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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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里長城 ('''만리장성'''의 한국식 한자 표기)[7]
長城/长城 ('''장성''' - 중국 오리지널 표기)
ᠴᠠᠭᠠᠨ ᠬᠡᠷᠡᠮ/Цагаан хэрэм ('''흰 성''' - 몽골어)
Great Wall ('''거대한 누벽''' -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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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흉노족, 몽골인, 만주족 등의 북방 유목민족의 침략을 막기 위해 중국이 여러 시대에 걸쳐 북방에 건축한 '''인류가 만든 가장 거대한 건축물'''이다. 신(新)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유적이다.
만리장성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만 리보다 조금 더 길며[8] 중국에서는 만리장성이 아니라 '장성'이라고 부른다. 동쪽 끝은 허베이성의 산해관(산하이관)이며 서쪽 끝은 간쑤성의 가욕관(자위관)이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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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전국시대
중국 최초의 장성은 초나라가 쌓은 장성이다. 초나라는 남방에서 광대한 영토를 영유하면서 그를 바탕으로 중원국가들의 영토를 빼앗으면서 서서히 북진하였다. 그렇게 얻은 영토 중에는 하남성 일대의 영토도 있었는데, 중원이라 불리는 하남성 일대는 국경으로 삼을 만한 자연경계가 없다. 초나라가 차지한 이 영토는 삼면으로 다른 중원국가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으므로 초나라는 이 영토를 보호하기 위해 300km가 넘는 장성으로 영토 전체를 둘러싸는 형태의 장성을 건설하였다. 이것을 장성의 효시라 할 수 있다.
이후 장성 건설은 전국시대 강대국들의 트렌드가 되었다. 전국시대 초기, 영역국가로서 재빠르게 변법에 성공한 위나라는 서쪽의 강국 진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서쪽에 장성을 쌓았다. 이 장성은 지금의 함곡관보다 훨씬 서쪽에 있으며, 지금의 서안시 동쪽에 위치한 화산 북쪽에 그 유적이 남아있다. 길이는 대략 60km 정도로, 진령산맥과 진북산맥을 잇는 형태로 건설하였다.
제나라는 남쪽에 장성을 건설했는데, 이는 당시 강국이었던 오와 월, 그리고 초나라를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한나라 또한 위나라와 접경지대에 짧은 장성을 건설하였다.
한편, 조나라는 적극적으로 장성을 활용했는데, 그 영토 자체가 유목과 농경의 경계지를 대부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유목민족과 접촉이 많았으며, 적극적으로 이를 막을 필요가 있었다. 이 지역 또한 유목민족의 남하를 막을 만한 자연지형이 없었기에 장성 건설은 필수였다.[9]
역시 북방민족과 접해있던 연나라는 기동성이 우수한 유목민족을 견제하기 위해 북쪽 국경에 장성을 쌓았다.
만리장성을 쌓은 것으로 유명한 진나라 역시 전국시대 때부터 적극적으로 장성을 활용했다. 건국 초기 때부터 상대해온 오랑캐인 융적, 그리고 북방의 흉노 등의 유목민족을 상대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장성 축조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자국 영토와 인구를 보호하려던 것이다. 최초의 장성인 초나라 방성은 중원에서 획득한 영토와 인구를 보호하기 위해서 건설한 것이다. 전국시대가 되면 기술발달과 인구의 증가, 국가 권력의 강화로 중국 내지가 충분히 개간되었기 때문에 이제 자국 영토를 개발하고 개척하는 것보다는 이미 개발된 상대국의 영토와 인구를 빼앗는 형태로 전쟁의 양상이 변하였다. 이런 변화로 인해 효과적인 영토와 인구의 보호가 절실했는데, 전국시대 각 국가들이 행한 이른바 변법은 이러한 사회 경제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장성은 그 주요 방편 중 하나로 그 자체가 영토를 둘러싸 보호하기도 하지만, 적의 침입과 기동로를 제한하고 아군의 빠른 대응을 가능케 해주어 영토와 인구 보호에 효과적이었다. 이러한 목적의 장성건설 사례는 최초의 장성 건설 국가인 초나라, 그리고 한나라와, 위나라, 제나라 등 중국 내지의 국가들에게서 두드러진다.
둘째는 북방 유목민족과의 경계선 확립이다. 장성과 경보체제를 갖추면 아무래도 유목민족이 남하하기 어려워진다. 그전에는 주요 감시망을 피해서 목축 동물들을 데리고 내려와 눌러 살면 그만이었지만, 장성 축조 이후에는 대규모 군사행동을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연경계가 부족한 지역에 장성을 건설함으로써 목축민들이 내려오는 한계를 설정하고 그를 통해서 수월하게 국경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장성건설의 사례는 북방 유목민족과 접한 북쪽의 국가들, 즉, 진, 조, 연나라에서 두드러진다.
내지에 위치한 나라들은 전자의 목적이 두드러지는 경향이, 북쪽에 위치한 국가들은 후자의 목적이 두드러지는 경향이 강하다고 볼 수 있겠다.
2.2. 진-한 시대
전국시대에 조나라, 연나라, 진나라 세 나라가 쌓은 장성을 진시황이 통일 후 연결해 지은 것이 시초. 당시 주관자는 몽염이다. 하지만 이 장성은 진나라의 붕괴와 함께 한동안 역사의 유적으로 남게 되었다.
