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투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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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의 축구선수 출신 축구감독. 2021년부터 첼시 FC 감독을 맡고 있다.
뛰어난 전술적 역량과 유스 발굴 능력을 가졌지만, 괴짜를 넘어 괴팍하고 사이코틱한 성격으로 가는 곳마다 우리팀 상대팀 가릴 것 없이 지옥을 선사하는 독특한 감독이다.[4]
2. 클럽 경력
어린 시절 TSV 크룸바흐의 유소년 팀에 입단하는 것으로 축구 인생을 시작한 투헬은 1988년 FC 아우크스부르크[5] 의 유스팀으로 자리를 옮긴다. 1991년과 1992년 DFB 유소년 포칼을 2연패하는 데 기여한 후, 투헬은 19살의 나이로 뷔르템베르크 주를 연고지로 한 2부 리그 팀 슈투트가르트 키커스(Stuttgarter Kickers)로 이적을 감행하고 이 곳에서 같은 해 여름 성인무대 데뷔식을 치른다. 하지만 데뷔 시즌이었던 92-93 시즌에는 불과 8경기에 출장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고 다음 시즌에는 더더욱 실망스러운 폼을 보여주면서 방출되고 만다. 오갈 곳이 없어진 투헬은 3부 리그였던 레기오날리가쥐트의 SSV 울름 1846으로 이적했고 네 시즌 동안 팀의 핵심 수비수로 활동하면서 1998년 2부 리그 승격에 힘을 보태지만 고질적인 무릎 연골 부상[6] 으로 인해 이 해를 끝으로 2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선수 생활을 접어야만 했다.
3. 지도자 경력
3.1. FC 아우크스부르크
은퇴 2년후인 2000년, 투헬은 VfB 슈투트가르트의 15세 이하 팀을 지도하기 시작한다. 이후 내부승진을 거친 투헬은 2004년 19세 이하 유소년팀의 감독이 되어 2004-2005 시즌 VfB 슈투트가르트 U-19 팀의 U-19 리그 우승이라는 값진 성과를 이룩한 직후, 자신의 현역시절 친정팀이었던 FC 아우크스부르크로 직을 옮겨 팀의 유소년 육성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된다. 2006년 투헬은 평균 1.4점[7] 이라는 점수로 코치 자격증 연수를 마쳤고 2006년 아우크스부르크의 U-19팀을 지휘한 데 이어, 다음해부터 2년 동안 아우크스부르크의 2군을 지도한다.
3.2. 1. FSV 마인츠 05
이런 투헬에게 1. FSV 마인츠 05가 접근했고, 투헬은 2006년 7월 마인츠의 U-19 감독으로 부임한다. 마인츠의 U-19 감독으로 재직한 08-09 시즌에 그는 아우크스부르크 시절과 마찬가지로 U-19 리그 우승을 성취해냈고, 같은 해 분데스리가 승격에 성공한[8] 마인츠 성인 팀은 36살에 불과한 젊은 유소년 코치에게 팀의 지휘권을 맡기는 모험을 감행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 시즌을 팀을 승격시킨 주연이었던 욘 안데르센 감독이 리그가 채 개막도 하기 전이었던 8월 3일에 구단 경영진과의 의견 불일치 및 DFB 포칼 1라운드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광속으로 사퇴를 해서 마땅한 대안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투헬에게 맡긴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선택이 잭팟을 터뜨렸다.
투헬 지휘 아래 마인츠는 성적이 눈에 띄게 올랐고, 특히나 감독 1년차였던 2010-2011 시즌이 눈부셨는데 시즌 첫 7경기를 모두 승리로 장식하는 기염을 토했다.[9] 소규모 셀링클럽이라는 팀의 한계상 초반의 기세를 잇지 못한 채 약간의 DTD를 거친 끝에 해당 시즌을 5위로 마감해야했지만, 투헬의 지도력만큼은 독일 전역에서 호평이 잇따랐다. 2013-14 시즌에도 투헬은 마인츠를 유로파 리그 진출 가능 순위인 7위로 이끌면서 훌륭한 지도력을 과시했고, 후반기로 접어들면서부터 투헬과 샬케 04와 바이어 04 레버쿠젠과 같은 분데스리가 빅클럽 사이의 링크와 관련된 루머가 끊이지 않았다.
마침내 시즌 최종전을 앞둔 5월 14일 투헬이 계약 만료를 2년 앞두고 팀을 떠날 것이라는 것이 사실로 밝혀진다. 그렇지만 마인츠 구단 측은 계약해지를 거부했고 다른 팀이 투헬을 영입하기 위해서는 위자료를 지불해야만 했다. 계약해지가 되지 않아서 연봉도 받을 수 있었지만 투헬은 잔여연봉은 포기했고, 위르겐 클롭의 대체자를 찾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지휘봉을 잡았다.
3.3.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15년 7월 1일 투헬은 클롭의 뒤를 이어 도르트문트의 지휘봉을 잡게 된다. 이때 박주호도 마인츠에서 데려가는데 도르트문트 감독에 부임하는 조건으로 박주호 영입을 걸었었다. 클롭 체제 도르트문트의 아이덴티티였던 게겐 프레싱을 수비 전개에만 적용하고[10] 공격 전개에서는 역습보다는 지공을 통해 유연한 운영을 보여주면서 리그 초반 다섯 경기에서 모두 승리했고, 18골을 넣고 단 1실점 밖에 내주지 않는 등 뛰어난 공격력과 안정적인 수비력을 보여주었다. 이에 힘입어 도르트문트는 바이에른 뮌헨을 골득실차로 제치고 1위 자리를 차지하는 등 초반엔 순조로운 항해를 계속 했다. 하지만 이후 2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두었고, 다음 경기인 8라운드 바이에른 뮌헨 원정에서 1-5 대패를 당했다. 다음날 투헬은 훈련장에서 화를 내는 영상이 찍히는 등 대패에 대해 용납치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로테이션이나 교체 같은 경우엔 팬들도 이해가 가지 않는 판단을 보여주곤 하는데, 대표적으로 리가 7라운드 다름슈타트 전에서 선제골을 내주었지만 63분과 71분에 오바메양이 연달아 골을 넣으면서 2-1로 역전에 성공했지만 벤더와 같은 믿음직한 수비 자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공격적으로 몰아붙이다가 후반 종료 직전에 골을 내주며 2-2로 비겼다. 이 경기에선 도르트문트로선 억울할 오심이 꽤 나왔지만 교체를 통해 수비적인 경기 운영을 했다면 지지 않았을 확률이 높았기 때문에 확률 팬들은 무척 아쉬워했다. 이 경기를 비기며 뮌헨과의 승점차가 더욱 벌어졌다.
15/16 시즌 종료 직전 62% 득표율로 15/16시즌 분데스 공홈 팬 선정 최우수 감독으로 뽑혔다. 출처
16/17 시즌에도 적절한 전술과 로테이션을 이용해 리그 3위를 기록했고 포칼 우승컵을 들어올리면서 도르트문트에게 5년만에 메이저 트로피를 선물했다. 그리고 리그 기준으로 홈경기 무패 기록을 세우는 등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보드진, 선수단과 끊임없는 마찰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빌트에서 감독에서 물러난다는 기사가 떴다. 포칼 우승 후 바츠케와 포옹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시즌 종료 후 5월 30일, 도르트문트 감독직에서 경질되었다.
