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대 국회의원 선거

 


'''대한민국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1978년 12월 12일
10대 총선

1981년 3월 25일
'''11대 총선'''

1985년 2월 12일
12대 총선
}}}
'''투표율'''
77.7%▲ 0.6%p
'''선거 결과'''
[image]

<color=#70000b> '''정당'''
<color=#70000b> '''지역구'''
<color=#70000b> {{{#!wiki style="margin: 0 -10px;"'''전국구'''
<color=#70000b> '''총합'''
<color=#70000b> '''비율'''
'''민주정의당''']]
'''90석'''
'''61석'''
'''151석'''
'''54.7%'''
'''민주한국당''']]
'''57석'''
'''24석'''
'''81석'''
'''29.3%'''
'''한국국민당''']]
'''18석'''
'''7석'''
'''25석'''
'''9.1%'''
'''민권당''']]
2석
0석
2석
0.7%
'''신정당''']]
2석
0석
2석
0.7%
'''민주사회당''']]
2석
0석
2석
0.7%
'''민주농민당''']]
1석
0석
1석
0.4%
'''안민당''']]
1석
0석
1석
0.4%
'''무소속''']]
11석
-
11석
4.0%
1. 개요
2. 관제 조작선거
3. 결과
4. 여담


1. 개요


1981년 3월 25일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로 대한민국 제5공화국 헌법에 의해 치러졌으며 투표율은 77.7%를 기록했다. 184석의 지역구와 92석의 전국구를 선출했으며 1선거구당 2석의 중선거구제였다. 정치활동 규제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정치인은 물론 구 민주공화당계 인사조차 출마를 금지당한 상태에서 여당관제야당(민주한국당, 한국국민당, 민주사회당(!), 민주농민당)만으로 치러진 선거였다. 게다가 전국구 배분 방식이 다수당에 극도로 유리하게 짜여져 지역구 의석에서 1위를 한 정당이 전국구 의석의 2/3를 독식했다. 또한 기존 정치인들이 대거 정치활동이 규제되고 신군부에 영합하는 사람들이 대거 진출하면서 지역구와 전국구를 막론하고 초선의 비율이 매우 높았다.

2. 관제 조작선거


신군부에 의해 정치활동 규제를 당하지 않은 신민당 출신 정치인들이 민주한국당(유치송 총재)을, 민주공화당 출신 정치인들이 한국국민당을 차렸다. 하지만 국군보안사령부국가안전기획부가 창당 자금을 제공하고 공천자 명단, 당직 임명까지 관여했다. 심지어 '''민정당에 공천을 신청했더니 민한당에서 공천을 받았다'''는 사례도 있었을 정도. 이는 훗날 신상우 민한당 사무총장 등의 증언으로 실체가 더 확연해졌다.

3. 결과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지역
민주정의당
민주한국당
한국국민당
민권당
신정당
민주사회당
민주농민당
안민당
무소속
합계
서울
'''14'''
11
1
0
0
1
0
0
1
28
경기
'''12'''
10
1
0
1
0
0
0
0
24
강원
'''6'''
4
2
0
0
0
0
0
0
12
충남
'''8'''
5
2
0
0
0
0
0
1
16
충북
'''4'''
1
3
0
0
0
0
0
0
8
전남
'''10'''
9
1
0
1
0
0
1
0
22
전북
'''7'''
6
0
0
0
0
0
0
1
14
부산
'''6'''
5
0
1
0
0
0
0
0
12
경남
'''10'''
1
3
1
0
1
1
0
3
20
경북
'''13'''
5
5
0
0
0
0
0
3
26
제주
0
0
0
0
0
0
0
0
'''2'''
2
합계
90
57
18
2
2
2
1
1
11
184
'''전국구'''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인

5,776,624
'''35.6%'''
61

3,495,829
'''21.6%'''
24

2,147,293
13.3%
7

1,088,847
6.7%
0

676,921
4.1%
0

524,361
3.2%
0

227,715
1.4%
0

144,000
0.9%
0

122,778
0.7%
0

76,863
0.5%
0

103,893
0.6%
0

87,977
0.5%
0

1,734,224
10.7%
-
총합
16,207,325
100.0%
92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제1당'''

'''151석'''
'''제2당'''

'''81석'''
제3당

25석
제4당

2석[1]
제5당

2석
제6당

2석
제7당

1석
제8당

1석
-

11석
여당 민주정의당의 득표율은 35.6%로 그리 높지 않았지만[2] 2인 중선거구제와 전국구 2/3 1당 배분 조항이라는 여당에 지극히 유리한 선거제도에 따라 지역구에선 과반에 가까운 90석, 전국구 2/3인 61석을 더해 총 151석으로 과반(139석)을 훌쩍 넘었다. 관제야당인 민한당이 81석(21.6%), 국민당이 25석(13.3%), 군소관제정당인 민권당(6.7%), 신정당(4.1%), 민사당(3.2%)이 각각 2, 2, 2석, 무소속이 11석 등이었다.

4. 여담


신성일서울특별시 마포구-용산구 선거구에서 한국국민당 후보로 본명 '''강신영'''으로 나갔다가 유권자들이 누가 신성일인지 몰라서 민주정의당 봉두완 후보, 민주한국당 김재영 후보에 밀려 떨어진 안습한 선거였다. 신성일은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강신성일'''로 개명했다.
위의 관제선거의 악명에 묻히지만 그럼에도 본격적으로 컴퓨터를 활용한 개표방송이 시작되었다는 의의는 있다. KBS에서 1981년 총선을 앞두고 별개의 선거개표전산시스템을 갖추웠고 이를 활용하여 개표방송을 진행했던 것.

[1] 의석수가 동일한 경우는 비례대표 득표율로 정당 순서를 구별하는데,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에는 비례대표제가 없었으므로 이 문서에서는 정당득표율대로 순서를 구별하였다.기사 [2] 참고로 신민당 돌풍이 불었던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35.2%, 여소야대라는 결과가 나온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34.0%의 득표율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