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저우시
간체자 扬州
번체자 揚州
영어 Yangzhou / Yangchow
중국 동부 장쑤성의 지급시. 난징에서 동북쪽으로 50km 떨어진 도시로, 시가지는 양쯔강 북안에 위치해 있는데, 강 건너에는 전장(鎮江, 진강)이 위치해 있다.
후한 대에 중국의 13 자사부 중 하나인 양주(揚州)의 치소가 위치했었다. 수나라 대에 건설된 대운하가 통과하여 번영하였는데, 강도(江都)로 불리며 남쪽의 부수도였고, 수양제가 즐겨 찾았으며 결국 이곳으로 피신했다가 암살되었다. 당송 대에는 인근의 쑤저우, 항저우 등에게 수운 교통의 중심지를 넘겨주었다. 그러나 완전히 저문 것은 아니고, 여전히 큰 신라방이 있고 페르시아, 아랍 상인들 역시 무역거점 번방(蕃坊)을 이룬 국제적인 상업도시였다. 다만 금나라의 남침으로 송 조정이 피신하였을 시에 그 임시 수도로 기능하였다. (1128 ~ 1129년) 동방견문록에 의하면 마르코 폴로가 양저우의 행정관이 되었다고 한다. 원명 대에 도시는 소금 유통의 중심지로 다시 번영하였다. 하지만 명청 교체기 (남명) 시기에 사가법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청나라 군대에 함락된 후 수만명이 학살되는 피해를 입었다. 이후 강 건너 전장과 동쪽의 난퉁이 번영하게 된다.
현재 인구는 450만명이다. 시가지 동쪽에 양저우 타이저우 국제공항이 있는데, 아직도 수운 교통이 활발하다. 관광지로는 남조 시대에 지어진 대명사와 서호, 그리고 그 주변의 여러 정원들이 있다. 인근의 명나라 시대 묘역에는 이슬람의 사도 무함마드의 16대손의 무덤과 14세기 이탈리아 상인의 무덤도 있어 중근세 이슬람/기독교 공동체의 존재를 보여준다. 볶음밥이 정말 유명하고 맛있다. 볶음밥만을 위해 도시를 찾는 미식가들도 있다고 한다.
신라의 문인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빈공과 급제 후 관리생활을 할 때 근무했던 곳이 양저우였다. 그래서 양저우 웨이양구와 부산광역시 해운대구가 자매결연을 맺기도 했다. 웨이양구에는 최치원 기념관도 있는데, 중국에서 첫 번째로 세워진 외국인 기념관(第一外國人紀念館)이라고 입구에 써 있다. 그 외에 한중 친선 바둑시합 등 활발한 친선교류를 하고 있다고 한다.
드라마 해신의 전반기의 주요 무대가 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양저우는 실제로 입당구법순례행기에 따르면 큰 규모의 신라방이 있었을만큼 신라 상인들이 많이 드나드는 번성한 상업도시였던만큼, 장보고의 당나라 체류 시절의 배경으로 적합한 곳이라 설정된 듯 하다. 다만 드라마 상에서는 이곳이 당나라 최고의 상업도시라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위에서도 봤듯이 당나라 대에는 항저우에 밀려서 콩라인이 된지 오래였다(...).[1]
번체자 揚州
영어 Yangzhou / Yangchow
1. 개요
중국 동부 장쑤성의 지급시. 난징에서 동북쪽으로 50km 떨어진 도시로, 시가지는 양쯔강 북안에 위치해 있는데, 강 건너에는 전장(鎮江, 진강)이 위치해 있다.
2. 역사
후한 대에 중국의 13 자사부 중 하나인 양주(揚州)의 치소가 위치했었다. 수나라 대에 건설된 대운하가 통과하여 번영하였는데, 강도(江都)로 불리며 남쪽의 부수도였고, 수양제가 즐겨 찾았으며 결국 이곳으로 피신했다가 암살되었다. 당송 대에는 인근의 쑤저우, 항저우 등에게 수운 교통의 중심지를 넘겨주었다. 그러나 완전히 저문 것은 아니고, 여전히 큰 신라방이 있고 페르시아, 아랍 상인들 역시 무역거점 번방(蕃坊)을 이룬 국제적인 상업도시였다. 다만 금나라의 남침으로 송 조정이 피신하였을 시에 그 임시 수도로 기능하였다. (1128 ~ 1129년) 동방견문록에 의하면 마르코 폴로가 양저우의 행정관이 되었다고 한다. 원명 대에 도시는 소금 유통의 중심지로 다시 번영하였다. 하지만 명청 교체기 (남명) 시기에 사가법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청나라 군대에 함락된 후 수만명이 학살되는 피해를 입었다. 이후 강 건너 전장과 동쪽의 난퉁이 번영하게 된다.
3. 특징
현재 인구는 450만명이다. 시가지 동쪽에 양저우 타이저우 국제공항이 있는데, 아직도 수운 교통이 활발하다. 관광지로는 남조 시대에 지어진 대명사와 서호, 그리고 그 주변의 여러 정원들이 있다. 인근의 명나라 시대 묘역에는 이슬람의 사도 무함마드의 16대손의 무덤과 14세기 이탈리아 상인의 무덤도 있어 중근세 이슬람/기독교 공동체의 존재를 보여준다. 볶음밥이 정말 유명하고 맛있다. 볶음밥만을 위해 도시를 찾는 미식가들도 있다고 한다.
신라의 문인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빈공과 급제 후 관리생활을 할 때 근무했던 곳이 양저우였다. 그래서 양저우 웨이양구와 부산광역시 해운대구가 자매결연을 맺기도 했다. 웨이양구에는 최치원 기념관도 있는데, 중국에서 첫 번째로 세워진 외국인 기념관(第一外國人紀念館)이라고 입구에 써 있다. 그 외에 한중 친선 바둑시합 등 활발한 친선교류를 하고 있다고 한다.
4. 매체
드라마 해신의 전반기의 주요 무대가 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양저우는 실제로 입당구법순례행기에 따르면 큰 규모의 신라방이 있었을만큼 신라 상인들이 많이 드나드는 번성한 상업도시였던만큼, 장보고의 당나라 체류 시절의 배경으로 적합한 곳이라 설정된 듯 하다. 다만 드라마 상에서는 이곳이 당나라 최고의 상업도시라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위에서도 봤듯이 당나라 대에는 항저우에 밀려서 콩라인이 된지 오래였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