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해병대

 


'''대한민국 해병대''''''
''''''大韓民國 海兵隊''''''
''''''Republic of Korea Marine Corps (ROKMC)'''
'''창설년도'''
1949년 4월 15일 (74주년)
'''국가'''
[image] 대한민국
'''소속'''
[image] 대한민국 해군
'''군종'''
해병대
'''지휘체계'''
[image] 합동참모의장[image] 해병대사령관(군령권)
[image] 해군참모총장[image] 해병대사령관(군정권)
'''사령부'''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해병대사령부[1]
'''사령관'''
[image] 중장 이승도
'''주임원사'''
[image] 원사 양병장
'''병력'''
약 29,000명[2](2020년 기준)
191페이지 참조
'''역할'''
상륙전, 기동전, 강습, 해안/강안/도서 경계 및 방어
'''상징색'''
'''빨간색'''[3]
'''군사훈련'''
[image] 해병대 교육훈련단
'''마스코트'''
해병이
'''웹사이트'''

'''SNS'''

1. 개요
2. 상징
2.1. 마스코트
2.2. 군가
2.3. 경례 구호
3. 수뇌부
4. 역사
5. 조직 및 편제
5.2. 해병대 독립 문제
5.2.1. 해병특수군 창설 논의
5.3. 감축 논의
6. 전력
7. 생활
7.1. 장교
7.2. 부사관
7.3. 병
7.3.1. 해병이 된 해군
7.3.2. 징집된 해병
8. 출신 인물
8.1. 연예계
8.2. 스포츠
8.3. 정재계
8.4. 그 외
9. 문제점
9.1. 인적 자원의 질 문제
9.3. 작전능력 부족
9.4. 과다한 병력 규모
9.4.1. 반론
9.5. 해군과의 갈등
10. 사건·사고
11. 기타
11.1. 귀신 잡는 해병대의 유래
11.2. 전우회
11.3. 해병대와 해군의 군사경찰
12. 관련 영상
12.1. 훈련
13. 관련 문서
14. 둘러보기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4]

'''무적해병 상승[5]

해병 귀신 잡는 해병대'''

[image]

'''나는 국가전략 기동부대의 일원으로서 선봉군임을 자랑한다.'''


1. 개요



'''국군조직법'''
'''제2조(국군의 조직)'''
국군육군, 해군공군(이하 "각군"이라 한다)으로 조직하며, 해군에 해병대를 둔다.
'''제3조(각군의 주임무 등)'''
② 해군은 상륙작전을 포함한 해상작전을, 해병대는 상륙작전을 주임무로 하고 이를 위하여 편성되고 장비를 갖추며 필요한 교육·훈련을 한다.
대한민국 해병대는 상륙작전을 주임무로 하는, 해군 소속의 전략기동부대로 1949년 4월 15일 창설됐다. 창설시에는 해군에서 차출한 약 400여 명(장교 26명, 부사관 84명, 병 300명) 정도의 병력밖에 없었고,[6] 광복 후 철수한 일본군이 남기고 간 장비를 긁어모아 사용했다. 이후 꾸준한 성장을 통해 현재는 2개 사단과 2개 독립여단 등을 거느린 군단급 부대로 거듭났으며 총 병력은 대략 29,000명 정도다.[7]
해병대의 최선임 제복군인중장 계급인 해병대사령관이다. 해병대사령부가 해체됐던 1973년부터 1987년까지는 해병대사령관이 아닌 '해군 제2참모차장'이라 불렸다.

KBS 다큐 해병대 국가전략기동부대의 조건

국방TV 본게임 37회 해병대

[그것이 알고 싶軍, 히든스토리] 해병대

2. 상징



2.1. 마스코트


[image]
[image][8]

2.2. 군가


해당 문서 참조.

팔각모 얼룩무늬 바다의 사나이

검푸른 파도타고 우리는 간다

내 조국 이 땅을 함께 지키며

불바다 헤쳐간다 우리는 해병

팔각모 팔각모 팔각모 사나이

우리는 멋쟁이 팔각모 사나이

팔각모 사나이


2.3. 경례 구호


대한민국 해병대는 원래 경례 구호가 충성이었으나 박정희대통령5.16 군사정변 이후 정치적 목적에 의해[9] 해병대를 해군에 강제 배속시킨 이후로 경례구호도 해군과 같은 '필승'이다. 다만 해병대도 군사경찰이나 전차승무병, 자주포조종병 등의 특기를 받고 육군종합행정학교육군기계화학교, 육군포병학교, 제2수송교육연대 등의 육군 예하 교육기관에서 위탁교육 받는 동안에는 육군의 경례구호인 '충성' 구호를 사용한다. 그리고 해병대 중에서도 육군 특전사에 각종 위탁교육 받으러 갈 일이 많은 해병수색대의 간부들과 각 교육대의 교관들은 특전사에서 교육받는 동안엔 특전사 경례구호인 '단결'을 사용한다. 타군의 교육기관에 가서 교육받을 경우엔 당연히 그 부대의 경례구호를 따라서 모든 교육생의 경례구호를 일치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과거에 해병대의 경례구호는 여러 차례 바뀌어 왔다. '해병'을 경례구호로 썼던 적도 있었고, '충성'을 경례구호를 썼던 시기도 있었다. 1970년대 초중반에는 해병대에서도 예하 부대마다 경례구호가 달랐던 시기도 있었는데, 그 당시 대부분의 해병부대에서는 경례구호로 '충성'을 썼다.[10]

3. 수뇌부


대통령
국방부 장관
해군참모총장
해병대사령관
주임원사
[image]
[image]
[image]
[image]
[image]
문재인
서욱
대장 부석종
중장 이승도
원사 양병장

3.1. 해병대사령관의 지위


초기에는 해병대사령관의 계급이 해군참모총장과 같았고,[11] 1969년 1월1일 해군참모총장, 공군참모총장, 해병대사령관이 함께 중장에서 대장으로 진급한 이후에는 대장인 적도 있었으나, 베트남전 철수 후인 1973년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해병대사령부가 해체되고,# 해병대사령관의 자리가 '해군 제2참모차장'으로 바뀌면서 계급도 중장으로 하향 조정되었다.
1987년 해병대사령부 부활 이후, 해병대사령관이 해병대를 다시 지휘하고, 꾸준한 법령과 제도의 정비를 통해 해병대의 정원과 조직을 별도 관리가 하고 있다. 해병대 사령관의 계급은 중장이지만, 1998년부터 해병대 지휘구조 개선의 일환으로 해병대사령관을 대한민국 국군 최선임 중장[12]으로 예우하도록 관행화되었다. 하지만 이 때문에 해병대에서는 중장 보직이 하나뿐이라, 해병대사령관을 마치면 그냥 전역하게 된다. 합동보직의 경우 육해공이 차지하고 있고, 해병대사령관이 중장 의전 1위이다보니 해병대사령관을 마치고 합동참모본부국방부의 다른 중장 보직으로 옮기기도 그렇다.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을 한 다음에 육군참모총장으로 갈 수 없는 것과 같다. 대장으로 진급하려면 합동보직인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만 있는데 합참의장은 대장 1차 보직으로 갈 수 없는 자리다. 한때 합참차장이 대장계급으로 격상되었을 때, 해병대에서는 은근히 합참차장에 해병대사령관이 보임되어 해병대장을 오랜만에 볼 수 있기를 고대했으나, 합참차장직이 다시 중장계급으로 환원되고 말았다.
2011년 10월 국군조직법이 개정되면서 해병대의 인사, 군수, 행정 자치권을 강화하는 조치로, 전역증 발급 등 일부 해군참모총장의 권한을 해병대사령관이 위임 받았다.##
2018년 7월경 대한민국 국회 국방위원회가 해병대 4성 장군 진급이 가능하도록 법률 개정안을 추진하면서, 국방위원장#s-1 안규백 의원을 선두로 해병대사령관을 대장으로 진급 및 합참의장 혹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자리 등 4성 장군 보직으로의 전출이 가능하도록 검토 중임을 밝혔다.
2018년 9월 13일 안규백 의원이 군 인사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
2019년 2월경 열린 국방부 주재 고위 정책간담회에서 대한민국 육군, 대한민국 해군, 대한민국 공군대한민국 국방부가 이러한 군 인사법 일부 개정안에 찬성하는 쪽으로 의견을 합의하였다. 국방부가 개정안에 찬성함에 따라 해병대 대장 진급이 법적으로 가능해졌다.

