 자세였다. 그렇다고 90년대 당시처럼 음악적으로 확실히 차별화가 된 것도 아니었다.
이후 미디어라인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프로듀서로 현재 세계 주류 음악이 된 EDM을 연구하였다. 그 첫 작품으로 2012년에는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의 멤버인 스테파니의 솔로 앨범 <GAME>의 작사, 작곡, 프로듀싱을 맡았으나[9] 수준 미달의 유사 EDM을 선보이며 혹평을 받았다. 그런데 2016년 프로듀스 101에서 선보인 과제곡들이 중박 정도의 인기를 얻으며 어느 정도 자신의 건재를 과시했다.
2016년에 데뷔시킨 틴에이저 밴드 더 이스트라이트가 가능성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폭행 방조·폭언 논란으로 더 이스트라이트는 2018년 해체하였다. 뿐만 아니라 김창환 본인이 이 사건으로 인해 (비록 집유기는 하지만) 형을 선고받고 휘하의 프로듀서는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김창환이 더이상 현대 가요계에 필요 없고 해악만 끼치는 구시대적 인물이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3. 대표작
- 작곡
- 작사[12]
4. 프로듀스한 가수/음반
라인음향-우퍼-미디어라인에서 김창환이 프로듀스한 음반들. 작곡과 프로듀싱은 다른 것이며, 아래의 음반들을 전부 김창환이 작곡한 것은 아니다.
- 신승훈 1~5집
- 김건모 1~3집, 12~13집
- 노이즈 1~5집
- 박미경 1~4집, 8집
- 클론 1~5집, EP "We Are"
- 콜라 1~2집
- 플러그 1집
- 김태영 1집
- COLOR 1집 (일본)
- 홍경민 3~5집
- 디토 1집
- 심태윤 1~2집
- 강수지 10집
- 박명호 1집
- 이재수 1집
- 채연 1~4집
- 이정 1~3집
- 오세준 1집
- 락스톤 1집
- 원종찬(원우) 1집
- DJ KOO 1집
- VNT 싱글 "소리"
- 엔트레인 싱글 "One Last Cry", "I'll Forget You"
- 스테파니 싱글 "The New Beginning"
- 더 이스트라이트의 모든 음반
5. 더 이스트라이트 폭언 및 폭행방조 사건
2018년 10월 18일, 한 매체를 통해 본인이 프로듀싱한 그룹 더 이스트라이트의 멤버들에게 폭언을 가하고, 소속 프로듀서 문영일[15] 의 폭언, 기합, 폭행을 묵인·방조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문영일의 행동으로 한 멤버는 폭언과 폭행의 후유증으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폭행 내용 중 '''기타 케이블로 미성년자인 멤버의 목을 졸랐다'''는 이야기가 대중에게 충격을 주어 '범죄 행위이다', '처벌 받아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해당 사고가 알려지자, 결국 소속사 측에서 '약 1년 4개월 전에 발생했던 일을 지금 알았다'라며 폭행 논란이 있었던 프로듀서를 사임시켰다고 했지만 측근은 재발방지 약속을 했음에도,최근까지 언어폭력이 이어졌다고 증언했다. 결국, 더 이스트라이트의 리더 이석철이 '폭행 피해에 대해 이야기하는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언론에 입장을 밝혔다.
4년간의 폭행·폭언 일지 사비로 원룸 생활+악기 사용+정산無 활동 중 대기실에서 폭행, 무대 위해 참았다 “가족 살해 협박까지”, 프로듀서와 주고받은 문자 공개 또한 10월 4일에는 문영일의 복귀에 항의한 이승현을 밴드에서 나가라고 해서 퇴출시켰다고 한다.
