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가요
1. 개요
일본의 국가이다.
2. 역사
기미가요는 가사가 먼저 나왔고 곡은 나중에 붙었다. 원래는 913-914년에 편찬된 '고금화가집(古今和歌集)'에 수록된 단가였으며, 이후 천년에 가까운 긴 시간동안 사랑받았다. 고금화가집의 하가(賀歌) 부분에는 천황이 헨조 대사의 칠순을 축하하며 기미가요를 보냈다는 기록도 있다.
메이지 시대 1869년 영국의 군악대장 존 윌리엄 펜튼이 최초로 작곡하였는데, 곡조가 너무 서양풍이고 위엄이 떨어진다며 퇴짜맞았다. 이후 1880년 궁내성 아악부의 소속 오쿠 요시이사와 하야시 히로모리가 요나누키(ヨナ抜き/四七抜き) 음계를 기반으로 선율을 만들어 일본의 정서에 맞게끔 다시 작곡하였다. 요나누키 음계란 서양 7음계 기준으로 4번째인 파(F)와 7번째인 시(B)가 빠진 형태의 5음계로, 도-레-미-솔-라로 이루어져있다. 그리고 독일 제국 해군 군악 군무원이던 프란츠 에케르트가 일본에 초빙되어 오쿠와 하야시의 선율에 서양식 화음을 붙여 최종적인 형태로 만들었고 이것이 국가로 정식 승인되었다. 참고로 에케르트는 이후 대한제국의 국가인 대한제국 애국가의 작곡을 담당했다. 이분은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지는 바람에 고향인 독일 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한국에서 사망하여 양화진선교사묘역에 묻혔다. 기미가요의 작곡가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 잠들게 된 것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에서는 한국어로 「우리 임금님의 치세」라고도 불렀다. 당시 한반도에서도 기미가요 제창이 강요되어 80대 이상인 어르신들 중 기미가요를 부를 줄 아는 이들도 존재한다. 당시 여자의 취학률은 매우 낮았으므로, 주로 1930년대 출생인 남자들이 기미가요를 부를 줄 아는 모양이다. 할아버지나 할머니들 중 어린 시절에 배웠던 노래들의 대부분을 다 잊어도 기미가요만큼은 아는 경우가 있을 정도이다. 이런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은 일제강점기에 소학교를 다녀서 아직도 구구단을 일본어로 외우는 경우도 있다.
1945년 8월 15일 NHK 라디오에서는 아나운서가 "천황 폐하께서 말씀하십니다."라고 발언한 후 이 곡이 흘러나왔고, 이후 쇼와 덴노가 전 세계를 상대로 옥음방송을 통해 무조건 항복 선언을 했다. 영상
법률상 국가로 규정된 것은 1999년으로, '국기 및 국가에 관한 법률'에서 정식으로 국가로 정하였다. 이 시기에 기미가요는 최초의 뜻에서 변하여 천황예찬가로 자리잡았다. 군국주의와 결부된다는 이유로 법제화를 둘러싸고 일본 국내에서도 상당한 진통이 있었고, 오키나와 민족단체 등 현재까지도 가창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을 정도로 분란이 있는 국가이다. 일본 대학가에서도 졸업 혹은 입학 시즌이 되면 기미가요를 반대하는 대자보가 꼭 한장씩은 붙는다.
3. 음악적 특징
노래가 총 11마디로 굉장히 짧다. 들어보면 끝까지 안 부르고 중간에 멈춘 것 같이 느껴질 수 있을 정도. 또 국가 치고 굉장히 어두운 분위기의 곡이라는 점도 특징적이다.
아무래도 아악의 형태를 기본으로 만들다 보니 일본적인 느낌이 강하고 서양식 느낌이 약하다. 실제로 나가노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는 궁내청 아악부가 아악으로 기미가요를 연주했다. 일본 민족주의자들은 일본 전통 선율을 국가에 담았다는 것에도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1]
한편 요나누키 음계를 기반으로 만든 선율에 서양 화음을 끼워 넣은 것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며 음악적인 시각에서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 <기미가요>를 들어보면 처음과 끝 2마디는 화음 없이 그냥 주선율의 유니즌(동음)으로만 처리했는데, 일본 전통 음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외국인 에케르트가 서양 화성법의 논리만 가지고는 해당 마디들에 코드를 끼워 넣을 수 없어서 썰렁하게 남겨 놓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비판적 시각으로 유명한 이로 작곡가 겸 지휘자 아쿠타가와 야스시가 있다. 한국에도 <나의 음악 이야기>로 번역본이 나온 음악 에세이집에 2차례나 언급하면서 깠을 정도. 어찌 되었든 OECD 올림픽 참가국 전체를 봐도 바로 그 나라 국가임을 알 수 있는 선율이기는 하다.