4. 역사



해병대 창설 58주년 홍보 영상

4.1. 창설


대한민국 해병대는 1949년 4월 15일 진해 대한민국 해군덕산비행장에서 창설되었다. 초대 사령관만주군 간도특설대 창설 멤버 출신인 신현준이었다. 여순 제14연대 반란사건 이후 당시 해군 장교로 있던 신현준이 해군본부에 "우리도 육전대 같은 상륙부대가 있었으면 바다를 통해 진압병력을 빠르게 기동시켜서 일이 커지기 전인 초기에 진압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보고했고, 이를 설득력 있다고 판단한 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 손원일 제독이 해병대 창설을 승낙하게 된 것이다. 해병대 창설 아이디어를 처음 제시하고 건의한 인물인 신현준은 해군본부의 창설 허가가 나자 해병대 창설을 직접 맡아서 주도했고 초대 대한민국 해병대사령관이 된다.
이후 진주, 제주 등지에서 빨치산 토벌 임무에 투입되는데, 특히 1949년 12월부터는 4.3 사건이 한창이던 제주도의 계엄임무를 도맡았다. 이전의 군경 토벌대가 자행한 무차별 학살로 가려진 측면이 있지만, 해병대 역시 엄연히 민간인 학살을 자행하였다. 당시 성산포경찰서장 문형순이 해병대 정보참모 김두찬으로부터 받은 예비검속 대상자 총살 지시 공문을 거부한 일화는 유명하다.

4.2. 6.25 전쟁


6.25 전쟁이 한창 벌어지던 1950년 8월 17일, 해군과 해병대의 통영상륙작전김성은 중령이 이끄는 김성은 부대가 경상남도 통영에서 북한군 병력을 무찌르고 통영 탈환에 성공하였다.
통영상륙작전 이후 인천상륙작전으로 대표되는 경인지구작전, 서울탈환으로 대표되는 서울 수복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여 해병대는 이승만 대통령의 큰 신임을 얻었고, 후에 이승만 대통령은 일개 해병대 대대장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헬기를 타고 직접 '''생일케이크'''를 전달한다. 이 케이크를 전달받은 대대장이 후에 제6대 해병대사령관이 되는 공정식[13]이다.
1951년 6월에는 미 해병대 제1사단 5연대로부터 "도솔산 지구전투"를 인수하여 승리로 이끌었다. 이 전투에서 2,263명의 북한 공산군을 사살하고 44명을 생포했으며, 개인 및 공용화기 등 198점을 빼앗는 큰 전과를 올렸지만, 아군 또한 7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산악전 사상 유례없는 대공방전으로서 '''대한민국 해병대 5대 작전'''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도솔산 지구전투의 승리로 이승만 대통령은 해병대에 '''무적해병(無敵海兵)''' 휘호를 하사하였다. 후에 이 전투를 칭송하기 위해 군가 '도솔산의 노래(도솔산가)'가 작곡된다.

4.3. 5.16 군사정변


1961년 김포에 주둔하며 최전방 경계 및 방어 임무를 맡고 있던 해병대 제1임시여단[14][15]의 병력이, 5.16 군사정변에 가담하여 서울로 진입하였다. 김포를 지키던 해병대 병력을 '''북한의 남침 위험이 상존하는 요충지인 김포를 거의 비워두고 쿠데타를 위해 서울로 진격한 것은 위험천만한 반역 행위'''였으나,[16] 쿠데타에 가담한 해병대 장성들은 이후 오히려 승승장구 출세를 하게 된다.[17] 그러나 여전히 대한민국 국군의 주력은 육군이었으며 육사 5기생[18]과 육사 8기생들이 5.16 군사정변의 핵심 세력이었다. 그 후로 후술하듯이 박정희 대통령해병대사령부를 해체하는 등 실권을 약화시켰다.[19]

4.4. 베트남 전쟁


베트남 전쟁을 위한 대한민국 국군 전투부대의 파병이 결정나자 비둘기 부대에 이어 해병대의 청룡부대육군맹호부대를 파병하기로 결정하였다. [20] 자세한 것은 베트남 전쟁/한국군 문서 참조.
파병 병력을 꾸리기 위해 해병대 제1사단의 병력을 바탕으로 청룡부대라는 별명이 붙여진 제2여단을 창설했고, 베트남 파병이 종료되어 대한민국으로 철수한 뒤로는 이 제2여단이 김포에 주둔하며 김포·강화 지역 경계/방어 임무를 맡게 된다. 이후 2여단은 1981년에 해병대 제2사단으로 증편된다.
그 전까지 김포 지역에 주둔하며 김포/강화 경계임무를 수행하던 해병대 5여단은 2여단과 경계임무를 교대한 뒤 포항해병대 제1사단으로 돌아가서 예하 부대에 흡수되면서 없어졌다.

4.5. 해병대사령부 해체 및 재창설


대한민국 국군월남파병이 끝난 후 군조직 개편의 목적으로 '''1973년 10월 10일에 해병대사령부가 해체'''되었다.# 이 시기엔 공식적으론 해병대라는 명칭조차 못 썼고, '해군해병'이 정식명칭이었다. 그리고 해병대사령관해군 제2참모차장으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계급 역시 중장으로 돌아갔다. 병과도 해군보병, 해군포병, 해군기갑 등으로 서류상 등재된 명칭이 바뀌었고, 병들은 해상병(수병)/상륙병(해병)으로 구분됐다.[21]
그러다가 전두환 정권 시절이던 1987년에 다시 해병대사령부가 부활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심지어 당시에 정부가 해병대사령부 부활을 추진하자 해군 측에서 적극적으로 반대했는데도 부활을 관철했고, 결국 해병대사령부 부활 쪽으로 전두환 대통령의 의중이 굳혀지자 해군 측에선 사령부는 어쩔 수 없이 재창설시키더라도 부대 명칭은 '해군상륙군사령부'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해병대'라는 독자적인 원래 부대명칭이 부활하는 것에 반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정부는 결국 '해군'자를 떼어내고 '해병대'라는 독자적인 명칭으로 부활시켜주는 큰 선물을 해줬다. 해병대사령부를 다시 창설하더라도 만약 해군 측의 주장대로 했으면 부대 명칭은 해병대가 아니라 해군상륙사단 등이 될 뻔했다.[22]
해병대사령부 재창설을 설득하여 대통령의 승낙까지 받아낸 인물은 해병대 성병문 중장[23]이었는데, 해병대 재창설을 반대하는 해군본부의 눈을 피해 국군보안사령관, 합참의장, 국방부장관 등과 접촉하여 설득한 끝에, 드디어 '''1986년''' 8월에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재창설 승락을 받아낸다. 그러나 재창설을 위한 구체적인 실무작업에 착수한 뒤 사령부 및 부대의 명칭, 권한 범위, 명령/지휘체제, 예산 등의 문제를 놓고 해군과 해병대간에 이견이 심해서 관련 법령 내용과 최종안을 확정 짓지 못하고 무려 1년여간이나 해군 - 해병대 간 알력싸움 줄다리기를 한 끝에 1987년 10월경에 모든 사안이 확정되었고 같은 해인 '''1987년 11월 1일'''에 공식적으로 재창설된다.[24]

5. 조직 및 편제




  • 해병대사령부 - 경기도 화성시
    • 해병대 제1사단 (해룡, 경상북도 포항시, 포항 해군기지)[25]
    • 해병대 제2사단 (청룡, 경기도 김포시, 인천광역시 서구강화군)
    • 해병대 제6여단 (흑룡,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
    • 해병대 제9여단 (백룡, 제주특별자치도)[25]
    • 해병대 연평부대 (공룡,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
    • 해병대 교육훈련단 - 경상북도 포항시, 포항 해군기지
    • 해병대 군수단[26] - 경상북도 포항시, 포항 해군기지
    • 해병대 항공단 - 경상북도 포항시, 포항 해군기지
    • 해병대 특수수색대
이 외에 대한민국 해군 산하에 있는 해병 부대들도 있다. 이들은 해병대사령부가 아닌 해군작전사령부 밑에 있으며, 지휘도 해군으로부터 받고, 해군 및 해병이 합동으로 근무한다.
그 외에도 경계근무 등 지상작전 경험이 없는 해군 경계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해병대 대위급의 장교가 각 함대에 경비대장 혹은 지상작전담당이라는 직책으로 파견, 경계업무에 대한 실질적인 컨트롤을 하거나 조언을 해 주고 있으며, 청해부대 등의 해군 함정 해외 파병 시에도 해병대원이 항상 경계대로서 함께 파병된다.
각 해군부대의 경비중대 등 경비부대에는 옛날엔 해군 군사경찰이 아닌 해병대원들이 들어갔었다. 몇몇 예비역들이 자신들이 해군의 개냐며 기지 경비 업무를 맡지 않게 해 달라고 우긴 게 관철됐는지 현재는 진해 해군기지를 경비하는 진해의 해병대 육상경비대를 제외하면 그 외의 해군기지 경비업무는 없어졌다. 그러나 일각에선 해군 경계군사경찰을 뽑지 말고, 다시 해병대 보병들을 경비중대에 편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아무래도 지상전 교육을 더 받고 소총 등 육전용 병기에 익숙한 보병이 경계 근무에 더 적합하다는 것으로, 해병대 예비역 내에서도 숫자 늘리고 좋지 않냐며 이 안에 찬성하는 목소리도 있다. 참고로 해군 군사경찰 장교 역시 임관/전과 후 받는 초등군사반 교육을 해병대에서 받는다.
해병 부대의 명칭은 1973년에 해병대사령부가 폐지된 후에는 해병대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론 못 쓰고 "해군 제1해병(상륙)사단"과 "해군 00해병대대" 등으로 불렸다가[27], 1987년 해병대사령부가 재창설된 이후엔 다시 '해병대'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고 예하 부대명도 해군을 해병으로 대체한 "해병 제1사단", "해병 제00대대" 등으로 부대 공식 표기명이 바뀌었으며 공식문서와 부대 깃발의 표식 또한 변경되였다.