도르트문트는 투헬의 후임으로 페터 보츠를 선임했는데 초반에 반짝 리그를 제패했으나 전술 실패 등 밑천이 다 드러나면서 결국 채 반년을 못넘고 경질당했다. 이런 모습에 투헬이 재평가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11]
3.3.1. 경질 이후 행보
당시 바이에른 뮌헨 감독이었던 카를로 안첼로티가 파리 생제르망에게 0-3으로 패배를 당하자 경질되었고, 율리안 나겔스만과 토마스 투헬이 유력한 차기 감독으로 점쳐지는 가운데, 독일 빌트지에서 투헬이 계약 협상을 끝마치고 뮌헨의 감독으로 선임된다는 기사를 내놓았다. 하지만 도르트문트 보드진과의 불화와 선수단 장악 문제로 경질된 투헬 감독이 프라이드가 높은 독일 최고의 스타군단인 바이에른 뮌헨 선수진과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거물들로 구성된 바이에른 뮌헨 보드진과 문제 없이 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결국 12/13시즌 바이에른 뮌헨을 트레블로 이끈 명장 유프 하인케스 감독이 소방수로 남은 시즌을 맡기로 하면서 투헬의 바이언행 루머는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하인케스 감독이 시즌 후 은퇴할 것임을 분명히 했고 자신의 후계자로 투헬을 추천하면서 아직 불씨는 남아 타오르고 있었다. #
빌트/스포르트 빌트발 루머에 따르면 세간에 알려진 바와 다르게 투헬이 뮌헨을 거절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보드진 중에서 투헬 영입을 지지하는 세력이 루메니게 회장뿐이었고, 투헬 본인도 도르트문트에서 고참 선수들과 보드진과 마찰이 잦았던 지라 부담감이 컸었다고 한다. 이후 일부 언론에서 아스날행 가능성을 점치고 있지만, 벵거 감독의 계약 기간이 남아 있고, 도르트문트 시절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미슐린타트 스카우터의 존재 등을 볼 때 성사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공신력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독일 키커지에서 단독 특종으로 투헬의 아스날행을 보도했다.링크 미슐린타트가 투헬과 다시 일하는 것에 대해 OK 사인을 보냈다고 한다. 바이에른 뮌헨도 투헬 영입에 관심을 보였지만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빌트지에서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투헬의 아스날행은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고 오히려 파리 생제르맹이 더 유력한 후보지라고 보도했다.[12] 프랑스 언론인 RMC의 공신력 높은 기자인 부합시도 PSG와 투헬이 계약을 거의 합의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17-18 시즌 말미 우나이 에메리 감독이 시즌 종료 후 PSG를 떠나는 게 확정되면서 투헬의 행선지는 사실상 파리로 확정되었다.
3.4. 파리 생제르맹 FC
2018년 5월 15일(한국 시간) PSG의 새 감독에 선임되었다. 당시 PSG는 도르트문트 때보다 지원이 더 없었다. 프리 시즌에 주전급 선수들을 다 타팀으로 보내고 영입은 부폰 밖에 없었으며, 이후 왼쪽 풀백으로 베르나트를 영입했지만 추포 모팅을 영입한 것은 뭔가 뜬금없다는 평이 많았다.
3.4.1. 2018-19 시즌
리그에서는 디 마리아를 중미로 기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실제로 메짤라 자리에 디 마리아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베라티가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라 마르퀴뇨스가 수미로 나오고 있다. 주전 골키퍼로는 부폰을 기용했고 놀라운 세이브도 보여줬으나 기회를 주는 차원에서 다시 아레올라를 기용했고 챔스 리버풀 전에는 아레올라가 나왔다.
리그 앙에서는 무패행진을 달리고 있다. 다만 다소 부족한 미드필더들과 함께 여러 전술들을 실험하는 중이다. 라비오-디마리아의 미드필더진이 전진을 잘 못하다 보니 네이마르를 박투박처럼 활용하기도 해보고 3백 포메이션도 써보는 등 실험을 계속 하고는 있다. 그러나 경기력은 썩 만족스럽지 못한 수준. 그래도 리그에서는 공격진의 클래스를 보여주면서 전승을 했다. 무패행진 중이던 생테티엔도 4:0으로 잡았다.
대망의 챔스 첫경기인 리버풀 전에 베라티는 징계라서 못나오고 4-3-3 형태로 나왔다. 마르퀴뇨스가 내려오면서 3백을 형성해서 리버풀 압박에 대응하고 사이드 풀백도 리버풀 3톱에서부터 마킹이 이루어지던 터라 하프스페이스로 내려오는 음바페와 네이마르에게 공을 주었는데 가끔씩 드리블을 하긴 했으나 사실상 밀너와 아놀드, 로버트슨에게 지워졌다. 라비오와 디 마리아는 뭐... 투헬이 디 마리아에게 기대하는 것은 공격시에 활발히 측면으로 움직임도 가져가고 스위칭도 하라는 것 같은데 역습시에 가끔씩 도움을 주긴 했으나 결국 리버풀한테 막혀 라비오와 함께 거의 아무것도 못했다. 수비시에는 데샹의 프랑스처럼 전원수비를 차용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미드필더들이 전혀 수비적으로는 기동이 안돼서 중앙에 밀집한 3미들마저 가끔씩 뚫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리그에서는 어떻게든 공격진에게 공을 연결해주면 알아서 마무리 지었주었지만, 리버풀의 수비로 인해 그마저도 실패했다. 결국 3:2로 패배.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던 와중에 안필드 원정에서 이 정도면 투헬이 잘해준 것도 반은 된다. 선수들 중에 잘한 선수가 킴펨베, 티아고 실바, 아레올라 정도밖에 없었고 티아고 실바는 경기 후 경기에 대해 화난 듯한 모습으로 투헬이 달래주러 갔다.
허나, 홈에서 나폴리에게까지 비기고 말았다. 게다가 나폴리와의 4차전도 비겨 16강 진출 가능성이 희박해지는 듯 했으나, FK 츠르베나 즈베즈다(레드스타)가 리버풀을 2:0으로 이기면서 이 시점에선 아직 챔스 진출가능성은 남아있다.
그리고 리버풀을 홈에서 압도하며 2:1로 이겼다. 3백을 사용하다가 리버풀 전에서는 마르퀴뇨스와 베라티가 미드필더로서 2볼란테로 서고 네이마르 공미에 디 마리아, 음바페를 윙으로 한 4-2-3-1을 오랜만에 들었다. 마르퀴뇨스는 베라티가 거의 탈압박을 담당하니 밑으로 내려와 라볼피아냐로 3백을 형성했고 무엇보다 수비에서 위기상황을 차단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수미로서 볼위닝이나 2선에서의 압박도 나쁘지는 않았다. 뫼니에 대신 케러가 나왔는데 케러도 풀백으로서 안정적이었다. 4-2-3-1이지만 거의 연속적으로 보여온 큰 틀인 3백 기용과 비슷하게 운영되었기에 마르퀴뇨스가 내려와 킴펨베가 전진하고 베르나트가 윙처럼 올라가는 형식에 베라티의 탈압박으로 볼배급, 네이마르 공미로 대표되던 공격형식은 거의 비슷했는데 킴펨베를 제외하고는 수비적으로 뛰어난 모습을 보인 수비진들과 4-4-2형태의 수비로 전환하는, 베라티의 볼배급과 마르퀴뇨스가 시즌 초 이후 수미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잊게 하는 좋은 활약을 보여주면서 챔스 16강에 다가섰다. 리버풀이 최근 경기력이 좋지 않기는 했지만 없는 자원을 추스르고 리버풀의 조밀한 수비진을 파괴하는데까지 오면서 동시에 케러와 마르퀴뇨스 기용 등의 애매해보였던 선택을 성공적으로 이끄면서 전술계의 카멜레온이라 불리는 이유를 어려운 상황에서도 보여줬다. PSG 회장도 경기 이후 투헬이 세계최고의 감독이라고 만족감을 표했다.
