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밀리아 에어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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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lia Mary Earhart'''
'''아멜리아[1] 메리 에어하트'''
미국의 비행사(1897. 07. 24. ~1937. 07.).
1897년 캔자스 태생으로 원래는 비행사가 아니라 의학도였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의무병으로 종군하기도 했는데, 이때 위문공연차 온 공군의 곡예비행단을 보고 매료되어 비행사로 전향했다고 한다.[2] 1921년부터 비행훈련을 받기 시작해 같은해 7월 개인 비행기를 구입[3] , 1년 후 1922년 10월에 고도 4300m의 비행기록을 세웠고 1923년에 들어서 국제항공연맹에 인정받아 16번째 여성 파일럿으로 정식 등록되었다.
다만 비행 실력 자체는 기존의 숙달된 비행사들에 비해서 그렇게 뛰어난 편이 아니었으며, 파일럿 면허를 따고나서 1년후인 1924년에 가산을 탕진해 비행기를 팔고 잠깐 교사직을 맡기도 했다.
1925년에 매사추세츠로 이사해 데니스 공항에서 첫 공식비행을 기록했다.
어밀리아 에어하트에 대한 기록중 빠질 수 없는게 대서양 횡단인데, 마침 1927년 미국의 비행사 찰스 린드버그 (Charles Augustus Lindbergh, 1902~1974)가 세계 최초로 대서양 '''단독'''횡단비행을 성공한 참이었다. 그리하여 1928년 4월에 미 공군 힐턴 대령은 에어하트에게 '세계 최초로 대서양 단독횡단비행에 성공한 여성 파일럿'이 되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에어하트는 물론 받아들였다.
결국 비행은 성공했고, 에어하트는 환대를 받으면서 캘빈 쿨리지 대통령과 악수를 하기도 했다. 다만 이 비행은 계기 비행으로, 조종사가 직접 바깥상황을 보면서 조종하는 시계 비행이 아니라 계기판을 보면서 조종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보통 주변 시야환경이 좋지 않을 때 시행하는 비행방식이었는데, 당시 에어하트는 이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공군측에서는 다른 베테랑 파일럿들을 붙여줘서 자신은 사실상 아무것도 안하는 짐짝같은 취급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언젠가는 진짜 자력으로 횡단비행을 해보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결국 자력으로 횡단비행을 하겠다는 계획을 성공했다. 1928년 8월에 북아메리카 횡단비행에 성공해서 공식적으로 '북아메리카 횡단비행에 성공한 첫 여성 파일럿' 칭호를 얻는다. 이쯤 들어서는 비행 실력이나 기량도 부쩍 상승했다고 한다.
그리고 두번째 자력으로 대서양 횡단비행을 하게 된다. 단발 프로펠러기인 록히드 베가 5b로 뉴펀들랜드에서 출발해 프랑스 파리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것도 '''무착륙''' 비행으로. 대략 14시간의 비행 끝에 결국 기상 악화로 인한 문제가 발생해 어쩔 수 없이 아일랜드의 데리에 착륙함으로써 파리까지 간다는 목표는 실패했으나 어쨌거나 대서양 무착륙 횡단은 성공리에 마쳤다.
이번 대서양 횡단은 실제로 본인이 조종해서 무착륙으로 대서양 횡단에 성공했기 때문에 더 큰 화제가 되었고 미국과 프랑스 대통령으로부터 훈장과 메달까지 받았다.
1936년 에어하트는 록히드 L-10 비행기를 퍼듀 대학교로부터 인수받아,[4] 적도를 따라 47,000km 거리를 비행하는 세계일주 비행을 계획했다. 계획은 샌프란시스코-하와이-홀란드 섬-오스트레일리아 순서로 비행했다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항법사를 바꾸고 이후로는 자력비행을 한다는 좀 복잡한 계획이었는데 이게 나중에 비극의 원인이 되고 만다.
1937년 3월 17일에 캘리포니아에서 이륙해 하와이에 도착...한 건 좋았는데 하와이에서 이륙 도중 사고가 나서 비행기가 파손된다. 공식보도는 타이어 펑크인데, 목격자들은 파일럿 과실이라고 주장했다. 어쨌든 실패.