4. 가사
5. 해석
작자가 미상인지라 일본에서도 해석이 분분하다. 특히 문제가 되는 해석은 '君が代' 라는 부분. '君(그대)'가 누구를 가리키느냐에 따라 노래의 성격 자체가 바뀌기에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또한 '작은 돌이 바위가 되어서' 이 구절은 작은 조약돌이 뭉쳐져서 큰 바위를 이룰 시간만큼 오랜 기간을 뜻한다. 신령한 돌은 자랄 수 있다는 애니미즘적 관념이 전재된 표현이라고 보는 해석도 있다.
일단 상기된 번역에서는 '君'를 임금으로 해석했지만 사실 일본에서 君은 임금만 가리키는 단어는 아니었다. 천황을 가리키는 '大君(오오키미)' 라는 말이 있긴 했지만 천황의 권력이 약해지면서 이 말은 점차 사용빈도가 줄어들었으며, (기미가요가 나온) 헤이안 시대에 君라는 단어가 단순히 경애하거나 친밀한 사람을 부르는 말로 바뀌어서 지금에 이른다. 예를 들어 한때 천황을 가리키는 大君라는 단어를 겐지모노가타리에서는 여자 꼬시는 말로 사용할 정도. 또한 '君が代' 라는 가사도 고금화가집에 실렸던 원본의 가사인 '我が君' 가 후대에 들어서 바뀐 것이다. 시대상을 감안하면 'Oh my baby' 라고 기름진 해석(...)도 가능하다.
이러한 이유로 연인에게 바치는 사모곡이라는 설, 어르신에게 바치는 장수기원곡이라는 설, 주군(천황 혹은 쇼군)에게 바치는 곡이라는 설, 태평성대가 오래 가기를 기원하는 곡이라는 설, 심지어는 장례곡이었다는 설(...) 등 온갖 추측이 있다. 현재로선 연장자를 축하한다는 설이 유력하며, (기미가요의 원곡이라 할 수 있는) 10세기 헤이안 시대 고킨와카슈 또한 천황과 별로 연관이 없다. 그래서 고전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기미가요가 천황 찬가라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싫어하기도 한다. 전통적인 가사가 제국주의 시대때 변질되었을 뿐이라면서 말이다.
근대 이후에는 기미가요 가사가 신민(臣民)들이 천황의 만수무강과 만세일계(万世一系)를 기원하는 것이므로 천황 본인이 부르는 것은 어색하기 때문에 천황 본인은 부르지 않는다. 영국 등 영연방 왕국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God Save the Queen을 부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6. 관련 노래
후쿠오카 지방에 바위의 신을 모시는 시카우미 신사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 기미가요와 가사가 거의 흡사한 (게다가 풀 버전) 노래가 천여 년 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므로 기미가요가 원래는 이곳의 제사의식용 노래라는 설도 존재한다.
6.1. 기미가요 행진곡
일본 제국 시대에 실제 군가로 편곡한 바 있다. 행진곡풍의 반주에 기미가요의 가사와 멜로디를 삽입했다. 일제가 불렀을 때에는 일본이 제국주의로 물들어있었기에 가사의 君는 사실상 천황을 의미하는 것이 확실하다.
7. 정치적 논란
일단 이 노래가 문제시 되는 이유는 구 일제, 즉 전범의 상징이라는 것과 천황에 대한 예찬가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2] 욱일기가 문제시되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는 조선인들을 일본의 신민으로 만들기 위한 정책을 위해 하루에 1번 이상, 또 각종 모임이나 학교 조회시간 때 일장기 게양과 경례 뒤에 반드시 이 노래를 부르게 했다. 일본의 가사인 기미가요를 당당히 불러야 한다는 것으로 일본에서는 학교 등에서 <기미가요>를 부르도록 해왔다. 그래서 2차대전 이후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국기에 대한 맹세도, 국가 제창도 없었다.
