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베 비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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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31230> '''이름'''
아베베 비킬라(አበበ ቢቂላ, Abebe Bikila)
'''국적'''
에티오피아 제국 [image]
'''생몰년도'''
1932년 8월 7일~1973년 10월 25일
'''종목'''
육상
'''주종목'''
마라톤
'''신체'''
177cm, 57kg
'''별명'''
맨발의 아베베
1. 소개
2. 초기 생애
3. 선수 경력
4. 시련과 사망
5. 수상 기록
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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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에티오피아의 전설 같은 마라토너이며, 아프리카 최초의 금메달리스트 및 마라톤 최초 2연패 달성자다. 41년의 생애 동안 영광과 좌절을 수차례 겪은 극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2. 초기 생애


1932년에 에티오피아의 모우트에서 출생했다. 원래는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 1세의 친위대에서 부사관으로서 근무했었는데 한국전쟁 때는 1년간 대대장 경호병으로 참전한 적이 있었다. 그 후 재미 삼아 출전한 군인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마라톤에 두각을 드러냈다.

3. 선수 경력



3.1. 1960 로마 올림픽


대회를 앞두고 에티오피아에서 국가대표를 선발하는데 당초 아베베 비킬라는 선발되지 않았지만 당시 팀의 에이스였던 와미 비라투가 올림픽 출전 보름 전에 축구를 하다가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대신 출전하였다. 로마 올림픽은 이전 올림픽과는 달리 특이하게도 야간에 마라톤을 했는데 아베베가 결승선인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통과하자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그 이유는 아베베 비킬라가 맨발로 달려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베베 비킬라는 이 대회에서 2시간 20분의 벽을 깨고 2시간 15분 16초 2로 세계 신기록을 세운다. 아베베의 금메달은 아프리카 출신 흑인이 최초로 획득한 메달이기에 아베베 비킬라는 아프리카에서도 영웅으로서 추앙받았다.
경기가 끝나고서 세계 언론에서는 아베베 비킬라가 마라톤화를 살 형편이 안 될 정도로 가난했기에 맨발로 달렸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사실이 아니다. 당시 에티오피아 대표팀은 아디다스가 후원하였고 선수들에게 마라톤화 정도는 당연히 지급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아베베 비킬라가 대표팀에 뒤늦게 합류해서 발에 맞는 신발이 없었고[1], 결국 에티오피아 감독이 맨발로 훈련해본 경험이 있는 아베베 비킬라에게 맨발로 뛰는 것을 권유했다. 로마의 대로는 대부분 아스팔트나 돌길이라 맨발로 달리기엔 약간 힘든 조건이었지만 당시 마라톤화의 무게는 약 400g으로 상당히 무거운 편이었고 오히려 맨발이 신발을 신었을 때보다 달리기 좋았다는 말도 있었다 한다.
로마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우승한 아베베 비킬라는 무솔리니 파시스트 정권하에서 침공당한 적이 있는 에티오피아인들에게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고,[2] 대표팀 귀국 때 에티오피아 황제가 직접 마중을 나와 아베베 비킬라에게 왕관까지 씌워주고 금반지와 금시계를 하사하는 등 국민 영웅으로서 등극한다. 이 올림픽으로 인해 '맨발의 아베베'로 유명해졌다.

3.2. 1964 도쿄 올림픽


대회 40일 전 아베베 비킬라는 급성 충수염으로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아베베 비킬라의 마라톤 2연패를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베베 비킬라는 수술 후 몸도 다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2주 만에 훈련에 돌입했고 이번에는 마라톤화를 신고[3] 2시간 12분 11초 2로 세계 신기록을 경신하면서 세계 최초로 올림픽 마라톤 2연패를 달성한다.[4] 무엇보다 결승선을 들어온 다른 선수들은 탈진에 쓰러기 바빴지만 아베베는 맨손체조를 하면서도 20km 이상은 더 달릴 수 있다고 말하는 등 놀라운 체력을 보여준다. 그런데 수술받고 마라톤에 출전해서 우승할 줄은 아무도 예측을 못했던 건지, 주최 측에서는 에티오피아 국가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에티오피아 선수를 시상대 위에 올려놓고 기미가요를 연주해 구설수에 올랐다. 당연히 에티오피아 대표팀에서는 격분하여 주최 측에 항의했고 언론에서도 호되게 비판하여 이 일은 도쿄 올림픽의 흑역사로 남게 된다.

3.3.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


높은 고도에서 열린 대회의 환경상 선수들이 환경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고, 아베베 비킬라도 부상을 입은데다 이미 나이도 전성기를 지난 탓에 17km까지만 뛰고 기권했다. 대회 이전에 아베베는 이미 부상에서 회복했다며 호언장담했지만, 이는 동료들을 위해서 일부러 허세를 떤 것에 가까웠다.
대신 아베베는 페이스 메이커로서 역할을 하면서 자국 선수 마모 웰데에게 금메달을 가져다줬다.[5] 이로써 에티오피아는 마라톤 3연패를 달성하였다.