한무제가 그 후에 한 번 더 대규모 공사를 해서 장성의 위치가 이전되었으며, 그 길이도 진나라 시절보다 길어진다. 그 이후 후한대까지는 잘 유지되어 왔지만 후한 말 이후 사회 혼란과 분열로 제대로 손질되지 않아 서서히 무너져 유명무실해졌다.
이후 명나라 시대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다시 완성되었다. 현재 부르는 만리장성은 명나라 시대의 장성을 말한다. 진대와 명대 장성은 위치도 상당히 달라서 사실상 다른 장성. 현재에도 진-한 시대에 쌓은 장성의 유적이 남아있다.
진시황이 연결해서 지은 장성은 지금의 벽돌이 아닌 흙을 이용해 지은 토성의 형태였고 높이도 높지 않은 데다가 지켜야 할 영역이 워낙 넓다보니 감시도 소홀해서 사람이나 말이 맘만 먹으면 쉽게 넘을 수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곡괭이 등으로 성벽을 허문 다음에''' 우르르 몰려가서 만리장성 아래를 개발살 낸 적도 있을 정도.
실제로 진나라 다음 왕조인 전한 시기만 봐도 한 고조 유방부터 한무제가 등장하기 전까지 북방의 흉노에게 개 관광당하기에 바빴고, 삼국시대와 서진시대를 거쳐서는 북방이 전부 북방민족의 손에 넘어가기에 이른다. 그 이후에도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등 숱하게 황하 이북을 북방민족에게 넘겨줬던 시기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이것의 효용성 자체에는 큰 의문부호를 다는 사람도 많다. 사실 따지고 봤을 때 정말 철옹성 같은 방어를 생각하고 만리장성을 축조했다면 손 안 쓰고 떡 먹으려는 놀부심보나 다름없다. 해자, 창검벽, 외곽성벽, 이중성벽 등등 온갖 방호시설을 떡칠해둔 성일지라도 함락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달랑 성벽 한 겹 둘러놓고 군대의 침공을 막아내겠다니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어떤 역사가들은 이 시기 만리장성의 용도가 북방 기마민족의 남침에 대한 방어선이 아니라 동서 교역을 하는 상단을 보호하는 가도와 역참으로서의 역할이 더 중요했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길목을 통제하고 대규모 적의 침공을 최소 지연시키거나 최대 방어해내는 것으로서 만리장성은 그 가치를 충분히 해냈다. 그 역할을 할 자연적 지형이 부족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즉 만리장성의 역할은 철옹성 같은 방어요새의 구축이 아니라 경계의 구축이었다. 만리장성이 유목민의 침공을 발견하고 잠깐이라도 지연하는 동안 후방에서 방어를 위한 기동군을 편성하거나 거점의 요새화를 하는 등 실질적인 방어 준비를 할 수 있지만, 장성이 없으면 그럴 시간조차 못 버는 것이다. 역할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저 성이라는 단어에 매달려 비판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애초에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인위적으로 경계를 만드는 일은 만리장성 외에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일이다. 가장 비슷한 사례로 에프탈족을 막기 위해 사산 왕조에서 쌓았던 '고르간의 성벽'이 있으며, 이외에 픽트족을 막기 위해 로마인들이 쌓았던 브리튼 섬의 하드리아누스 성벽이나 코린토스 지협에 쌓은 헥사밀리온 등이 있다.
사실 해수면이 상승하면 중국 영토 대부분이 그대로 물에 잠길만큼 중국은 의외로 평야인 지역이 아주 많다.[11] 특정 방어 거점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곳만 뚫으면 중국은 영토 자체가 워낙 거대하여 또 허허벌판[12] 인 경우가 대다수다.
만약 장성이 없었다면 화북은 유목민의 침공 및 약탈에 더 시달렸을 것임이 자명하다. 즉 만리장성은 유목과 농경을 나누는 경계선이다. 화북과 몽골고원에는 지형을 이용할 수 있는 방어선이 부족하기 때문에, 인위적인 경계선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기준삼아서 유목 민족과 농경 민족을 구분해둔 것이다.[13] 비록 마음만 먹으면 만리장성을 돌파하기는 용이하였으나, 대군이 통과할 길목은 한정되어 있기 마련이며, 이로 인해 만리장성은 마치 강과 같은 방어능력을 보여주었다. 강가를 따라 방어선을 구축했다고 해서 무적의 방어선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의 입장에서는 작전 지역을 우회하거나 돌파하기 위해 방법을 찾아야 하므로 방어의 효과는 충분한 것이다. 실제로, 명-청 교체기에 청나라는 이미 만리장성을 돌파할 수 있었으나, 만리장성을 돌파한 다음에는 보급선을 걱정해야 하기 때문에 쉽사리 침공하기가 어려웠다. 보급선이 끊기면 작전기한이 매우 제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나라의 침공은 산해관을 통과한 다음에나 이루어질 수가 있었다.[14]
2.3. 명-청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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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대에 이르러 가정제 때 몽골족에게 베이징이 포위되는 사건(경술의 변)이 일어난 후 몽골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융경제 때'''가 되어서야 현재와 같은 벽돌을 이용한 장성의 형태로 굳어졌다. 하지만 명의 영역이 기존 한의 영역보다 상당히 남쪽으로 축소되었으므로 사실상 장성을 신축해아 하는 데다가 공법의 변화까지 겹쳐서 장성의 재건설은 장기간에 걸쳐서 천천히 지속되었다. 그리고 장성의 수축은 중앙정부의 지시에 따라 체계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지역 지휘관의 재량에 따른 판단으로 임의적으로 수축된 것이고 그래서 성벽의 재료도 지역마다 달랐다. 벽돌로 지은 곳도 있고 바위로 쌓은 곳 흙벽돌로 쌓은 곳 등등, 일부 구간은 결국 명나라가 멸망당하는 시점까지도 완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구간은 완성돼서 상당한 방어력을 부여받았으며, 대표적인 곳이 산해관이다. 실제로 명대 만리장성은 청군이 돌파한 것이 아니라, 명나라가 반란군에게 망한 사실을 안 오삼계가 반란군을 토벌할 때 지원군으로 청군을 사용하기 위해 협약을 맺고 그냥 문을 열어줘서 통과할 수 있었다. 다만 이 시대쯤 되면 공성기술이 상당히 발달되었으므로 설령 만리장성이 석조성이 되었다 하더라도 전체적인 양상은 전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산해관 같은 강력한 점방어가 가능한 몇몇 지역들을 제외하면 여전히 성벽 한 겹인지라 대군으로 밀고오면 뚫렸다.
