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린 콜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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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부분의 하얀 스카프에 주목.
'''Eileen Marie Collins'''
1956년 11월 19일 출생
1. 개요


1. 개요


NASA의 전직 우주 비행사로, '''역사상 최초의 여성 우주왕복선 조종사'''이다.[1] 이견의 여지는 있으나 '''NASA 역사상 손꼽히는 발자취를 남긴 여성 우주인'''이자 '''어밀리아 에어하트 이래 최고의 여성 파일럿'''으로 회자된다.
어린 시절 아폴로 계획의 영향으로 파일럿과 우주 비행사의 꿈을 꾸며 자랐고, 콜린스의 젊은 시절엔 마침 NASA가 본격적으로 여성 중에서도 우주비행사를 뽑기 시작했지만, 여성들은 우주에 올라가서 EVA, 장기체류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미션 스페셜리스트들로 뽑히고 우주선을 조종하는 사람은 미군에서 전투조종사로 활동한 남성들[2]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 유리천장을 처음으로 뚫은 인물이다.
1986년 시라큐스 대학교를 졸업한 후 미합중국 공군 조종사 교육을 수료하였으나 테일후크 스캔들 이전까지 미군이 고집하던 '여성은 전투기 조종사로 뽑지 않는' 규정에 의해 미국공군사관학교 수학 조교수 겸 T-41 교관으로 복무해야 했다. 이후 C-141 수송기 조종사로 활동하다가 1989년 테스트 파일럿 스쿨을 수료하고 1990년 NASA 우주비행사로 선발되었다.[3] 1995년 미르와 랑데부하는 STS-63(디스커버리)와 STS-84(아틀란티스) 미션에서 처음으로 우주왕복선 여성 조종사가 되었고, 1999년에는 STS-93(컬럼비아) 미션에서는 여성으로는 사상 최초로 처음으로 우주왕복선 미션 사령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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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의 STS-63 승무원 단체 사진. 콜린스 옆의 여성은 재니스 보스, 우측은 사령관 제임스 웨더비[4]이다. 뒤에는 EVA를 수행한 버너드 해리스[5]와 마이클 폴, 그리고 미르에 사상 처음으로 셔틀을 타고 방문하게 되는 러시아 우주비행사 블라디미르 티토프(Vladimir Georgiyevich Titov, Владимир Георгиевич Титов).[6] 이 당시 미르 주위를 선회비행하는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며 여성의 우주도전사에 있어 큰 획을 그었다. 또한 이 미션에서는 미국 여성 파일럿의 신화와도 같은 어밀리아 에어하트의 스카프를 우주에 가져갔다. 다만 미션과는 별개로 부스터가 떨어진 플로리다 앞바다 기상 상황이 워낙 나빠서 부스터를 포기해야 했다는 사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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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5월의 STS-84(아틀란티스)는 우주왕복선과 미르의 6번째 도킹 미션이었다. 생애 첫 미션에서 미르를 보고 감동먹었지만 정작 미르에 들어가지는 못해서 크게 아쉬워했다고... 사진의 동료 우주비행사들은 미르 EO-23 일정을 마치고 귀환한 제리 리넨저, 찰스 프리코트(사령관), 리넨저 대신 미르 EO-23에 합류한 마이클 폴.[7] 뒷줄에는 장-프랑수아 클레부아(프랑스 출신 ESA 우주비행사), 콜린스, 에드 루(중국계 미국인), 옐레나 콘다코바(Elena Kondakova, Елена Владимировна Кондакóва)[8] 카를로스 노리에가. 이 미션에서는 미르와의 도킹 외에 당시 지구에서 환하게 보이던 헤일-밥 혜성을 관측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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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을 맡은 STS-93 미션에서 궤도에 올려놓은 찬드라 X선 우주망원경의 모형과 함께 찍은 공식 사진. 좌측부터 콜린스, 스티브 홀리[9], 제프리 애시비[10], 미셸 토니니[11], 캐서린 콜먼.
이후 2003년 2월 1일 STS-107 미션을 마치고 귀환하던 우주왕복선 컬럼비아가 공중분해되는 사고로 인해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이 전면 중단되었다가 재개되는 첫 미션이었던 STS-114(디스커버리) 사령관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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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줄은 스티븐 로빈슨, 앤드류 S.W. 토머스, 찰스 카마다, 노구치 소이치[12], 앞줄은 제임스 켈리[13], 웬디 로렌스, 콜린스.[14] STS-107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프로필 사진의 촬영 구도가 똑같다.'''
STS-114 미션에서 콜린스는 사상 처음으로 우주왕복선 360도 회전 기동을 하는 기록을 썼다. 쉽게 말해 도킹할 때 도킹을 감독하는 ISS 체류인원에게 우주왕복선의 상태를 쫙 보여주는 것. 컬럼비아호가 발사 때 외부 연료 탱크에서 떨어져나온 단열재 조각이 날개에 맞아 손상되었고 그것이 재진입 과정에서 큰 문제로 이어지며 공중분해라는 파국을 맞은 점에서 예방을 위해 도입된 기술이었다. 물론 이것도 예방을 위한 행동이었을 뿐, 사고 자체를 방지할 수는 없었기에 우주왕복선은 차례로 퇴역하게 되지만, 이 기동을 통해 STS-107에서의 그 손상이 똑같이 다시 일어났음이 드러나서 EVA를 통해 긴급 수리에 들어가 사고의 반복을 막을 수 있었다.
STS-114 마지막 날의 기상 음악 - Dexy's Midnight Runners의 '''Come on, Eileen'''이다.
2006년 1월 NASA와 공군에서 퇴역하였다.[15] 이후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거나 강연을 다니는등 우주 개발 홍보 활동을 하였고, 셔틀 시대의 막바지에는 CNN의 애널리스트로 출연했다.