4. 시련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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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아베베 비킬라는 1969년 아디스아바바 근교에서 황제가 하사한 폭스바겐 승용차를 운전하던 중 대형 교통사고를 당하여 목뼈가 부러지고 척추가 손상되는 중상을 입었다. 다행히 아베베 비킬라는 기적처럼 회생했지만 육상 선수에게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다. 아무도 아베베 비킬라의 부활을 예측하지 않았지만 아베베 비킬라는 불굴의 의지로 다시 일어나 상체의 힘을 길러 펜싱, 탁구, 양궁, 눈썰매 등을 배워 장애인 대회에서 메달까지 따는 투혼을 보였다.[6]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던 아베베 비킬라는 하지만 운이 없게도 1973년 또 한 번의 교통사고를 당했고, 뇌출혈로 사망했다. 아베베 비킬라의 장례식에는 에티오피아 국민 6만 명 이상이 참석했고 맨발의 마라토너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베베 비킬라의 사망을 애도했다.

5. 수상 기록


올림픽
금메달
1960 로마
마라톤
금메달
1964 도쿄
마라톤

6. 기타


  • 6.25 전쟁에서 UN군으로 참전한 에티오피아군의 일원으로 한국에 왔고, 1966년 10월 동아일보 초청 제3회 국제 마라톤 대회(9.28 서울수복기념 국제마라톤대회)) 출전을 위해 다시 한국을 방문했다.[7] 당시 그는 2년 앞선 도쿄 올림픽에서 마라톤 2연패를 달성하는 등 선수로서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때였고, 순조롭게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리고 한국에서 열린 이 대회는 아베베가 마라토너로서 우승한 마지막 대회로 기록되었다.
  • 아베베 비킬라의 생애를 소재로 한 영화〈The Athlete〉가 2010년에 개봉되었다.
  • 마모 웰데 선수와 함께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의 성 요셉 묘지에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2007년경에 어떤 사람이 테러를 저질러서 아베베 비킬라와 마모 웰데의 동상의 다리가 박살이 난 적이 있었다.
  • 황제를 호위하던 무관 출신이었기에 교통사고를 면했어도 맹기스투의 반란에 휘말려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베베 비킬라가 전 국민의 스포츠 영웅이라고 하지만 맹기스투는 그딴 거 신경 쓰지 않던 작자였기 때문이다.
아베베 비킬라가 죽은 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1974년 9월, 멩기스투가 주축이 된 군부 쿠데타로 에티오피아 제정은 폐지된다. 아베베 비킬라가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해 주어 1968년에 우승을 거머줬던 동료 선수인 마모 월데는 멩기스투가 쫓겨난 후에 들어선 인민혁명당군이 에티오피아의 정권을 잡자 멩기스투 황실 근위 대대 소속 대위였다는 이유로 양민 학살 혐의를 받고 1993년에 투옥되기도 했다. 이에 IOC 측에서 마모 윌데의 석방을 요청하고 서방 세계에서도 마모 월데를 구제하고자 많이 노력하였으나 9년이 지난 2002년에서야 풀려난다. 그리고 풀려난 지 6개월 만에 간암으로 죽었다. 이런 걸 보면 아베베 비킬라의 말년이 불행하기는 했지만 굴욕은 받지 않고 죽었으니 어쩌면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2015학년도 6월 모의평가 영어 빈칸 추론 지문에 예시로 나왔다.
[1] 마라톤 선수는 대충 시중에 판매 중인 사이즈를 착용하지 않는다. 장시간 뛰어야 하기 때문에 본인 발에 맞춤으로 신는다.[2] 간단히 말해서 황영조 선수가 1994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아시안 게임의 마라톤에 금메달을 수상했을 때 한국인들이 느꼈을 기쁨과 비슷한 것이었다.[3] 지난 올림픽을 눈여겨 본 세계 여러 스포츠용품 회사에서 너도 나도 후원에 앞장섰다고 한다.[4] 세계에서 단 2명 있는 올림픽 마라톤 2연패 중 한 명이다. 다른 한 명은 1976 몬트리올 올림픽1980 모스크바 올림픽에서 우승한 동독의 발데마르 차에르핀스키다. 그러나 모스크바 올림픽은 올림픽 보이콧으로 인해 별로 조명받지 못했다. 게다가 마라톤 2연패 중에서 세계 신기록을 전부 갈아치운 사람은 아베베 비킬라 한 사람 뿐이다.[5] 마모는 멕시코 올림픽 당시 10,000미터 달리기에서도 은메달을 수상했다. 4년 후인 1972년 서독 뮌헨 올림픽에서 다시 마라톤에 출전해 동메달을 차지했다.[6] 흔히 아베베가 패럴림픽 메달을 땄다고 잘못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다른 장애인 아마추어 대회에서 메달을 땄다. 물론 온전히 두 다리로 달려야 하는 육상선수로서 하반신 마비를 겪고도 절망하지 않고 다른 종목에서 활동하는 것은 보통의 정신력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7] 국제대회임에도 당시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이 낮아 세계적인 선수들은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한국 국민에 좋은 기억을 갖고 있다며 초청에 응했다. 아베베의 출전 의사 덕분에 미국, 일본 등 세계적인 선수들도 참가하면서 수준급 대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