청나라의 경우에는 북방의 몽골까지 지배하는 상태였으므로 당연히 만리장성의 효용가치가 없어서 북경 근처의 일부 구간만 약간 보수하는 선에 그쳤다.
2.4. 근현대
만리장성이 마지막으로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된 것은 만주사변 이후 일본군의 열하사변 때이다. 북경을 점령하려는 일본군과 방어하려는 중국군이 북경 근처의 만리장성과 산해관에서 격전을 벌인 것. 결국 1933년 1월 30일 산해관이 함락되고 만리장성이 돌파되면서 북경이 함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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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전체 장성 중, 50%는 예전의 모습이 사라지고 다 파괴되었다고 한다. 유지보수의 중단 및 '''지역주민들이 집 지을 돌을 마련하느라 혹은 관광객에게 팔려고 만리장성의 돌을 빼갔기 때문이다. 거기에 아직도 각종 개발사업으로 파괴되는 경우가 있단다.''' 사실 한국을 비롯한 다른 동양 국가 역시 문화유산이니 보존하고 관광용으로 개발하자는 의식 자체가 생긴 것은 별로 오래되지 않았지만, '''현재진행형'''이라면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중국이 아무리 강대국이라고 하지만 장성 관리하는데 군인이나 관리인을 각 구간마다 전부 두는것이 효율성도 떨어지고 돈이 한두푼 드는일도 아닌지라 관리가 잘 안되는 측면도 있기도 하다. 어차피 군사적으로 쓸모가 많은것도 아니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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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일부 지역의 장성은 댐 공사 때문에 심지어 '''수몰된''' 장성도 있다고 한다. 아무리 산맥을 따라 성곽을 쌓더라도 강 주변이나 주요 평야지역을 지나가려면 장성의 위치도 낮아지는 것이 상식이지만 느낌상 아이러니.
하여간 이런 이유로 인해 예전 명, 청 시기의 장성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지역은 20%에 불과하다고 하며, 현재 만리장성 중 관광지가 된 구역은 마오쩌둥이 복구 공사를 진두지휘한 곳이 상당수다.
만리장성이 길기도 길기 때문에 일부 베이징에 가까워 관광지로 개발된 '포인트' 부분은 잘 정비되어 있지만 조금만 멀리 나가면 다 바스러져가는 관리 별로 안 되는 구간이 많다. 당연히 지키는 사람도 별로 없고 만리장성의 특성상 쭈욱 이어져 있기 때문에 장성을 따라 수십 km를 걸어다니는 걷기여행을 하는 사람도 있다. 원칙적으로는 당연히 금지이지만 만리장성 외곽지역의 인적이 드문 성벽 위에서 텐트 치고 야영하면서 다니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여행기도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 일부는 복구를 했는데, 하필 시멘트로 복원해놓기도 하여 논란이 되었다. # 설상가상 만리장성 바로 밑에 고속철도 역을 건설키로 해 논란이 예상된다. #
3. 논란
흉노족을 튀르크의 옛 조상들 중 하나라고 보는 터키에서는 만리장성이 튀르크족을 막기 위해 쌓았다고 보고 있다.[15] 몇몇 터키의 극우 성향의 사학자들은 흉노를 매우 강하게 과장하기 위해서 만리장성의 위치나 길이를 왜곡하는데, 심할 경우 만리장성의 동단 기점을 연해주로 왜곡하기도 한다.