2차 시도는 1차와 반대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비행하는 것으로 마이애미에서 이륙해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시아 중간중간을 거치면서 1937년 6월에 뉴기니 섬 라이에 도착했다. 라이에서 출발해 하울랜드 섬[5] 으로 이동할 예정으로 미군은 해안경비대와 연안 감시선을 동원해 에어하트를 보호/안내하는 역할이었다.
이게 문제였는데, 이때 통신상의 문제로[6]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고 편향통신이 되고 만다. 에어하트 측에서 미군 함정으로 보내는 통신은 잘 들리지만 미군 함정에서 에어하트 측으로 보내는 통신이 잡히지 않게 된 것. 해군 함정에서 마지막으로 수신한 음성은 "고도 1,000피트, 위치는 알 수 없고 태양선을 향해 비행 중. 연료가 부족하다"라는 말뿐이었는데 이 메시지가 주파수가 불안정했는지 해안경비대뿐 아니라 주변에 있던 다른 나라 함선, 심지어는 주변에 있던 일본 어선에까지 전달되었다고 한다. 결국 이 메시지를 끝으로 에어하트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마지막 교신 1시간 후 미해군 USS 렉싱턴, USS 콜로라도와 해안경비대 함선, 심지어는 일본 상선과 어선까지 동원되고 에어하트의 남편인 조지 P.퍼트남이 개인 돈까지 털어가면서 에어하트 수색작업을 벌였으나 시체는 커녕 비행기조차도 찾지 못했다. 결국 실종 2년 후인 1939년에 공식 사망처리되었다. 퍼트남은 그 뒤로 제인 메리 C. 제임스란 여성과 재혼했지만 5년 뒤 이혼하고 마가렛 하빌랜드와 재혼해 하빌랜드가 1950년 퍼트남이 63살로 죽을 당시 곁을 지켰다. 그런데 죽을 당시 퍼트남은 에어하트의 편지를 쥐고 있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 대전 기간에 이 주변의 무인도인 가드너 섬[7] 에서 한 유골이 발견되었는데, 발견 당시에는 '백인 남성'일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근래에 들어서는 '백인 여성'일 수도 있으며 그게 에어하트의 시체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같은 장소에서 비행기 파편과 비행복까지 발견되었기에 유력하긴 하지만 확증은 없다. 때문에 좀 더 확증을 얻고자 심층 조사를 진행한 결과 그 당시의 백인 여성의 골격으로 드러났으며 동시에 그 당시의 여성용 화장품도 발견되었다.
2018년 3월, 가드너 섬의 유골을 연구하던 일부 학자들은 유골이 사실상 99퍼센트로 아멜리아 에어하트의 시신과 일치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 유골이 일부만 남아있는 이유는 섬에 득실거리는 야자집게에게 생전의 그녀 또는 그녀의 시신이 분해됐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문제는 가드너 섬의 유골 자체가 현재 남아있지 않아 당시 측정기록만 가지고 추정한 결론이라는 것이다. 결국 아직까지 에어하트의 운명에 관한 확실한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워낙 실종이 뜬금 없었기에 에어하트는 이외에 많은 도시전설과 2차 창작물에도 꾸준히 등장했는데, 대표적인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남아있는 에어하트의 사진들을 보면 입을 벌리고 있는 사진이 거의 없는데, '''치아상태가 너무 나빠서''' 사진을 좋게 찍으려면 어쩔 수 없이 입을 닫고 사진을 찍어야 했다고 한다.
비슷한 사람으로 식민지 시대 한국의 여성 비행사이자 영화 《청연》의 실제 주인공인 박경원이 있지만 그녀는 친일파 경력이 있어 평가절하 및 까임을 받고(박경원이나 권기옥 둘 다 청연 문서 참고) 되려 박경원보다 친일과 거리가 멀면서 되려 항일에 나선 여조종사 권기옥이 재평가되고 있다. 박경원과 달리 에어하트는 깔끔한 이미지인데다가 여성 인권 상향에도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차이가 있다.
에어하트가 생전 매던 스카프는 여성 파일럿의 상징이 되었다. NASA 최초의 여성 우주왕복선 조종사인 아일린 콜린스는 첫 미션인 STS-63(디스커버리)에서 에어하트의 하얀 스카프를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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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Amelia Mary Earhart'''
'''아멜리아[1] 메리 에어하트'''
미국의 비행사(1897. 07. 24. ~1937. 07.).
