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 투레

 


'''야야 투레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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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베스트팀'''
2011-12 · 2013-14

'''야야 투레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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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올림피크 도네츠크'''
<colbgcolor=#58ade6> '''Футбольний клуб Олімпік Донецьк'''
''' 이름 '''
'''야야 투레'''
'''Yaya Touré'''
''' 본명 '''
녜녜리 야야 투레
(Gnégnéri Yaya Touré)
''' 생년월일 '''
1983년 5월 13일 (41세)
''' 국적 '''
[image] 코트디부아르
''' 출신지 '''
부아케
''' 신체 조건 '''
189cm, 90kg
''' 포지션 '''
중앙 미드필더
''' 등번호 '''
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 - 19번
FC 바르셀로나 - 24번
맨체스터 시티 FC - 42번
''' 소속 '''
<colbgcolor=#58ade6> ''' 유스 '''
ASEC 미모사 (1996~2001)
''' 프로 '''
KSK 베베렌 (2001~2003)
FC 메탈루흐 도네츠크 (2003-2005)
올림피아코스 FC (2005~2006)
AS 모나코 (2006~2007)
'''FC 바르셀로나 (2007~2010)'''
'''맨체스터 시티 FC (2010~2018)'''
올림피아코스 FC (2018)
칭다오 황하이 (2019~2020)
''' 감독 '''
FC 올림피크 도네츠크 (2021~ / 수석코치 )
''' 국가대표 '''
102경기 19골 (코트디부아르 / 2004~2016)
''' SNS '''

''' 가족 '''
콜로 투레
''' 종교 '''
이슬람[1]
1. 개요
3. 지도자 경력
4. 국가대표 경력
5. 플레이 스타일
6. 기록
6.1. 대회 기록
6.2. 개인 수상
8. 여담
9. 야야 투레에 대한 말말말
10.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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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코트디부아르축구선수.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이다.
201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맨체스터 시티 FC의 핵심 자원으로 활약하면서 맨시티의 전성기를 열었던 선수다.

2. 클럽 경력


''' '''

3. 지도자 경력


2021년 1월 22일 선수은퇴와 동시에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클럽 FC 올림피크 도네츠크의 수석코치로 부임한다고 알렸다.

4. 국가대표 경력


국가대표에서도 오래 뛰면서 중원에 힘을 주며 센추리 클럽이 머지 않았는데 디디에 드록바에게 가려지는 면이 없잖아 있다.[2] 드록국이란 말이 있다는 것 자체가...[3]
국대에서 드록바와 프리킥을 나눠 차고 있는데 2013년에는 7경기 6골에 팀내 최다골이라는 무시무시한 득점수를 올리고 있다. 드록바에게서 주장을 넘겨받은 뒤 2015년 네이션스컵에서 코트디부아르를 우승으로 이끄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2016년 9월 20일 자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2017년 12월 26일 박싱데이때 에이전트를 통해 국가대표 복귀를 선언했다. 맨시티에서 경기에 나오는 일이 드물다보니 경기 출전 욕심이 생긴 모양(...). 그러나 정작 국가대표팀에 호출되자 가족 사정으로 불참했다.