챔스에서 잘해준 것과 마찬가지로 리그에서 14경기 14승 46득점 7실점 42승점의 좋은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원정에서 4대1 완승을 기록하였고 리버풀 FC가 SSC 나폴리를 잡으면서 죽음의 조에서 살아남아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그렇게 리그와 챔스 둘 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순항하고 있었으나 리그컵에서 현재 리그 최하위인 갱강 상대로 주전 상당수를 꺼내들고도 페널티킥을 3개나 내주는 충격적인 경기 끝에 1:2로 패하면서 탈락했다.
챔피언스 리그 16강 1차전에서 네이마르 주니오르와 에딘손 카바니가 빠졌음에도 마르퀴뇨스와 왼쪽 수비로 포그바를 묶으면서 맨유 원정을 2:0 승리로 가져갔다. 전술적으로 맨유를 압도한 경기였다.
하지만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1:3으로 패배하여 합계 3:3으로 동률을 이루었으나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16강에서 탈락하게 되었다.
리그 우승은 당연히 챙겨갔지만 챔스에서의 충격적 탈락, 컵 경기에서 승부차기 끝에 준우승 등 파리가 원하는 실적은 전혀 아니었다. 무엇보다 심각한건 후반기부터 이어진 브라질과 프랑스의 파벌 형성 및 대립, 단장과의 마찰, 유소년 선수들과의 마찰 등 구단 내부가 말 그대로 콩가루 집안이라 할 수준이 된 것이다. 알베스를 중심으로 한 일명 브라질 향우회와 킴펨베가 중심이 된 프랑스 향우회가 전술과 선수 기용, 활약 등으로 서로 대립했고 기자회견에서 간접적으로 디스하며 사태가 최악에 다다랐다. 그러나 투헬은 이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고 본인은 오히려 단장과 대립하며 후반기 부진에 큰 몫을 했다. 일단 보드진이 감독을 밀어주기로 한 만큼 다음 시즌의 결과가 더욱 중요해졌다.
3.4.2. 2019-20 시즌
그리고 마침내 다음 해,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유효슈팅 허용 없이 3-0으로 잡으면서 그간의 노력과 역량이 결실을 맺었다. 그리고 5승 1무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조별 리그를 통과하고 리그도 2위와 12점차라는 압도적인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챔스 16강 상대는 투헬이 몸담았던 도르트문트.
16강 도르트문트 전에서는 1차전 원정에서 엘링 브레우트 홀란에게 2골을 내주면서 1-2로 졌지만, 2차전에서 네이마르가 활약하며 2-0을 만들었고 합산스코어 3-2로 8강 진출에 성공하였다.
8강 아탈란타 전에서는 마리오 파샬리치에게 선취골을 허용하였지만 후반 종료 직전 마르퀴뇨스와 에릭 막심 추포모팅의 극적인 동점골과 역전골에 힙입어 25년만에 4강 진출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옛 제자인 나겔스만과 맞붙게 된다. 그리고 4강 라이프치히전에서 3:0 승리를 가져오면서 팀을 역사상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시켰다.
2020년 8월 8일, 중족골 골절과 왼쪽 발목 인대 부상을 입어 8강전부터 꿈쩍 안 하고 앉아있으면서 팀을 지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성적을 내고 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0대1로 패하면서 궁극의 염원을 달성하지 못했으나, 파리의 지속적이고 지긋지긋한 챔피언스 리그 징크스를 깨뜨리며 사상 최초로 결승에 간 것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시즌이었다.
전술적으로도 투헬에게 큰 실책이 있었다라고 말하긴 어려웠다. 실제로 결정적인 찬스를 먼저 잡아내기도 했고, 공격진의 결정력 그리고 상대키퍼인 노이어의 선방이 아니었다면 골을 넣을 수도 있었다. 이런 점에서 투헬 감독도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이탈리아 디 마르지오 언론사는 챔스 우승을 하기 위해 투헬을 경질시키고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를 선임할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보도했지만 이 언론사는 공신력이 낮고, 또한 알레그리도 챔스 우승 경력이 없다.[13]
3.4.3. 2020-21 시즌
시즌 초반부터 네이마르, 디 마리아, 음바페, 파레데스 등 주전급 선수들이 코로나 19 확진으로 인해 선수단 구성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저번 시즌 팀을 첫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 시키며 좋은 출발을 한 것에 비해 이번 시즌은 여러 난관에 부딪혔다.
현재 가장 이슈 되고 있는 것은 파리 생제르망의 단장 레오나르두와의 갈등이다. 현재 둘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려있고 갈등의 중심은 이적시장이다. 투헬은 선수단 뎁스 약화, 여름 이적시장에서 진전없는 행보에 실망하는 인터뷰를 여러번 했는데 단장 레오나르두는 투헬의 기자회견에 불쾌해 하며 그의 발언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레오나르두는 상황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투헬은 스포츠적 정책과 내부 규율을 지켜야하고 불만이 있다면 내부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투헬의 인터뷰를 비판했다.
레퀴프에서 투헬이 이번 시즌을 끝으로 떠난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위약금으로 인해 경질 가능성은 없고 시즌 끝나고 팀을 떠난다고 한다. 투헬은 계약 연장을 하고 싶었으나 단장 레오나르두는 그와 일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이적시장에서 서로 갈등이 일어나기도 했다. 레오나르두는 후임으로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를 원한다고 한다.출처
이 소식을 접한 파리 팬들은 저번 시즌 팀 첫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을 시킨 감독을 내보낸다는 것에 분노했으며 단장 레오나르두 인스타에는 #LEO OUT 이 도배됐다.
챔스 1차전 맨유 전에서 18-19 시즌에 이어 또다시 패했다. 솔샤르 감독의 선수비 후역습에 말려들며 홈에서 패하고 말았다.
챔스 3차전 라이프치히 전마저 패하며 챔스 16강 진출도 확실치 못한 상황이 되었다. 계속해서 보드진과 마찰이 있었음에도 네이마르, 디마리아 등의 핵심 선수들과는 두터운 관계를 유지해 왔기에 감독 자리를 유지하고 지난 시즌 좋은 성적까지 기록했지만, 최근 다닐루-마르퀴뇨스 스위칭[14] 에 대해 선수들의 의구심이 점차 커지고 있다고 한다. 당사자들인 다닐루와 마르퀴뇨스마저 인터뷰에서 조금씩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챔스 4차전에서 네이마르의 pk 결승골로 라이프치히에 1-0 승리했고, 5차 맨유 전에서 3-1로 연이어 승리하여 16강 진출을 확정짓게 되었다. 그리고 조별 리그 6차전에서 5-1로 승리해 내친김에 조 1위로 마무리했다.
그러던 12월 24일 스포르트 빌트 소속 기자 크리스티안 폴크가 투헬이 PSG에서 경질됐다는 기사를 보도했다.[15] 이후 파리 3대장인 모하메드 부합시, 로익 탄지, 쥘리앙 메이나르 모두가 투헬 경질과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선임을 동시에 보도했다. 투헬의 경질 이유는 성적 부진이지만 보드진과 선수단과의 내부 갈등도 있었다고 하며, 포체티노의 오피셜 기사가 늦어지고 있는데 이유는 투헬의 위약금 600만 유로(한화 약 80억 원) 지급 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프랑스의 르10스포르트에 따르면, 토마스 투헬의 경질 원인이 다름 아닌 UCL 인종차별 사건 때문이라고 밝혔다. 당시 PSG 선수단이 보이콧에 동참했는데 투헬 감독이 선수단에 맞서 경기장에 머물러 몰수승을 얻어야한다고 말하면서 선수단은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를 계기로 투헬은 선수단에게 완전히 신뢰를 잃었고 선수단이 위 사건을 단장을 비롯한 경영진에게 알려 구단주인 타밈 카타르 국왕이 투헬을 경질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단장과의 갈등이 상당히 심했음에도 투헬이 잔류할 수 있던 이유가 선수단과의 좋은 관계 때문이었는데, 이 행동으로 인해 구단에서 지지 기반이 완전히 없어졌다는 것이다.
