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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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26일 세바퀴에 출연하여 아버지 심상우에 대해 언급한 심현섭.
沈相宇
1938년 5월 7일 ~ 1983년 10월 9일
1. 개요
2. 생애
3. 선거 이력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기업인, 정치인이다. 본관은 청송(靑松)[1]. 로케트전기 창업주인 심만택의 아들로, 위로는 호남전기 2대 총수 큰형 심상하가 있었다. 유족으로는 아들 심진섭(영어강사), 심현섭(코미디언)이 있다.

2. 생애


1938년 전라남도 광주부에서 태어났다. 광주제일고등학교, 미국 몬타나 주립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1968년부터 큰형 심상하가 호남전기(훗날 로케트전기) 회장이 되자 그는 사장이 되었고, 1970년 심상하 회장 사후에도 사장 직위는 유지하였다.
1971년부터 둘째 형인 심상수와 함께 전 사주인 김충식 사장으로부터 전남매일신문을 인수받아 1980년 언론통폐합 전까지 부사장(1971~1973)과 사장(1973~1980)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그 사이 호남전기의 실세인 형수 진봉자 여사와 심상수 회장의 갈등으로 심상수는 호남전기 회장직에서 물러났고, 그도 사장직에서 밀려나게 되었다.[2][3]
1980년에 전남매일이 언론통폐합으로 전남일보와 합쳐져 생긴 광주일보의 명예회장을 맡은 그는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북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임재정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3년 3월 민주정의당 당직개편에서 총재 비서실장에 임명되었는데 지금이야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서로 분리된 직책이지만 당시에는 '''대통령 = 여당 총재'''였기 때문에 그만큼 여당 내에서 제법 무게있는 요직이었다. 심지어 심상우의 출신지를 감안하면 대단히 파격적인 인사였다.
사실 대통령 비서실장은 세계 각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직책이지만, 당 총재 비서실장은 좀처럼 보기드문 자리로 전두환 정부 때 신설된 직위이다. 하단에도 나와있지만, 심상우 비서실장은 평소 유머를 곁들이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데 매우 능숙한 사람이었는데,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며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전두환이 이렇게 실력과 유머감각을 모두 갖춘 심상우를 높이 평가해, '''전례가 드문 직위'''를 신설해가면서 곁에 가까이 두려 한 것이다.
그러나 심상우 의원의 비서실장 임기는 짧았는데, 총재 비서실장 영전 7개월 후, 전두환 대통령을 따라 버마(현 미얀마) 순방에 동행하였다가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별세했기 때문. 향년 45세. 게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심상우의 사망 후 고인이 생전 닦아온 터전들 중 일부는 유가족이 아닌 엉뚱한 사람들이 가로챈 경우도 있어, 유가족들의 슬픔이 더했다고 한다.
생전의 심상우는 정계에 투신한 후 기자들을 상대할 일이 많아지자 분위기를 부드럽게 할 방편으로 유머를 조금씩 곁들이곤 했는데 사실 원래부터 분위기를 띄우는데 일가견이 있는 쾌활한 성격이었으며, 나이차가 10살 가까이 되는 후배들이라든가 자신 밑에서 일하는 비서 등에게도 '''존칭을 쓰면서까지''' 친절하게 대했다고.[4][5] 훗날 희극인의 길을 걷게 된 차남 심현섭 또한 군기가 엄하기로 악명높은 희극계에서 후배들을 때리거나 심하게 괴롭히는건 고사하고 군기 자체를 좀처럼 잡는 일이 없었다는 점을 볼 때 선친의 대인배스러운 품성을 잘 물려받은 듯.
심상우 의원의 아내 임옥남 씨는 남편을 떠나보낸 슬픔을 안고 살다가 2019년 5월 9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3. 선거 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1981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북구)
민주정의당
36,489 (22.96%)
'''당선''' (1위)

[1] 안효공파 23세손 상(相) 항렬[2] 후임 사장으로 21세의 조카 심홍근이 앉았으나, 경험 미숙과 경영권 분쟁, 방탕한 생활로 회사를 위기로 몰아넣고 1977년 8월 9일에 강릉 옥천해수욕장 부근 개울에서 자살하였다. 결국 호남전기는 1976년부터 호남 연고기업 14개가 인수했지만, 1978년부터 초창기 6주주들 중 하나인 전남일보(= 광주일보) 사주 남봉 김남중(1917~1987)이 경영권 경쟁의 승자가 되었다. 다행히 경제개발 및 유가, 외환, 금리의 3저호황 국면을 활용해 다시 번성하였으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에너자이저, 듀라셀 등 해외 유명 브랜드와 중국산 저가 건전지에 시장을 잠식당했고, 1998년에 로케트 상표권과 판매권을 질레트에 넘긴 뒤 하청업체로 전락하다 2015년 2월에 회사가 정리되어 사라졌다. 반면 자회사 진해전지는 1978년에 세방기업에 인수되어 '세방전지'가 되었다.[3] 70년대에 호남전기의 경영권을 "자의반 타의반" 내려놓은 일부 유지들이 전북의 주요 전지업체 후원을 시작, 회사가 본격 성장세를 타기 시작했다는 일화가 있다[4] 이게 80년대 중반 이전임을 감안하면.....[5] 그런데 사망 직전에 찍힌 사진을 보면 표정이 매우 굳어있는데, 훗날 심현섭이 당시 현장에 있었던 기자들에게 들은 바로는 '''그 날따라 아침부터 표정이 굳어있고 말수도 적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