5. 플레이 스타일


바르셀로나 시절에 처음 널리 알려졌을 때는 센터백도 볼 수 있는 수비형 미드필더였으나, 투레가 바르셀로나를 떠날 쯤에도 이후 맨시티 시절에 터뜨린 드리블 능력과 같은 공격 능력을 종종 보여주었다. 맨시티로 이적하고 리그에 적응한 뒤 박투박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한 2011년부터 2014년까지가 전성기.
전성기 때의 야야 투레는 역대 아프리칸 미드필더 중 최고로 꼽을 만 한 경기력을 보여주는, 당시 세계 최고를 다투는 선수였으며 여러 에이스급 선수가 즐비했던 맨시티 내에서도 가장 중요한 선수라 할 만 했다. 당시 '''중앙 미드필더의 교과서'''라는 찬사를 얻었으며, 실제로 그 기간 동안 그 어떤 선수보다도 완벽한 '''육각형''' 툴을 지닌 선수로 멀티 플레이어의 레전드 루드 굴리트와도 잠시 비교될 정도의 활약을 보였다.
당시 투레의 파괴력의 핵심이라 할 만 했던 것은 피지컬이다. 우선 신체능력이 급락해 산책을 하게 된 이후에도 웬만한 선수에게 피지컬 대결로는 밀리지 않는 거구를 자랑했다.[4] 하지만 비슷한 크기의 거구가 즐비한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피지컬로 그야말로 충격적인 임팩트를 남길 수 있었던 건 크게 두 요인이 있는데, 볼을 차는 테크닉이 최고 수준에 이르렀던 것이 첫 번째, 그리고 엄청난 유연성을 보였던 것이 두 번째이다. 이런 덕분에 여러 명의 떡대 수비수들이 좁은 공간에서 달라붙었을 때에도 저 모든 장점을 십분 이용해 유유히 빠져나갈 수 있었으며, 속공과 지공상황을 가리지 않고 수차례 상대방을 제끼며 전방으로 돌진할 수 있었고, 전방에서 수비를 등지고 돌아설 수도 있었으며, 패스를 할 공간을 확보하고 시간 여유를 가질 수 있었고, 자신에게 수비를 집중시켜 공격옵션을 늘릴 수도 있었다.
또한 거기에 더해 전성기 때는 스피드도 아주 빨랐으며 드리블 스킬도 좋아서, 2012년 챔스에서 레알 마드리드 수비를 순식간에 도륙낸 드리블과 같은 장면을 꽤나 자주 연출할 수 있었다. 이 드리블은 이 하나만으로도 전술이 되었으며, 레알이나 첼시와 같은 최상위의 팀들도 곧잘 당했다. 덤으로 몸도 아주 튼튼했고 당시에는 체력도 나쁘지 않았으니 축구선수의 피지컬로는 거의 완벽에 가까웠으며, 이랬기 때문에 만치니 감독의 후반 투레 전방 푸시와 같은 공격전술은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2013년까지는 득점력이 아주 특출난 수준은 아니었으나, 득점에 필요한 모든 툴은 이미 이때부터 갖추고 있었으며, 특히 2011년 FA컵 결승이나 2012년 시즌 런인 뉴캐슬전에서 결승골을 넣는 등 클러치 능력이 뛰어났다. 수비를 서서히 버리기 시작하면서 공격 포텐이 온전히 터진 2013-14시즌에는 미드필더로서 리그에서 무려 20골을 넣을 정도의 득점력을 보이며 정점을 찍었다. 페널티킥과 오른발 프리킥을 전담해 골을 마구 쑤셔박을 정도로 킥력이 각성한 결과로 역시 그의 전매특허 중 하나인 특유의 툭 차는 폼으로 많은 골을 몰아넣었다. 그 전에도 킥력이 좋았고 쭉쭉 뻗어나가는 중거리를 어디에서나 날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나 이 때 그 능력이 가장 농익었다고 할 수 있다.
플레이메이킹을 하는 미드필더로서 필수적인 능력인 패싱도 최고 수준이었다. 피지컬의 이점을 이용해 얻어낸 넓은 시야폭을 활용해서 전방으로 길게 날려주는 롱패스, 점유율을 유지하고 팀을 앞으로 이끌어내는 숏패스, 실바와 함께 템포를 조율하며 플레이 방향을 바꾸는 패스에 공히 능했다. 전성기가 한참 지나 거의 모든 장점을 잃어버린 2015년 이후에도 패스에서만큼은 리그 최상급의 스탯을 찍었으며, 아무리 페르난지뉴가 2015-16시즌의 퍼포먼스로 칭찬받았다 해도 투레의 패스, 그리고 빌드업과는 클래스 차이가 많이 있어 투레가 뛰지 않을 때는 중앙에서부터 치고 올라가는 빌드업을 쉽게 하지 못했다.