5.1. 해체된 부대




5.2. 해병대 독립 문제


일부 해병대 예비역들은 '해군으로부터의 해병대 완전독립과 해병대사령관의 대장 보임'을 이루어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고작 2개 사단 + α 병력으로 대장직을 요구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물론 해병대사령관이 2년 임기를 마친 후에도 진급하거나 다른 직위로 전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해병대 전역자들이 과거엔 해병대가 해군으로부터 독립된 부대였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실제론 해병대는 해군으로부터 독립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국군조직법 중에서 국군이 3군 편제이고 해병대가 해군 소속임을 분명히 한 제2조 1항 "국군은 육군, 해군 및 공군(이하 "각군"이라 한다)으로 조직하며, 해군에 해병대를 둔다."라는 조항은 해병대 창설 시부터 지금까지 바뀐 적이 없다.[28]

해병대령[대통령령 제88호, 1949. 5. 5., 제정] - 제1조 해군에 해병대를 둔다.

해병대령[대통령령 제672호, 1952. 8. 16., 전부개정] - 제1조 해군에 해병대를 둔다.

국군조직법[법률 제1343호, 1963. 5. 20., 전부개정] - 제2조(국군의 조직) ① 국군은 육군, 해군 및 공군(이하 "각군"이라 한다)으로 조직하며, 해군에 해병대를 둔다.

국군조직법[법률 제2624호, 1973. 10. 10., 일부개정] - 제2조 (국군의 조직) ①국군은 육군·해군 및 공군(이하 "각군"이라 한다)으로 조직한다. <개정 1973. 10. 10.>

국군조직법[법률 제4249호, 1990. 8. 1., 일부개정] - 제2조(국군의 조직) ① 국군은 육군, 해군 및 공군(이하 "각군"이라 한다)으로 조직하며, 해군에 해병대를 둔다.

심지어는 해병대를 해군에서 완전히 떼어내 제4군으로 독립 시켜 별도의 해병사관학교를 두고, 해군상륙함 전력도 해병대로 이관하자는 과격한(?) 주장도 나오고 있다.[29][30][31]
해병대의 규모는 육군으로 치면 군단급인데, 육군의 군단장, 군단급 규모를 가지고 있는 수도방위사령관 등도 역시 별 세 개다. 파워게임이 되기에 십상인 예산쟁탈전의 특성상, 오히려 해병대가 해군에서 독립한다면 타군보다 모자란 장성의 숫자 때문에 예산 수준이 더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세계 해병대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크고 독립적이라는 미 해병대미 해군에 완전히 독립된 부대가 아니라고 하는데, 하물며 대한민국은 미국과 환경과 여건이 많이 달라 대한민국 해병대가 해군에서 독립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해병대사령관대장(계급) 진급이 가능하게 되었어도 '독립적인 군이 된다'는 뜻은 아니다.[32] 대한민국 해군 소속이지만 반 독립적인 성격이어서 스스로 앞가림을 해야만 하는 해병대의 특성상 규모가 어느 정도 이상 유지되어야 위상이 보존될 것인데, 규모가 작은 채로 독립한다면 대한민국 국군중에서 해병대의 비중과 발언권도 약해져 결국 손해를 보게 될 수 있다. 육군지상작전사령관, 제2작전사령관 역시 별 네 개지만 그들도 모두 육군 소속이지 개별적인 독립 군종이 아니다. 미 해병대의 경우 역시 육, 해, 공, 해병 이런 병 자체가 다른 하나의 독립된 군이 아니라, 국내와 비교하면, 1군, 2군, 3군과 같은 형태의 '군'에 비교될 수 있다.
"미 해병대미 해군 소속이 아니며 국방부 산하 해군부문민통제를 받는 것이며 육군, 해군, 공군, 우주군, 해안경비대와 함께 미군을 구성하는 6군 중 하나"라는 주장도 있다. 다만, 이는 현 미 해병대의 규모가 커져서 그렇게 보일 뿐 인사명령 등에 있어서 해군과 해병대가 따로 명령이 나지 않는다는 점, 해군 법무실과 군종실 등이 해군과 해병을 불문하고 함께 근무하며 법무, 군종 분야에 있어 해군과 해병대를 가리지 않고 업무를 처리하는 점 등을 통해 독립된 군종으로 간주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부분은 미국 우주군도 마찬가지로 미 공군과 같은 미 공군부 예하로 되어 공군장관의 관할을 받고 있다. 심지어 국방부도 아니고 국토안보부 산하 조직인 해안경비대도 어느 정도 해당하는 설명이기 때문에 관점에 따라 설명이 달라지는 애매한 부분이 적지 않으나, 해안경비대 역시 전시에 대통령령이 떨어지면 국방부 해군부 산하로 파견 되는 등 해군과 분리해서만 생각할 수는 없기 때문에 해군과 겹치는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해군과 해병대의 인사권이 독립되어 있다고 하나, 이는 해군참모총장#s-3과 해병대사령관이 각각 자군의 인원을 관리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자기 산하 부대의 인원에 대한 독립된 인사권을 수행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해병대 사단 예하 의무부대군의관이나 의무병은 해군 인원이나 해병부대원이므로 해병대사령관이 인사권을 행사하며, 항공모함에 배속된 해병대 경비소대원은 해군참모총장의 인사권 안에 있는 식이다. 소속 다르고 지시만 해당 부대에서 받는 파견이 아닌 아예 서류상으로도 부대원이 되는 배속 형태로 근무하는데 이는 육공군과 달리 타군 소속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육군의 1군을 예시로 들면 1군에는 제1군수지원사령부가 1군의 보급 등을 담당한다. 그러나 해병대의 경우 규모가 군단급이기 때문에 보급 등을 해군으로부터 받게 되는 차이.
다만, 해병대 자체가 해군의 상륙병이지만, 대부분의 수병(해상병)과는 다르고, 오히려 육군에 가깝기 때문에 보급이나, 전투지원 등을 스스로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더 이치에 맞다. 실례로 2012년부터 해군군수사령부에서 담당하던 해병대에 대한 보급 업무를 해병대 상륙지원단이 이관받았다. 해병대 상륙지원단은 현재는 해병대 군수단으로 개편되었다. 해병대는 해군의 상륙전 전담 전력으로, 물을 통해서 침투↔후퇴 등의 차이가 있을 뿐 크게 보면 결국 같은 지상전을 펼치는 지상군 전력이다. 단, 상륙작전을 수행하지 않게 된다면 해병대가 따로 존재할 의의가 없어진다.
현재의 군 개혁도 육군 중심적인 데다가 장군들 숫자가 많은 육군이 더더욱 자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려고 하고 있다며 해군/공군이 크게 반발하는 상황이다. 기본 임무 장비의 대부분이 육군과 겹치는데 애초에 육군이 자기네 기계화사단에 배치할 장비를 순순히 양보해줄 리가 만무하다. K-9 자주곡사포가 해병대에 먼저 배치된 것도 서해교전으로 인한 정치적 결정 때문이었다. 그리고 해병대 기갑부대는 M48 전차, 가장 구형인 90mm포를 장비한 전차들도 아직 운용 중이다. 규모가 엄청난 미 해병대조차도 예산 문제로 미 육군M1A1전차를 굴리던 걸프 전쟁에서 M60 패튼을 사용했다.
사실 육군이 통 크게 자기들 기보대대에 배치될 장비를 해병대에 넉넉히 양보해준다 가정하더라도, 애초에 해군과 함께 가야만 하는 해병대 특성상 군함/잠수함/고속정 등의 해상 전력이 최우선적으로 투자될 수밖에 없다. 이는 공군전투기/헬리콥터/수송기 등의 항공부대 우선으로 예산을 편성하지 지상 경계부대인 군사경찰을 우선 키우는 게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해병대의 인사권 독립 문제가 논의되고 있지만 4군 체제로 독립할 가능성은 낮다. 육군을 보더라도, 48만의 병력을 총괄하는 육군참모총장이 육군의 1/20 이하의 병력을 지휘하는 해병대사령관과 동급이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상황에 따라서는 해병대가 아닌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같이 육군이 상륙작전에 투입되는 경우도 있는 데다가 해군에서 독립해서 나오면 육군보다 장점이라고 할 해군과의 협동전에서 육군과 비슷하게 바뀌게 되는데, 그러면 그 인원을 육군 편제에 집어넣고 일부 육군 부대를 상륙전 전문부대로 훈련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다. 더군다나 일단은 육군 소속이니 장비도 최소한 다른 육군부대와 동급으로 갖추게 될 것이다.
해병대를 독립시켜서 '국가 전략 기동군'으로 해병대를 운영하자는 주장도 있지만[33], 그러면 애초에 상륙작전 부대로서의 해병대 본질이 사라진다. 애초에 한반도북한군에 대응하기 위한 부대인 데다가, 전략기동군이라는 개념 자체가 그다지 유용한 것도 아니다. 당장 한반도를 벗어난 곳으로 투사할 능력은 둘째치고 과연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평화유지 임무 외에 독자적으로 군대를 해외에 투사할 이유도 없거니와 그럴 마음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더군다나 그럴 능력도 충분치 않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함부로 독자적으로 군대를 해외에 투사했다가 꼬투리를 잡힐 수 있기 때문에 대응책이 필요해 보인다.[34]
해병대 장교들은 해군사관학교사관후보생해군과 통합교육을 받는 과정들이라 기수가 같아 해군 장교들과 동기이며, 편제에 대해 정확한 교육을 받아 해병대 독립은 말이 안 되는 소리이고, 해병대는 엄연한 해군 소속의 부대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당연히 상부인 해군에 대해 모군이라 생각하며 육군 출신이 해군을 깔 때 해군 출신들과 같이 화내주기도 하고 육군과 해군의 알력 다툼에서도 해군 편을 들어준다.