몇몇 자료에서는 진-한대의 장성에 이어 고구려 성을 장성으로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고구려의 박작성 유적을 만리장성 동쪽 부분의 시작 지점으로 삼겠다는 몇몇 사학자들의 주장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러나, 만리장성의 동단 기점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허베이성 끝에 위치한 산해관이었으며, 고구려의 박작성으로 비정되는 호산산성은 장성의 동단 기점이 아니었다. 물론 고지도에는 현 요동 반도 지역에 벽돌로 쌓은 장성 대신 목책과 보를 표시하고 있어서 이를 장성이라고 주장할 수는 있으나, 중국에서 펴낸 장성에 관련된 연구 서적을 살펴 보면 '목책은 장성으로 볼 수 없다.'고 당당히 명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목책과 보를 중심으로 쌓은 것을 장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장성의 정의를 방어 목적으로 길게 이어 쌓은 성이라 말하는데도 요동의 목책은 장성처럼 길게 이어 설치한 것이 아니라 주요 군사 지역 주변에 드문드문 설치한 것이라 이러한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잃는다. 해당 주장의 요지는 여러 고지도에서도 표시되지 않는데도 '장성의 석축'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관련 조사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 보고서가 현재까지도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한반도북부까지 만리장성이 서 있었다고 왜곡을 해왔고 그게 먹혀들어갔다. 뉴욕 메트뮤지엄 '중국관' 역사날조,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한국 지도' 오류 투성이 더 큰문제는 '''현재진행형이라는것''' '평양까지 뻗은 만리장성' 中 동북공정이 왜곡한 세계지도 이를 근거로 중빠들 중에서 만리장성의 동단기점이 한반도 북부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작자들이 있다.
2012년에는 만리장성의 길이가 기존의 두 배 이상 늘어난 '''21196.18km'''라고 발표했다. 21196.2km이면 '''서울에서 시카고나 토론토까지의 거리의 두 배, 서울에서 지구 반대편의 우루과이까지의 거리보다 길다.''' 서울에서 시카고는 10500km, 토론토는 10700km,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는 19400km, 몬테비디오까지는 19600km다.[16] 기사를 살펴 보면 중국의 발표는 진나라 및 한나라, 명나라의 장성 유적뿐만 아니라 그외 기타 왕조에서 건설된 다양한 장성을 조사한 것으로 그것을 모두 합산하여 만리장성의 길이가 연장되었다는 내용이었다.
2018년 현재, 중국 당국에서 신장 위구르 자치구 외곽에 장성을 쌓을 것이라 발표했는데, 이것이 실제 성벽을 둘러 쌓는다는 것[17] 인지 보안 강화의 은유적인 표현[18] 인지 알 수 없는 상태이다.
반크는 만리장성이 평양까지 뻗어 있는 지도를 두고 '만리장성이 고무줄인가요?'라는 제목으로 중국의 역사 왜곡을 비판하는 포스터를 제작해 SNS에서 배포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중국의 동북공정 역사왜곡 행위를 바로 잡아줄 것을 유네스코 등 국제사회에 요청한다고 밝혔다.#
만리장성 복제품까지 나오면서 중국내에서 논란을 빚고 있다.#
2021년 기준 동북공정은 현재에는 영문 Wikipeida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The Great Wall of China, The history of Great Wall of China 등 기원전 진나라 부터 한나라 명나라 까지 한반도까지 만리장성이 쌓아져 있는 것처럼 지도를 그려 놓았다.
4. 이야깃거리
4.1. 시황제와 관련된 설화
언급되었듯이 만리장성은 단순히 한 사람, 한 왕조에 의해 세워진 것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건축 시도 끝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대중매체에서는 진시황의 폭정을 언급할 때 '만리장성을 무리하게 축조하게 했다'는 점을 강조하여 넣기 때문에 진시황에 의한 축조가 가장 유명하다. 특히나 그중에서 초한지의 영향으로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설화로 '망진자호(亡秦者胡)'와 관련된 설화가 있다.
시황제는 말년에 늙지 않고 죽지 않게 만드는 불로장생초를 얻기 위해 온갖 미신을 믿고 다녔는데, 황해를 넘은 땅에는 삼신산이 있어 수많은 선인들이 칩거하고 있으며 그곳에 불로장생의 영약이 숨겨져있다는 방술사(方術士)들의 말을 들은 진시황은 그중 한 명인 서복(徐福)에게 그 영약을 찾아올 것을 명했다. 서복은 영약을 위해서는 남녀 동자 500명과 금은보화가 필요하다 했고 시황제는 흔쾌히 수락했으며, 서복은 그 길로 불로장생초를 구하기 위해 떠났으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서복이 사라진 지 3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시황제는 불안하여 노생(盧生)이라는 다른 방술사를 보내어 서복을 찾게 했는데, 노생은 삼신산 중 하나인 봉래산에서 선문고(羨門高)라는 선인을 만나 '이 책에 담긴 뜻을 해석해내면 능히 불로장생의 비결을 얻고 천수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천록비결(天簏秘訣)이라는 책을 건네받았다. 노생은 천록비결을 진시황에게 바쳤으나 천록비결은 수많은 은어로 이루어져 도저히 읽을 수 없었고, 시황은 수많은 학자들을 총동원하여 천록비결을 해독하고자 했다. 그 뜻을 해독해내는 데에는 결국 실패했으나, 천신만고 끝에 '망진자호(亡秦者胡)'라는 한 글귀를 알아낼 수 있었다. 시황제는 진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오랑캐(胡)라는 뜻으로 받아들여 만리장성으로 북방의 오랑캐를 막고자 했으나, 胡는 오랑캐가 아니라 이세황제 호해(胡亥)를 뜻하는 것이었고 진나라는 호해에 의해 망하게 되었다는 설화이다.