1897년 캔자스 태생으로 원래는 비행사가 아니라 의학도였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의무병으로 종군하기도 했는데, 이때 위문공연차 온 공군의 곡예비행단을 보고 매료되어 비행사로 전향했다고 한다.[2] 1921년부터 비행훈련을 받기 시작해 같은해 7월 개인 비행기를 구입[3] , 1년 후 1922년 10월에 고도 4300m의 비행기록을 세웠고 1923년에 들어서 국제항공연맹에 인정받아 16번째 여성 파일럿으로 정식 등록되었다.
다만 비행 실력 자체는 기존의 숙달된 비행사들에 비해서 그렇게 뛰어난 편이 아니었으며, 파일럿 면허를 따고나서 1년후인 1924년에 가산을 탕진해 비행기를 팔고 잠깐 교사직을 맡기도 했다.
1925년에 매사추세츠로 이사해 데니스 공항에서 첫 공식비행을 기록했다.
2. 업적
2.1. 대서양 횡단
어밀리아 에어하트에 대한 기록중 빠질 수 없는게 대서양 횡단인데, 마침 1927년 미국의 비행사 찰스 린드버그 (Charles Augustus Lindbergh, 1902~1974)가 세계 최초로 대서양 '''단독'''횡단비행을 성공한 참이었다. 그리하여 1928년 4월에 미 공군 힐턴 대령은 에어하트에게 '세계 최초로 대서양 단독횡단비행에 성공한 여성 파일럿'이 되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에어하트는 물론 받아들였다.
결국 비행은 성공했고, 에어하트는 환대를 받으면서 캘빈 쿨리지 대통령과 악수를 하기도 했다. 다만 이 비행은 계기 비행으로, 조종사가 직접 바깥상황을 보면서 조종하는 시계 비행이 아니라 계기판을 보면서 조종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보통 주변 시야환경이 좋지 않을 때 시행하는 비행방식이었는데, 당시 에어하트는 이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공군측에서는 다른 베테랑 파일럿들을 붙여줘서 자신은 사실상 아무것도 안하는 짐짝같은 취급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언젠가는 진짜 자력으로 횡단비행을 해보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2.2. 북아메리카 횡단
결국 자력으로 횡단비행을 하겠다는 계획을 성공했다. 1928년 8월에 북아메리카 횡단비행에 성공해서 공식적으로 '북아메리카 횡단비행에 성공한 첫 여성 파일럿' 칭호를 얻는다. 이쯤 들어서는 비행 실력이나 기량도 부쩍 상승했다고 한다.
2.3. 두 번째 대서양 횡단
그리고 두번째 자력으로 대서양 횡단비행을 하게 된다. 단발 프로펠러기인 록히드 베가 5b로 뉴펀들랜드에서 출발해 프랑스 파리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것도 '''무착륙''' 비행으로. 대략 14시간의 비행 끝에 결국 기상 악화로 인한 문제가 발생해 어쩔 수 없이 아일랜드의 데리에 착륙함으로써 파리까지 간다는 목표는 실패했으나 어쨌거나 대서양 무착륙 횡단은 성공리에 마쳤다.
이번 대서양 횡단은 실제로 본인이 조종해서 무착륙으로 대서양 횡단에 성공했기 때문에 더 큰 화제가 되었고 미국과 프랑스 대통령으로부터 훈장과 메달까지 받았다.
2.4. 그 외 비행기록
3. 실종과 관련 설
1936년 에어하트는 록히드 L-10 비행기를 퍼듀 대학교로부터 인수받아,[4] 적도를 따라 47,000km 거리를 비행하는 세계일주 비행을 계획했다. 계획은 샌프란시스코-하와이-홀란드 섬-오스트레일리아 순서로 비행했다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항법사를 바꾸고 이후로는 자력비행을 한다는 좀 복잡한 계획이었는데 이게 나중에 비극의 원인이 되고 만다.