이처럼 수많은 장점을 통해 가질 수 있던 수많은 선택지를 이용해 리그에서 거의 모든 수비수들을 공포에 떨게 할 수 있었으며, 전성기 때는 수비나 활동량도 기본은 했으므로 단점 없는 미드필더로서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13-14 시즌부터 나이가 들며 투레의 속도와 체력에는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이 시즌까지는 폼이 좋은 페르난지뉴와 역시 폼이 좋았던 뱅상 콤파니가 뒤를 봐줄 수 있어 수비에 능하지 않은 2선 미드필더들을 껴넣은 투톱 투미들이라는 위험한 전술에도 단점이 나타나는 것을 최소화하고 공격 면에서의 장점을 한없이 뽐낼 수 있었으나, '''2014-15 시즌부터는 이게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고 동시에 위에 서술되었던 장점들이 하나 하나 없어지기 시작했다.''' 수비력이 가장 먼저 바닥났으며, 이후 더 이상 탱크같은 드리블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전방에서 제대로 된 공간을 잡지 못하니 득점기회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뻘 중거리슛만을 계속 날리기 시작했고, 이어 결국 절대적인 킥력도 하락하기 시작했으며, 상대를 쉬이 튕겨내던 피지컬도 떨어졌다. 거기에 체력이 떨어져 힘드니까 웬만한 공격수보다도 수비가담을 안 하기 시작했고, 이 모든 요인들이 페예그리니 감독의 대책없는 전술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페르난지뉴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모든 경기에서 전방위적으로 엄청난 공간을 상대에게 내주게 되었다. 결국 2015년부터는 출전할 때마다 팀에 커다란 부담을 안기는 계륵이자 짐덩이가 되고 말았다. 전성기 때 팀에서 갖던 비중이 컸던 만큼, 기량이 하락하자 그 피해 또한 엄청났다.
16-17시즌 야야가 펩에게 사과하고 복귀한 다음에는 전성기와는 다른 방법으로 활약하고 있다. 야야는 강제 휴식을 취한 후 매우 좋은 몸상태로 복귀했는데, 패스 센스와 축구지능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한편 팀 단위 압박과 수비에 참여하는 중이다. 특히 볼 탈취 횟수가 몇 경기 연속으로 출전 선수들 중 1위를 차지할 만큼 매우 늘어났는데, 야야가 펩의 지시를 아주 잘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몸싸움이나 킥력은 여전히 살아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16-17 시즌에는 주전급으로 복귀했었으나...
17-18 시즌 와서는 신체적 능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다시 병장모드로 돌아왔으며, 수비 복귀 속도도 매우 늦어졌다. 나이는 어쩔 수 없는 듯 하다.
인간인 만큼 전성기에도 단점이 없는 선수는 아니다. 대표적으로 꼽는 약점은 떨어지는 수비복귀,가담 볼처리속도 등이 있다. 이러한 단점은 강팀이 많은 챔피언스리그에서 더욱 더 많이 보여주는데 활약상만 보더라도 전성기 시절에 12-13 시즌 조별리그 레알과 1차전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수비압박이 강한 전력이 우세인 팀과의 경기에서 활약이 거의 없다.

