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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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의 큰 섬이 '''대연평도''', 아래쪽의 작은 섬이 '''소연평도''', 대연평도 아랫쪽 길게 연륙교로 연결된 섬이 선착장으로 사용되는 '''당섬''', 왼쪽 아래 외딴 섬이 '''구지도'''
1. 개요
대한민국의 영토. 서해 5도 중 하나로 대연평도와 소연평도로 이루어져 있다.
지명은 연이어 뻗친(延) 땅(坪)이라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출토된 토기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황해도 해주군(1938년 해주시 분리 후 벽성군으로 개칭) 송림면 관할의 도서 지역이었으며, 해방 직후 38선으로 인한 남북분단으로 1945년 경기도 옹진군으로 이관되었다. 송림면은 7개 리로 이루어져서, 면사무소는 본래 옹진반도 본토의 송현리에 있었고, 연평도는 그에 속한 하나의 리였으나, 1953년 휴전협정 체결로 본토(송현, 내동, 가평리) 및 소수압도, 대수압도, 육도(六島)가 북한 치하에 들게 되자, 면사무소를 연평도로 옮겨 온 것이다. 1995년 인천광역시에 편입되었으며, 1999년 면 이름이 송림면에서 연평면으로 변경되었다.
현재 연평도 주민의 70% 가량은 황해도 출신의 실향민과 후손들이다.
북서쪽으로 38선과 인접하며, 현재 북방한계선과 인접하므로 북한과 '''매우 가깝다.''' 실제로 연평도와 인천항 간의 뱃길은 122㎞나 되지만, 북한 강령반도의 육세미까지의 거리는 12.7km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날씨 쾌청한 날에는 육세미뿐만 아니라 38km 거리의 황해도 해주 땅까지도 육안으로 또렷이 보일 정도다. 따라서 북한이 옹진반도와 주변 섬에 설치한 해안포 사정거리에 들어가므로 유사 시 매우 위험한 지역이다. 이 때문에 서해 5도의 다른 섬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해병대(연평부대)가 섬 안에 주둔하여 섬을 방어한다. 한편, 바다는 대한민국 해군이 항상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다른 최전방 지역에 비해 꽤나 남쪽에 위치해 있는데, 대연평도는 일산신도시, 북한산과 비슷한 위도에 있고, 소연평도는 은평구, 성북구, 남양주시 퇴계원 일대와 동위도이다.
2. 교통
섬에 가는 방법은 인천 부두에서 여객선을 타고 가면 된다. 2015년 현재 코리아나, 플라잉카페리호 2 종류의 배를 타고 갈 수 있다. 운임은 편도 5만원 상당으로 굉장히 쓸데없이 비싼 편. 다만 인천 주민은 뱃값 반 값 할인, 연평도민은 약 7000원 정도로 매우 싸게 이용이 가능하다.
섬의 면적이 좁아서 택시가 다니지 않으며,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인 마을버스는 2011년 9월부터 운행하고 있다. 따라서 외부에서 온 방문객은 버스 시간대를 못 맞추면 도보나 자전거를 이용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도 주말과 공휴일은 생각보다 자주 운행하지 않으므로 버스 시간을 잘 확인해서 타야 한다. (왠만 해서는 배에서 내리면 마을버스는 이미 와있다.)
3. 행정구역 변천
4. 대연평도
4.1. 역사
조기잡이에 대한 설화가 전해지는데,병자호란 때 임경업(林慶業) 장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세자를 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가던 중 선원들의 부식이 떨어지자, 연평도에 배를 대고 안목과 당섬 사이의 얕은 바다에 가시나무를 촘촘히 박아서 조기 잡는 어살법을 주민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지금도 섬에는 임경업장군각(林慶業將軍閣)이 있어 주민들이 출어에 앞서 풍어제를 지내는 관습이 있다.
1960년대 한국의 대표적인 조기 어장이었다.
4.2. 현재
대연평도는 면적 7.01㎢로, 2016년 5월 현재 2천182 명, 1천349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꽃게잡이로 유명하다.