1937년 3월 17일에 캘리포니아에서 이륙해 하와이에 도착...한 건 좋았는데 하와이에서 이륙 도중 사고가 나서 비행기가 파손된다. 공식보도는 타이어 펑크인데, 목격자들은 파일럿 과실이라고 주장했다. 어쨌든 실패.
2차 시도는 1차와 반대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비행하는 것으로 마이애미에서 이륙해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시아 중간중간을 거치면서 1937년 6월에 뉴기니 섬 라이에 도착했다. 라이에서 출발해 하울랜드 섬[5] 으로 이동할 예정으로 미군은 해안경비대와 연안 감시선을 동원해 에어하트를 보호/안내하는 역할이었다.
이게 문제였는데, 이때 통신상의 문제로[6]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고 편향통신이 되고 만다. 에어하트 측에서 미군 함정으로 보내는 통신은 잘 들리지만 미군 함정에서 에어하트 측으로 보내는 통신이 잡히지 않게 된 것. 해군 함정에서 마지막으로 수신한 음성은 "고도 1,000피트, 위치는 알 수 없고 태양선을 향해 비행 중. 연료가 부족하다"라는 말뿐이었는데 이 메시지가 주파수가 불안정했는지 해안경비대뿐 아니라 주변에 있던 다른 나라 함선, 심지어는 주변에 있던 일본 어선에까지 전달되었다고 한다. 결국 이 메시지를 끝으로 에어하트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마지막 교신 1시간 후 미해군 USS 렉싱턴, USS 콜로라도와 해안경비대 함선, 심지어는 일본 상선과 어선까지 동원되고 에어하트의 남편인 조지 P.퍼트남이 개인 돈까지 털어가면서 에어하트 수색작업을 벌였으나 시체는 커녕 비행기조차도 찾지 못했다. 결국 실종 2년 후인 1939년에 공식 사망처리되었다. 퍼트남은 그 뒤로 제인 메리 C. 제임스란 여성과 재혼했지만 5년 뒤 이혼하고 마가렛 하빌랜드와 재혼해 하빌랜드가 1950년 퍼트남이 63살로 죽을 당시 곁을 지켰다. 그런데 죽을 당시 퍼트남은 에어하트의 편지를 쥐고 있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 대전 기간에 이 주변의 무인도인 가드너 섬[7] 에서 한 유골이 발견되었는데, 발견 당시에는 '백인 남성'일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근래에 들어서는 '백인 여성'일 수도 있으며 그게 에어하트의 시체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같은 장소에서 비행기 파편과 비행복까지 발견되었기에 유력하긴 하지만 확증은 없다. 때문에 좀 더 확증을 얻고자 심층 조사를 진행한 결과 그 당시의 백인 여성의 골격으로 드러났으며 동시에 그 당시의 여성용 화장품도 발견되었다.
2018년 3월, 가드너 섬의 유골을 연구하던 일부 학자들은 유골이 사실상 99퍼센트로 아멜리아 에어하트의 시신과 일치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 유골이 일부만 남아있는 이유는 섬에 득실거리는 야자집게에게 생전의 그녀 또는 그녀의 시신이 분해됐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문제는 가드너 섬의 유골 자체가 현재 남아있지 않아 당시 측정기록만 가지고 추정한 결론이라는 것이다. 결국 아직까지 에어하트의 운명에 관한 확실한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4. 도시전설과 이후 창작물들에서 나타나는 모습
워낙 실종이 뜬금 없었기에 에어하트는 이외에 많은 도시전설과 2차 창작물에도 꾸준히 등장했는데, 대표적인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4.1. 음모론, 도시전설성 떡밥
- 1930년대 남양군도는 일본 제국의 식민지였다. 거기다가 에어하트의 실종지역인 라이는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유명한 격전지라는 사실까지 겹쳐 1943년 미국의 선전영화 Flight for Freedom에선 에어하트를 대놓고 스파이였다고 묘사하기까지 했다.[8] 하지만 종전후인 1949년 미군이 남양군도에서 노획한 일본군 문서를 분석한 결과 그런 거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 심지어는 에어하트가 사실 '도쿄 로즈'[9] 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어쨌건 일본 스파이라는 떡밥인데, 이건 의외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져서 에어하트 남편이 매일 라디오 도쿄를 청취하면서 연구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물론 이 역시 종전 이후 도쿄 로즈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불발.
