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프 브와슈치코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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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폴란드의 축구선수. 현재 비스와 크라쿠프에서 뛰고 있다. 위르겐 클롭 시절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전성기의 한축이었다.
2. 클럽 경력
2.1. 폴란드 리그
1993년 라코프 쳉스토호바에서 축구를 시작하였다. 2003년 3부 리그 쳉스토호바 1군팀으로 승격되어 프로선수로 데뷔하였다. 쳉스토호바에서 24경기 11골을 기록하였다. 2005년, 비스와 크라쿠프로 이적하였다. 3월 20일, 폴로니아 바르샤바 전에서 프리미어 리그에 데뷔하였다. 2시즌동안 51경기 4골을 기록하였고, 폴란드 최고의 미드필더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2.2.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07년 2월, 독일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 4년 계약으로 이적하였다. 2008년 4월 25일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전에서 분데스리가 데뷔골을 기록하였다. 07/08시즌부터 팀내에서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12/13시즌에는 '''27경기 출장 11골 13도움'''을 기록하였고,[4] 챔피언스리그 맨체스터 시티와의 2차전 경기에서 주전 공격자원이 본인 뿐인 상황에서 단신으로 맨체스터 시티를 격파하는 등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13/14시즌에는 컨디션 난조로 출전하지 못하며 피에르 오바메양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었다. 시즌 중반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주전을 되찾았으나, 후반기 리그 개막과 함께 부상을 당해 시즌 아웃되었다. 13/14시즌 도르트문트 부상병동의 상징 중 한 명.
이후 오랜 기간의 부상 공백으로 폼이 많이 하락하게 되어 팀내 주전 경쟁에서 밀리게 되었고, 15/16시즌 ACF 피오렌티나로 1시즌 임대되었다.
그리고 클럽에 복귀했지만 토마스 투헬의 중용을 받지 못하면서 안드레 쉬얼레를 볼프스부르크에서 데려오고 쿠바는 볼프스부르크로 떠났다.
2.3. VfL 볼프스부르크
2016년 8월 1일에 도르트문트를 떠나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하였다 이적료는 5m 계약기간은 3년오피셜 얼마 전 마츠 훔멜스 등과 같이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2016-17시즌 생테티엔과의 프리시즌 경기에서 멋진 중거리 슛으로 결승골을 넣었다. 클래스가 전혀 녹슬지 않았다는것을 보여준 경기.
2.4. 비스와 크라쿠프
2018-19시즌 겨울 이적시장에서 자유계약으로 비스와 크라쿠프 SA로 이적했다. 재정이 어려운 팀의 사정을 감안하며 주급을 받지 않고, 오히려 사비를 털어 팀의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다.
3. 국가대표
폴란드 국가대표로는 2006년 3월 28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친선경기를 통해서 첫 데뷔하였다. 그러나 2006 FIFA 월드컵 독일 최종 명단에는 부상으로 안타깝게 탈락하였다. 이후 2007년 8월 22일, 러시아와의 친선경기에서 A매치 첫 골을 기록하였다. 이후 유로 2008 지역 예선에서는 꾸준히 국가대표 명단에 포함되었지만, 안타깝게도 본선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물론 지난 월드컵과 같은 부상으로 인한 탈락은 아니었다.
2010년 11월 17일, 코드디부아르와의 친선경기부터 미하우 제브와코프을 대신하여 폴란드 국가대표팀의 주장 완장을 차게 되었다. 이후 유로 2012 폴란드 최종 명단에는 포함되어 첫 메이저 대회를 치르게 되었고, 그리스와의 개막전에서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골을 어시스트하였다. 러시아와의 경기에서 중거리슛으로 동점골을 기록하며 경기 MOM에 선정되었다. 2014년부터 레반도프스키에게 국가대표 주장 완장을 넘겨주었다.
유로 2016에서는 폴란드의 에이스로 활약하면서 부진에 빠진 레반도프스키와 비교되는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조별리그 1차전 북아일랜드전에서 밀리크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였고, 독일과의 경기에서도 역시 좋은 모습을 보였다. 우크라이나와의 경기에서는 결승골을 기록하며 폴란드의 득점 전체를 모두 본인이 만들어내는 맹활약으로 조국의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16강 스위스전에서 전반 선제골을 기록했지만 동점골을 허용하며 승부차기 끝에 8강에 올라갔다. 하지만 8강에서는 본인의 승부차기 실축으로 인해 포르투갈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그러나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서는 폴란드 팀 자체가 형편없는 모습을 보인 탓에 브와슈치코프스키 또한 활약이 저조했다. 1차전 세네갈전에서는 선발 출전했지만 부진한 모습을 보인 끝에 하프 타임에 교체 아웃되었다. 2차전 콜롬비아전에서는 아예 벤치에만 있었고 팀도 0 : 3으로 대패했고 또한 팀은 완전 탈락이 확정되었다. 마지막 일본과의 경기에서는 후반 막판에 교체 투입될 준비를 했으나 '''폴란드와 일본 양쪽 모두 볼 돌리며 시간 끌기나 하는 바람에 공이 나가질 않아 결국 교체 투입을 못 했다'''. 결국 심판이 이 꼴을 보다 못해 교체고 뭐고 그냥 들어오고 경기나 속행하라고 손짓을 하는 일까지 벌어졌고(...), 오죽했으면 KBS2에서 중계를 하던 이영표가[5] 애처롭게 터치 라인에서 대기 중인 브와슈치코프스키를 보고 '''"16번 좀 뛰게 해주십시다."'''하고 동정했을 정도였고, 결국 투입되지 못하고 경기가 끝나자 '''"아, 못 들어갔어요. 너무 안타까워요."'''라고 또 동정했을 정도였다.