2013년 미국 우주비행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같이 헌액된 인물들은 보니 던바, 커티스 브라운. 2012년 여름에 세상을 떠난 샐리 라이드닐 암스트롱을 추모하는 시간 또한 가졌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오바마 행정부의 우왕좌왕하는 우주개발 정책에 반발하여 도널드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 이에 NASA의 전 부국장이자 힐러리 클린턴을 2008년 대선 레이스부터 지지해왔던 로리 가버(Lori Garver)에게는 "반과학적 미소지니스트에게 지지를 보내다니 개실망"이란 비판을 받았지만, 트럼프가 당선된 후 트럼프의 우주개발 아이디어를 주도할 차기 NASA 국장 후보로 점쳐지고 있다.
[1] 발렌티나 테레시코바가 활약한 보스토크 6호는 1인승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다인승 우주선을 조종한 최초의 여성이라 볼 수 있다. 콜린스 이전까지의 NASA 여성 우주비행사들은 모두 파일럿이 아닌 미션 스페셜리스트들이었다.[2] 1990년대 테일후크 스캔들 이전까지 여군은 헬리콥터나 수송기 등의 기종만 조종할 수 있었다. [3] 함께 선발된 이들 중 수잔 헴스가 있다.[4] 통산 5회나 셔틀 사령관 임무를 수행했으며, 6'4"(193cm)라는 터무니없는 신체조건으로 우주비행사가 되며 역대 최장신 우주비행사 기록을 갖고 있는 기인이다. 사진 좌우의 티토프와 콜린스랑 비교하면...[5] 이 미션에서의 EVA로 해리스는 미국 흑인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EVA를 수행하는 기록을 세웠다.[6] 우주 탐사 역사상 로켓 폭발 직전 긴급 탈출에 성공한 유일무이한 사건인 1983년 9월 26일 소유즈 Т-10-1 미션에서 겨우 살아남은 용자다.[7] 당연히 사진은 한참 전에 미리 찍어둔 것이다. 참고로 이 시기 전후로 미르에서는 온갖 사고들이 터져서 리넨저와 폴은 미르에서 말 그대로 '''죽을 뻔 했다.'''[8] 발렌티나 테레시코바와 스베틀라나 사비츠카야에 이은 러시아 출신 세번째 여성 우주비행사.[9] 천문학자로, 샐리 라이드의 전 남편이기도 하다. 이전에 허블 전개 미션에서도 활약했던, NASA의 우주망원경 개발사에서 심심찮게 언급되는 인물. [10] 조종사 [11] 프랑스 우주국(Centre national d'études spatiales, CNES) 우주비행사. [12] JAXA 우주비행사. 로빈슨과 노구치는 이 미션에서 EVA를 하였다. [13] 조종사[14] 당시 언론에서 이들을 엄청나게 띄워줬다. 2004년 2월에 사고 1주기 즈음 해서 휴스턴에서 열린 슈퍼볼에 초대하기도 했고,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홈구장 미닛 메이드 파크에서 단체 시구도 하는등 그간 우주 프로그램에 너무 무감각해졌던 미국인들이 이례적으로 엄청난 관심을 보낸 미션이라 갖가지 행사에 불려다녔다. [15] 최종 계급은 대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