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의겸

 

沈義謙
1535년(중종 30) ~ 1587년(선조 20)
1. 개요
2. 상세


1. 개요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1], 자는 방숙(方叔), 호는 손암(巽菴)·간암(艮菴)·황재(黃齋)·손재(巽齋).
청릉부원군 심강의 차남이며 김효원과의 대립으로 붕당이 만들어진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명종비인 인순왕후의 남동생이다.

2. 상세


청릉부원군 심강과 어머니 전주 이씨 완산부부인 이씨 사이의 8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으나 출생 후 9촌 숙부(삼종숙) 심홍(沈泓)에게 입양되었다. 일찍이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1555년(명종 10) 식년시 진사시에 3등 28위로 급제하고#, 1562년(명종 17) 별시 문과에 을과 1위로 급제했다.# 이량이 젊은 사림들을 자신의 권력욕으로 제거하려 하자 막기 위해 노력하고 선비로서의 명망이 높아졌다.[2]
1572년 김효원이 이조정랑 자리에 발탁되려고 했으나 심의겸은 '김효원이 윤원형의 집에서 기숙했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그러나 1574년 결국 김효원은 이조정랑이 되고 이후 후임으로 심의겸의 동생인 심충겸(沈忠謙)이 추천되었으나 김효원은 '직분(이조정랑)이 척신의 것이 될 수 없다'고 반대[3]하면서 둘은 대립하기 시작했다. 심의겸의 집이 궁궐에서 바라본 기준으로 도성 '서쪽 정릉방'에 있었고 김효원의 집은 도성 '동쪽 낙산 및 건천동'에 있어 '심의겸을 지지하는 서인'과 '김효원을 지지하는 동인'으로 갈라지며 당쟁의 시초가 되었다. 그야말로 붕당 정치의 시초를 제공한 인물이 된 셈이다.

[1] 안효공파 청양군 의겸파의 파조이다.[2] 공교롭게도 이량은 자신의 외삼촌이다. 외삼촌이 제2의 윤원형으로 득세를 하고 실권을 휘두르려 하자 외삼촌임에도 불구하고 견제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3] 자신이 이조정랑 자리에 발탁되려던 것을 반대했던 심의겸에게 결코 좋은 감정이 남아있을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