이에 대해 김창환은 "한번도 폭행을 사주하거나 방조한 적이 없으며, 멤버들을 가르치거나 훈계한 적은 있어도 폭언이나 폭행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으며, 남아있는 4명의 멤버들을 위해 "과장된 허위사실로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적극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
하지만 곧바로 JTBC 뉴스룸에 김창환의 폭언이 담긴 녹음 파일이 공개되면서 여론이 더욱 악화되었다. 또한 이승현이 감금된 상태에서 브이앱 방송을 했다는게 발견됐다.공식 유튜브 컨텐츠에서 폭행 의심 장면 발견
이에 대해 김창환은 "감정이 격해지기는 했지만 음악을 계속 하도록 도와주려던 것"이었다고 해명하면서도, "문영일의 폭행은 멤버 부모들의 동의 하에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계속 프로듀서를 맡게 되었고 이후 폭행은 없었다.", "이후 콘서트 준비 미흡으로 문영일을 해고하려고 했는데 이석철을 포함한 멤버들의 반대로 계속 일을 하게 된 것이지 일방적인 복귀가 아니었다.", "(이승현의 퇴출 이야기에 대해) 밴드 연습을 살펴보겠다는 문영일에게 이승현이 대들자 문영일이 '승현아. 힘들면 나가있어'라고 했는데 그걸 쫓아내는 걸로 오해한 것 같고, 나는 현장에 있지 않았다." 등 이석철이 공개했던 내용들에 대해 반박했다. 또한 이승현의 인성 문제[16] 와 처음부터 자신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프레임을 짠 것 같다[17] 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 스포츠서울과의 단독인터뷰 #1 #2
이런 김창환의 반박에 이석철 측에서도 추가 반박 내용들을 공개했다. 폭행 사진 추가 공개 "김창환 주장, 변명에 불과" 녹취록 추가 공개…더이라 이석철에 "난 꿈 이룬 사람, 누가 손해일까?" 김현정 뉴스쇼 인터뷰 이석철 "12살 멤버, 야구방망이로 20대 맞고 구토"
22일 오전 이석철 측에서 문PD를 상습 및 특수 폭행, 김창환 회장을 폭행 방조, 이 모 대표와 회사를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
같은 날 오후 미디어라인 측에서는 더 이스트라이트 나머지 4인 멤버와 계약해지를 한다고 발표했으며, 앞으로 진행될 법적 조사에 성실히 임하면서 그 과정에서 책임을 회피하지 않되 잘못된 부분은 바로 잡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
12월 20일,문영일 PD가 폭행 혐의로 구속 송치되었다.#
12월 26일 미디어라인엔터테인먼트 김창환 회장, 이정현 대표와 더 이스트라이트 전 멤버 정사강, 이은성이 참석한 가운데 폭행 피해 관련 반박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정현 대표 "이승현 父, 추가 체벌 있었다" 더 이스트라이트 前 멤버 "이석철 대표로 고발? 배신감 든다" 이은성-정사강 "폭행無, 이승현 형제 거짓말에 꿈 잃었다"
이석철 이승현 측 변호인은 "팩트는 단 한 구절도 없다"며 재반박했다.공식입장
2019년 6월 14일 제6회 공판에서 검사로부터 징역 8개월을 구형받았다.# 12월 20일 공판에서 판사로부터 김창환은 징역 8개월과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었으며 문영일 PD는 징역 1년4개월이 선고되었다.#
2020년 5월, 미디어라인 측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증언했던 멤버 이은성과 정사강이 위증 혐의로 검찰 송치되었다.
각종 음원 사이트에 등록된 김건모 12집 "Soul Groove" 앨범 소개를 보면 김창환이 김건모를 '친동생처럼 생각해서' 사생활을 억압하고 하루 10시간씩 자로 때려가며 레슨을 시켰다는 내용이 마치 자랑거리라도 된다는 양 대놓고 써있다. 아직 보수적이었고 억압적이었던 90년대 초중반에는 사회적으로 용납되던 일이고 김건모 본인도 이제는 김창환과 잘 지내고 있지만, 그로부터 30년이 가까운 세월이 흐른 2010년대 후반에 미성년자들을 상대로 똑같은 행동을 한 것은 용납되기 힘든 일이었다.
6. 기타
- 임진모의 음악 웹진 izm에서 선정한 '1990년 이후 우리를 감동시킨 작곡가' 3위에 올랐다. 1위와 2위는 김형석, 서태지.