임경업 장군이 어살법으로 조기를 잡았다는 안목어장은 오늘날 연평면 사무소가 자리한 마을의 앞 바다로, 당섬, 책섬, 작은지리 등의 작은 섬들에 둘러싸여 호수처럼 얕고도 잔잔하다. 이곳에서는 썰물 때 조개, 게, 낙지 등을 아이들과 함께 직접 잡아보는 갯벌체험이 가능하다.
안목어장의 북동쪽 바닷가에 우뚝한 언덕에는 망향전망대가 있다. 연평도에서 북한 땅이 가장 가깝게 보이는 곳이다.
대연평도의 동쪽에는 방파제(856m)가 설치된 2종항인 연평도항이 있고, 주민의 상당수가 거주한다.
행정시설로는 옹진군 연평면의 면사무소가 있다.
편의점은 CU와 GS25가 있고[1] , 우체국, 연평 초중고등학교[2] ,당구장, 치킨집[3] 등의 시설도 있다. PC방[4] 은 없으며 관광객, 그리고 군인들이 자주 이용하는 식당들이 다수 있다.
대연평도의 남쪽 끝에는 등대가 있다. 1960년에 처음 불을 밝힌 뒤로 한동안 연평도 어선들의 뱃길을 인도하는 길잡이 노릇을 했던 등대로, 1974년 7월 국가안보상의 이유로 소등했다가 1987년에는 완전히 등대 기능을 상실했다. 다시 연평도 등대가 45년 만에 불을 밝혔다.해양수산부는 2019년 5월 17일 오후 7시 20분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서 연평도 등대 점등식을 개최했다. 등대공원 바로 밑에는 팔작지붕의 2층 콘크리트 건물로 지어진 조기역사관이 있다. 건물의 1층에는 연평도 조기잡이 역사를 보여주는 각종 자료가 전시된 조기역사관이 있고, 2층에는 사방으로 시야가 훤한 누마루형태의 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조기역사관 옆에는 연평도 조기떼와 조기잡이배를 묘사한 조각상도 세워져 있다. 조기역사관에서는 연평도의 북쪽 해안으로 곧장 이어지는 군용 터널도 있다. 최근에야 처음으로 관광용으로 개방된 이 터널 계단의 양쪽 벽에는 연평도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등대공원과 조기역사관 부근은 연평도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므로 가래칠기해변, 빠삐용바위, 구리동해수욕장 등으로 이어지는 연평도의 서쪽 해안이 한눈에 들어온다. 빠삐용바위는 영화 빠삐용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탈출하기 위해 바다로 몸을 던진 절벽과 비슷하여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연평도 북쪽 해안에 위치한 구리동해수욕장은 물이 맑고 백사장이 깨끗해서 여름철 피서지로 인기 있었다.
5. 소연평도
소연평도는 면적이 0.236㎢(약 7만1300여평), 해안선 길이가 4.7km밖에 되지 않는다. 39세대에 88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그야말로 손바닥만한 섬이지만, 얼굴바위 같은 해안절경이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간간이 이어진다.
이 섬의 동남쪽 해안에 위치한 얼굴바위는 사람의 옆얼굴과 똑같이 생겨 큰바위얼굴을 연상케 하며, 소연평도에 접근하는 여객선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바위이다. 그리고 함철품위(含鐵品位) 50.4%인 타이타늄 자철광상이 발견되었다.