- 스파이 떡밥과 관련하여 사이판에서 일본군에 붙잡혀 처형당했다는 설도 있다. 2차 대전 중 미군 우편부대에서 남양청(일제의 남양 군도 식민지 관리기관)에 복무하는 일본경찰의 편지를 노획했는데 여기에 어밀리아 에어하트라는 미국여성을 처형했다는 편지가 있었다고 주장했던 것. 1937년이면 일본과 미국간의 관계가 중일전쟁 등으로 인해 급속히 적대적으로 변하던 시기이며, 이 당시만 하더라도 일본은 자국의 군사시설에 대한 보안을 광적으로 지키는데다가 슬슬 일본군의 광기가 발현되던 시기였던 지라 수상한 자가 비밀을 지켜야 할 시설에 접근하면 일단 체포한 후 비밀리에 죽이던 일이 빈번해서 꽤나 일리있는 주장이었다.
심지어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사이판 남양청의 비밀금고를 열자 에어하트의 가방이 있었다는 증언이나 원주민들이 백인여성이 처형되는 모습을 봤다는 증언을 하기까지 했으며 '어밀리아 에어하트의 무덤'이라는 곳까지 발견되어 파보았으나 푸석한 모래밖에 없었다. 결국 이 가설도 기각.
- 2017년 7월 5일, 일본 처형설을 증명해줄 에어하트의 사진이 공개되었다며 한 차례 논란이 일어난 적이 있었지만(해당 기사) 조사 결과 그냥 오해로 밝혀졌다(논란이 일어난 사진에 대해 자세히 밝힌 블로그).
- 스파이 관련 떡밥의 하나로 에어하트와 동행했다가 함께 실종된 항법사 프레드 누넌(Fred Noonan)이 실은 미 해군의 부탁을 받고 태평양의 일본 위임통치령의 방위태세를 알아보러 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 추락 이후 돌아와서 가명을 쓴 채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건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나온 주장으로, 취재를 했는데 결국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었고 이로 인해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고소당하고 말았다.
4.2. 이후 나온 창작물의 모습
- 1962년 연극 체임버 뮤직에서는 본인이 어밀리아 에어하트라고 주장하는 미친 여자가 등장한다.
- 클라이브 커슬러의 사하라에서는 어밀리아 에어하트와 비슷한 여성 파일럿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쪽은 사하라 사막에 추락해 사망, 그리고 소설 속에서 51구역스러운 미국 정부의 비밀 문서 보관소가 묘사되는데 문서 목록 중에 에어하트의 진짜 사망 원인에 대한 비밀 문서가 있다는 언급이 나온다.
- 스타 트렉에서 에어하트 정거장이라는 이름으로도 나오고, 스타 트렉: 보이저[10] 에서는 외계인에게 납치당해 미래로 끌려오는 스토리도 나온다.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와이번 조련사 이름으로 패러디된다. 어밀리아 에어하트(Amilya Airheart). 지옥불 반도에서 볼 수 있다. 타우렌 여성이다.
-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 2에서 등장.
- 2009년에 새로운 전기영화 'Amelia'가 개봉했다. 어밀리아 에어하트 역할에는 힐러리 스왱크. 여기서는 마지막 실종 부분을 끝까지 비행하는 걸로 비교적 담담하게 처리했다.
- 팀 포트리스 2에서는 패스트 푸드 사업을 했던 걸로 나온다. 헤비를 찾으러 간 솔저, 파이로, 스카웃이 비행기를 발견했는데 그 안에는 핫도그 코스튬과 코트, 그리고 특제 꿀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 코스튬 안에 유골이 들어있었고 스카웃은 그녀의 정강이뼈로 곰을 때려잡는 고인드립을 저질렀다.
- 프래그먼트의 배경인 헨더스 섬의 등장생물 헨더의 보금자리에 어밀리아의 구명정이 있다. 추락 후 빈 구명정이 흘러들어온 거면 그럭저럭 다행이지만, 그녀가 이 흉악한 헨더스 섬에 온 거였다면...
- Beat Cop(비트 캅)에서는 마지막날 미션에서 무전기 주파수를 맞추다가 어밀리아 에어하트의 목소리가 잠시 흘러나온다. 비행기가 추락 중이라는 내용.