5.2.1. 해병특수군 창설 논의


정치인 홍준표의 지론으로 국군의 모든 특수부대를 해병대와 통합, 미국의 USSOCOM보다 더 앞선 조직인 '''해병특수군'''을 창설하자는 주장으로, 홍준표가 제19대 대선에서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으며, 대선 이후에도 2020년 7월 6일 홍준표 외 12인의 국회의원들이 대한민국 해병대육군특수전사령부, 해군특수전전단, 공군 공정통제사, 제6탐색구조비행전대 등 모든 국군의 특수부대를 통합하여 육해공군과 동급의 제4군인 '''해병특수군'''을 신설하고 그 수장을 대장인 해병특수군참모총장으로 보임하며 참모총장과 참모차장은 소속이 다른 군으로 보임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군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이다.# 관련 기사하지만 서욱 국방부장관은 해병대와 각군 특수부대의 임무와 편제가 상이해 통합이 어려움을 주장했다.

5.3. 감축 논의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 지나치게 높은 현역 판정률은 문제의 소지가 크기 때문에 현역병 인원을 30~40만 명으로 감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중이다.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을 비롯한 원내 정당과 국방부에서도 높은 현역 판정률은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다. 복무부적격자들이 일으킨 사고의 규모가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은 마땅한 해결책이 없어서 현행유지 말고 주장할 안건이 없는 것이다. 만약 감축이 현실화할 경우 해병대와 육군의 소총수#s-3부터 줄일 것이다.
세간에서 해병대 예비역들의 그릇된 행태를 비판하며 질타하는 일은 잦지만, 해병대가 하는 역할이 엄연히 존재하고, 북한군과 효율적으로 대처할 전력이 생기지 않는 이상 해체는 불가능하다. 1967년의 육군은 해병대의 역할을 하는 상륙사단 설치 계획을 수립하고 준비하였다. 그리고 1968년 1월 23일에 제2보병사단을 산악사단, 제5보병사단을 공수사단, 제11보병사단을 상륙사단으로 전환한다. 하지만 3개의 특화 사단은 대규모의 무장공비 침투사건 이에 관련된 지휘관에 대한 문책, 향후 대간첩작전 대비책 마련에 군 수뇌부의 모든 신경이 쏠리면서 특화사단 운영에 사용될 예산이 줄어들면서 특화사단 유지를 포기하고 일반사단으로 환원되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래에 해병대가 감축될 가능성은 절대 적지 않은 상황이다.
일단 3군 공통의 과제는 자동화와 무인화, 차량화를 통해서 병력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만 50~60만 명에서 30~40만 명으로 감축되면 대한민국 국군의 공격력은 자연히 줄어들게 된다. 그렇다고 감축하지 않고 앞으로도 병력을 현행 수준으로 유지하게 되면 군 복무에 적합하지 않은 남성들과 여성들도 군대에 끌려가야만 가능하다. 병력 감축 없이 50~60만 명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 역시도 존재하지만 그러려면 찾아올 부작용이 크다. 군 복무기간 연장과 현역 판정률 100%를 실시해야 하는데 정치적 충격이 큰 이슈인 복무기간 연장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고 환자들까지 징병하여 인원을 채운다고 군대가 올바로 운영되기는 힘들다.[35] 국군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인원이 입대하면 자기 보직에서 신체적인 한계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당사자 역시 질병의 악화와 후유증을 얻어가면서 선후임과의 불화를 만드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복무기간을 1년 9개월로 늘린다고 병력 확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정신과 관련 기준이 더욱 강화된 현재 한국의 현역 판정률은 무려 86~87%에 육박한다. 정신과 기준과 신체 기준이 강화되기 전의 현역 판정률도 높은 편인데 저출산 문제로 줄어드는 입영 자원 문제를 해결한다고 1년 9개월의 복무기간, 50만 명 병력 유지를 시행하려면 1~2개월마다 군 내 부적응자가 일으킨 사고를 저녁 뉴스에서 봐야 하던 시절과 같은 수준으로 징병해야 한다.
최전선에 근무한 해병대 출신 상당수가 자신들이 경계 근무에 투입되어 육군 해안 경계 부대와 같은 과업을 하는 것에 불만이 많았다[36]. 따라서, 해안 경계 역할을 주로 수행하는 해병대 제2사단의 섹터를 육군에 넘기고, 2사단이 보유한 기존 인원과 상장, 수색대 등 해병대 특유의 병과를 상륙작전의 주력인 해병대 제1사단에 합치자는 주장도 있다.[37] 즉, 2개 사단의 병력에서 사람 수를 줄이는 대신 1사단을 정예화하여 상륙 업무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애당초 해병대 제2사단은 수도권에 인접한 경기도 해안 일대를 경계하고 방어하는 것이 가장 주된 존재 이유이며 또 하나의 목표는 전쟁 발발 시 북한 상륙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해병대가 주둔함으로써 북한을 압박하기 위함도 있다. 정예화를 이유로 국가가 해병대 제2사단에 부여한 임무를 육군에 전가하려는 것은 2사단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고 2사단이 주둔함으로써 얻는 이점을 포기하자는 것과 다름없다. 다만 해당 방안이 대안 중 하나로 제기되었던 것은 사실이며, 이는 해당 이점을 포기하는 것을 고려해야 할 정도로 인원수급 상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도 된다. 전체 병력규모는 30~40만명대로 감축되는 와중에 해병대만 병력규모를 억지로 유지한다면 인원 모자라서 편제 빵꾸나게 될 테고 상륙도 못하고 압박도 못하게 되느니 둘 중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게 낫다.
그리고 무엇보다 해병대는 공격부대이자 지원부대이며 특수부대이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소리도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병력이 부족하면 공격부대와 지원부대가 1순위로 군축의 칼날을 맞게 되어있다. 유럽과 구소련의 전례도 그러하였으며 어쩔 수 없다. 극단적으로 상륙작전 포기 vs DMZ 방어 포기(포병전력 등 FEBA 감축)를 저울질하면 당연히 전자를 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2021년 현재 이미 대한민국 인구는 감소세로 전환되었기에 재래식 전력의 질적인 우위는 유지할 수 있으나 양적인 우위 내지는 허용가능한 수준의 열세를 유지할 수 있을 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으로 최소한의 병력만 남기고 감축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다. 당장 지금 나오는 병력부족 해결 방안들 중에 북한 점령 포기, 더 심한 것으로는 FEBA-A 지역에 대한 방어 포기 및 민통선 하향조정후 주민 이주, 더더욱 극단적으로는 아예 핵무장 내지는 미군 전술핵무기 재배치를 통해 재래식 전력으로 북한 핵전력을 찍어누르려는 시도(참수작전, 평양 북진 등)는 때려치우고 똑같이 핵에는 핵으로 맞서자는 대안까지 거론되고 있는 판국인지라. 반대쪽 극단으로는 4급 판정자 현역 징집, 여성 징병제같은 것이 있지만 하여간에 양쪽 다 영 좋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특히 4급 판정자 징병은 1994년, 2006년 두차례 시범시행해본적이 있지만 도저히 답이 안 나와서 환원해버린, 실패한 대안이다. 환자에게 전투복을 입힌다고 한 명 분의 역할을 하는 우수한 전사가 될 리는 없으니. 정신적 질환자가 사고를 쳐놓은 게 워낙 거해서 묻혔을 뿐 신체적 질환 또는 장애로 보조가 붙어야 하고 그로 인해 건장한 병력까지 손실되게 되는 문제도 충분히 심각했다.[38]

