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폰수 지 알부케르케

 

Afonso de Albuquerque (아폰소 드알부케르크[1])
(1453~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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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


포르투갈의 군인으로 포르투갈의 동방 개척에 혁혁한 업적을 남긴 인물. 그 업적 덕에, 동양의 카이사르, 바다의 사자, 포르투갈의 마르스 등으로 불렸다.

2. 생애


1453년 리스본 근처의 알한드라에서 하급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부터 북아프리카에서 십 년간 군대 경험을 쌓다가 1471년에는 알폰소 5세의 밑에서 장교를 지내면서 모로코탕헤르, 아씰라를 정복하였다.
나이 50세가 되던 1503년 4월 6일, 사촌 프란시스코 데 알부케르케와 함께 인도로 원정을 갔다. 두아르트 파셰쿠 페레이라와 니콜라우 코엘류 등과 함께 항해하며 코친의 왕을 도와 캘리컷의 왕인 자모린을 공격하는 여러 전투에 참전하였으며, 왕에게 쾰른과 함께 코친에서 포르투갈 요새를 구축하고 무역을 확립하는 권한을 받고 1504년 7월에 포르투갈로 돌아갔다.
1506년 4월에 다시 리스본에서 출발하여 동아프리카의 소코트라를 정복하고 수크에 요새를 건설하여 인도양홍해에서 교역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1507년 5월에 호르무즈를 점령하고 7월에는 무스카트의 도시를 정복하였다.
그러나 그의 부하들은 중노동과 기후에 시달려 오랫동안 함대를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1508년 1월에 호르무즈를 포기하고 소코트라에 정착하여 연안의 마을들을 습격하고 호르무즈에 반환하고 인도로 향하였다.
1508년 12월에 인도 총독이 되어 인도로 갔지만 전임 총독이었던 프란시스코 데 알메이다에게 체포되었다. 1509년 2월 2일에 알메이다가 맘루크 왕조, 오스만 제국, 캘리컷, 구지라트의 연합 함대를 물리치자 감옥에서 풀려나 총독 자리를 물려받았다.
1509년에는 캘리컷을 공격하였다가 실패하였으나, 1510년 9월에 고아를 정복하였으며, 1511년 6월에 실론, 말라카, 암보이나와 사이암, 수마트라, 자바인도네시아의 많은 섬들을 조공국으로 삼았다.
1512년에 몰루카 제도를 발견하여 유럽에 향료인 정향육두구를 직수입하게 하였으며 중국과도 교류하였다. 1513년에 아덴을 공격하였다가 실패한 후, 1514년에는 다시 인도 총독에 임명되었으며, 1515년에는 홍해의 항해를 관리하기 위해 호르무즈에서 요새인 페이토리아를 건설하였다.
그러나 조공국에 대한 그의 통치는 매우 잔혹하였다. 스리랑카를 공격했을 때 부처의 치아를 보물로 여기고 보관하는 불치사를 습격하여 많은 불교 신도들 앞에서 부처의 치아를 부쉈으며,[2] 이슬람을 정복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을 학살하였다. 심지어는 성지 메카를 습격하고 무함마드의 무덤을 파헤쳐 무슬림들이 보는 앞에서 교수대에 걸려는 계획까지 세웠다고 한다.[3]
이러한 행동 때문에 포르투갈 왕실에서 그를 탄핵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호르무즈에 요새를 건설한 해에 인도 총독을 박탈 당하고 고아로 돌아가던 도중 배에서 병사하였다.[4] 향년 62세.

3. 여담


  • 대항해시대 3에서는 플레이어의 라이벌로 말라카 해협등의 발견을 놓고 다투게 되며, 1514년부터는 고아의 총독으로 눌러앉아 스폰서가 되어 플레이어를 후원한다. C급 스폰서에 오세아니아, 동아시아쪽으로 넘어가는 스케일이 큰 발견물들은 계약할 수 없지만, 동아프리카, 인도쪽에도 발견물이 널렸고, 선호하는 것 중 자체의 부가가치가 낮아 계약을 맺고 발견하는 게 유리한 교역품이 있는지라 포르투갈 국적이라면 정말 유용하다. 여담으로 감식안이 낮아 모조품으로 자주 돈을 뜯어낼 수가 있다.
  • 대항해시대 4에서는 그의 후손이라고 하는 디니스 데 알브켈케가 등장한다. 후손은 포르투갈 세력의 대표 역할을 하고 있지만, AI의 인공지능이 굉장히 소극적이라 자판기 취급을 받는다.
  •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는 아폰소 알베르케르케라는 괴상한 이름으로 등장한다. 말라카와 자카르타 사이에서 자바 해를 배회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수탈시 상급사관 전직증인 전공장을 준다.
[1] 외래어 표기법영어를 제외한 로망스어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나 관사는, 발음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채 뒤 요소와 붙여 적는다.[2] 다만 스리랑카 왕실이 이미 석가모니의 치아를 몰래 빼돌리고 돌로 만든 레플리카를 대신 갖다놓아 속인 덕분에, 석가모니의 불치사리는 현재까지도 무사히 전해진다.[3] 그 외에, 에티오피아에 터널을 파서 나일강의 물을 홍해로 돌려 이집트를 사막화하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4] 포르투갈의 왕인 마누엘 1세가 알부케르케의 정적 L.소아레스를 후임 인도 총독으로 파견한 데 실망하여 소아레스를 마중 나온 배 앞에서 자살하였다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