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스티노 스테파니
Agostino Steffani. 아고스티노가 이름이고 스테파니는 성씨다.
이탈리아의 작곡가 겸 신부.
1654년 7월 25일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카스텔프랑코란 곳에서 태어났다. 베네치아, 로마, 뮌헨 등지를 돌면서 음악공부를 하였고 1674년 바이에른 선제후에 임관하면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바이에른 선제후의 밑에서 궁정음악감독 등을 역임한 그는 1688년 옛 주군을 떠나서 하노버의 선제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을 새로운 주군으로 모시고 그가 죽을 때까지 임관했다. 새로운 주군 밑에서는 음악가보다는 외교가로서 활동했으며 한 때 브뤼셀 대사를 역임할 정도로 비중있는 역할을 했다. 이 시기 동료 음악가인 헨델이 하노버로 이주하는데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죽고 후임 선제후로 임명된 게오르크 2세가 영국 왕 조지 2세로 등극하여 런던으로 떠나자 이번엔 헨델을 런던으로 이주시키는 일을 했다. 오오 빵셔틀!
이렇게 바쁘신 와중에도 종교까지 관심을 가져 1680년 성직자에 임명되기도 했다. 나중엔 주교가 되어 북독일 교황청 최고서기관에 취임하기도. 본업인 작곡가로서도 큰 명성을 떨쳤는데 특히 그가 작곡한 칸타타 형식의 실내 2중창곡들은 전 유럽에 회자될 정도로 유명했다고 한다. 오오 엄친아. 현재 그의 2중창곡들은 100여곡 이상이 전해지고 있다.
1728년 2월 12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지방에서 숨을 거뒀다.
이탈리아의 작곡가 겸 신부.
1654년 7월 25일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카스텔프랑코란 곳에서 태어났다. 베네치아, 로마, 뮌헨 등지를 돌면서 음악공부를 하였고 1674년 바이에른 선제후에 임관하면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바이에른 선제후의 밑에서 궁정음악감독 등을 역임한 그는 1688년 옛 주군을 떠나서 하노버의 선제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을 새로운 주군으로 모시고 그가 죽을 때까지 임관했다. 새로운 주군 밑에서는 음악가보다는 외교가로서 활동했으며 한 때 브뤼셀 대사를 역임할 정도로 비중있는 역할을 했다. 이 시기 동료 음악가인 헨델이 하노버로 이주하는데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죽고 후임 선제후로 임명된 게오르크 2세가 영국 왕 조지 2세로 등극하여 런던으로 떠나자 이번엔 헨델을 런던으로 이주시키는 일을 했다. 오오 빵셔틀!
이렇게 바쁘신 와중에도 종교까지 관심을 가져 1680년 성직자에 임명되기도 했다. 나중엔 주교가 되어 북독일 교황청 최고서기관에 취임하기도. 본업인 작곡가로서도 큰 명성을 떨쳤는데 특히 그가 작곡한 칸타타 형식의 실내 2중창곡들은 전 유럽에 회자될 정도로 유명했다고 한다. 오오 엄친아. 현재 그의 2중창곡들은 100여곡 이상이 전해지고 있다.
1728년 2월 12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지방에서 숨을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