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1. 소개
2. 초년 생애
3. 집권
4. 몰락


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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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하라어: መንግስቱ ኃይለ ማርያም (Mängəśtu Ḫaylä Maryam, 먼그스투 하일러마리암)[1]
영어: Mengistu Haile Mariam
에티오피아군인, 독재자. 1937년 5월 21일 출생.
1974년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를 강제 폐위시키고, 에티오피아에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1977년 집권한 이후 하일레 셀라시에의 황족을 비롯한 수십만 명의 반대파를 숙청하였고 에리트레아 독립 전쟁, 에티오피아 내전에 가담하여 약 100만 명 이상의 난민을 발생시켰다. 현재까지 멩기스투가 저지른 이런저런 범죄로 인하여 사망자 수는 무려 200만 명이 넘어갈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1991년 2월 에티오피아 인민 민주 혁명 전선에 의해 정권이 전복당하면서 5월 짐바브웨로 망명하였다. 그러나 2017년 11월 로버트 무가베짐바브웨대통령에서 쫓겨난 이후로 에티오피아로의 인도 가능성이 생겨 입지가 상당히 위험해졌다. 그동안 방패 역할을 해준 후견인이었던 무가베가 대통령직에서 실각하여 더 이상 방패 역할을 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가베의 뒤를 이은 에머슨 음낭가과 현 대통령도 멩기스투 송환에 대한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는 망명 생활을 더 유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긴 하다.

2. 초년 생애


멩기스투는 1937년 에티오피아 남부에서 오로모족인 하일러마리암 월더아야나(ኃይለ ማርያም ወልደ አያና)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홀레타 육군사관학교를 중위로 졸업한 후에 아디스아바바의 육군 부대인 제2사단에서 대위로 승진했다. 그 후 하라레의 제3 부대에 들어가 미국영국에 가서 유학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74년 9월 멩기스투는 에티오피아 혁명 때 임시 군사 행정 평의회(PMAC)의 제 1부 의장이 되었다. 이후 일어난 혁명 온건파와 혁명 급진파가 갈등이 벌어지고 있을 당시에는 스위스에서 병을 고치고 있던 황태자를 맞아들이자고 주장했던 온건파의 아만 안돔 PMAC 의장 등과 대립했다. 혁명 온건파는 지식인 층이 대부분이었지만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고 있었고, 군 일부에 존재했던 급진파는 공화제를 주장했으며 학생이나 대학 교수, 노동 조합이 지지하고 있었다.
1974년 11월 22일 에티오피아 급진파는 갑자기 에리트레아 해방 전선 토벌 문제에 대한 의견 불일치를 이유로 아만 안돔 의장을 해임한 후 그를 연금 시켜버렸다. 이후에는 혁명 온건파의 일부와 총격전을 벌여 아디스아바바 각처에서 아만 의장을 포함해 전 수상 2명,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 1세의 손자인 해군 사령관, 61명의 온건파 지도자, 정부 고관, 황족 등을 살해했다.
학살을 실질적으로 지도하던 멩기스투는 이 사건으로 에티오피아의 실권을 장악했고, 1977년 임시 군사 행정 평의회(PMAC)의 의장에 오른 멩기스투는 공산주의 군사 독재 정권의 수장이 되었다.