6. 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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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병대에는 선임이 전차를 조종하면 후임은 전차에서 떨어져 나오는 볼트너트를 주우면서 구보로 따라간다는 농담이 있다. 해병대가 이러한 구식전차를 모는 이유에는 예산집행에서 육군에 밀리고 그 나머지도 해군이 먼저 가져가기 때문에 열악할 수밖에 없다[39].
해병대 전차전력은 절반가량이 K1 전차로 대체되었으나, 나머지는 최근까지 M48A3K를 사용하고 있다가 2017년 말쯤 K1E1 전차로 전량 교체된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사 해병대 연평부대육군보다 먼저 선행양산형 K-9 자주곡사포를 지급받았다. 대신 K-2 흑표 차기 주력전차는 포신#s-1이 너무 길어서 상륙함 탑재에 적합하지 않고 중량도 좀 무거운 편이라 해병대에선 성능개량형 K1A1#s-4.2을 원하는 것 같다.
같은 맥락으로 K-9 자주곡사포보다는 상륙작전을 수행해야하는 해병대 제1사단의 경우도 K-55A1을 선호한다. 차체 크기도 차이가 크며, 중량도 2배 가까히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특히 중량의 경우 상륙하는 지형이 해안 같은 경우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이런 중장비와 화력 쪽으로는 제1사단만 기준으로 한다면 미국 해병대에 크게 떨어지고 영국 해병대보다는 좀 많은 정도이다[40]
2006년부터 매년 KCTC훈련에 참가하고 있는 해병대가 드디어 2010년에 전갈대대를 패배시켰다는 취지의 "KCTC 무패 신화 무적해병대가 깼다" 라는 제목으로 국방일보 기사#가 났고 이를 몇몇 일간지에서 재인용 기사를 냈지만 이는 오보였다. 일부 병력이 3참호까지 도달한 건 맞지만 생존 병력이 너무 적어서 전투 속행 불능 판정을 받아 그것으로 훈련이 종료되어서 3참호선 넘어에 있는 최종 대항군 본부 점령까진 시도하지 못했기 때문에 해병대가 점령에 성공한 건 아니었다. 이에 과학화 훈련단이 기사에 나온 "깼다" 와 "진입(점령)" 등의 표현이 사실과 다름을 지적하며 국방일보에 항의했고 이 기사 표현들이 잘못되었음(오보)을 해당 국방일보 기자가 인정하였다. 훈련에 직접 참여했던 해병대 대대장도 그 보도가 자신의 브리핑 인터뷰 내용을 잘못 이해한 국방일보 기자의 오보였음을 인정하는 글을 게재하였다.
사실 과학화 훈련이란 게 대항군 대대와 승패를 가리기 위한 훈련이 아니라, 훈련부대의 훈련상황을 실전적으로 묘사하기 위하여 대항군 대대를 운용하며, 훈련간 발생된 훈련부대의 전술 조치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시행되는 훈련으로서 승패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훈련이다. 전갈부대는 전장 환경을 훤히 알고 있고 여러 상황을 컨트롤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극 초반에도) 바로 이길 수 있다. 그러나 전갈부대의 승리가 훈련의 목표가 아니라, 말 그대로 훈련부대를 훈련하고 실전과 유사한 경험을 많이 쌓고 돌아가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그래서 훈련부대 측이 요청하면 훈련부대 전사자 중 일부 인원을 다시 살려주기도 하고 공격 강도도 적절히 조절해주면서, 되도록이면 훈련이 바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41]
해병대 자체의 과학화 훈련장을 만든다는 이야기도 한때 있었으나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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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대한민국 국회 국방위원회의 해병대 국정감사에서 해병대가 일반 육군보다도 사격훈련량이 적다는 사실이 탄로나기도 했던 것으로 보아, 주로 해병수색대를 앞세운 대외적인 홍보와는 달리 수색대를 제외한 해병대의 실제 훈련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2011년에 이렇게 국방위 의원들에게 해병대의 부실한 사격훈련 실태에 대한 지적과 꾸지람을 들었는데도, 2013년의 해병대 국감에서도 해병대 전투병의 사격량이 육군 전투병 사격량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고, 인가된 교탄의 일부만 사용했다는 사실이 지적되는 등 여전히 해병대 사격훈련이 허술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을 역임했던 김장수 국방위 의원은 해병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군내에서는 '''"해병대는 육군보다 20년 이상 관리능력이 뒤떨어져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혹평했고, 이에 유낙준 해병대사령관은 동감한다며 실상을 인정했다.
보병, 통신, 해병대만의 장비인 상륙장갑차, 야전포병 등을 제외하고는 자체적으로 주특기 교육을 할 수 있는 체제가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상당수의 병과가 타군에서 위탁교육을 받는 형편이다. 기갑, 방공, 공병, 군사경찰 병과와 화학, 정보 및 일부 통신 주특기는 육군에 위탁되며 보급, 조리, 경리, 전산 등 병과는 해군에 위탁된다. 후반기 교육을 육군으로 갈 경우 경례 구호가 다르기 때문에 혼동이 생기기도 한다. [42] 아무래도 육군 후반기 교육장은 자율적인 분위기인 곳이 많은지라 해병대 교육훈련단에서 갖추어진 군기가 빠져서 오는 경우도 있다. 반면 같은 군인 해군으로 갈 경우 경례 구호 등을 헷갈릴 걱정은 없다. 해군도 해병대 못지않게 후반기교육 기관들의 분위기가 빡세기 때문에 이쪽으로 간 대원들은 상대적으로 교육훈련단에서의 군기를 잘 유지하는 편이다. 신병 및 부후생 등 양성 과정에서 워낙 빡세게 굴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편하다고 느끼는 편이고 실무보단야 당연히 널럴하지만, 파견 오는 육군 인원들이 기겁할 정도로 제식 등이 빡센 편이다.
