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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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대 만들어진 에도의 지도
1. 개요
2. 역사
3. 에도의 범위


1. 개요


'''江戸(えど'''
도쿄의 옛 이름. 1603년부터 1868년까지 에도 시대에도 막부가 위치한 도시였다. 언어로는 에도벤이 있다.

2. 역사


원래는 무사시노쿠니(武蔵国) 도시마군(豊島郡)[1]의 일부였으나 에도 시대에 도시마군 남부지역(오늘날의 도쿄 도심지역)이 에도로 분리되었다.
이에야스가 막 간토를 받았을 때 에도 일대는 그냥 오오타 도칸이 만들었던 딱히 크지 않은 성만 덜렁 있는 촌구석에 불과했고 염분기가 많은 수자원 탓에 넓은 평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생산량을 보였는데, 이에야스가 강줄기를 여기저기 손대바꾸고 에도를 중심지로 삼고 산킨코타이를 하고 개간도 하고 막대한 노력을 퍼부어서 에도를 만들어냈다.
에도 시대에 막부가 위치한 일본 정치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에도 성은 도쿠가와 쇼군의 거성(居城)으로, 에도는 막부 관청이 위치한 행정부의 주재지였다. 부요(武陽)라고도 불렸다. 그러나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쇼군으로서는 한 번도 에도에 머무르지 않았다.[2]
1868년 에도를 일컬어 도쿄라 한다는 조서[3]에 의해 '에도'는 '도쿄'로 개칭되었고, 이어 천황의 도쿄 행차로 에도 성이 도쿄성(東京城)으로 잠시 개명되면서 도쿄의 고쿄가 되었다. 이듬해 메이지 정부도 교토에서 도쿄로 옮겨져 행정수도격인 도시에서 일본의 사실상 공인 수도가 되었다.
1923년의 관동 대지진과 1945년의 도쿄 대공습으로 도쿄는 두 번이나 쑥대밭이 되면서 고건축물들의 대부분이 파손되었다. 또한 이후로 고도경제성장과 함께 현대적인 건축물들이 절대 다수를 이룬채로 재건되었으며 결국 오늘날의 도쿄에서 옛 에도의 분위기를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사이타마현카와고에시는 옛 에도의 분위기가 잘 보존되었다 하여 '작은 에도'라고 불리는데, 정작 진짜 에도였던 도쿄에는 이런 곳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도쿄의 옛 이름이라는 것에 착안해, 'I live in Tokyo.'를 과거형으로 쓰라고 했더니 'I live in Edo.'라고 썼다는 유머가 인터넷에 퍼져 있다.

3. 에도의 범위


'에도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도쿄'라고 하지만 공인수도가 된 이후로 여러차례에 걸쳐 근교지역을 도쿄로 편입시켰기 때문에 에도와 지금의 도쿄의 범위가 일치하지는 않는다. 마치 지금의 '서울'과 조선시대 '한양'의 범위가 일치하지 않는 것처럼.
에도시대 초기 에도의 범위는 지금의 치요다구와 그 주변으로, 에도 성 바깥 해자는 이를 둘러싸도록 만들어졌다. 메이레키 대화재 이후 시가지가 확대, 통칭 '808정'이라 불리게 된다. 1818년 '슈비키(朱引)'의 제정으로 인하여, 에도의 범위는 처음으로 정식으로 확정되게 되었다. 현재 '오에도(大江戸)'라 불리는 곳은 일반적으로 이 범위이다.
당시 에도는 지금에 비해 좁다, 오늘날의 치요다구, 주오구, 미나토구, 분쿄구, 다이토구를 비롯하여 넓게 잡으면 고토구 일부, 스미다구 일부, 아라카와구 일부, 키타구 일부, 도시마구이타바시구 일부, 시부야구 일부, 신주쿠구 일부, 시나가와구 일부까지 포함된다. 슈비키의 범위는 사리사방(四里四方)이라 불리며 동쪽은 히라이 주변, 서쪽은 요요기 주변, 남쪽은 시나가와 주변, 북쪽은 이타바시 주변까지다.

[1] 다만 현 도쿄 도심(미나토, 시부아, 지요다 일대) 일대가 원래는 에바라 군 소속이었으나 이후에 도시마 군에 편입되었을 것이라는 설도 있긴 하다.[2] 오랫동안 교토 니죠성에 기거하고 있다가 에도로 돌아온 것은 무진전쟁 도바 후시미 전투 이후의 일이었다.[3] 江戶ヲ稱シテ東京ト爲スノ詔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