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시스 바이센베르크
1. 개요
불가리아 태생의 프랑스 피아니스트.
'''"내 뒤를 이을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알렉시 바이센베르크다."'''
― '''블라디미르 호로비츠'''[1]
[image]'''"우리 시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하나."'''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2]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함께.
2. 생애
1929년 불가리아 소피아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판초 블라디게로프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8살의 나이에 대중 앞에서 첫 공연을 가졌다.
1941년, 그의 가족은 독일에게 점령당한 불가리아를 탈출해 터키로 가려했지만, 붙잡혀 수용소로 보내졌다. 수용소에서 그가 아코디언으로 연주하는 슈베르트 곡을 듣는 것을 좋아했던 한 독일군 보초가 그와 그의 어머니를 기차에 태운 후 창문으로 아코디언을 건네며 "행운을 빈다[3] "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들은 다음날 안전하게 이스탄불에 도착할 수 있었다.
1945년, 가족과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고, 레오 케스텐베르크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그 곳에서 레너드 번스타인의 이스라엘 필하모닉과 함께 베토벤을 연주했다. 1946년 줄리어드 스쿨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1947년, 조지 셀의 뉴욕 필하모닉과 함께 뉴욕에서의 첫 공연을 가졌다. 연주한 곡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 같은 해에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권유로 참가한 레벤트리트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였다.
1957년부터 1965년까지 재정비의 시간을 가진 후 1966년 파리에서의 리사이틀로 연주 활동을 재개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로슈카를 연주하는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에게 발탁되어, 1967년부터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정기적인 협연을 가졌다. 이후에 계속해서 적극적인 공연, 연주활동을 했고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갔다.
2012년 1월 8일, 파킨슨병으로 스위스 루가노에서 사망했다. 향년 82세.
생전 그의 녹음 작업으로는 로베르트 슈만,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프레데리크 쇼팽의 작품들이 가장 유명하다.
영문 위키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