- 김건모의 대표곡 중 하나인 잘못된 만남의 가사 중 김건모의 '어~깨를 두~드리~며~ 잊어버리~라' 했던 '또 다른 내 친~구'가 바로 김창환이라 한다. 애인을 뺏어간 그 친구는 유영석.
- KBS 불후의 명곡에 출연해서 김건모, 신승훈, 홍경민, 채연 발굴 스토리를 들려주었으며 유튜브에서 검색 가능.
- 차녀 김채연이 2018년 미스코리아 미주 선에 당선됐다.[18]
- 막내딸 김세연도 2019 미스코리아 진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미스터트롯에 심사위원을 했었다. 본선 2차 1:1 데스매치부터 하차했다.
- 한시적으로 허니 패밀리 출신의 박명호 (박교주)와 언더힙합그룹 사이드 비를 자신의 휘하에 영입한 적이 있었다.
[1] 참고로 가요톱10에서 싱어 송라이터를 제외하고 작곡가 부분에서는 많은 1위 곡을 배출해냈으며(총 24번), 작사 부분에서도 꽤 많은 1위 곡을 배출했다.(총 39번, 1위는 박건호 - 총 50번)[2] 마돈나의 1집은 원래 레지 루카스라는 프로듀서가 작업하였으나 마돈나와의 의견 충돌로 루카스가 물러나고, 그 자리를 베니테즈가 메워서 완성된 것이었다. 갓 20대가 된 신인 가수가 프로듀서를 갈아치운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대성공이었다.[3] 김창환의 음악은 하우스, 유로댄스의 탈을 쓰고 있지만 멜로디는 한국식 뽕짝에 가까웠다. 그래서 히트할 수 있었던 것이다.[4] 비슷한 오해를 받는 경우가 이상민이다. 샾 등이 소속되어 있던 월드뮤직은 이상민이 세운 회사가 아니며, 이상민은 월드뮤직과 프로듀서 계약을 맺고 활동했을 뿐이다.[5] 노이즈의 홍종구가 KBS Cool FM 박지윤의 가요광장에 출연하여 노이즈 해체 일화를 밝혔는데 회사가 세무조사를 받은 것, 그리고 당시 음악의 트렌드가 변화하던 시점이라 노이즈의 인기가 급감하는 걸 느꼈고 더 이상 버티기 쉽지 않겠다고 생각해서 해체했다고 한다. [6] COLOR는 이후 멤버 교체와 함께 Buzy로 개명하여 활동하였으나 마찬가지로 별 반응을 얻지 못한 채 해체하였다.[7] 이쪽은 김형석 작사, 작곡. 참고로 김형석은 한 때 김창환 사단으로 활동했었다.[8] 음원 사재기로 악명 높은 가수 우디가 소속되어 있었다.[9] 스테파니 본인의 소속사는 SM이다. 업무상 제휴를 맺고 프로듀싱만 미디어라인이 맡은 것.[10] 후반부 '또 다른 내 친구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의 실제 주인공이다.[11] 1996년 작사/작곡했던 "콜라"의 "우울한 우연" 을 리메이크한 곡이다.[12] 작사로만 참여한 곡.[13] 1993년에 개봉된 영화 101번째 프로포즈의 OST이다. 조병석 작사 김형석 작곡. 가요톱10 12위까지 올라갔던 곡이다.[14] 편곡으로만 참여한 곡.[15] 현재 문영일 대표는 해당 사실의 여파 때문인지 인스타그램을 비공개 처리했다.[16] 형인 이석철을 몽둥이로 폭행하기도 했으며 자신에게도 대들어 부모가 찾아와 아이의 인성을 만들어오겠다고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17] 석철, 승현 형제의 아버지가 형사인데 프레임을 짠 것 같다, 녹취록은 자신의 발언을 잘라서 이상하게 말한 것처럼 만든 것이며 이석철이 뭔가 유도될 질문을 골라서 한 것 같기도 하다고 이야기했다.[18] 하지만 2018년 대회에서 미주 지역은 진만 본선에 진출했기 때문에 김채연은 본선 대회에 서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