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시/역사

 




1. 삼국시대~남북국시대


삼한 때는 마한의 염로국(冉路國), 백제 때는 탕정군(舊 온양군 지역), 아술현(舊 아산군 지역), 굴직현(舊 신창군 지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백제 영역이었다가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정책으로 고구려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통일신라 문무왕 초기 탕정주로 승격됐으나, 9주 5소경으로 개편 시 탕정군으로 격하, 웅진도독부 소속이 됐다. 아술현은 음봉현으로 개칭되었고, 굴직현은 기량현으로 개창되어 탕정군의 영현(領縣)이 됐다.
가장 오래된 지명인 탕정(湯井)의 한자 의미가 뜨거운 물과 연관된 이름이라는 점에서 삼국시대부터 온천으로 유명했음을 알 수 있다. 온양의 옛 이름인 '탕정'과 아산의 옛 이름인 '음봉'은 오늘날에도 각각 면 이름(탕정면, 음봉면)으로 이어져 남아 있다.

2. 고려시대


舊 온양군 지역은 온수군으로 개칭되었다가 현종 9년(1018)에 천안부에 소속, 명종2년(1172) 온수현을 분리시켜 감무를 두게 했다. 舊 아산군 지역은 초기에 인주로 개칭하여 자사를 두다 목종 8년(1005년)에 폐지되고 현종9년(1018년) 아주현으로 개칭하고 감무를 두게 했다. 舊 신창군 지역은 신창현으로 개칭하고 천안부에 소속, 공양왕3년(1391년)에 만호 겸 감무를 두게 했다.
아산의 옛 이름인 '인주'는 오늘날에도 면 이름(인주면)으로 이어져 남아 있다.

3.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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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수현은 세종24년(1442년) 온양군으로 승격, 아주현은 태종13년(1413년)에 아산현으로 개칭, 舊 신창군 지역은 태종16년(1416년)에 신창현이 되었다. 현재의 아산지역 1군 2현이 모두 고종33년(1895년)에 13도제가 시행됨에 따라 충청남도 관할의 37개군 중 4등군이 됐다.

4. 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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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조선총독부부군면 통폐합에 따라 아산군, 온양군, 신창군이 아산군으로 통합되었다. 온양면, 염치면, 송악면, 배방면, 탕정면, 음봉면, 둔포면, 영인면, 인주면, 숙정면, 도고면, 학성면의 12개면, 163개리를 관할하였다. 1917년 숙정면을 선장면으로, 학성면을 신창면으로 개칭했다. 1922년 아산군청을 영인면 아산리에서 온양면 온천리로 이전했다. 그런데 군명은 '온양군'으로 개칭하지 않고 그대로 '아산군'을 유지하여, 이 때부터 아산과 온양의 명칭 혼동 논란의 불씨가 생겼다고 할 수 있다.[1] 1941년 온양면이 온양읍으로 승격되었다.

5.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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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군
온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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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아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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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탕정면 모종리, 권곡리(현 온양3동 지역)가 온양읍에 편입되었다. 1983년 배방면 남리, 탕정면 신리(현 온양3동 지역), 신창면 점량리, 득산리, 실옥리(현 온양4동 지역)가 온양읍에 편입되었다. 1986년 아산군 온양읍이 온양시로 승격, 분리되었다. 1987년 아산군 배방면 공수리 일부가 온양시에 편입되었고, 아산군 탕정면 구령리가 배방면으로 편입되었다. 1989년 아산군청을 온양시 온천1동에서 염치면 송곡리로 이전하였다. 1990년 아산군 염치면이 염치읍으로 승격되었다.
1995년 도농복합시 출범에 따라 온양시와 아산군이 분리 9년 만에 아산시로 통합되었다. 1997년 시청을 현 위치(온천동 1626번지)로 이전하였다. 2003년 행정동 명칭을 온양1~6동으로 변경하였다.[2] 2008년 수도권 전철 1호선신창역까지 연장 개통되었고, 2009년 5월 배방면이 배방읍으로 승격되었다. 2014년 2월, 인구 30만 명을 돌파하였다.
[1] 평택시가 이와 같은 상황인데, 아산시와는 다르게 아직까지 명칭 문제로 논란이 생긴 적은 없다.[2] 온양이라는 이름을 유지하기 위함으로 보이지만, 시민들에게는 여전히 외면받고 있는 명칭이다. 안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