야사이므로 실제로 이런 일이 존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며 바리에이션도 꽤 있다. 신선이 건네준 책에서 비롯된 글귀가 아니라 단순히 점쟁이가 내려준 글귀였다는 설도 있으며, 정치적 문제를 덮을 목적으로 외부의 적을 만들기 위해 이러한 이야기를 꾸며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당시 진나라의 상황과 기막히게 맞아떨어지는 덕에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있다.
4.2. 우주에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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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빌딩 꼭대기에서 길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 보인다'''고 하는 말과 같다.
만리장성은 사실 '''길이는 길지만 폭이 좁으므로'''[19] 육안으로 볼 수 없다는 건 상식. 저 위의 사진도 줌기능으로 당겨서 본 거지, 본래 사진을 보면 그냥 안 보인다.
본래 이 말은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쓴 유명한 천문학 책인 코스모스#s-4에서 '피라미드와 만리장성이 실은 오늘날(1980년) 지구를 선회하는 인공위성에서 식별할 수 있는 지구의 유일한 거대 (인공)지형지물이다'라는 문구가[20] 달로 와전된 경우로 보인다. 실제로는 그 이전 문헌에도 기록이 있다. # 당연하지만, 중국인 최초로 유인 우주선에 탄 양 리웨이는 지구 바깥에선 그 어느 건물도 그 어느 것도 안 보였다고 말하면서 칼 세이건의 주장 또한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한국에 널려있는 아파트들, 공원 운동장들조차도 만리장성보다는 폭이 넓다. 망원경으로 보더라도 아파트나 운동장보다 더 안 보이는 게 만리장성이라는 것.
4.3. 대중문화에서의 만리장성
각종 창작물에서는 중국의 상징 중 하나라 그런지 중국인 캐릭터들의 홈 그라운드로 많이 애용되기도 한다.
- 대항해시대 2에서는 A급 발견물 중 하나로 등장하며, 황하를 따라가다보면 발견할 수 있다. 유적으로 분류되며, 나름 상당한 투자가 필요.
- 대항해시대 3에서도 등장하며, 성도, 개봉, 북경, 항주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북경 북쪽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발견 직후 도적단과 시비가 붙어 전투가 발생하기 때문에 상당한 준비가 필요하다.[21] 발견 이후에는 증거품으로 청룡상을 얻는데, 부가 능력치가 해상전시 사격 위력 1.5배 증가 및 반란 억제 등 쓸만한 것이어서 함선에 달아두면 여러모로 유용하다.
-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는 인식 11랭크, 고고학 13랭크에 자카르타에서 퀘스트를 받아 황하 하류에 상륙해서 발견할 수 있는 사적 발견물이다.
- 바람의 나라(게임)에서는 중국 남부인 광동성, 복건성, 강서성, 도삭산을 가기 위해 거쳐가는 곳이었으나, 패치 이후로 한 번에 부여, 고구려에서 중국 남부로 갈 수 있게 되어서 아무도 안 지나다닌다. BGM이 좋은 지역으로도 유명
-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시리즈에서도 단골로 나오는 불가사의. 문명 2에서는 자국 도시들에 무료로 성벽을 지어줌과 동시에 상대국은 외교교섭시 휴전을 강제받는 기능[22] 이 붙어있다. 문명 3에서는 자국 도시에 건설된 성벽의 효과를 2배로 높여주는 기능이었고, 문명 4에서는 야만족이 자국 영토 내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꽤 유용한 원더기 때문에 꽤 효과가 좋다.[23] 문명 5에서는 건설된 국가의 영토 내에서 적의 행동력 소모를 두 배로 만들며, 다이너마이트 개발 시에 효과가 사라진다. 문명5에서 기술개발로 효과가 사라지는 유일한 불가사의인데, 그만큼 효과가 뛰어나서 멀티에선 기본으로 금지하는 경우가 많다. [24] 문명 6에서는 슬프게도 중국의 고유 시설로 강등. 만리장성 하나마다 타일 1개를 차지하는 데다 국경에만 지을 수 있는 특성 때문에 해금되는 시대보다는 좀 나중에 짓게 된다. 만리장성은 요새 보너스를 부여하며, 인접한 만리장성마다 문화와 금을 제공하고, 후반에는 관광도 제공한다. 불가사의 건설 가속 효과와 더불어 이번 작에서의 중국을 문화승리 강국으로 만든 요소 중 하나. 그리고 시리즈 공통적으로 건설하게 되면 건설시점의 국경을 만리장성으로 둘러싼이미지가 생겨 건설도시에 작게 표시되는 다른 불가사의에 비해 비쥬얼도 강렬하다.
- 얼음과 불의 노래에 나오는 중국이 모델인 이티 제국에는 웨스테로스의 장벽과 비슷하게 다섯 요새가 존재한다.
- 요리왕 비룡의 리액션에 등장하는 그 곡 (다운로드 주의!)의 제목이 만리장성(万里の長城)이다. 만화책에선 만리장성을 이용해 요리도 했다.