단 네이마르는 보드진의 투헬 경질 결정에 실망감을 드러냈다. 네이마르는 전부터 투헬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바칠수 있다는 인터뷰까지 하며 투헬을 크게 신뢰했고 사이가 매우 좋았기 때문이다.
3.4.4. 2021년 1월
12월 29일, 공식적으로 경질이 발표되었다. 여기에 위약금 600만 유로(한화 약 80억)를 카타르 왕실에서 일시불로 지불했다.
로맹 몰리나가 페리스코프 방송에 출연하여 파리 생제르망의 내부 정보들을 폭로했는데 그 중에 투헬과 많은 갈등을 겪었던 파리의 단장 레오가 자신의 유리한 기사를 쓰고 구단을 비판하도록 뒷돈을 줬다고 폭로했다. 해당 내용은 투헬과 실제 일어났던 일이라고 한다.출처
가장 유력한 행선지는 EPL이다. 그 중에서도 초반기 좋지 못한 성적을 보여준 아스날, 맨유와 강하게 연결되나 싶었으나 아스날과 맨유가 반등에 성공하면서 오히려 초반기에 좋은 모습을 보여준 첼시[16] 가 제일 유력한 후보지로 떠올랐다.
우선 첼시는 리그 전반기 19경기에서 경기의 반도 안되는 8승만을 기록하면서 15/16 시즌 이후 제일 좋지 않은 리그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17] 또한 공격적인 여름 이적 시장을 보낸것과는 다르게 전혀 선수들을[18]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듯해 보이는 램파드의 전술적 역량의 한계점 등으로 인해 그의 경질은 최근 레스터 전 패배로 그 어느때보다 가까워진 상황이다.
허나 첼시는 2017년 실제로 콘테의 대체자로 토마스 투헬을 고려했지만 그의 성격적 결함과 경기 외적으로서의 문제에 대해 우려를 하고 과거 무리뉴와 콘테와 같은 사례[19] 가 반복될 수도 있다는 판단에 그의 선임을 포기한 전례가 있다. 물론 파리를 이끌면서 감독으로서 이룬것도 훨씬 많고[20] 그의 가장 대표적인 장점 중 하나인 천재적인 전술적 역량 덕에 여전히 유럽의 빅클럽들과 연결되는 투헬이지만 그만큼 그의 성격적인 결함과 단점들(보드진과의 갈등)이 더욱 드러난 현 상황에서 감독과의 갈등을 이미 수차례 경험한 첼시의 감독으로 부임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으나...
첼시 보드진이 독일 듀오 티모 베르너와 카이 하베르츠의 적응을 돕기 위해 '''검증된 독일어권 출신 감독'''을 선임하는 방안도 진지하게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율리안 나겔스만과 더불어 후보군으로 여전히 언급되고 있기에 지켜봐야 할것으로 보인다. 첼시의 선호도 및 계획과 별개로 순전히 선임 가능성으로만 보면 투헬이 제일 가능성이 높은 것 또한 사실. 나겔스만은 현재 라이프치히를 맡은 지 2시즌도 안되었고 무엇보다 팀을 너무나도 훌륭하게 이끌고 있기에 중도에 라이프치히를 이탈해서 첼시 감독직을 수락할 확률이 높다고 하기 어렵다. 반면 투헬은 쉽게 말해 실직자 상태라서...
빌트지의 보도에 따르면, 투헬은 당장 쉴 생각이 없으며[21] 가능한 빨리 감독직에 복귀하길 원한다고 한다. 그가 선호하는 행선지 또한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라고 한다. 이미 첼시 보드진과 협상이 시작되었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할때 현재로선 가장 유력한 램파드의 후임으로 보인다.
2021년 1월 25일 기준, 램파드는 24시간 내로 경질될 것으로 알려졌고, 투헬을 선임할 것이라고 보도되었다. 첼시 부임이 거의 확정시되는 분위기다. 보드진은 투헬을 꺼려한 것이 맞지만 보드진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로만이 직권으로 결정을 했다는 모양이다. 안젤로 망지안테의 소스에 따르면 18개월 계약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국시간 25일 저녁 램파드의 경질 오피셜이 뜨면서 투헬 선임이 눈앞으로 온 것으로 보인다.
이에 첼시 팬들은 전술 능력이 뛰어나고[22] 마인츠 이후로 가는 팀마다 좋은 성적을 이끌었던 투헬의 능력을 기대함과 동시에 계속된 보드진과의 충돌이 있던 것을 우려해 첼시에서도 오래가지 못 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3.5. 첼시 FC
현지시간으로 2021년 1월 26일 오후 6시 10분, 첼시 FC는 토마스 투헬의 부임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알려진 것과는 달리 2020-21 시즌 잔여 계약을 포함 18개월 + 1년 연장 옵션으로 최대 2년 반 계약이라고 한다.[23] 다만 공식 발표만 늦었을 뿐, 이미 오피셜 발표 이전에 코밤에 합류해서 선수들의 훈련 세션을 지도하고 있었으며 발표 후 그 모습을 구단에서 공개했다.
후에 밝혀진 사실이라면 마리나 그라노브스카이아와 토마스 투헬은 이전에 감독 면접 당시부터 쭈욱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그 때문에 서로 통하는 것이 많아서 이 부임에는 마리나의 존재가 적지않게 작용했음이 밝혀졌다.[24]
첼시로 행선지를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예전 제자들인 크리스티안 풀리식과 치아구 시우바와 재회하게 되었다.[25]
3.5.1. 2020-21 시즌
부임 후 첫 경기였던 울버햄튼과의 리그 맞대결에선 0-0으로 비겼는데, 부임 공식 발표 직후 만 하루 지나서 치른 경기라 전술적인 면, 플레이 스타일적인 면에서 큰 변화를 기대하긴 어려웠다. 다만 시즌 중도에 들어와 단 한번의 트레이닝 세션만 하고 맞춰본 공식 경기 치곤 짧았던 준비 기간을 감안하면 나름 유의미한 변화점들이 보이는 경기였다.
캘럼 허드슨오도이와 벤 칠웰을 쓰리백의 측면 윙백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특히 오도이의 위치에서 적극적인 드리블 및 크로스를 활용한 공격 루트가 자주 나왔고 이를 통해 중앙 쪽 하프 스페이스 지역을 2선 자원인 지예흐와 카이 하베르츠가 공격적으로 활용하는 모습 또한 볼 수 있었다.[26] 또한 빠른 원터치 패스를 통해 상대 파이널 써드에서 순간적으로 '''공간'''을 만들어 이를 활용해 기회를 창출하는 모습도 후반 들어 볼 수 있었다. 특히 카이 하베르츠가 라스트 미닛 골까지 노릴 수 있었던 헤딩 슛이 윌리앙 주제의 머리에 얼떨결에 공이 와서 맞고 골대 밖으로 빗나가서 그대로 경기가 종료된 것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게 되었다.
두번째 경기인 21R 번리전에서도 3백에 에이브러햄 - 베르너 투톱인 3-4-1-2 전술로 출전했으며 이 경기에서 한 동안 첼시 전력에 빠져있던 마르코스 알론소가 오랜만에 선발 출전했다. 에이브러햄과 베르너가 아쉬운 결정력을 보인 탓에 공격력이 아쉬운 듯 했으나 3백의 단단한 수비와 조르지뉴의 뛰어난 빌드업 능력으로 번리의 슈팅 수를 90분 동안 단 한 개로 틀어막으면서 제대로 공격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결국 아스필리쿠에타의 선제골과 알론소의 추가골로 2-0 승리에 성공했다.[27]
22R 토트넘 원정경기에서도 경기력에서 압도를 하고도 득점은 1득점에 머물렀지만 시종일관 토트넘을 압도하면서 완승을 거뒀다. 경기 후 그에게 수많은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지만, 투헬 본인은 '''"이 팀에서 내가 뭐 어떻게 한 게 없는데..."'''라고 말을 아꼈다.