전방에 배치된 해병대 제2사단6여단의 경우 해병대 제1사단에 비해 위수/경계의 비중이 높고 훈련 기회는 상대적으로 적다. 워낙 넓은 섹터를 담당하기 때문에 사실 경계 근무만 서기에도 인원이 모자란 판이다. 오죽하면 대한민국 해병대는 미국으로 치면 미 해병대보다는 오히려 해안경비대에 더 가깝다는 말이 있을 정도. 물론 해병대가 해안 경계를 하는 것이 잘못된 건 아니다. 교리상 해군의 보병부대인 해병대는 상륙도 상륙이지만 본래 해군기지 육상경비를 위해 만들어졌다. 어느 나라나 해군에 지상전부대는 다 있으며 목적은 해안가의 육상경비이다.
대한민국 국군만 원래 해병대 경비대대가 들어가던 항만방어대대/전대에서 해병대 예비역의 꼬장질 땜에 해군기지 경비 임무가 사라졌고 해군 경계군사경찰이 대신 해안경계를 서며 휴전선과 가까운 강원도 동해안에는 육군이 들어가서 해병대가 해안경계를 서는 것이 이상해 보일 뿐이다. 반론을 제기하자면 해병대 제2사단 역시 임무에 엄연히 "서해안 및 수도권 도서지역 경비"와 함께 "의명 서해5도지원" 그리고 "연안 상륙작전"이 들어가 있다. 해안경비투입 기간이 끝나서 예비대 차례가 된 부대와 기갑, 상륙장갑차, 포병 등 해안에 안 들어가는 지상전 부대들을 중심으로 훈련을 실시한다. 그리고 해병대가 제1사단제2사단, 그리고 제9여단에서 각각 동,서,남해안 전개 신속대응부대를 운용하기 시작하기도 했다. 적군의 해안선 침투나 도서 강점 등의 상황에 있어 바다를 잘 아는 지상군인 해병대가 단 시간내에 대응할 수 있는 셈.
반면 해병대 제1사단보병은 해안경계근무가 제2사단 및 도서부대보다는 적은 편이며, 1사단의 보병대대 중 기습대대는 고무보트(IBS) 훈련, 공정대대는 공수훈련, 유격대대는 유격훈련, 이런 식으로 각 대대의 특성에 따른 훈련을 받는다. 이렇게 해병대 제1사단 예하의 보병연대는 각각 기습(IBS), 공정, 유격 대대로 특화되어 있다.[43] 해병대 제1사단 보병대대의 특화대대 체제는 1970년대에 해병대 제1사단장과 해병대사령관[44]을 지냈던 이동용 장군이 만든 것이다.[45]
이동용 장군이 1사단장과 사령관을 지내던 시절, 1사단에 IBS(고무보트)훈련과 공수훈련을 도입한 뒤 기존 1사단 보병대대들을 고무보트/공수/유격 이 3가지 중 하나로 특성화시켜서 각각 해당하는 훈련을 받는 특화대대 체제로 가자는 구상을 했고, 이에 따라 1974년에 해병대 1사단의 보병 대대들이 기습(IBS)대대, 공정대대, 유격대대로 각각 전환되었다. 이렇게 이동용 장군은 대한민국 해병대 1사단의 훈련 도입과 편제 개편 면에서는 큰 공적을 세웠다.[46]
물론 1사단도 2사단에 비해선 경계근무 부담이 적은 편이라는거지, 1사단 보병들도 포항에서 울산까지의 해안방어 경계근무를 서고, 포스코 등 임해공업지역의 주요시설과 포항공항 등을 경비하는 포항특정경비지역사령부 로서의 경계근무도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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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포 60분초 공비침투 사건이 벌어졌던 장소
물론 해병대 제1사단이 경계를 맡는 경상북도포항-경주시-울산 해안선은 후방 해안선이라서 격오지도 적고 해서 김포.강화군보다는 여건이 낫다. 과거에 북한 간첩의 침투, 월북시도, 귀순사례 등이 많았던 해병대 제2사단6여단연평부대와는 달리 1사단에선 실제상황은 일어날 일이 별로 없다고 봐도 된다. 다만 예전엔 1사단 섹터에서도 북한의 간첩 침투 사례가 종종 있었다. 예를들어 감포 60분초 사건같이 북한간첩에 의해 해병대 1사단의 경계가 뚫리고 해병대원들이 전사하는 사건도 있는 등 가끔 동해남부로도 침투를 종종 시도했었지만, 현재는 대한민국 해군의 전력이 증강되기도 하고 중국이나 러시아와 수교를 한 상태라 조선족 등으로 위조여권을 이용해 들어오는게 더 쉽기 때문에 몰래 침투하는 공비 침투는 거의 없어졌다.
게다가 동해를 방어하는 해군 1함대도 놀고있는 건 아니고 출항시 전투배치 훈련 등으로 적 함정 침투에 항상 대비하는지라 만에 하나 침투를 시도할 경우 1함대의 구축함이나 호위함, 초계함, 고속정 등에 의해 제대로 박살날 것이다. 과거와는 달리 대한민국 해군 전력이 급성장하여 이것을 도저히 북한이 어떻게 뚫고 후방으로 내려오기 힘든 현재는 후방 해안 경계가 과거만큼의 큰 의미는 없다. 부산광역시해운대광안리해수욕장에서 경계병을 볼수 없는 것을 생각하면 편하다. 이런 지역들은 대부분 대한민국 해군 3함대대한민국 해양경찰청이 해안경계를 수행하며 나머지도 해군 및 해경함정만으로도 상당 부분 커버돼서 육군은 명목상으로만 남아 있다. 실제로 대부분 후방해안은 철책도 제거하고 상당수의 육군 경계병력들이 사실상 철수했다. 해안경계 협약도 해군과 해경만이 맺는다.
아무튼 이런 해안경계 뿐 아니라 포항과 경주의 주요시설에 대한 경계임무 및 국지도발 대비 역시 해병1사단이 담당하는데 이는 육군의 향토사단 대신 해병대 제1사단이 포항시 내륙작전을 맡기 때문이다. 포스코 등 항만방어는 1함대예하 항만방어대대도 맡아 공동부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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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륙장갑차 돌격 훈련
언론에 의해 보여지고 만들어진 해병대의 빡센 훈련 이미지의 실상은 전체 해병대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라, 전체 해병대 중에 1~2% 밖에 안되는 인원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대규모 상륙훈련이나 IBS(수색대가 영상에 쓰이는 부분이 많긴하다) 헬기레펠과 공수훈련 등 일반 해병부대원들도 받는 훈련과 훈련단의 훈련영상들도 많이 나오는 편이다. 수색대는 주로 영상초기 산악침투나 잠수복을 입고 침투하는 모습으로 자주 보인다.
자신이 빡센 군생활을 보냈다는 점을 남에게 어필하기 위해, 자신은 받지도 않은 훈련을 받은 것처럼 떠벌린다든지, 군생활을 심하게 과장해서 허풍을 떨거나 소위 이빨사진[47] 등을 증거로 제시하는 예가 흔하다. 전방 해병부대의 경우 해병대 제1사단에 비해 경계임무 비중이 더 높기 때문에 내무생활이 주가 되어 주로 후방부대의 특성이라고 알려진 구타 및 가혹행위가 후방의 상륙사단인 1사단에 비해 더욱 심각한 편이다.