6. 최근 상황
서해 5도의 특성상 북방한계선과 인접한 관계로 1970년대부터 북한의 도발에 갖은 피해를 받는다. 섬 주변 바다에서 대한민국 해군은 제1연평해전, 제2연평해전을 겪었고, 그 때마다 연평도 어민들은 어업활동이 금지되는 등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았다. 2010년 11월 23일에는 북한의 포병 사격이 섬에 80발 정도 명중하여 큰 피해를 입었다. 민간 지역에까지 북한이 도발을 한 것. 피해상황을 포함한 자세한 내용은 연평도 포격 도발을 참고하길 바란다.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연평도의 주민들은 사건 당시에는 대부분 대피호에 숨었다가 연락선, 어선등을 타고 인천으로 속속 대피하여 평소 1400여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한때 100여명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이후 포격 5개월 후인 2011년 3월 기준으로 섬주민의 80% 이상이 섬으로 돌아왔다고 한다.관련기사
공격 이후 K-9 자주곡사포 6문을 추가배치하고 손으로 일일이 장전해야 했던 상황을 반복하지 않도록 K-10 탄약보급장갑차도 추가했으며 구룡도 배치되었다. 또한 보도 통제와 민간인 통제가 이뤄지고 있어서 앞으로는 군기지만 남을 수도 있다는 예측도 있었으나 연평도 포격 이후 섬인구가 오히려 150~170명 가량 증가했다고 한다.# 주민들도 연평도 포격사태의 끔찍함을 잊고 꽃게잡이 등 생업에 열심이라고. 이후 2012년 4월에 500여명이 피난할수 있는 1호 대피소가 건립되었고 앞으로 연평도 전 인구가 대피하여 생활할수 있는 7개 대피소 시설 건립될 예정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수도권에 배치 되었던 K-9 자주곡사포가 연평도에 배치됨에 따라 수도권 방어에 공백이 있지 않느냐의 우려와 유사시 빼앗길 수 있는 곳에 과대 배치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후 2011년 8월 10일, 북한이 연평도 인근 해상에 포격을 가해왔다. 북한은 발파 작업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으며, 중국군사전문지는 중국의 신호에 따라 북한이 포격했다고 주장했다.
2013년 12월 17일 기준으로 연평도 피해복구를 위한 업체들이 숙박비 및 식사비 등을 3억 가량 연체하고 있다고 한다. 육지 같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데 섬 주민들의 호의에 뒤통수 때린 업체가 뉴스에 나왔다. 원청과 하청 간에 책임 떠넘기기가 일어났으며 하청업체는 현재 파악이 안 되는 상태. 애꿏은 섬 주민들만이 큰 피해를 입고 있다. 관련기사
2014년 4월 29일, 북한이 백령도 및 연평도 인근에 포사격을 하였는데, 이에 대해 SBS에서 현지 주민과 전화 인터뷰를 하다가 억지로 긴장을 조성하지 말라[5] 는 소리에 데꿀멍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를 보면 연평도 주민들이 북한의계속된 도발에 무감각해진건 사실인듯. 다만, 그것과 관계 없이 북한이 연평도에 지속적인 도발을 해 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긴 하다.
2014년 4월부터 중국국적의 어선들이 연평도 인근 해안에서 불법 조업을 하고있다. 관련 기사 해경특공대가 세월호 사건 때문에 진도 해역으로 떠난 이후 더 기승을 부렸다고. 이 어선들은 대한민국 해군과 해양 경찰이 단속을 시작하면 북한 지역으로 달아났다가 단속을 멈추면 바로 다시 대한민국 영해로 들어와 불법 조업을 재개한다. 5월 1일에는 150여척이나 몰려왔다고 하니 이쯤되면 해적이 따로 없다.
2016년 6월 6일 참다못한 연평도 어민들이 불법조업을 하고 있는 중국어선 2척을 나포했다..연평도 불법 조업 어선 2척, 어민이 나포 연평도 앞바다에서 불법조업중이던 중국어선 수백척중 달아나지 않는 2척을 우리나라 어선 5척이 밧줄로 묶어 끌고 인천해양경찰에 압송했다. 과정에서 저항은 다행히 없었는데 잠을 자고있었다고 한다.. 이에 해경에선 중국어선 선장 47살 A씨와 52살 B씨를 대상으로, 불법조업 여부와 서해 북방한계선, NLL 침범 경위 등을 조사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치적으로는 옹진군 전체에서 보수 성향이 가장 약한 지역이다. 포격 사태를 계기로 (북한에 도발의 빌미를 줄 수 있는) 보수 정당의 대북 강경책에 반대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접경지역 주민들이 대북전단 살포를 강하게 반대하는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면된다..
2020년에는 연평도 해역 공무원 피격사건이 일어나 다시 한번 이슈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1] GS25는 PX를 겸해서 운영된다.[2] 이전에는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가 건물을 따로 썼지만 연평도 포격 사태와 노후화된 시설 탓에 구 연평초등학교 건물을 철거하고 그 곳에 통합교사를 신축하여 2015년부터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가 모두 한 건물을 사용하게 되었다.[3] 필바든 치킨, 찬누리 닭강정[4] 예전에는 있었다 스타크래프트 시절에[5] 외지인들에게 연평도가 위험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면 관광업에 타격을 준다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