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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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R&B 가수이자 배우로서 활약한 헐리우드 스타'''
'''브랜디, 모니카와 함께 혜성 같이 등장한 R&B Princess.'''
2. 어린 시절
1979년 1월 16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보컬리스트였던 알리야의 어머니는 알리야가 어릴 때부터 보컬 레슨에 등록해 보컬을 배우게 했다. 그녀는 결혼식, 성가대, 자선 행사 등에서부터 활동하기 시작했다. 5살 때 디트로이트로 이사 간 후 그녀의 오빠와 함께 자라게 된다. 그 후 그녀는 가톨릭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는데, 1학년 때 '애니'라는 뮤지컬 연기를 하면서 연예인을 꿈꾸게 된다.
3. 학창 시절
알리야는 디트로이트에 있는 학교를 다녔는데, 자신이 인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작은 키로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알리야의 어머니는 알리야의 키가 작다는 것이 기쁘다고 말하면서 그녀를 칭찬했다. 다른 아이들은 알리야를 좋아하지 않았으나 알리야는 그들을 신경쓰지 않았다. "항상 나를 질투하는 다른 아이들을 상대해야 했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수의 아이들이 나를 지지했고, 그것은 훌륭했다. 부정적인 사람들을 대할 때, 나는 그것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론 흘렸다. 그 사람들은 나에겐 보이지 않았다."[2] 그녀가 성인이 되었을 때도, 자신의 키가 작다고 여겼다.[3] 알리야는 스스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고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도 그렇게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알리야는 디트로이트 예술 학교를 다녔는데, 오디션에서 전부 이탈리아어로 된 '아베 마리아'를 불렀다. 15살에 데뷔해 가수 활동과 학업을 병행했는 데도 최고점인 4.0을 유지했다고 한다. 알리야는 가수 생활 초반 압박과 시간 제약에도 불구하고 성적을 올리는 데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알리야는 자신을 완벽주의자라고 칭했고, 모범생이었다고 회상했다. 알리야는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도 항상 그 상태를 유지하고 싶었다. 그 산업(연예계)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나는 노래만 부르고 학업에 대해 잊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교육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더 중요한 것은 의지할 것이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연예계의 다른 분야에서의 대비책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삶에서 이것을 실행했다고 한다.
알리야는 자신이 가수로 생계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음악사를 가르치거나 학교를 세워 드라마를 가르칠 수 있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생각하듯이 자신이 사랑하는 분야를 직업으로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4. 가수 활동
10살이 되던 해 AKN의 스타 서치(Star Search)를 통해 방송에 데뷔했다. [4] 그녀가 12살이 되던 해, 자이브 레코드(Jive Records)와 그녀의 삼촌이 대표를 맡았던 블랙그라운드 레코드(Blackground Records)에 동시 계약하며 가수가 되기 위해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한다. 블랙그라운드 레코드에서 삼촌의 소개로 그녀를 스타로 키워줄 알 켈리와 만나게 되고 그는 알리야의 멘토 역할과 데뷔 앨범인 Age Ain't Nothing But A Number의 총 프로듀싱을 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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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5세의 나이로 1집 앨범 Age Ain't Nothing But a Number으로 정식 데뷔했다. 데뷔 앨범은 미국에서만 300만 장 이상 팔렸고, 전 세계적으로는 600만장 이상 팔렸다. 앨범은 RIAA에서 더블 플래티넘 인증을 받게 되었다. 싱글 Back & Forth, At Your Best는 빌보드 싱글차트서 각각 5, 6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거두며 팝계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15살의 어린 소녀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성숙하고 높은 수준의 R&B 곡들과 뛰어난 음악성은 그녀를 단숨에 스타덤에 올려 놓았다.
'''Back&Forth (1994)'''
'''At Your Best (You Are Love) (1994) '''
'''Age Ain't Nothing But A Number (1994) '''
이 곡들을 15살 소녀가 완벽히 소화했다는게 놀라울 따름. 심지어 이 곡들을 녹음했을 땐 그녀의 나이는 겨우 만 14살이었다(...)
그러나 그 무렵 그녀에게도 큰 문제가 찾아오는데, 바로 프로듀서 알 켈리와의 스캔들이었다. 논란이 거세지자 알리야는 그녀의 소속사인 자이브 레코드와 알 켈리를 떠나 새 소속사인 아틀란틱 레코드(Atlantic Records)와 계약한다. 이 이후 1996년, 프로듀서인 팀 발랜드와 미시 앨리엇이 프로듀싱을 맡은 2집 앨범 One in a Million을 발매한다.[6] 앨범은 미국 내에서 300만 장, 전 세계적으로 8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대히트를 친다. 싱글차트에서 The One I Gave My Heart To가 9위, If Your Girl Only Knew가 11위를 차지했다.