7. 생활



7.1. 장교


해병대 장교를 따로 선발하는 과정은 학사장교[48]학군단,[51] 단국대학교 해병대군사학과[52]밖에 없다.
해군사관학교 졸업자가 임관 전에 함정, 항공, 상륙 중 상륙 관련 병과를 선택해 선발되면 해병대가 된다. 이들은 임관식 후 포항에서 해병대 관련 교육을 받고 보병, 포병, 기갑 등 해병대 전투병과 중 하나를 부여받는다.[53]

7.2. 부사관


해병대 부사관은 서류전형, 면접, 체력검정을 통과하면 신원조회 후 부사관으로 선발되어 부사관후보생이 되고 해병대 교육훈련단에서 훈련을 받게 된다. 부사관의 경우 병보다 지원경쟁이 널널하다.

7.3. 병


해병대 창설기 때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는 지원이 아닌 징집으로 입대한 해병들도 굉장히 많아서, 전체 해병의 절반 이상이 해병대로 영장이 나와서 해병대로 징집되어 입대하게 된 비지원자들이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부터 징집기수를 차차 줄여나가기 시작해서 2003년에 완전 폐지, 현재는 상근예비역을 제외하면 전원 지원병으로 이루어져 있다.

7.3.1. 해병이 된 해군


해병대는 의무병 과정을 따로 교육하지 않는다. 대신 해군 의무병이 해병대 부대로 파견된다. 해병대로 배치받는 해군 의무병들은 처음에는 해군에 지원해서 의무병이 되고 배를 탈 거라 생각하고 해군으로 입대한건데 생뚱맞게 해병대로 끌려가서 원치 않는 해병대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해병대를 좋아하긴 커녕 해병대의 문화를 싫어해서 해군이 된 이들이 원치도 않게 해병부대에서 군생활을 하는 억울한 경우가 많이 있다.[54] 이 때문에 해군 의무병은 타 군의 의무병에 비해 인기가 없다. 따라서 의무관련과가 아니더라도 의무병 지원이 가능하며 입대 비수기에는 비전공자의 합격도 많이 되는 편이다.
그런데 배 타다가 해병대로 온 해군들은 해병대 근무가 함정근무보다 편하다고 한다. 특히 전투임무가 없는 교육훈련단이나 사령부 등은 훨씬 편하다. 의무병뿐 아니라 해병대 의무대 내의 의무부사관과 군의관, 수의사관, 간호장교들도 다 해군이다.
부대에 따라 해병과 동일한 피복을 착용하기도 한다.[55] 간부의 경우 피복판매소를 통해 해병전투복을 구하는게 가능하지만, 수병들은 별도로 해병 피복을 지급해주지 않는 한 예비군 훈련용 전역복[56]을 미리 보급받게하여 착용시킨다.2차 발령으로 빨리 떠날 생각인 경우면 몰라도 그냥 해병대에 남으려는 의무병, 혹은 2차발령으로 해병대에 온 의무병(...)이라면 '''깨끗한 전역복은 그대로 물건너간다. 게다가 원래는 전역복 명목으로 주는 물건인 만큼 딱 1척만 보급''' 받기에 야전에서 구르는 의무병들은 만성적인 전투복 부족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니 수병들이 해병부대에 남는 재활용 피복을 자체적으로 구하거나, 혹은 간부에게 부탁하여 전투복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위에서 말한 예외 중 1%가 바로 이들이다. 그 이유는 미 해병대도 의무병과는 해군의 의무병을 끌어다가 쓰기 때문이다.[57]
일병 이후에는 자신이 원하면 다시 해군부대로 돌아갈 수 있다.[58] 단지 해군부대에 갈 경우 선임수병이 너무 많아서 막내 생활을 다시 할까봐 해군부대가 아닌 해병대에 남는 인원들도 있다. 적어도 해병부대에서는 선임대접은 받기 때문이다. 해군포항병원이나 해군해양의료원 등 해군부대를 가면 선임 수병들 등쌀에 상병 달고도 막내 노릇을 해야하는 비극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59]
해병부대라고 다 힘들진 않고 교육훈련단 의무실이나 사령부 의무대 등은 교육행정부대라 괜찮은 편이라 잔류하는 수병들이 대부분이다. 교육훈련단 의무실은 돌아가면서 훈병들 야외 훈련때 의무지원 하는것만 좀 힘들며 이마저도 구급차에 탑승해서 따라다니니까 잠을 생활관서 못자고 구급차나 텐트에서 자는것만 불편하다. 물론 같이 온 의무부사관 군의관 등 간부도 고생한다.
해병부대로 전입한다고 반드시 해병대와 사는 것은 아니다. 연대 의무중대[60] 급 이상에만 배치되면 해군끼리만 군생활을 한다. 따라서 해병대원은 치료받으러 오는 환자들, 병기병, 통신병, 보급병, 운전병 등의 지원 특기들 외에는 접촉할 일이 없다. 만약 전투대대 단위까지 내려가면 중간에 2차 발령이[61] 나지 않는 한, 사실상 군생활 2개월 더 하는 해병대가 된다.
해병으로서의 대접은 본인 하기 나름이나, 본인이 열심히 하면 대부분 같은 본부중대안에서는 깍듯하게 해병대로 대접한다. 다만 똑바로 일하는데도 일부 무개념 해병들이 무시하기도 한다. 분위기 험악하던 시절에는 의무병이 끗발 없을 때는 해병 선임들이 말끝마다 욕설을 섞고 구타하는 게 일상이라 괴로운 시절을 보내다가, 끗발이 차기 시작하면서 해병대 전투복을 일부러 입지 않고 해군 피복을 입고 다니면서(보통 훈련이나 동초근무 등이 아닌 비전투 일상근무나 근무 외 시간에 샘브레이, 당가리나 해군 체육복을 입는 식) 후임 해병들을 작살내며 화풀이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고도 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해병대가 해군 소속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로 해병대는 원칙적으로 해군 소속이라서 이런 특과병과는 해군에서 오는 게 원칙이다. 이외에도 법무군종같은 병과도 다 해군 장교와 부사관들이 배속된다. 병은 다른 해병대 행정병과 동일하게 해당 해병부대의 보병 병들 중 차출한다.
해병대 1사단과 2사단에는 각각 예하 사단 항공대에서 UH-1H을 운영 중인데, 과거에는 조종사 전원이 해군 조종사였지만 2008년에 35년만에 해병대 조종사가 다시 양성되면서 현재는 해병대 조종사의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항공기 정비를 담당하는 부사관은 아직까지도 모두 해군 소속이며, 과거에는 사단 항공대로 해군 항공병이 배치되었지만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고 해병대 병이 배치되고 있다.(현재 항공기 정비를 담당하는 부사관은 해군 정비사 + 해병대 정비사로 구성되어있다.)

7.3.2. 징집된 해병


해병대 징집기수제가 폐지된 현재 마지막으로 남은 비지원병 1%는 상근예비역이다. 포항시, 김포시 북부, 강화군, 옹진군, 제주특별자치도, 가덕도 등지에는 육군부대 대신 해병대 부대가 예비역 자원을 관리하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현역 판정을 받은 사람중 일부를 특수한 기준에 따라 상근예비역으로 징집되어 근무하게 된다.
이사 등으로 거주지가 바뀌는 상근병은 새 주소지 부근에 해병부대가 없으면 주소지에 따라 육군이나 해군으로 전군 조치되어 잔여 복무 기간을 채운다. 반대로 육군이나 해군 상근도 같은 사유로 해병대 상근으로 바뀔 수 있다. 복무 기간 자체는 상근병의 경우 소속군에 관계없이 육군병과 동일하다.
그리고 울릉도에도 해병상근이 있다. 울릉도영종도 등 도서 지역 예비군 관리대의 대장은 해병소령이다. 물론 해군과 해병대 상근은 현역과 동일한 중대에서 동일하게 극기주 등 빡센 훈련을 받으며, 중대가 구분되는 육군과는 다르다. 따라서 현역 해병 및 수병들도 상근병을 같은 기수의 해병 및 수병으로 대접해준다.

8. 출신 인물


60~70년대에 해병대의 병 복무기간이 2년이고 육군이 3년이어서 연예인들이 기간이 짧은 해병대로 입대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이는 정확한 이야기는 아니다. 군 복무기간은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과거 7~80년대 해병대의 병 복무기간은 30~31개월 정도로 해,공군보다는 5~6개월 육군보다는 3~4개월 정도 짧았던 것은 사실이다. 최근 군 복무기간이 짧아지면서 해병과 육군의 복무기간이 같아진 것이다. 김흥국은 언론 인터뷰 등에선 해병대가 복무기간이 짧아서 지원했다고 말하지만, 김흥국의 401기는 지원기수가 아니라 징집기수이기 때문에 저 인터뷰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징집기수 해병들은 자신이 징집당해서 갔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얘기를 꾸며내는 경우가 많다. 다만 '장교'의 경우는 해병대가 육군보다 의무 복무기간이 짧기 때문에 이 짧은 복무기간을 이유로 해병대 장교로 갔던 경우들이 꽤 많았다. 전도봉 전 해병대사령관도 복무기간이 짧다는 이유로 해병대 장교를 선택했다고 노컷뉴스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징집기수제는 실무에선 끌려온 놈들이라고 무시당하거나 원하지도 않은 인원을 멋대로 집어넣었기 때문에 해병대 생활에 적응을 못하는 등 문제가 큰 제도였기 때문에 전술한 대로 2000년대 이후론 징집기수 제도가 없어졌다. 원래 해병대는 형식상으로 해군소속인지라 대한민국 해군 수병의 복무 기간을 따라야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육군과 더 비슷한 지상군인데다가 과거엔 징집 기수도 많았던 관계로 육군과 복무기간을 동일하게 했던 것이다.
과거의 해병대 출신 연예인들은 실은 자기가 원해서 간게 아닌 징집 기수들이 꽤 많았다. 하지만 요즘엔 국민들 사이에서 해병대의 이미지가 많이 개선되어서인지 연예인들도 해병대로 스스로 지원해서 입대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특히 배우 현빈시크릿가든으로 한창 인기가 최고조였을 때 홀연히 해병대로 입대한 것이 화제를 불러일으킨 이후로 연예인들의 해병대 입대가 부쩍 늘었다.
다만 장교의 경우는 과거엔 해병대 장교의 복무 기간이 가장 짧아서 이를 이유로 해병대를 선택한 장교들이 많았다. 같은 군이면서도 해군에 비해 3개월 짧았고 배도 안 탔다.[62]

8.1. 연예계


해병대에 들어간 연예인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가수남진김흥국, 임채무, 서수남, 윤항기[63] 등이 있다. 또 2008년, 이정이 절친한 선배 김흥국의 권유를 받아들여 해병대에 들어갔다. 원로 코미디언 임희춘도 해병대 출신이다. TV는 사랑을 싣고에 훈련병 때의 소대장을 찾아 출연했을 때 해병대로 들어가게 된 사연을 털어놨는데, 지원이 아니라 강제로 끌려간 징집해병이었다고 밝혔다. 과거엔 징집해병들이 전체 해병대의 절반 이상일 정도로 많았지만 그런 사정을 모르는 남들에게 굳이 자기가 강제로 끌려갔다고 밝히는 해병 출신들이 거의 없는 현실을 볼 때 임희춘이 자기가 강제징집으로 해병대에 갔음을 솔직하게 밝힌 드문 경우이다. 참고로 인터뷰 등에선 자원해서 해병대에 갔다고 이빨 까는 김흥국도 실은 징집기수이다.[64]
임희춘 외에도 임혁필, 홍훤, 곽범 등이 해병대 출신 개그맨들이다.

