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방궁
阿房宮
1. 개요
기원전 200년대에, 중국 최초의 황제인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 짓기 시작했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궁궐. 공사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진나라가 무너지고 그 과정에서 항우가 불태워버린 것도 유명한 일화다.
엄밀히 말하면 아방궁은 이 궁궐의 정식 이름도 아니었다. 사마천의 사기의 진시황조 주석에 따르면 아방(阿房)의 아는 가깝다는 뜻이고 방은 곁 방(傍) 자와 같은 뜻으로, 기존 함양궁 근방 일대를 부르는 지명이었는데 공사 중에 임시로 이 지명 아방을 붙여 아방궁이라고 불렀고 결국 미완성 상태에서 끝나 정식 이름은 지어지지도 못한 것이다.
아방궁은 결국 궁전으로서 제 역할도 제대로 못해보고 사라져버렸지만, 그 위세가 어찌나 대단하였던지 아방궁이란 명칭은 한자 문화권에서 가장 화려하고 거대한 건축을 상징하는 개념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보통 너무 크고 사치스럽다는 부정적 의미로 비유하는 편이 많다.[1]
이 아방궁과 조조의 동작대를 가리켜 "천고춘추 아방궁, 만고일월 동작대"라고 부르며, 허망한 인간의 권력 성쇠를 비유하기도 한다.
2. 역사
본래 진나라의 수도에는 이미 여러차례 증축한 거대한 함양궁이 존재했었으며,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할 때만 하더라도 계속 함양궁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후 자신의 거대한 무덤인 능묘와 만리장성처럼 새로운 큰 궁궐을 지었다고 전해지는 것이 아방궁이다.[2]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동서로 500보(약 650미터) 남북으로 50장(약 115미터)이며, 위에는 1만 명이 앉을 수 있고, 아래로는 15미터 가량의 깃발을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다만 아방궁을 건축 이전과 이후의 중국역사의 건축사와 왕과 황제의 거대하고 사치스런 모습을 보여주는 대명궁, 자금성, 원명원, 기타 황실 불교 사원들과 비교하면 오히려 작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진시황 생전에 완성되지 못해 이세황제로 넘어갔고, 이후 진나라에 대한 반란이 대대적으로 일어나, 유방의 손에 함락되고 만다. 당시 유방이 입성 후 그 화려한 규모에 놀라고, 어머아마한 규모의 궁녀와 보물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항우의 손에 떨어지자 항우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를 불태워버리는데, 3개월 간이나 불타오르고도 열흘은 더 불타올랐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즉, 아방궁이 전소되기까지 무려 100일이나 걸렸다는 이야기다.
진시황이 건립한 만리장성이나 능묘가 실존하는 만큼, 이 건물도 실존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정작 아방궁지에서는 관련 유물이나 증명할 만한 고고학적 자료는 출토되지 않아 실존을 의심하는 학자도 많은 편이다. 기사 이에 따라서 사실 아방궁은 끝내 완성되지 않았으며, 실제로 항우가 불태운 것은 함양궁이라는 설도 있다.
3. 기타
중국 시안에 이를 재현한 테마파크가 있었다. 대개 유적지라고 소개되어 있으나 당연히 유적지는 아니고 멋만 낸 테마 파크에 가까운 것이었다. 입장료는 38위안. 유적은 아니고 고증도 쌈싸먹은 졸작이라 2014년 1월, 시진핑이 고향에 복원할 가치도 없는 흉물이 있다고 하여 철거를 지시했고, 2015년 현재는 완전히 철거되어 공터로 남아있다.
동아시아권에서는 쓸데없이 크고 화려한 관청을 비하하는 말로 쓰이는 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엄청난 예산을 들여서 건설하는 시청사가 주요 타겟이 되는데 이런 경우는 대체로 지자체의 재정이 좋지 않거나 적자를 내고 있을때 구설수에 오르게된다. 성남, 용인, 서울시청등이 이런 지적을 받기도 했다.건설비만 1600억 가까이…업무공간 50% 미만 호화 청사
중국은 한술 더 뜨는데 일개 지방 도시가 궁궐만한 수천억~수조원의 건축비를 써가면서 경쟁하듯이 청사를 올려서 빈축을 사기도 한다.중국, 지방정부 호화 청사 근절 선포
도쿄도청의 경우 80년대 가치로 1569억엔의 거금이 들어갔었다.도쿄도청 보수비만 9천억원"…호화청사 논란 재연
노무현 前 대통령이 고향 봉하마을에 퇴임 후 머무를 사저를 신축할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 정치인(나경원, 홍준표)들과 보수 언론들은 '아방궁' 에 빗대어서 '노방궁'이란 별칭을 만들어 비판한 적 있다. 그러나 정작 이명박 前 대통령이 2011년에 구입한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과 관련해서 논란이 불거지자 이런 주장은 비웃음 속에 들어갔다. 이명박의 아들 이시형씨와 청와대 경호실이 공동으로 부지를 매입해 청와대는 손실을 보고 이시형은 이득을 봤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애초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시골이라 땅만 넓었지(대지 1289평, 경호동 포함 2000평)[3] , 집 규모(1층 단독 주택 112평) 자체는 그리 큰 편도 아니었고, 매입 가격도 12억원 수준이었다.
전직 대통령 주거 시설인 것을 감안하면 아방궁에 빗댈 정도로 고가의 사저는 아니었다는 것.
참고로 노무현은 부동산이 한창 폭등하던 2005년 당시 여당의원들과 가진 청와대 만찬석상에서 자신은 퇴임후 임대주택에 살겠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긴 하다.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