23R 셰필드 원정에서도 2-1 승리를 거뒀다. 상대 팀 선수도 아닌 센터백인 뤼디거의 자책골로 인해 클린시트에는 실패하였지만 첼시 감독직 부임 후 4경기 무패를 기록중이다. 그동안 부진하였던 베르너가 좋은 움직임을 가져간 것은 덤. 하지만 티아고 실바가 부상으로 빠지자 후방 빌드업에서 불안정함을 노출하는 장면이 많았다. 빌드업 중심으로 전술을 짠 만큼 이런 불안 요소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관건.
24R 뉴캐슬 원정에서 선수들의 전술 숙련도가 상당히 올라간 듯한 모습을 보이며 뉴캐슬을 압도하였다. 티모 베르너가 지루의 골의 기점이 되는 좋은 기회를 만들어 줌과 더불어 길었던 골 가뭄에서 벗어나 득점을 기록했다. 이날 선발 출방한 케파 역시 그동안의 모습과는 다르게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였다.[28] 이를 바탕으로 2-0 승리를 거두며 리그 5경기 무패 행진을 이어가는 중이다. 부임 후 상승세를 이어가며 다시 챔스권인 4위로 팀을 올려놓았다.
25R 사우스햄튼전에 1-1 무승부를 기록했는데 경기력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인지 우리가 알던 투헬을 볼 수 있었다. 선수들의 선택지나 위치선정에 대해 어이없어하고 분노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다수 포착되었으며 심지어 본인 체제 양아들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허드슨오도이를 후반전에 교체 투입하고 다시 아웃시키는 행동을 한다. 그리고 허드슨오도이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하며 본격적인 선수 길들이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본인은 경기에서 승리하는 게 일이지 비싼 선수들을 쓰는 게 아니라고 단호히 말하였다. 현 스쿼드, 특히 베르너와 하베르츠같은 비싼 선수들을 잘 조화시켜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길 기대한 보드진이 이 인터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관건이다.[29]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원정 경기[30] 에서 1-0으로 승리를 거두며 꽤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주전 선수들의 부상, 코로나 이슈로 전력을 다하기 힘든 경기인 것은 맞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예상보다 더 수비적인 전술을 채택했다. 덕분에 첼시는 경기 내내 주도권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지루의 푸스카스상 급 골에 힘입어 원정골을 기록하는 성과를 얻었다. 다만 이번 경기도 공격진의 마지막 선택과 결정력이 아쉬웠는데 선수들의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시메오네의 극단적인 6백 전술[31] 활용 때문에 수비 공략이 쉽지 않았다는 점도 감안해야한다.
4. 전술 스타일
전술 스타일은 매우 유동적이고 효율적이다. 공격 방식은 ''''공간의 최대 활용''''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 마인츠 시절부터 전방의 공격수와 미드필더들이 중앙이나 측면을 파고들어 비는 공간이 생기면 이를 다른 선수들이 침투하여 골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즐겨 사용했다. 축구장 전체를 최대한 활용하여 넓게 공격을 펼치고, 수비들이 이를 막기 위해 따라오면 남는 공간을 나머지 공격자원들이 차지하고 패스를 받아서 연결하는 것이다. 마인츠 때는 다이아몬드 형태의 4-4-2를 사용했는데 공격시 때때로 투톱을 맡은 공격수들이 넓게 벌리며 수비를 달고 오면 2선의 공격진들이 그 자리를 파고들고 공격을 전개했다. 이때 수비는 최대한 오버래핑을 자제하고 대신 공격을 지원하는 정도로 대신했다. 도르트문트에서는 4-2-3-1과 4-3-3을 주로 사용하는데 기본적인 전제는 변하지 않았다. 때로는 윙 자원들이 중앙에 집중한 사이 비는 공간을 풀백들이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크로스를 올리고 골 기회를 만들어 내고 때로는 윙과 원톱이 스위칭을 통해 수비를 교란하고 공간을 만들면 이 빈 공간으로 침투하여 골을 만들어 내는 것들이 그것이다.
여기에 포메이션과 선수배치는 상당히 유동적이다. 즉 본인이 원하는 '공간의 활용을 이용한 공격' 이라는 대전제 아래 팀의 성향과 선수 구성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마인츠 때는 좋은 윙 자원이 없어서 4-4-2를 베이스로 삼고 공간 창출 역할은 투톱에게 맡겼다. 그와 동시에 중앙은 단단하게 막아놓고 공격 전개를 했다. 도르트문트의 선수 구성은 마인츠보다 훨씬 좋기에 풀백에게도 적극적으로 공격을 주문하여 아예 상대가 공격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전술은 상대가 대놓고 수비적으로 드러누워버리면 효과를 보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중앙을 두줄 수비로 틀어막아버리면 공간 창출이 안돼서 고전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수비 방식은 '필요하다면 좌우 공간은 내어 주되, 중앙 공간만큼은 철저히 지킨다'는 식이다. 특히 클롭 감독과 같이 수비에 있어서는 적극적으로 상대에게 붙어 볼을 뺏는데 주력하고 볼을 뺏는 즉시 패스를 통해 빠르게 공격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만 과거 도르트문트와는 달리 공격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압박하지는 않고 중앙의 경우는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상대의 패스를 차단하고 볼을 뺏는데 주력한다. 이때에는 좌우 수비는 최소한으로 하고 수비들간의 간격을 좁혀서 중앙은 내주지 않겠다는 식이다. 이러한 수비방식은 윙 자원이 보통인 팀들에게는 효율적인 방식이나 윙 자원과 2선이 강한 팀들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모습도 보여준다.[32]
거의 매 경기 전술을 바꾼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여러 전술을 시도한다. 다양한 전술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 되기에 한 팀 한 팀 맞춤 전술을 준비하는 듯. 다만 이렇기 때문에 전술 이해도가 높은 선수들을 많이 필요로 한다. 도르트문트 시절에도 이러한 경향이 있었고 PSG 시절에는 투헬의 의중을 온전히 수행할 선수는 네이마르, 다니 아우베스, 마르코 베라티 정도가 다인 상황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요구한다고 비판을 받은 게 대표적이다.[33]
이러한 전술적 역량과 선수들의 장단점을 명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선수들을 본래의 포지션이 아닌 다른 포지션으로 변경해서 사용해 성공한 경우가 꽤나 있다. 우선 도르트문트 시절 풀백 라파엘 게헤이루를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해 '''도르트문트 중원의 핵심'''으로 사용한 적이 있고, 파리 생제르망 시절 마르퀴뇨스를 센터백이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해 좀더 공격적으로 사용해 좋은 결과를 냈다. 현재 첼시에서도 캘럼 허드슨오도이를 3백의 윙백으로 변경하여 실험 중에 있다.
5. 비판
토마스 투헬은 축구 감독으로써의 뛰어난 역량과는 별개로 인격적인 면에서 중대한 결함이 있는 인물이다. 마인츠, 도르트문트, 특히 PSG을 감독했을때 훌륭한 성적과 결과[34] 를 성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마찰이 생겼고, 끝내 경질을 당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하 문단에서는 토마스 투헬이 벌였던 기행과 문제점에 대해서 서술한다.
5.1. 선수, 보드진과의 불화
투헬은 감독으로서 선수들과 유동적이고 친화적인 관계를 갖지 못하는 편이다. 도르트문트 시절에 적절한 관리와 상담이 필요한 마르코 로이스, 누리 샤힌, 마츠 훔멜스 등을 잘 통제하지 못해 라커룸에 분란이 생기게 했다. 하필이면 전임 감독이 선수와 친화력이 강하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위르겐 클롭[35] 이라 더 비교가 되었고, 선수들이 감독에게서 느끼는 괴리감과 위화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주니어 선수들과는 좋은 관계를 맺었고 매우 걸출한 재능의 선수를 여럿 발굴해내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는 좋은 인간 관계를 맺었다고 볼 순 없다.