일본에서 <기미가요>의 국가화와 제창은 1999년에 제정된 『국기 및 국가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면서 일본의 공식 국가가 된 이후부터다. 그 전까지는 학교 등에서의 제창이 필수적이지 않았고 이 노래를 잘 모르는 일본인도 많았다. 참고로 이 법령의 제정은 일본 안에서도 반대세력과 많은 대립이 있었고, 지금까지도 여기저기에서 문제가 터져나오고 있다. 특히 행사에서 일장기와 <기미가요> 제창을 의무화하고 있는 교육현장에서 일이 터지는 경우가 잦다. <기미가요>의 국가 제정 초기에는 역사적 배경이나 좌익 계열 정치인들의 반대 등으로 일본 내에서도 '이걸 국가로 해도 좋은가' 라는 의견들이 있다. 나치식 경례와 비교하는 경우도 있고 독일의 노래 1절과 폐허에서 부활하여 2절에 관한 논란과 비교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폐허에서 부활하여는 기미가요랑 거의 유사하다. 도쿄도 교육위원회는 2003년 10월부터 학교행사 때 국기게양과 기미가요 제창을 의무화하고, 이를 어기는 비애국적 교사에게는 징계를 내리고 있다. 2011년 6월, 오사카 의회가 '기미가요' 재창시 교직원의 기립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조례를 통과시켰다.
하지만 정치적인 풍조로 노래 부르기를 꺼린다든가 가사를 모른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국가로 제정되고 20여년이 지난 2019년 기준으로는 이미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엄연히 국가로 자리를 잡았고, 오키나와현의 민족단체라든가 재일 한국-조선인 단체라든가 일본 내 일부 좌파라든가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연예인들이 프로야구 개막식 등에서 <기미가요>를 부르는 건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굳이 제창은 하지 않더라도 일본 국민 중에서 <기미가요>의 가사를 모른다는 소리를 했다가는 되레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정도로 널리 알려졌으며, 2000년도 후반 무렵부터 <기미가요>는 충분히 일본 내에서 국가로 자리잡았다.
그래서 학교에서 <기미가요>를 국가로 제창하기 시작한 세대가 20대, 30대로 접어들면서 굳이 <기미가요>와 정치를 연관시키는 풍조도 2012년부터는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만큼 반대로 일본에서 <기미가요>에 거부감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된 것이다.
<기미가요>를 국가로 사용함을 두고 일본 국내에서도 갑론을박하는데 주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 긍정적인 의견
- 국가(国歌)로서 불려져 왔던 메이지 시대부터의 전통을 중시해야 한다.
- 정치적 배경과는 상관이 없는 일본 풍의 곡이기에 국가로서 적합하다.
- 국민은 애국심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기미가요>를 부름으로써 그 의식을 갖춘다.
- 부정적인 의견
- 구 일본제국 시대 국가이기도 했으며 가사가 천황 숭배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칸 나오토 전 일본 총리가 후생노동성 장관(한국의 보건복지부 장관 정도)을 맡고 있던 시절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기미가요에 대해서 '좀 더 밝은 노래여도 좋을 것 같다. 가사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한 번 논의를 해보는 게 좋겠다' 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또한 2004년 도쿄에서 행해진 아키히토 천황과의 가든파티에 참석, 천황과 담화 중 학교 현장에서의일장기 게양과 <기미가요> 제창에 대해서 '강제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3]
2016 리우 올림픽 폐막식 때, 차기 하계올림픽 개최국인 일본의 홍보공연에서 오프닝 음악으로 기미가요를 사용하여 국제적으로 공인받은 일본의 국가(國歌)화되었다.
코로나19 때는 학교 교가는 못부르는데 기미가요를 부르는 이상한 지침때문에 비판이 나왔다.#
7.1. 일본의 연예계의 기미가요 논란
동아시아권에서 인기 관리를 하고 싶은 연예인들이나 역사 쪽으로 일본에 부정적인 배경에서 태어난 연예인들(특히 오키나와 출신)은 <기미가요> 제창을 잘 하려 하지 않지만 일반적인 가수들은 당연히 그다지 상관하지 않는다.
2008년에는 가수 각트와 아무로 나미에가 이 <기미가요> 제창 문제로 화제가 되었는데 둘 다 오키나와 출신이나 각트는 '''사랑의 노래라며 불렀고''' 아무로 나미에는 부르지 않았다. 특히나 각트가 욕 먹은 이유는 오키나와가 원래 류큐 왕국이라는 독립적인 국가였으나 1609년에 사츠마 번(가고시마 현)이 침략하여 속국이 되었고, 1879년에 류큐 처분을 거쳐 일본 영토가 되었으므로 일본 내에서도 깍두기 취급받는 지역이라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반감이 한국 못지 않게 높아서이다.