4. 플레이 스타일
빠른 발과 준수한 드리블, 날카로운 크로스를 겸비한 윙어이다. 주로 우측면에서 활약하며, 수비 능력 또한 준수하기 때문에 풀백으로 기용되는 경우도 있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반대편 측면을 담당하는 마르코 로이스가 공을 잡고 측면을 돌파하여 크로스를 올리기 보다는 중앙으로 공을 몰아가 돌아들어가는 동료에게 이어주거나 직접 해결하는 스타일인데 반해, 쿠바의 경우 직선적이며 정밀한 크로스를 장기로 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도르트문트 공격진이 스위칭이 빈번하고 짧은 패스 위주로 공격을 풀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직선적인 플레이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스타일을 소화한다. 태클이 깔끔하기 때문에 전방 압박에서 힘을 발휘하며, 빠른 스피드는 수비진영에서 순간적으로 역습해 들어갈 때 유리하다. 골 결정력은 도르트문트에서 최고 수준으로 찬스에서의 침착함이 장점이다. '''10/11시즌부터 3년간 리가에서 카드를 한 장도 받지 않는 선수였으나''', 12/13시즌 바이에른 뮌헨과의 2차전에서 하피냐에게 얼굴을 가격당해 시비가 붙어 옐로 카드를 받으므로써 기록이 끝났다. 단점으로는 몸싸움에서 강점을 보이지 못하고, 장점인 스피드에서 오바메양이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오바메양이나 로이스와 같은 파괴력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앞으로 힘든 주전 경쟁이 예상된다. 그러나 도르트문트에서 (로이스와는 다른 스타일의)확실한 공격 옵션으로서의 가치는 여전하다. 로이스가 전형적인 인사이드 포워드로 중앙을 돌파해 전방의 스트라이커에게 쓰루패스로 연결해주는 플레이라면 브와슈치코프스키는 전형적인 정발 윙어로 오른쪽 윙에서 크로스를 즐겨하는 플레이를 펼친다. 더군다나 클롭 감독의 게겐 프레싱 전술이 엄청난 활동량과 체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브와슈치코프스키는 언제나 중요한 측면 자원이 될 수 있다.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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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르트문트 시절에 쿠바(Kuba)라는 이름이 들어간 셔츠를 입기 때문에 긴 본명인 브와슈치코프스키보다는 쿠바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름이 길기 때문에 중계진들이 이름을 끝까지 다 부르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덕분에 중계진이나 팬들도 짧고 간편하게 쿠바라고 부르는 것을 더 좋아하기도 한다. 도르트문트를 나간 후에는 브와슈치코프스키라고 적힌 셔츠를 입는다.
- 11세였던 1996년, 알코올 중독자였던 그의 아버지 지그문트가 어머니 안나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는 가슴 아픈 유년 시절을 보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어머니가 살해되는 현장을 그가 직접 목격했다는 것에 있다는 거다.[6] 이 때문에 그는 할머니와 삼촌[7] 에게 길러졌다.
- 국가대표 경기에서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보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폴란드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선수이다.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우카시 피슈체크과 엮여 CF에 자주 출연한다.
[1] /jakub bwaʂt͡ʂɨˈkɔfskʲi/. 폴란드어 표기 규정에 따르면, 어말에 오는 유성음은 무성음화 하기 때문에 Jakub는 '야쿠프'로 적는다.[2] 콜롬비아의 후안 카밀로 수니가와 생년월일이 같다.[3] 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A매치 최다 출장 2위. [4] 해당 시즌 분데스리가에서 두 자릿수 골과 도움을 기록한 선수는 토마스 뮐러, 프랑크 리베리, 마리오 괴체, '''야쿠프 브와슈치코프스키''' 뿐이었다.[5] 이영표는 과거 도르트문트에서 브와슈치코프스키와 같이 뛴 적이 있다.[6] 브와슈치코프스키는 이 때문에 아직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으며, 골을 넣으면 어머니를 기리는 세리머니를 한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아버지와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지만, 장례식에는 참석했다고 한다.[7] 그의 삼촌은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은메달에 기여하며, 대표팀에서 8년간 주장직을 맡은 전설적인 미드필더 예지 브젱체크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