파리에서는 네이마르 등의 주축들과는 물론, 선수단 전체와 사이가 좋았다. 하지만 20-21 시즌 들어 새로 영입된 수비형 미드필드 다닐루 페레이라를 센터백에, 센터백 마르퀴뇨스를 수비형 미드필더에 기용하는 괴상한 전술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당사자들을 포함한 선수들이 의문을 품었음에도 이를 고집하면서 선수단 내부에 약간의 불만을 야기했다. 도르트문트 시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긴 하지만, 이 사건 또한 투헬의 고집스러운 면이 불러온 일이다.
구단과의 계약 관계를 존중하지 않으며 숱한 마찰을 일으키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마인츠와 계약을 해지하고 도르트문트로 합류하는 과정에서 보드진과 심각한 대립이 있었다고 한다. 마인츠의 보드진들이 투헬의 성격에 얼마나 이를 갈았으면, 마인츠의 CEO가 본인들과는 이제 상관없는 일일 텐데도 도르트문트에게 굳이 투헬에 대하여 경고를 했을까?[36]
그리고 도르트문트에서도 보드진과의 마찰 끝에 경질당했다. 심지어 도르트문트 재건의 결정적 역할을 맡은 것으로 알려진 수석 스카우트 미슐린타트가 투헬과의 불화 끝에 아스날로 떠나기도 했다.[37] 선수들과도 심한 불화를 겪는 등 성격적 결함을 지적당했고 경질 이후 바이에른 뮌헨 차기 감독 후보군으로 나겔스만과 함께 꼽혔지만, 이러한 전력 때문에 바이에른 뮌헨 감독으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부정적 평가가 많았다.
이는 파리에서도 이어져 19-20 시즌 코로나-19에 의한 리그 중단으로 리그 우승을 일찍이 확정지었고 쿠프 드 프랑스와 쿠프 드 라 리그까지 제패하는 도메스틱 트레블까지 달성했으며,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까지 거머쥐었지만, 보드진과의 관계는 이미 좋지 못했으며 결국 20-21 시즌 중간에 경질당했다.
특히 파리의 단장 레오나르두와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고 갈등을 겪었으며 파리가 스트라스부르와 경기에서 대승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레오나르두가 경질을 통보하자 투헬은 이에 분노해 고함까지 질렀다고 한다.[38]
그동안 선수들 또는 보드진과의 마찰을 여러 차례 겪으면서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첼시 부임 이후에는 선수들, 구단 관계자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첼시의 시스템이 의사 결정을 원활하게 할 수 있을 거라 자신하고 있고, 본인이 이전 보다 더 발전하고 안정적인 사람이 되었으며 자신의 믿음에 대해 너무 고집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5.2. 인격적인 결함과 기행
투헬은 타인의 아픔과 기분 및 고통들을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를 비난하거나 희화화하며 별 일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 좋게 말해야 괴짜, 나쁘게 말하면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나 다름없는 인성으로 악명이 높다. 대표적인 것이 도르트문트 시절의 여러 사건과 PSG 시절의 비샥셰히르 전 인종차별 사건 때의 행동이다.
도르트문트와 PSG 등에서 보여줬듯 전술적 역량은 확실하며, 선수단과의 소통도 생각보다 나쁜 편은 아니지만, 그러나 보드진과의 관계 형성이 매우 좋지 않으며,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의 대처 능력도 떨어진다. 특히 선수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면모가 극히 부족해 선수단 장악을 잘 하다가도 예상 밖의 사건이 하나 터지면, 일반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대처나 최악의 대처만을 골라하면서 삽시간에 지지를 잃는 사례가 너무 잦다.
5.2.1. 하인츠 뮐러와의 사건
마인츠에 있던 2013-14 시즌에 벌어진 일이다. 골키퍼 하인츠 뮐러에겐 일정 경기 이상을 출전하면 계약기간이 1년 연장되는 조항이 있었다. 그러나 투헬이 이 조항을 발동시키지 않으려고 별 대외적인 명분도 없이 뮐러를 리저브 팀으로 내려버린 것. 이에 화가 난 뮐러가 투헬에게 따지자 투헬은 '''다른 선수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뮐러의 가족 사진을 찢어버렸다.''' 이에 충격을 받은 뮐러는 은퇴를 선언하였다.'''"그는 독재자와도 같다. 마치 날 10살짜리 어린애로 취급했다. 그는 후배 선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 캐비닛에 붙어진 아이들의 사진을 박박 찢어서 화장실 옆 쓰레기통에 집어던졌다."'''
"Er ist ein Diktator. Was er mit mir gemacht hat, war Mobbing hoch zehn" "Der Spind war ausgeräumt, sogar die Bilder meiner Kinder waren rausgerissen und in eine Kiste geworfen, die neben der Toilette stand."#
PSG에서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 그리고 첼시 이적으로 라이트팬들에게도 투헬의 인지도가 크게 올라가면서 이 에피소드도 덩달아 주목을 받아 축구 팬들이 투헬을 사이코패스/소시오패스 이미지로 만들어버린 결정적인 사건이다. 물론 투헬이 가해자라 결국 투헬이 스스로 자초한 것이긴 하지만 현재 첼시 감독 중 선수가 부진해서 앞선 일화처럼 화가 난다면 언제 그 선수의 가족 사진을 찢어버릴지도 모른다 는 밈이 생겨버렸다..
5.2.2. 엠레 모르와의 사건
또한 토마스 투헬은 당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소속이던 미드필더 엠레 모르가 훈련에 성실하게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피트니스 코치에게 엠레 모르를 피치에서 '''네발로 기어다니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말도 안되는 요구에 엠레 모르가 불만을 터뜨리자, 투헬은 그에게 연신 "입 닥쳐!"라며 고함을 쳤다고 한다. 당시 엠레 모르는 아직까지 유망주 꼬리표를 달고 있던 어린 선수였는데, 이런 식의 지나치게 가혹한 얼차려를 부여한 것이다.