'''If Your Girl Only Knew(1996)'''
'''One in a Million(1996)'''
'''The One I Gave My Heart To (1997)'''
2집 활동에서 앨범 판매량이나 인지도는 전작에 비해 훨씬 상승했지만 아쉽게도 싱글차트 성적은 비교적 낮은 편이었다.
이후 1998년, 영화 '아나스타샤'의 주제곡 'Journey to the past'를 불러 사상 최연소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다.
'닥터 두리틀'의 주제가인 'Are You That Somebody'를 불러 빌보드 싱글차트 21위를 기록했으며, 2000년 싱글 'Try Again'로 드디어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하고, 2001년 3집 앨범 'Aaliyah'로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기록했다.
4.1. 결혼
'Age Ain't Nothing but a Number'가 발표되고 나서, 알리야와 R. 켈리가 알리야의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결혼했다는 루머들이 생겼다. 1994년 8월 31일 미국의 잡지 Vibe는 그들의 혼인신고서를 공개했다. 당시 15살이었던 알리야는 혼인신고서엔 18살로 기재되어 있었다. 이 불법결혼은 1995년 2월 알리야의 부모에 의해 무효 처리된다. 2019년, 성착취 혐의로 기소된 R. 켈리에게 15세의 여성과 결혼하기 위해 18세로 조작하도록 담당 공무원에게 뇌물을 준 혐의가 추가되었는데 법률 문서에선 가명인 Jane Doe로 처리되었지만 대부분 리스너들이 이 여성이 알리야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언론에서도 그렇게 추정하고 있다.BBC 기사
5. 배우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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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영화 '로미오 머스트 다이'를 통해 영화배우로 데뷔했다. '로미오 머스트 다이'는 이연걸이 러셀웨폰4로 할리우드에 데뷔한 이후 두 번째 출연한 영화이자 첫 주연작이다. 이 영화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모티브로 한 액션 영화인데 극 중 대립되는 '싱' 가문과 '오데이'가문에서 이연걸은 '싱' 가문의 아들로 알리야는 '오데이' 가문의 딸로 나온다. 오클랜드 부두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중국계 마피아 '싱' 가문과 흑인계 마피아 '오데이' 가문의 대립을 부추기는 어떤 음모를 두 남녀가 파헤치는 내용이다.
2002년에는 2번째 작품이자 유작인 '퀸 오브 뱀파이어'에 출연했다. 앤 라이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록스타가 된 뱀파이어라는 독특한 설정의 영화다. 알리야는 이 작품으로 영화 잡지 '팜므파탈'에서 영화 역사상 가장 섹시한 뱀파이어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6. 죽음과 그 이후
2001년 8월 25일, 알리야와 스태프들은 뮤직비디오 'Rock The Boat' 촬영을 마친 후 알리야의 집이 있는 플로리다로 가기 위해 바하마에서 세스나 402 경비행기에 탑승했다. 원래 다음 날인 8월 26일에 떠나려고 했으나, 촬영이 일찍 끝나 알리야와 그녀의 동료들은 바로 미국으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예정에 없던 비행이라 항공사에서 원래 보내기로 했던 세스나 404 대신 세스나 402B를 보냈다고 한다. 원래 4시 30분에 도착 예정이었던 비행기는 6시 15분 쯤에 모습을 드러냈고, 조종사인 루이스 모럴레스와 알리야, 그녀의 친구, 메이크업 아티스트, 보디가드, 레코드 회사 직원 등 총 9명이 탑승했다.
그러나 6시 50분, 이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기는 공항 근처에 추락해 폭발했고, 알리야를 포함한 9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국가운수안전위원회 조사 결과 적재량보다 700 파운드(320kg)를 초과했고, 탑승 인원보다 1명 더 탑승해 과중량으로 인한 사고로 밝혀졌다.
그리고 사고 당시 알리야는 극심한 화상과 머리 부분 충격으로 사망했고, 설령 생존했더라도 회복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을 것이라고 알려졌다. 문제가 되었던 건 조종사 모럴레스였다. 그가 미국의 비행기 조종 면허증을 불법으로 취득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혈액 검사에서도 코카인과 알콜 성분이 발견되는 등 어처구니 없는 인재(人災)로 소중한 가수를 잃었다 하겠다.
사고 한 달 전 알리야는 지인에게 자신이 꾼 꿈 이야기를 했었는데, 꿈 속에서 알리야는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공중으로 솟아올랐다는 거다. 이후 그녀는 공중에서 헤엄치는 것처럼 점점 하늘로 올라갔고, 아무도 따라올 수 없었다는 것.