3. 집권


1977년 임시 군사 행정 평의회 의장이 되어 사회주의 군사 독재 정권을 만들었다. 이후 소련 등의 지원을 받아 에티오피아를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었다. 1974년 하일레 셀라시에가 갑자기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았는데, 이 의문사가 멩기스투의 암살 때문이었다는 주장도 상당히 많았다. 그런데 웃긴 사실은 멩기스투는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총애하던 신하였다는 점이다. 근데 사실 하일레 셀라시에가 기근으로 민심을 크게 잃던 차라 셀라시에를 족치려고 생각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기는 하다. 문제는 그 이후에 소련쿠바의 지원을 제대로 써먹지 못하고 무능하게 통치를 해서, 안 그래도 바닥이었던 경제를 더욱 더 말아먹은 데다가 포용력은 눈곱만큼도 없어서 내전까지 유발했다는 점이다.
그렇게 1977년 신정권이 출범하고, 멩기스투는 에티오피아 초대 대통령이 되었고 최고 사령관까지 겸임했다. 이후 계속해서 억압적인 통치를 펴나가면서 에티오피아는 전세계에서 손 꼽히는 헬게이트가 되어버렸다.
멩기스투는 1977년 집권한 뒤 반정부 세력에 대한 선전포고를 했다. 그 뒤 야당인 에피오피아인민혁명당(EPRP)이 멩기스투의 주요 표적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EPRP가 멩기스투를 암살하려 했으며 그의 지지 세력을 끊임없이 공격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1977년에 노동절 전날에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게 멩기스투 공포 정치의 시작이었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반정부 시위대를 대대적으로 체포한 뒤 수도 아디스아바바 교외로 끌고 가서 그들을 모조리 처형했다. 또한 군인들이 지프에다가 기관총을 장착하고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반정부 시위대를 향해서 무차별 난사도 하기도 했는데, 그때 사망자는 고작 시위 한 번에 무려 1000명을 넘었다고 한다.
그리고 1977년부터 1978년 동안 반정부 세력은 영장 없이 체포되어 재판 없이 처형됐다. 에티오피아 정부군은 반정부 세력을 교회에 감금한 뒤 불을 질러 살해했다. 그리고 8~11세의 어린이 1000명 이상도 처형됐다고 국제 아동보호 단체인 세이브 더 칠드런이 주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멩기스투의 공포 정치 기간을 에티오피아에선 '레드 테러(Red Terror)'라고 부른다.
당시 고문 당한 피해자들이 훗날 증언한 바에 따르면, "일상적인 채찍질이나 구타와는 별도로 일부 피해자들은 전기고문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피해자들을 플라스틱 용지로 덮어씌웠다. 고문으로 인해 그들에게서 피나 고름이 조사관에게 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라는 증언을 했다.
특히 증언자들은 에티오피아의 조사 기관에서는 일명 '버뮤다'로 불리는 조사실에서 무자비한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특히 조사관들은 고문 후에는 피의자들에게 화학 처리가 된 옷을 입혔고, 이 화학 약품 때문에 시신경을 자극당해 피해자 중 일부는 실명했다고 한다.
그렇게 멩기스투는 수천 명의 정적을 살해한 뒤 집단농장, 산업 국유화 등 급진적인 정책을 실시했는데, 그 와중에 북부 티그레이에선 독립을 주장하는 봉기가 일어나기도 했다. 1977년엔 에티오피아 내 소말리족 거주 지역을 병합하길 원했던 소말리아가 동쪽 국경을 넘어서 침공해왔고, 에티오피아는 내전이 발발해서 나라가 쑥대밭이 되어버렸다.[2] 결국 서로 지친 소말리아에티오피아는 1978년이 되어서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그러나 이 전쟁으로 인해 에티오피아에서는 1973년과 1984년에는 참혹한 대기근이 발생해서 수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다.
이 외에도 공산주의 정권이었던 만큼 한국전쟁 참전 자체를 감추며,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을 공산주의에 총부리를 겨눴단 이유로 괴롭히기도 했다.#
1987년에는 군정을 폐지하고 에티오피아 인민 민주 공화국을 선포하고 멩기스투 자신이 대통령직에 오르나, 변한 것은 없었다.

4. 몰락


결국 그의 폭정과 가난을 참다참다 못한 반군들이 들고 일어났다. 1988년 에티오피아 인민 해방 전선이 결성되고 내전이 발생했다. 멩기스투는 최대한 있는 것 없는 것 병력들을 다 끌어모아서 저항해보았지만, 워낙에 저지른 일들이 잔혹했고 그에게 원한이 뼈에 사무친 사람들이 많았기에 에티오피아 국민들은 반군을 지지하였다. 결국 멩기스투는 1991년 5월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반군에게 빼앗기고 내전에서 패배하고 만다. 이후 내전에서 승리한 반군 지도자인 멜레스 제나위가 새로운 독재자가 되어 에티오피아를 지배하게 되었다.
갈 곳이 막막해진 멩기스투는 결국 1991년 짐바브웨로 망명하고 거기서 무가베의 식객이 되었다. 1998년 일시적으로 북한으로 망명지를 옮기기도 했지만, 결국 돌아왔는지 요즘에는 도로 짐바브웨에서 거처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한편 2006년 에티오피아 대법원은 멩기스투는 잡지 못한 채로 궐석재판을 진행하였다. 멩기스투는 집권 시절 대량학살 혐의로 기소되어 2007년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2008년 5월에는 대법원에 참석한 106인 모두의 만장일치로 형량을 높여 17명의 측근과 함께 사형 선고를 받았다. 실제로 멩기스투는 에티오피아의 송환 요구를 무가베가 씹어준 덕분에 짐바브웨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무가베에게도 보안 문제에 관한 조언을 해준다고 한다. 2005년에 벌어진 짐바브웨의 슬럼가 대청소 작전인 무람바츠비나(쓰레기 청소란 뜻이다.) 작전도 멩기스투가 관여했다는 카더라가 있다. 물론 짐바브웨 정부는 부인하지만. 그러나 멩기스투의 망명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줬던 로버트 무가베가 2017년 군부 쿠데타로 대통령직에서 실권하면서 무가베 축출 후 들어선 짐바브웨 신정부가 멩기스투를 에티오피아에 인계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그러나 이후에도 에머슨 음낭가과 현 대통령 등이 멩기스투 송환에 대한 이렇다 할 언급을 하지 않는 등 아직까진 송환이 확실하다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
황당하면서도 웃긴 이야기인데, 에티오피아 인민 해방 전선도 마르크스-레닌주의사회주의를 표방한 단체였다. 멩기스투는 공산주의 간판만 내걸고 사실상의 군부 독재를 했고, 이게 많은 이들의 반감을 샀던 것. 문제는 이 인민 해방 전선도 현실사회주의에 따라 충실하게 독재를 자행해서 에티오피아는 2020년까지도 독재 국가이다... 아비 아머드 알리 총리가 그나마 통제 정책을 완화한 정도이다.

[1] 먼그스투가 본명이고 하일러마리암은 부칭이다.[2] 다만 오가덴 전쟁에서는 소련 등 외세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소말리아를 무찌르고 자국 영토를 지키는 데는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