5.2.3.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버스 폭탄 테러 사건
투헬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간의 관계를 사실상 끝장낸 사건이다. 2017년 4월, 도르트문트 선수단은 16/17 시즌 챔피언스 리그 8강 AS 모나코와의 경기를 하기 위해 지그날 이두나 파크로 떠났는데 선수단이 탑승한 버스가 호텔에서 나오자마자 근처에서 IED 3개가 폭발하는 테러가 발생했다.[39] 이로 인해 마르크 바르트라와 경찰관 1명이 부상을 입는 등 선수단은 정상적으로 경기를 뛰기 어려울 정도의 큰 충격에 휩싸였고 마르코 로이스가 선수들을 대표해서 CEO인 한스요아힘 바츠케에게 경기를 연기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바츠케는 감독과 선수들이 경기하는 것에 동의했다고 발표하는 모순되는 일이 발생한다.# 축구 저널리스트 Pit Gottschalk의 책에 따르면, 투헬은 그 경기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테러 사건으로 인해 팀에 더 큰 에너지를 불어넣을 수 있을거라고 기대했다고 한다. 테러 다음날, 마르코 로이스와 곤살로 카스트로가 코치의 사무실에서 눈물을 흘렸고 그들이 나가자 투헬은 같이 있던 직원에게 '''"대체 이런 겁쟁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바이언을 이기란 말인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 경기는 테러 다음 날에 강행되었고, 도르트문트는 1차전 홈에서 2-3으로 패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테러를 당하고 경기를 강행한 점에 대해 기자들이 묻자 UEFA가 다음 날로 경기 일정을 잡아서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이나 다름없는 답변을 하면서 자신의 선수들에게 시간을 더 줘야 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UEFA는 바츠케를 비롯한 도르트문트 수뇌부들의 결정이었다고 발표하면서 감독과 구단 수뇌부 간의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고 결국 투헬이 경질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5.2.4. 바샥셰히르 전 인종차별 대기심 옹호 사건
2020년 12월 8일, 20-21 시즌 비샥셰히르와의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 6차전 경기 중 대기심의 인종차별 발언으로 인해 비샥셰히르 측에서 경기를 보이콧을 하고 PSG 선수들이 동조하자 몰수승을 위해 선수들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뎀바 바의 인터뷰에 따르면 투헬이 '''"별 일 아니다. 너가 직접 그 단어를 말하는 걸 들었냐? 들은 게 아니면 진정해라."''' 등 심판진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은 코로나로 인한 무관중 경기였던 탓에 투헬의 육성이 피치 위의 마이크에 잡음없이 온전히 다 녹음되었고 결국 사실로 밝혀졌다.출처 링크 뎀바 바는 이러한 투헬의 행동을 강하게 비판하였고 또한 그대로 경기를 진행하여 몰수패를 유도해 승리할 수 있었음에도 같이 경기를 그만두는 것에 뜻을 함께한 파리 생제르망[40] 선수들에게 감사하다는 메시지 또한 전했다.출처 이것은 그동안 선수단과의 관계만은 원활했던 투헬이 그들의 지지를 잃어버리는 계기가 되어 결국 그를 경질되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6. 기타
- UEFA A 라이선스 이론 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두 명 중 한 명이다.[41]
- 이용수가 국가대표팀 감독 후보 중 하나로 점찍기도 했다. 다만 미팅에 참석하지 않아 제외됐다.[42]
- 의외로 분데스리가 내의 한국 선수들과 인연이 있는 편이다. 마인츠 시절 구자철, 박주호가 있었고 도르트문트로 이적 후 박주호를 데려오기도 했다. 구자철의 유튜브에서 말하길 마인츠로 데려오기 위해 수 개월간 경기가 끝날 때마다 경기 잘봤다고 전화가 왔었다고.
- 위르겐 클롭 감독의 뒤를 이어 도르트문트를 지도하게 되었고, 마인츠 시절 U-19 감독과 1군 감독으로 지내는 등 유사성이 눈에 띄어 명실상부 클롭의 후계자로 주목받았다. 클롭이 도르트문트를 떠나면서 직접 구단에게 후임 감독으로 추천한 사람이 바로 투헬. 오트마어 히츠펠트-위르겐 클롭으로 이어지는 도르트문트 명장 계보를 이을 차세대 지략가로 기대를 받기도 했다. 다만 투헬 감독은 그 전술에 관해서 펩 과르디올라를 많이 참고해왔다고 밝힌 바 있다.[43] 더불어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으로 헤어만 바트슈투버(Hermann Badstuber)를 꼽았다. SSV 울름 1846 시절 코치와 선수로 만났는데 그때 그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참고로 그는 홀거 바트슈투버의 아버지이기도 하다.[44]원문 번역
- 안목이 좋은 편이다. 현재 RB 라이프치히의 감독 율리안 나겔스만을 발굴한 것도 투헬. 아우크스부르크 2군 감독 시절에 선수로 뛰던 나겔스만이 부상당해 선수생활을 접게 되자, 그의 분석 능력을 예의주시하던 투헬이 그를 상대팀 전력 분석관으로 임명시켰다. 당시 나겔스만의 나이는 20세. 나겔스만은 19/20 시즌부터 87년생의 젊은 나이로 라이프치히의 감독을 맡고 있다. 또한 독특한 방식의 소유자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현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의 감독인 마르코 로제와 그의 젊은 수석코치인 레네 마리치도 한 때 그의 밑에서 같이 생활한 적이 있다.#
- 상기한 굵직한 일화들로 인해 마냥 괴팍한 감독으로 인식되지만 인터뷰 스킬이나 태도는 굉장히 좋다. 중도 부임 이후 팀의 현재 상황과 목표를 차분하게 설명했고 잉글랜드 언론 특유의 자국 선수 관련 질문도 정중히 거절하며 첼시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PL 이적 이후 인터뷰가 자주 노출되자 국내 팬들은 주로 의외라는 평가다. 날카로운 인상과는 다르게 목소리도 꽤 중후한 편.
- 마인츠 시절 선수였던 구자철이 투헬과의 썰을 언급했는데 구자철이 12-13 시즌 말기 아우크스부르크와의 임대가 끝날 무렵부터 투헬이 지속적으로 구자철에게 너를 무조건 영입할 것이다며 연락을 했다고 한다. 볼프스부르크로 돌아간 뒤에도 두 달 동안 투헬이 경기 잘 했다며 문자를 보낼 정도였다. 결국 구자철은 13-14 시즌 중반에 마인츠로 이적했는데 이 때 투헬이 처음 한 말이 자신이 감독하면서 처음으로 선수와 밥을 먹었다고 한다. 이후, 투헬이 도르트문트로 부임하고 구자철도 아우크스부르크로 이적했을 때 두 팀이 포칼에서 붙었고 경기 후, 구자철은 투헬에게 인사나 하려고 도르트문트 버스를 탔는데 그 때 투헬이 이적한 선수가 먼저 다가와서 인사한 적은 처음이라며 반가워했다고 한다. 구자철은 마인츠 시절 유누스 말리와의 로테이션 때문에 출전 시간에 불만이 있어 스트레스를 받았었지만 그럼에도 투헬과 여전히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7. 감독 기록
7.1. 우승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15~2017)
- DFB-포칼: 2016-17
- 파리 생제르맹 FC (2018~2020)
[1] 출처[2] 2020-21 시즌 도중 경질[3] 2020-21 시즌 도중 부임[4] 상대 팀 입장에선 라이벌 팀의 전력이 급상승해 괴롭고, 우리 팀은 투헬 VS 선수단과 수뇌부, 그리고 서포터즈의 분쟁으로 골치가 아프다. 그럼에도 원체 실력이 뛰어나 쉽게 자르지도 못해서 그야말로 생지옥이 펼쳐진다. 성적만 뛰어나면 선수빨이라는 욕을 먹는 경우도 잦지만, 투헬은 경질론자들도 실력을 의심하진 않는다.[5] 당시 FC 아우크스부르크는 4부리그 팀이었다.[6] 팀의 핵심수비수였음에도 그가 4 시즌 동안 뛴 경기가 68경기임을 생각하면 얼마나 심각한 부상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7] 독일은 1~5점까지로 점수가 나오고 1이 최우수 5가 낙제이다. 한국의 수우미양가를 생각하면 편하다.[8] 여담으로 당시 마인츠 강등의 책임을 지고 마인츠 감독 자리를 떠났던 사람이 위르겐 클롭이다. 클롭은 원래 2부 리그 소속이던 마인츠를 2003년 구단 역사상 최초로 1부 리그에 승격시키고 몇 시즌을 1부 리그에서 보냈지만 나중에 결국 강등됐다. 그럼에도 클롭은 유임이 결정되었으나, 다음 시즌 마인츠를 다시 승격을 시키지 못하자 스스로 사임하였다.[9] 이 중에는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거둔 승리도 있다.[10] 클롭 체제에서의 센터백까지 압박에 가담하거나 쓰로인을 던지는 상대 선수 주변에 8명이 둘러싸는 극단적인 게겐 프레싱보다는 투헬 체제는 좀 더 조직적인 압박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예로 2, 3선의 대각선 배치가 있다.