- 용자왕 가오가이가에서는 기계31원종 중 하나인 척추원종이 통째로 융합해버린 뒤 몸체 다수가 가오가이가의 골디온 해머에 소멸당하고, 핵이 있던 나머지 부분은 지저 깊은 곳에서 킹 제이더 손에 소멸당하면서 사라져버렸다. 이후 기계문명과의 결전이 모두 종료되면서 카펜타즈의 손에 의해 복구되긴 했으나, 다른 복구된 문화 유적들이 그렇듯 짝퉁 취급하는 시선이 상당수이다. 안습.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판다리아엔 사마귀족의 침범을 봉쇄하기 위해 천둥왕 레이 션이 쌓아놓은 용의 척추가 있다. 판다리아의 안개가 전체적으로 중국 문화를 모티브로 했기에 당연히 진시황과 만리장성의 오마쥬.
- 스타크래프트 2에서 공성전차 행성요새 미사일 포탑 벙커 등으로 방어선을 구축하는 테란전술도 만리장성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협동전에서 벙커만으로 모든 인구수를 채우는 벙커장성 빌드가 나왔다.
- 롤러코스터 타이쿤 2에 만리장성 주변을 개발하는 시나리오가 있다. 역시 대륙의 시나리오답게 돈이 무한이다.
- 중국 위촉오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액션게임인 진삼국무쌍 8에서 명승지 중 한 곳으로 등장한다. 해당 게임은 실제 중국 지형을 축소 측량해서 구현한 오픈월드 성격을 띠고 있어서 게임상 위치도 실제 위치와 비슷하며 엄청나게 긴 장성 길이와 좁은 폭을 감상할 수 있다. 근데 한나라 시절의 토성이 아니라 명나라 때 쌓은 석성(...)
- 징기스칸 4 파워업키트에서는 방벽으로 만리장성을 구현해놓았다.
- 울펜슈타인: 더 뉴 오더에서 신문기사를 통해 언급되는데, 나치가 만리장성을 요새화(...)시켰다고 한다.
- Warhammer(구판)의 카세이에서는 북방 민족들을 막기 위해 대요새(Great Bastion)가 존재한다. 여기서는 고대에 죽은 거대한 용의 뼈를 기준으로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 애니메이션 슈퍼배드에서는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도둑질당하자 자국의 문화재인 만리장성을 보호하기 위해 주변에 탱크들이 지키고 있으며 그 위로 새가 지나가자 바로 주포를 발사해 폭사시킨다.
- 툼 레이더 II에서 등장하는 유물 시안의 단검이 위치하고 있는 장소가 만리장성이다.
4.4. 기타
- 중국의 유명한 문화유산이자 상징적 아이콘이다 보니 해외 스타들이 중국을 방문하면 꼭 들르는 곳이기도 하다. 스타뿐만 아니라 정치인들도 곧잘 방문하며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그 가족들도 중국 방문 시 만리장성에 오른 적 있다. 저스틴 비버는 보디가드 어깨에 목말 탄채 등반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 거리가 거리인 만큼 만리장성을 걸어서 완주하는 것은 중국 내에서도 대단하다고 보도되는 일이다. 일단 6,000km나 되는 성곽을 걷는 것이니 서너달 정도의 일정을 잡아야 한다.[25] 그리고 사람이 많은 관광구역이야 당연히 관리가 잘 되지만,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면 관리가 되지 않아 수풀이 우거지거나 무너진 부분이 중간중간 있는데다, 몇몇은 국군 제8보병여단의 네발계단처럼 가파르고, 또 몇몇은 그냥 암벽이라 등반을 해야 할수도 있다. 거기다 식수와 식량 문제, 배설 문제, 폭염 또는 혹한 대비 등등까지 고려한다면... 어지간한 등산보다 험난해서 조난 사고도 많고, 2012년에는 폭설로 인해 만리장성 등산에 오른 일본인 관광객 3명이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26] 단지 완성된 성을 따라 걷는 일만도 이러한데 그 비탈지고 긴 거리를 따라 성을 축조한 당시 사람들의 노력을 생각해보면 절로 감탄사가 나올 노릇이다.
- 수나라의 대운하와 더불어 중국 역사상 2대 대공사 작품이라고 하지만, 대운하는 현대 중국의 먼치킨급 경제 발전을 일구어내는 데에 일조한 조상님들의 선물인 것에 비해[27] 만리장성은 청대 이후 기능이 거진 장식화되었고 오늘날엔 그냥 관광자원일 따름이다. 물론 관광업도 우습게 볼 게 아니라 잘만 하면 큰 자본 들이지 않고 어마어마한 돈을 얻을수 있는 산업이고, 그런 관광업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게 바로 만리장성처럼 '그 나라에 밖에 없는 유니크한 역사유적'이기 때문에 결코 폄하할 수는 없긴 하다.
- 현재까지의 천문 관측에 의하면, 우주는 텅 빈 공간을 거대 은하단들이 마치 벽처럼 채워놓은 구조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 구조를 만리장성(great wall)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주 거대 구조 문서 참고.