특히 뮌헨,도르트문트,바르셀로나 등과 경기에서 보여준 단점은 첫번째 성실하게 수비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비가담도 떨어지고 복귀도 잘 안하다보니 팀 수비밸런스가 과도하게 야야투레의 중원파트너나 중앙수비수에게 쏠리게 되고 이것은 실점에 영향을 크게 미치게 된다. 이점은 12-13 시즌 챔피언스리그 아약스, 도르트문트와 경기에서 크게 보여준다. 두번째 볼처리 속도가 빠르진 않다. 자신의 드리블을 믿고 볼을 소유할려는 경향이 강하다보니 상대방이 팀 전체적으로 압박을 가해 드리블이 막히면 볼키핑만 하다가 전방으로 볼연결을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역습시에 빠르게 볼을 전방으로 보내줘야하는데 볼을 가지고 드리블을 하다가 의미없는 백패스, 수비에게 막히는 패스 등 역습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점은 야야 투레가 챔피언스리그 같은 큰 경기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준다.

6. 기록



6.1. 대회 기록



6.2. 개인 수상


  • 아프리카 올해의 축구 선수: 2011, 2012, 2013, 2014
  • CAF 올해의 팀: 2008, 2009, 2011, 2012, 2013, 2014, 2015
  • PFA 올해의 팀: 2011-12, 2013-14
  • 코트디부아르 올해의 선수: 2009
  •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토너먼트의 팀: 2015
  • ESM 올해의 팀: 2013-14
  • BBC 아프리카 올해의 축구 선수: 2013, 2015
  • 맨체스터 시티 올해의 선수: 2013-14

7. 사건사고 및 논란




8. 여담


  • 형제들도 프로 축구 선수였다. 형인 콜로 투레는 아스날 무패우승 시절을 이끈 주역이고, 동생 이브라힘 투레는 자신이 뛰었던 ASEC 미모사에서 뛰다 안타깝게도 2014년 6월 20일 암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야야 투레는 위에 선술한 행각을 벌였다.
  • 맨시티에서 형제가 같이 뛰던 시절(2010~2013)에는 맨시티팬들이 두 형제를 응원하는 응원가를 만들었는데 따라 부르기 쉬운 가사와 안무(...), 그리고 익숙한 멜로디 덕에 컬트적인 인기를 자랑하고있다. 유튜브에서는 커버 댄스(...) 영상도 다수 존재한다. 제라드(!!!)를 필두로 한 리버풀 선수들이 춘 영상[5] 잉글랜드 여자 국대가 춘 영상 투레송을 직접 들은 콜로와 야야
  • 디디에 드록바와는 파벌이 있어서 둘의 사이는 미적지근 했었지만, 드록바콜로 투레의 약물 스캔들 사건에서 콜로를 옹호해주면서 지금은 관계가 많이 원만해졌다고 한다.
  • 독실한 이슬람교 신자로 라마단을 꼭 지키고 술도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때문에 야야 투레가 금식하는 날에 경기가 있으면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게 금방 확 눈에 띈다. 하지만 이 문단의 서술이 무색하게도 음주운전에 걸려 벌금을 낸 경력이 있다. 텔레그레프 기사
  • 바르셀로나 시절엔 24번을 달았고, 맨체스터 시티 이적 후에는 42번을 달고 있는데, 24번과 42번이라는 다소 생소한 등번호를 달고 있는 이유는 입단 시에 아내가 그 번호를 골라준 것이라고.
  • 2016년 5월 7일, 인터뷰를 통해 처음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할 당시, 푸른 유니폼을 보기 전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게 되는 건 줄 알았다는 이적 비화를 밝혔다.
  • NBA 농구선수 제임스 하든의 수염 민 모습이 야야 투레와 판박이 수준으로 닮았다.
  • 팀 내의 어린 선수들인 라힘 스털링레로이 자네가 투레를 야야 삼촌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공식 인터뷰에서 스털링은 아예 대놓고 삼촌이라고 칭할정도. 사네의 인터뷰에 따르면 스털링이 야야를 약올리기 위해 먼저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다는데 현재 야야 본인은 해탈한듯(...). 실제로 구단 영상에서 나온 투레를 보면 정말 조카들과 노는 삼촌같긴하다.
  • 다른 맨시티 레전드들이 챔스에서 눈에 띄는 성적이 없는 데 반해 투레는 바르사 6관왕 때 챔스를 든 일원이었던지라 실바, 아구에로, 콤파니 등이 라이벌들과의 비교 과정 등에서 챔스 활약이 미미하다, 국내용이다 등의 비판을 들을 때 그런 비판을 안 듣는 편이지만, 정작 맨시티에서 뛰던 기간 중 챔스에서 활약이 평균적으로 가장 미미했던 건 사실 투레이다. 다른 선수들 입장에선 좀 억울한 셈...
  • 탱크같던 플레이와 거대한 체구와는 달리 목소리는 굉장히 여리여리하고 소년같다.
  • 2018년 6월 퇴단 직후의 펩에 대한 인터뷰로 인하여 맨시티 팬덤 내에서의 평판이 완전히 무너졌다. 한국 내 맨시티 팬덤 안에서는 반쯤 금지어화 되어 야야 추레, 투투 야레, 추추 야레, 야레 야레(...) 등등으로 불리고 있으며 해외에서도 유명 맨시티 팬 블로그인 시티 워치의 설문조사 결과 75%의 팬들이 야야에 대한 평가를 바꾸겠다고 응답했다. 여전히 투레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문제의 인터뷰가 펩에 대한 비난이지 맨시티 구단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위에 서술된 생일 사건, 동생 사건, 2016년 4월 맨시티 풋볼 디렉터를 비난한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투레는 구단에 대해서도 존중을 보여준 적이 없다. 논란이 된 인터뷰에서도 맨시티가 열어준 송별회가 기쁘지 않았다는 등 불과 한달전에 투레에게 성대한 송별회를 연 구단을 모욕했다.
  •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안정환, 김성주가 출연하여 축구해설시의 애로사항을 이야기하였는데 그 와중에 이름을 말하기 껄끄러운 축구선수들이 많다며 그 명단을 공개할 때 나왔다.