[11] 투헬이 도르트문트에서 보여준 면모를 고려하면 경질을 당해도 할 말 없었으나, 그가 6위까지 처지고 선수단의 클래스가 전체적으로 하락했었던 상황에 있었던 도르트문트를 단번에 역대급 2위팀으로 변모를 시키고 오바메양과 미카티라안을 완벽하게 살려낸 것과 어린 선수들은 게레이로, 뎀벨레, 바이글을 유럽최고의 유망주로 까지 만들었던 것만 봐도 그가 엄청난 실력을 지닌 감독임에는 틀림이 없다. 실제로, 투헬이 떠난이후에 도르트문트는 지속적인 핵심인재 유출에 대한 댓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잘츠부르크를 상대로 홈에서 지고 유로파 16강에서 탈락을 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12] 나중에 온스테인이 썰을 풀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아스날과 투헬은 실제로 가능성이 있었다. 스벤 미슐린타트가 투헬과 같이 일하는 것에 OK 사인을 보낸 것도 사실이었다. 허나 투헬로서는 당시 벵거의 거취 문제 때문에 파리행을 택했다.[13] 알레그리 유벤투스 부임 시절 14-15 시즌과 16-17시즌에 챔스 결승을 갔으나 각각 라리가 양대산맥인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를 만나 패했다. 경기력은 괜찮았음에도 선수층이 얇았고 경기의 판도를 바꿀수 있는 조커의 부재가 컸다.[14] 수비형 미드필더인 다닐루를 센터백에, 수비형 미드필더로 충분히 뛸 수 있긴 하나 본업은 센터백인 마르퀴뇨스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고 있다.[15] 폴크는 원래 독일 분데스리가, 특히 뮌헨 쪽에 정통한 기자이지만, 타 리그 소식도 간간히 전하고 있다. 뮌헨 관련 소식을을 제외하면 공신력은 크게 떨어진다. [16] 초반에는 공식전 16경기 무패를 기록하기도 했을 정도로 기세가 좋았다. 이때는 심지어 이번 리그 우승 후보로 리버풀과 함께 꼽히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다 의미없는 얘기다.(...) [17] 아이러니하게도 챔스는 2군급 라인업으로 세비야를 4:0으로 잡는 등, 조별리그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조 1위로 16강에 올라가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16강 상대가 비시드 팀 최강으로 꼽히는 라리가 1위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다.(...) [18] 특히 티모 베르너와 카이 하베르츠[19] 두 감독이 첼시를 떠나는 과정은 결코 깔끔하거나 편안하지 않았다. 이러한 감독과의 갈등을 이미 경험한 첼시 입장에선 무리뉴와 콘테 '''몇 수 이상의 괴짜'''인 토마스 투헬을 선임하는 것은 절대로 이상적인 선택일 수 없다.[20] 파리에서 만 2년 동안 도메스틱 트로피 6개에 팀 역사상 최초의 챔스 준우승을 일궈냈다.[21] 그런데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투헬은 이번 여름까지 휴식을 할 의사도 있었다고 한다. 첼시의 오퍼가 들어오자 쉬는 걸 고민하다가 2016-17 시즌 당시 안토니오 콘테에게 감독직 경쟁에서 패했던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게 생각나서 바로 오퍼를 수락했다고 한다. 첼시가 아닌 다른 팀에서 오퍼가 온 것이라면 여름까지 휴식을 취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했었다고 하며, 지금 기회가 아니고는 첼시 같은 팀에는 재취업이 힘들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22] 무엇보다 투헬은 그 선수를 포지션으로 보지 않고 스쿼드에 맞춰서 롤을 부여하고 전술을 짜는 감독이기에 이적 시장에서 원하는 선수를 영입하지 못해도 어느 정도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웃긴 건 투헬이 주도해서 영입하는 픽은 족족 망하고 오히려 보드진이 픽한 선수는 잘 써먹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투헬이 직접 주도해서 뽑은 선수 중 그나마 유일하게 성공한 픽이 후안 베르나트 딱 한 명 정도인 수준이다.[23] 후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옵션 발동 조건은 첼시의 2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진출이라고 한다.[24] 이 때문에 한준희와 장지현은 원투펀치에서 의외로 첼시에서는 보드진하고 트러블이 크게 나지 않을 가능성도 점쳤을 정도였다.[25] 재미있게도 투헬은 파리가 시우바의 재계약을 거절했을때 가장 앞장서서 지키려고했다. 단장인 레오와의 갈등이 여기서도 드러나는 부분.[26] 후반전에는 캘럼 허드슨오도이의 위치를 왼쪽으로 바꾸고 크리스천 풀리식을 우측 윙백으로 다시 활용해서 더 공격적인 전술을 보이기도 했다.[27] 다만 경기를 보면 알겠지만 캘럼 허드슨오도이의 롤 자체는 위치만 윙백일 뿐 실질적으로는 플레이메이커 역할까지 수행하는 프리롤 유형에 가까운 롤을 부여받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상 측면에 플레이메이커를 하나 더 집어넣어서 변수를 창출하는 수를 발휘한 것.[28] 다만 이와 별개로 경기 후 인터뷰에서 넘버 원 골키퍼는 멘디라고 언급했다.[29] 다만 허드슨오도이는 투헬 부임 이전에도 병장축구 소리를 들으면서 이전에도 여러 커뮤니티에서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꽤 나왔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30] 중립 지역인 헝가리 부쿠레슈티에서 경기를 치르긴 했으나 원칙적으로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홈경기다.[31] 측면 공간과 하프스페이스를 모조리 차단시키고자 했던 시메오네의 아이디어이다.[32] 이는 당시 윙 자원이 부족한 마인츠였기 때문에 썼던 전술일 가능성이 높다.[33] 물론 PSG는 어차피 우나이 에메리급 막장 감독과 역대급 라이벌의 등장이 맞물리는 사태가 아니면 리그앙 트로피는 거의 먹고 간다고 볼 때, 챔스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리그에서의 실험을 통해 안정적인 양학보다 선수들의 전술 적응력을 상승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반론도 있다. 투헬의 판단이 맞았는지, 그동안 8강을 못 넘던 팀이 19-20 시즌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아탈란타 BC 상대로 경기를 뒤집으면서 준우승까지 하였다.[34] 도르트문트에겐 5년만에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 우승 트로피를 선물했고, PSG에선 2년만에 자국 대회들 도합 6관왕은 물론 클럽 최초의 챔스 준우승을 일궈냈다.[35] 공과 사는 확실히 구별하는 감독이다.[36] 도르트문트 CEO 바츠케가 투헬 경질 과정에서 인터뷰를 통해 언급하였다.[37] 레반도프스키, 카가와, 뎀벨레 등의 유망한 선수를 데려왔다.[38] 여담으로 투헬은 대승을 거둔 후 인터뷰에서 2021년에 1위로 끝낼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는데 보드진이 경질을 통보했고 이 목표는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39] IS가 한창 날뛰던 시기라서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소행인 줄 알았으나 독일과 러시아 이중국적을 가진 28세 남성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도르트문트의 주가가 하락하면 돈을 버는 풋옵션을 대량 매입한 뒤에 주가 하락을 노리고 테러를 저질렀다.[40] 특히 킬리안 음바페[41] 또다른 한 명은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형 토비아스 슈바인슈타이거다.[42] 냉정히 말해서 너무 불가능한 대상이었다. 이미 분데스에서 마인츠로 명성을 쌓기 시작하던 시절이었고 레버쿠젠과 BVB의 감독직 물망에 오르던 시절인게 당시의 투헬. 무슨 생각으로 점을 찍었는지는... [43] 펩 과르디올라와 사적으로 자주 만나면서 축구 전술에 대하여 많은 토론을 하는 등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과르디올라가 맨체스터 시티 감독으로 떠나면서 바이에른 뮌헨 후임 감독으로 투헬을 강력하게 추천했다고 하지만 실현되지는 못했다. 링크 링크[44] 헤어만 바트슈투버는 2009년 5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45] 2018년 7월 30일자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