- Hearts of Iron IV에서는 그녀의 마지막 비행이 된 세계일주가 이벤트로 나온다. 확률에 따라서 성공하는 수도 있다.
만약 어밀리아가 살아남아 세계일주에 성공하고, 플레이어가 미국이며, 미국이 전쟁에 참전했을 경우 어밀리아가 미군에 입대를 원하는 이벤트를 볼 수가 있는데, 약간의 정치력을 소모하고 전투기 에이스로 이용할 수 있다.
- 도미네이션즈에서 유니버시티의 지도자로 등장한다.
- 월드 오브 워플레인에서 이 캐릭터를 오마주한 '메리 러브하트(Mary Lovehart)' 특수조종사가 있다.
5. 기타
남아있는 에어하트의 사진들을 보면 입을 벌리고 있는 사진이 거의 없는데, '''치아상태가 너무 나빠서''' 사진을 좋게 찍으려면 어쩔 수 없이 입을 닫고 사진을 찍어야 했다고 한다.
비슷한 사람으로 식민지 시대 한국의 여성 비행사이자 영화 《청연》의 실제 주인공인 박경원이 있지만 그녀는 친일파 경력이 있어 평가절하 및 까임을 받고(박경원이나 권기옥 둘 다 청연 문서 참고) 되려 박경원보다 친일과 거리가 멀면서 되려 항일에 나선 여조종사 권기옥이 재평가되고 있다. 박경원과 달리 에어하트는 깔끔한 이미지인데다가 여성 인권 상향에도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차이가 있다.
에어하트가 생전 매던 스카프는 여성 파일럿의 상징이 되었다. NASA 최초의 여성 우주왕복선 조종사인 아일린 콜린스는 첫 미션인 STS-63(디스커버리)에서 에어하트의 하얀 스카프를 가져갔다.
[1] 에밀리아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2] 하지만 그 이전에 12살 때 박람회에서 비행기를 처음 접했었을 때에도 인상깊어했다고 한다.[3] 어머니가 중고의 노란 비행기를 선물해 준 것이라고 한다. 아멜리아는 이 비행기에 카나리아라는 이름을 붙혔다.[4] 이 인연 덕에 퍼듀 대학교에는 에어하트의 이름을 딴 기숙사 건물이 있으며, 이 건물 앞에는 그녀의 동상에 세워져 있다.[5] 섬의 중서부에 그녀의 이름을 딴 에어하트 라이트라는 작은 등대와 유사한 역할을 하지만 등화는 없어 야간에는 볼 수 없는 주간 항로 표식이 있다. 2차 세계 대전 기간동안 일본군의 공격으로 파손되었으나 이후 다시 재건되었다. 사람이 거의 가지 않는 무인도다 보니 현재는 관리미흡으로 페인트가 벗겨지고 금이 가는 등 상태는 좋지 못하다. 또한 자연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출입금지 팻말이 있다. 참고로 출입금지 안내문은 영어외에 한국어와 두 가지 버전의 한자(세번째에 있는 上陸禁止는 아마도 일본어, 네 번째 禁止停靠는 중국어 대응으로 보인다)로 써 있는데 심지어 한국어가 영어 바로 다음에, 上陸인지 ㅗβ坴인지 싶을 정도의 세번째의 한자나 禁止停靠라고 쓴게 맞는지 잘 보이지 않는 네 번째 한자보다 훨씬 깔끔하고 쉽게 알아볼 수 있게 써 있다. [6] 에어하트의 비행기는 그리니치 표준시를 사용했고 해군 함정은 미 해군 표준 시간시를 사용해서 통신에 시간차가 있었다.[7] 키리바시의 섬으로 현재는 니쿠마로로 섬으로 불린다.[8] 물론 에어하트라고는 안 하는데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유명 여성 파일럿이 미군의 부탁으로 세계일주 비행을 하면서 태평양에 있는 일본군의 비밀 시설을 정찰하러 갔다가 실종된다는 줄거리다.[9]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일본이 진행한 영어 라디오 방송인 '라디오 도쿄'의 여성 진행자. 물론 목적은 선전방송이다.[10] 시즌2:1화 - The 37'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