사후 11년인 2012년 그녀의 미발표곡들을 모은 유작 앨범이 발표될 예정이라고 한다. 첫 싱글은 Drake가 피처링한 Enough Said.
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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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미오 머스트 다이'에서 동양인 남자 주인공과 흑인 여자 주인공이라는 설정은 어색한 듯 보였지만, 상당히 잘 어울렸다. 이연걸 특유의 매너 있고 핸섬한 스타일과 청순하고 섹시한 알리야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7]
- 생전에 비욘세[8] , 미시 엘리엇 , 팀발랜드 , 릴 킴 등과 친분이 있었다. 릴 킴과는 서로의 뮤비에 특별출연하거나 피처링도 하였다. 미시 엘리엇과 팀발랜드는 알리야가 R. 켈리로부터 독립한 뒤로 그녀의 앨범을 프로듀싱 해주었으며, 알리야를 애도하며 추모곡을 쓰기도 했다.[9] 비욘세는 SNS에 그녀의 기일에 맞춰 그녀와 함께 찍은 사진과 추모글을 올렸다.
- 별명은 'Baby Girl' 또는 'Princess Of R&B'.
- 걸그룹 믹스의 중국인 멤버 리야는 알리야의 이름을 본따서 예명으로 사용 중이다.
- 알리샤 키스의 대표곡인 If I Ain't Got You는 알리샤 키스가 알리야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곡이다.
- 생전에 기부 활동을 활발히 했다고 한다. 한 팬이 기부 활동을 하는 이유를 묻자, '하느님이 주신 것을 세상에 돌려주는 것 뿐이다' 라고 답했다고 한다.
- 우리나라의 여러 아티스트에게 영향을 미쳤다. 특히 가수 박지윤은 3집 이후 박진영에게 찾아가 대놓고 나를 알리야 같은 가수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이것을 곧이 곧대로 들은 박진영은 박지윤의 4집 "성인식"에서 알리야의 "Are You That Somebody"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의상과 안무 몇 가지를 고대로 베껴서 넣었다(...). 이 뿐만 아니라, 자신의 6집의 "왜왜"라는 곡은 알리야의 똑같은 곡을 그대로 표절해서 수록했다.
- Space A 출신 루루는 솔로 1집 "Return"에서 알리야의 "More Than A Woman" 후반부에 등장하는 수건 춤을 그대로 가져다 썼는데, 다행히 안무가 홍영주가 직접 미국에 날아가 알리야의 생전 안무가였던 파티마 로빈슨에게 승낙을 받고 썼다.
- 활동명으로 성을 붙이지 않고 이름만 사용한 건 알리야 어머니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 제시카 알바가 출연했던 영화 '허니'에 캐스팅 되었으나, 촬영에 들어가기 전 불의의 사고로 요절하고 말았다.
- 왼쪽 눈을 가린 헤어스타일을 한 사진들이 유난히 많다. 알리야의 어머니가 자신이 좋아했던 배우 베로니카 레이크에게서 영감을 받아 알리야에게 권했고, 어머니의 의견을 따라 헤어스타일을 바꿨다고 한다.
- 어릴 때 데뷔해서 그런지 학교에 있는 시간 내내 보디가드와 함께 있었다고 한다.[10]
- 그녀의 소속사는 유작인 앨범 'Aaliyah'의 3번째 싱글 'Rock the Boat'가 너무 성적인 노래라고 생각해 발매 전까지 2년 동안 공개하지 않았다고 한다.
- 'Rock the Boat' 뮤비를 찍는 날 알리야의 안무가였던 파티마의 조부모의 결혼 50주년이었는데, 알리야는 파티마의 조부모님께 '이런 특별한 날에 손녀를 데려가서 미안해요, 하지만 난 그녀가 필요했어요. 두 분이서 함께 더 좋은 나날들을 보내시길 바래요[11] '라는 내용의 영상편지를 보냈다.
- 인터뷰가 끝난 후 집에 가서 해리 포터를 봐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해리 포터 시리즈를 굉장히 좋아했다.
- 알리야 사후 데이먼 대시의 인터뷰에 따르면, 알리야와 결혼 계획이 있었다고 한다.
- 그녀의 헤어스타일리스트였던 에릭 페렐은 알리야와 데이먼 대시가 친구들에게 헤어진 것처럼 장난쳤다는 일화를 공개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그들이 심하게 싸운 것처럼 다른 방에 있었고, 상황은 굉장히 안 좋았다. 그들이 헤어진 것처럼 보였고, 에릭과 나는 서로를 보면서 경찰을 불러야 하나 고민했다. 나는 갑자기 구석에서 둘이 우리를 엿보고 있다는 것을 봤고, 그들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 미시 엘리엇에 의하면 화를 내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쿨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 녹음을 굉장히 빨리 끝냈다고 한다.