- 만리장성과 얽힌 중국의 유명한 설화로 열녀 맹강녀 설화가 있다. 진시황 때 만리장성 건설 인부로 끌려간 남편에게 겨울옷을 갖다주기 위해 옛 제나라 땅에서부터 먼 길을 걸어온 맹강녀라는 여인이, 남편이 이미 죽고 시신은 구덩이에 아무렇게나 던져졌다는 말을 듣고 통곡하며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어 구덩이에 쌓인 해골 무더기에 흘리자 피가 스며드는 해골이 있었고 맹강녀는 그 해골이 남편의 해골이라고 확신, 장례를 치룬 뒤 남편의 뒤를 따라 죽었다는 것. 조금 각색된 설화로는 맹강녀의 남편이 단순 인부가 아니라 인신공양 제물로 진시황에게 직접 살해되었고 맹강녀의 미모를 탐낸 진시황이 맹강녀를 강간하려 하자 맹강녀가 자결하는 순간 만리장성에 벼락이 내려 무너졌다는 변형도 있다. 맹강녀가 죽은 곳이 산해관 근처라 하여 지금도 그곳에 맹강녀를 모시는 사당이 있다. 다른 버전으로 공사 현장에 갔는데 남편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맹강녀가 주저앉아 며칠을 통곡했는데, 하늘이 그 한을 알아봤는지 갑자기 그 근처의 만리장성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는 결말도 있다. 기껏 지어놓은 성이 무너졌으니 소식을 들은 진시황은 뒷목을 잡았으리라.
- 한국에서는 남녀가 밤을 함께 보내는 것을 비유하여 "만리장성을 쌓았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민화의 내용 줄거리는 "길가던 행인이 날이 저물어 어느 여염집에서 하룻밤 묵게 해줄 것을 청하였는데, 그날 밤 집 여주인이 행인과 하룻 밤을 함께 보내며 만리장성에 노역을 나간 남편에게 편지를 전해달라 부탁하였고 마침 행인이 그곳을 지나갈 참이라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행인은 만리장성에 도착하여 그곳 감시관에게 편지를 전하였는데 편지의 내용인 즉슨, 이 사람이 남편과 교대하기로 한 사람이오니 남편을 집으로 보내주시오 하는 내용[28] 이었고 행인은 노역장으로 끌려가게 되었다는 내용." 이것이 "하룻밤이면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의 어원이라고 한다.[29]
- 베이징시 근처 4개 구역이 관광지로 유명하다. 이 중 서양 사람들은 주로 거용관 코스를 선호하고 한국인들은 팔달령 코스를 선호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유인즉 서양 관광객들은 진짜로 등산하듯 아래에서부터 걸어 올라가며 즐기는 경우가 많고, 성질 급한 한국사람들은 케이블카로 얼른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사진 찍고 내려오는 경우가 많아서라고 한다. 그런데 저렇게 등산하듯 올라가던 서양 관광객 중 몇 사람이 10월 말 불어닥친 이상한파와 폭설로 인해 장성 중간에서 발이 묶이는 바람에 동사하는 사고가 발생한 경우가 있다.
- 슬라이딩카를 타게 된다면 성수기일 경우 2시간 이상 기다려야 할 때도 있으니 대기시간을 반드시 확인하자.
- 현재 만리장성의 벽의 80% 정도가 훼손되어있다고 한다. 그 이유인 즉슨 이름낙서. 만리장성의 벽은 기본이고 케이블카의[30] 벽과 유리 부분에 낙서가 많이 되어있다고 한다. 심지어 낙서를 칼로 판 후에 판 곳을 화이트 등으로 채우는 등신 같은 짓을 해서 복구도 힘들게 한다고 한다. 만리장성은 중국의 유산이기 전에 세계문화유산이어서 개인이 훼손 시 최소 160만 원에서 최대 800만 원의 벌금을 물게 되어있다. 그러니 낙서하면 벌금이 문제가 아니라 나라망신에 집안망신이므로 절대 하지 말자. 자기 나라의 유산에 누군가 낙서하면 기분 좋을 사람이 있을까? 실제로 한글 낙서들을 알아본 중국인이 이를 인터넷에 올려 공론화해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엄청나게 욕을 먹기도 했다. 관련기사 게다가 안 그래도 전술된 낙서와 자연적인 풍화로 성벽이 점차 소실되어 가고 있는 상황인데 지역 주민들이 집을 짓거나 묘지에 석재로 쓰려고 만리장성의 벽돌을 훔쳐가는가 하면, 심지어는 기념품으로 벽돌을 뽑아가는 관광객이나 작정하고 기념품으로 팔아먹을[* 실제로 현지에서 만리장성 벽돌이 하나당 한화 5천 원 선에서 팔리고 있다고 한다.] 목적으로 벽돌을 훔치는 장사꾼들까지 나오는 막장화로 수난을 당하고 있다. 관련기사 1(조선일보) 기사 2(SBS 뉴스 보도) 게다가 중국 정부에서 만리장성의 일부 구간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시멘트로 메우면서 누리꾼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관련 기사
-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 공약으로 내건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이 만리장성과 비교되는데, 본인도 저서에서 만리장성을 예시로 들며 장벽 건설을 주장했다.
- 중국의 핵전쟁용 지하 요새들을 가리켜 지하 만리장성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6.25 전쟁 때도 지하 만리장성이라 부르는 급조 지하 시설을 구축하여 미군 화력 방어용으로 써먹었다. 이게 생각보다 효과가 좋아서 화력으로 중공군을 쓸어버리던 UN군도 고전하고 전쟁을 휴전으로 끝냈다.
- 경사가 꽤나 높은 구간이 있어 고소공포증이 있을 경우에는 조금 무서울 수 있다.