다만 일본 내에서는 각트가 기미가요를 부른 것이 오히려 한국 우호 발언을 자주 한 자신의 행적을 겨냥한 극우세력과 황색언론과 '''마찰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한 행동'''일 수도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쿠라키 마이가 있는데, 쿠라키 마이는 2007년 기미가요 제창을 한 번 거절한 후 극우 단체 에게 엄청 까이고 2009년 기마가요 제창을 승인했다. 이 때 기미가요를 부르지 않았다면 한국에서만 활동하는 쿠라키마이를 보게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즉 일본에서 활동이 불가능 했을 거라는 뜻이다. 사실 쿠라키 마이는 팬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냐?''' 질문에서 이렇게 답했다. '''옛날에 일본이 한국(과 오키나와)에게 무서운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일본의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 사실을 죄송스럽고, 저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하며 올바른 역사관을 가진 사람임을 증명했다.
결정적으로 각트의 조부모는 '''류큐의 왕족'''이었고, 각트 또한 자신의 이런 정체성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그렇기에 각트가 아무 생각없이 기미가요를 불렀을 리는 만무하다. 2010년대가 지난 현재에는 일본 사회 전반적으로 기미가요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면서 애매해졌다.
또한 기미가요에 대한 역사적 문제를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그냥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무 생각없이 부르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심지어 한국에 대한 애정을 공공연히 표현한 가수들조차 공적인 무대에서는 행사상의 이유로 그냥 부르는 경우도 많다. 당장 상기된 아무로 나미에 역시 본인이 정말로 투철한 역사관을 가져서 안 불렀다기 보다는 그냥 학교에서 안 가르쳐줘서 '못 부른것' 이라는 쪽이 더 정확한 해석이다. 애초에 본인도 그렇게 해명을 하기도 했고. 거기다 이미 기미가요를 보편적으로 가르치는 현 일본세대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딱히 별 의미없는 국가정도로 인식하기 때문에 이 노래 하나 부른다고 우익으로 몰아가기도 애매해졌다. 심지어 올림픽 같은 국제적인 행사에서도 국가를 불러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부르는 노래가 이 노래다. 역사에 대한 무지함이야 비판받아 마땅하다 치더라도, 애초에 기미가요에 대한 배경 설명 자체를 아예 차단하는 나라가 일본인데 무작정 부른다고 우익으로 몰아가는 건 무리가 있다. 한국 사람이 애국가를 부른다고 해서 국수주의인것은 아니지 않은가? 애초에 한국만 보아도 2000년대 후반까지 불린 국기에 대한 경례의 내용은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였다. 이는 1970년대 초반 군사독재 시절에 만들어진 문구로, 내용을 보아도 상당히 군국주의적인 면이 강하지만 위키러들이 초등학교때 까지 부른 이 문구의 내용을 심각하게 해석한 적은 아마 없을 것이다.
8. 창작물
- 니코니코 조곡도 이러한 정치적 문제 때문에 문제가 된다. 드래곤 퀘스트 서곡과 파이널 판타지 주제가가 나오는 부분, <니코니코 동화 중독자들에게 바치는 한 곡>. 15인 버전 기준으로 9:08~9:29에 이 노래의 가사를 붙여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일본 이외의 나라에서는 여러 가지 절묘한 테크닉으로 이를 피해 나간다. 주로 맨 앞의 '君(きみ)' 를 생략하거나 다른 언어로 번역하면서 그 언어를 쓰는 나라의 국가를 넣는다(예 : 영어→The Star-Spangled Banner or God save the Queen). 하츠네 미쿠를 이용한 한국어 버전 니코니코 조곡의 경우는 안익태의 애국가 가사와 이 노래의 가사를 번역한 가사를 반씩 넣었다. 이내의 한국어판은 아예 이 부분 가사를 도려냈다.
- 히어로즈 인 더 스카이에서는 애국가와 섞어서 한일전 버전의 음악을 만들었다. 감상평은... 딱 한 번 사흘 정도 한 뒤 역사 속으로.
- 개그우먼 조혜련이 이 노래에다 박수를 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 2014년 10월 27일 JTBC 비정상회담에서 일본인 패널의 입장 장면에 기미가요를 BGM으로 내보내어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 논란이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비정상회담 기미가요 삽입 사건 문서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