- 퀸시 존스의 딸인 키다다 존스와 친했는데, 키다다와 알리야는 같이 퀸시 존스에게 장난을 친 적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아빠한테 장난을 쳤을 때, 알리야는 자신이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인 것처럼 연기했어요. 그녀는 우리 아빠에게 녹음할 것이 있냐고 묻고 노래를 불렀고, 아빠는 완전히 믿었죠."
- 미시 엘리엇과 둘 다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는 드레스를 누가 입을까 내기한 적이 있다.
- 손목 옆에 글자 'A', 손목 안쪽에 이집트의 상형문자인 '앙크', 발목에 음악과 관련된 모양의 타투, 할머니와 관련된 등 아래쪽 비둘기 모양의 타투 등 몸에 4개의 타투가 있었다고 한다.
- 2002년 1월 'More Than A Woman'으로 1위를 해 영국 차트에서 사후 1위를 한 아티스트로 기록되었다.
- 2019년 2월 R&B 가수이자 프로듀서인 R. 켈리의 성착취를 고발한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는데, 알 켈리의 백업보컬이었던 '조반테 커닝햄'에 따르면 투어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중 알리야와 알 켈리가 관계를 가지는 것을 보았다고 주장했다.[12] https://www.youtube.com/watch?v=m5gfNzkr7lc&t=88s
8. 디스코그래피
8.1. 앨범
- Age Ain't Nothing but a Number (1994) - 빌보드 18위
- One in a Million (1996) - 빌보드 18위
- Aaliyah (2001) - 빌보드 1위
- I Care 4 U (2002) - 빌보드 3위
- Ultimate Aaliyah (2005) - 영국 오피셜 32위
8.2. 싱글
8.2.1. 빌보드 핫 100 1위
- Try Again (2000)[13] - 1주
8.2.2. 빌보드 핫 100 2위 - 10위
- Back & Forth (1994) - 5위
- At Your Best (You Are Love)(Remix) (1994) - 6위
- The One I Gave My Heart To (1997) - 9위
- Miss You (2002) - 3위
8.2.3. 빌보드 핫 100 11위 ~ 40위
- If Your Girl Only Knew (1996) -11위
- Are You That Somebody? (1998) - 21위
- I Don't Wanna (2000) - 35위
- More Than a Woman(2001) - 25위
- Rock the Boat (2002) - 14위
- I Care 4 U (2003) - 16위
8.2.4. 빌보드 핫 100 41위 ~ 125위
- Age Ain't Nothing but a Number (1994) - 75위
- Come Back in One Piece (feat. DMX) (2000) - 117위
- We Need a Resolution (feat. Timbaland) (2001) - 59위
- Come Over (2003) - 32위
[1] 이름의 뜻은 스와힐리어로 '가장 고귀한 것'[2] You always have to deal with people who are jealous, but there were so few it didn't even matter. The majority of kids supported me, which was wonderful. When it comes to dealing with negative people, I just let it in one ear and out the other. Those people were invisible to me.[3] 참고로 알리야의 키는 171cm으로, 평균보다 큰 키다.[4] 참고로 스타 서치는 아메리칸 아이돌식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5] 알리야 뒤에 보이는 남성이 바로 알 켈리이다.[6] 이 시기를 기점으로 알앤비보다는 힙합 색채가 강해지는 등 음악 스타일이 상당히 바뀌게 된다.[7] 하지만 처음 시사회 때는 반응이 상당히 안 좋았다고 한다.[8] 특히 비욘세와 알리야는 비슷한 나이로, 만약 알리야가 살아 있었다면 비욘세와 쌍벽을 이뤘을 거라는 의견이 많다.[9] 미시 엘리엇은 알리야의 사망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농담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면서, 연예인으로서가 아니라 마치 친동생을 잃은 것처럼 슬프다고 할 정도로 알리야를 굉장히 아꼈다.[10] 알리야는 만 나이로 15살, 우리나라 나이로 중3 때 데뷔했다.[11] I'm sorry I had to steal your granddaughter away from you on this special day, but I needed her, and I hope you have more great years together[12] 참고로 알리야가 알 켈리를 처음 만났을 때 나이가 12살이다![13] Timbaland에 의해 프로듀싱된 곡이며, 영화 OST였기 때문에 실질적인 싱글 음반 발매가 없었다. 역사상 최초로 Airplay만으로 빌보드 1위를 한 곡이라는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