- 모 중국어 교수가 젊은 시절 겪었다는 이야기가 있다.중국에서 겪은 기묘한 이야기
- 2020년 1월 24일 일부 구간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산 예방의 일환으로 일시적으로 영업 중단을 한다고 밝혔다. #
- 금융권에서는 만리장성에서 유래한 차이니즈 월(Chinese Wall)이란 용어를 흔히 사용하는데, 투자은행이나 전략컨설팅에서 경쟁사간의 업무를 봐주는 경우도 있고 기업과 투자자간의 정보공유에 따른 이익이 서로 상충되기 때문에 차이니즈 월을 쳐서 업무간의 정보공유를 원천차단한다는 뜻이다. 물론 금융권 외에서도 사용하긴 하는데, 대표적으로 삼성전자에서 스마트폰 부문에선 경쟁사지만 반도체 부문에선 고객사인 경우가 있다.
[1] 명대의 주요한 장성 기준.[2]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3]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4]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5]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6]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7] 중국어 독음은 완리창청(Wànlǐ Chángchéng).[8] 만 리는 약 4000km이고, 만리장성의 길이는 6350km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만 리의 약 1.5배가 된다. 중국 기준을 적용해 만리를 5000km로 환산해도 12700리 정도 된다.[9] 대충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http://m.blog.daum.net/12260102/6805748, http://m.blog.daum.net/musicchina/11604149?tp_nil_a=1 우리나라는 자연적 만리장성이 깔린 지역이라고 보면 된다. [10]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고대 중국에는 성벽을 쌓는 방법이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벽돌을 쌓아 만드는 방법이 아니었다. 흙과 건초 반죽을 번갈아가며 쌓는 방식이었다. 이와 같은 방식을 판축기법이라 이른다.[11] 반대로 한반도와 일본은 진짜 산지가 많아 해수면이 상승해도 생각보다 타격이 별로 없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지도상의 크기의 이야기일뿐, 실제로 해수면이 그렇게 오른다면 한-일도 사람이 많이 살거나 농사가 되는 지역은 다 잠기고 현재는 안 쓰는 땅만 남아 실질적으론 타격이 지대하긴 매한가지다...[12] 전체적으로는 산지여도 그 지역의 평야 면적이 한반도 수준이거나 전국 팔도 중 하나랑 맞먹거나 하는 수준. 걍 평야가 여간한 국가에 맞먹는 넓이였다. 그래서 그런 산지에 사는 사람들조차 다수가 다 평지에 도시 건설을 해서 평지인이나 마찬가지였다.[13] 실제로 유목민들이 돌아다니며 살았던 지역인데도 만리장성을 쌓은 다음에는 중국의 영토가 되었다.[14] 산해관을 지키던 오삼계가 항복하여 산해관의 통제권을 청에게 내어주었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15] 이쪽에서는 아예 만리장성을 뜻하는 Çin seddi를 상대방을 관광보냈다 혹은 따먹었다 정도의 은어로 쓰는 중이다.[16] 참고로 지구 한 바퀴는 40,075km이다.[17]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로부터의 보안을 강화하려면 검문을 강화하기위해 국경에 벽을 쌓는 편이 용이할 것이다.[18] 신장 자치구는 이슬람국가로의 독립을 노리고 있고, 중 정부는 이를 테러리스트들의 분열조장으로 바라본다.[19] 만리장성의 전체적인 길이가 5000~6000km 정도 되는데 폭은 고작 10m도 안 된다.[20] 한국어판에서는 119P.[21] 일기토나 지상전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22] 현대시대에 나오는 UN과 같음[23] 덤으로, 문명 3까지는 단순히 해당 원더가 지어진 도시의 배경에 만리장성이 세워진 모습만 보여준데 비해, 문명 4에서는 진짜 메인맵상의 자국 국경 전체를 성벽으로 감싸는 비범한 시각효과를 보여주었다.[24] 행동력 소모 2배 때문에 적은 보병/공성병기는 1, 기병은 2의 행동력이 되어 버리므로 도로를 이용하면 기병을 궁병짤짤이로 바를 수 있다(...).[25] 건강한 사람이 하루종일 약 60km정도를 걷는다고 할 때, 만리장성은 험준한 산성을 걷는 것이니 만큼 보통 걷는 것보다 곱절로 힘들다.[26] 이 산악투어 상품을 만든 일본 여행회사는 2009년 일본 토무라우시산 조난 사고도 일어난 적 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여행업 등록이 취소되었다.[27] 하지만 그것을 실현한 수양제는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폭군으로 욕먹고 있다. 대운하도 엄청난 짓이었지만 그것말고도 하도 막장 짓거리를 많이 해서...그나마 대운하 덕에 자기 이름만은 역사에 확실히 각인시켰으니 다행인지 불행인지.[28] 그리스 신화에도 이와 비슷한 편지가 등장한다. 벨레로폰#s-1.2 참조.[29] 전승에 따라 내용에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남편 대신 하루만 일해달라고 해놓고는 부부가 야반도주해서 평생 돌 나르게 됐다는 내용도 있고, 지나가던 손님이 아니라 감시관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 부인이 워낙 절세미녀라 자발적으로 하룻밤을 보내고 만리장성 쌓으러 갔다는 버전도 있다.[30] 케이블카의 색깔이 하얀색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