9. 야야 투레에 대한 말말말


'''야야가 없는 경기에서는 모두가 그를 그리워할 것이다. 야야는 90분 내내 그의 능력을 발휘하며,모든 동료 선수들의 신뢰를 받는 선수다. 그는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마누엘 펠레그리니'''

'''투레는 정말 최고다. 투레는 그 자신이 원할 때 경기를 바꿀 수 있는 선수다.'''

'''티에리 앙리'''

'''난 그 동안 팀에 또 다른 야야 투레를 찾아 봤지만 야야 투레에 버금가는 선수는 없었다. 그는 팀에 매우 중요한 선수다.'''

'''야야 투레는 모든 것을 갖춘 환상적인 선수다. 강하고, 빠르고, 기술적이며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다. 투레는 나에게 마치 루드 굴리트 같다.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투레는 유럽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하나다.'''

'''로베르토 만치니'''

'''투레가 볼을 가졌을 때는 정말 강력하다. 투레는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최고의 미드필더이다. 투레는 모든지 할 수 있다. 골도 넣고 수비도 하고 공격도 한다. 그가 아프리카 출신이 아니었다면 모든 사람들이 그를 전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라고 말할 것이다. 만약 투레가 아르헨티나나 브라질 출신이었다면 몸값이 4000만파운드~5000만파운드[6]

에 이를 것이다.'''

'''사미르 나스리'''[7]

'''투레는 중앙 미드필더지만, 20골이나 넣었다. 완성된 선수이며 그는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파블로 사발레타'''

'''나에게 투레는 여전히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이다. 투레가 나이가 들기는 했지만 맨시티 선수들은 투레가 최고라는 것을 매일 느낀다. 그는 여전히 팀에 많은 기여를 한다. 나는 그와 함께 뛸 수 있어서 행복하다.'''

'''페르난두 헤제스'''

'''투레는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선수다. 그는 공격적으로나 수비적으로 모두 플레이가 가능한 완벽한 미드필더이다.'''

'''요앙 카바예'''

'''투레의 (펩을 향한) 인종차별자 고발은 거짓말이며, 그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투레와 시티에서 2년동안 함께했지만, 그는 이제서야 (자신의 불만사항을) 말한다. 그는 내 앞에서 단 한번도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

'''펩 과르디올라'''


10. 관련 문서



[1] [image] 무슬림 전통복을 입은 야야 투레콜로 투레.[2] 물론 국내 한정. 해외에선 야야 투레의 비중을 상당히 높게 쳐준다.[3] 사실 드록국이란 말이 나올 때는 드록바가 선수로서 절정에 있을 때+EPL 버프를 받을 때였고 그에 비하면 야야 투레는 대단한 선수지만 바르셀로나에서 차비와 이니에스타의 조력자 정도의 역할로 아는 사람이 많았다. 이후 야야 투레가 EPL 입성 하고 리그를 씹어먹으면서 드록바 못지 않은 클래스 있는 선수임을 입증했지만, 그 땐 조국의 전쟁까지 멈춘 드록바의 위상을 넘보기엔 늦었다.[4] 단 전성기 시절에도 공중볼은 키에 비해선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5]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제라드다. 자세히 보면 헨더슨, 루카스도 보인다.[6] 한화로 약 714억~893억 원.[7] 나스리는 시티에서 뛰던 기간 동안 대체로 투레와 가장 가까운 선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