배우 정석원해병대 수색대 출신이다.[65]
성우 중에는 김승준, 양석정 등이 유명하다.
연기자로는 임채무[66], 김상중, 조상구#s-1, 최필립, 송재희 등이 있다.
악동클럽의 멤버인 권세은도 해병대 1017기 출신이다.
[image]
시크릿 가든 방영 직후라 인기 최절정에 있던 현빈이 해병대 입대 지원을 했다. 해병대 입대 테스트에서 거의 만점에 가까운 29점으로 2011년 3월 7일 입대했다. 직업군인인 형의 권유가 해병대 입대의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2011년 기준 해병대 입대 지원자 중 최고령이라고. 워낙 인기 최절정에 있던 때라 입소부터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에 중계되었으며, 훈련소에서의 생활과 훈련 모습도 TV에서 방송되고 해병대 홍보물마다 현빈이 모델로 나오기 시작하자 네티즌들은 특별대우받는 스타연예인으로서가 아니라 남들처럼 일반적인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도록 놔두라는 여론이 높아졌다. 이런 여론을 의식했는지 첫 근무지는 최전방인 백령도였으나… 몇 개월 뒤에 은근슬쩍 경기도 화성시의 해병대 사령부로 근무지를 옮겨서 결국 모병 홍보병으로 쭉 근무했다. 해병대측에서도 현빈같은 인기스타를 돈 한 푼 안 들이고 해병대 홍보에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현빈 입대 한달 후인 2011년 4월에는 클릭비 출신인 오종혁이 해병대에 입대했으나 현빈에 비해선 다소 많이 묻힌 감이 있었다(…). 오종혁은 원래 해병수색대를 지원했으나 출결 때문에 떨어진 뒤에, 일단 해병대 군악대로 입대하면 수색대로 전출시켜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입대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입대 뒤엔 약속이 안 지켜질 뻔 했으나, 해병대 고위 간부들과 심지어 해병대사령관에게까지 끈질긴 탄원과 청원을 한 끝에 결국 해병대사령관의 특별명령에 따라 수색교육을 받고 원했던 수색대로 전입하는 데 성공해서 해병수색대 소속이 된 것이다. 관련글. 거기에 2013년 1월 전역을 앞두고 훈련 일정을 모두 마치고 전역하고자 2월까지 전역 연기를 하기로 했다. 이것으로 오종혁은 까임방지권 확정.
2014년 4월 28일에는 제빵왕 김탁구의 주인공으로 인기를 모았던 윤시윤이 병1184기로 해병대에 입대, 김포 2사단 통신병으로 실무 배치를 받았다. 세월호 참사로 나라가 어수선한 상황에서 유가족이나 국민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조용히 입대했다고 한다. 2016년 1월 27일에 전역했다.
2017년 9월 18일에는 AKMU(악동뮤지션)의 이찬혁이 해병대에 1226기로 입대하였고 경북 포항 소재 제1사단에 배치되었다. 2019년 5월 29일에 전역했다.
2018년 12월 17일에 배우 장성범이 해병대 수색대에 자원 입대 이후 복무하다 2020년 7월 27일 전역했다.
2019년 3월 18일에는 유키스(여훈민)이 해병대에 1244기로 입대했다. 2020년 9월 3일에 전역했다.
2019년 4월 15일에는 샤이니민호가 해병대에 1245기로 입대했는데 2019년 6월 8일에 방송된 아는 형님 183회에 출연한 AKMU이찬혁이 만난 적이 있었다.[67] 2020년 11월 15일에 전역했다.
2019년 9월 16일에는 가수 권광진이 1250기로 입대했다.
2020년 6월 15일에는 가수 로이킴이 1259기로 입대했다. 이쪽도 코로나 19와 맞물려 조용히 입대. 해병대 제1사단에서 평범하게 군생활 중인 듯.
2021년 2월 22일에는 가수 겸 배우 엘(인피니트)이 1267기로 입대했다.

8.2. 스포츠


야구인 중에는 과거 해병대 야구단 출신인 강병철 감독과 김인식 감독, 정동진 감독, 그리고 상근예비역으로 갔다 온 권오준도 있으며, 권오준의 대학 2년 후배인 kt wiz윤요섭이 2011년부터 1군 무대에서 뛰고 있다. NC 다이노스의 투수 민태호도 해병대 출신이다.
축구계에서는 허정무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과 제주유나이티드김원일, 이용수, 김한원, 김호#s-1가 대표적이다.
위의 운동선수들 중 옛날 사람들은 모두 '''과거에 각 군마다 있었던 군 운동선수팀 출신들'''이다[68].
최근 병역특례로 인해 기초군사훈련을 해병대에서 받은 손흥민도 해병대와의 인연이 있다.[69]
격투기 선수로는 김동현, 임재석, 이면주 등이 있다.
[image]
e스포츠 출신 인물로는 前 프로게이머 전태규2011년 9월에 해병대 신병 제 1149기로 입대했다. 전태규의 할아버지아버지가 해병대 출신이었다고… 그밖에 전태규의 전 팀동료이기도 했었던 김봉준도 해병대 1155기로 복무했었다. 또한 인간본좌 김동건SK 텔레콤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2015를 앞두고 삼성 칸에 코치로 부임한 과정에서 해병대를 제대했음이 밝혀졌다.
운동 선수 출신은 아니지만 kt wiz의 응원단장인 김주일도 해병대 출신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8.3. 정재계


정치인 중에서는 홍사덕이 해병대 병 130기다. 서울대 외교학과 재학 중이던 1962년에 자원입대했다고 한다. 또한 바른정당 당대표인 정병국성균관대 재학 중 학생운동을 하다가 해병대 병 416기로 입대하여 군사경찰로 복무하였다. 기초단체장 중에서는 정찬민용인시이 있다.
재계에서는 김석원쌍용그룹 회장이 대표적인 해병대 출신이다. 해병대 병 223기로서 베트남전에 참전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동생인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 또한 해병대로 병역의무를 수행했다. SK그룹에서도 해병대 출신이 세 명 있다.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병 258기), 그 아들 최성환 씨[70] 재벌 2세 야구방망이 구타사건으로 사회에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M&M 회장 최철원이다. #

8.4. 그 외


강사 중에는 공부방법론 강의로 유명한 강성태가 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부터가 빨간색 해병대 명찰이다.
각종 거짓말과 문제점이 드러나서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역사상 최초로 탄핵을 당한 황라열도 해병대 출신이다.
미술계에는 석정현이 해병대 출신이다. 소설가 현기영도 해병대 출신이다.
천안함 피격사건 때와 세월호 참사 때 다이빙벨 투입을 주장하며 논란을 낳았던 이종인은 해병대 포병 출신이다.
그리고 해병대 4기 할머니가 웹에서 아주 유명하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해병대 3·4기 전우회 부대방문 포스트도 있다. 그렇지만 엄밀히는 해병대 4기와 함께 모병된 해군 여군으로 해병대 4기와 달리 해군부대에서 훈련을 받고, 해군부대에서 근무했다.
영화 감독 김기덕도 해병대 부사관으로 5년간 복무했다.
타블로에 대한 헛소문을 지어내고 퍼트려서 괜한 소란만 일으킨 왓비컴즈도 해병대 운전병 출신이다. 카페 등에서 사진 인증도 했다고 한다.
차범근의 막내아들이자 차두리 동생인 차세찌도 해병대 출신이다. 해병대사령부에서 복무했다고 한다.
한국 역사상 개인이 가장 많은 민간인을 살인한 기록을 갖고 있는 희대의 살인마 우범곤도 해병대 출신이다.#
구로동 카빈 강도사건의 범인 3명 중 문도석은 해병대 병 불명예 전역자다.
10.26 사건 당시 김재규 중정부장의 부하로써 참여한 박선호와 이기주도 해병대 출신이었다.[71] [72]
아프리카 BJ로는 감스트, 김봉준, 케이(인터넷 방송인), 전태규, 신상호, 만만이 있다.
유튜버 동네형 박성주도 해병대 출신이다. 영상에서 해병부심을 드러내기도 한다.[73]
대한민국의 유명한 존속살해범인 이은석(범죄자)의 아버지가 퇴역 해병 중령이다.
유튜버 중에는 조섭이 있다. 인스타그램에 해병대 예비군복을 입은 사진을 인증한 적이 있다.
야생마도 해병대 출신이다.
더블비 박민규도 해병대 출신이다.
Dan Jeong 댄 정 헤비 웨이트 맨몸운동 유튜버. 미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고 군 복무를 해병대 통역 장교로 보낸 만큼 영어에 상당히 능통하다.
최성해 동양대학교 前 총장의 아들인 최웅식 씨는 미국 시민권자로 골드만삭스에 취직이 확정된 인재였지만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74] 병 1007기로 입대해 병역 의무를 수행한 바 있다. 기사 1, 기사 2
헬스 유튜버 땅끄부부남편 땅끄가 해병대 병장 만기 전역자다.
같은 헬스 유튜버 지기TV도 해병대 1145기 출신이다.
유튜브에서 악의적인 자군 간부 및 타군 비방을 일삼는 저격수해병tv 역시 91~92년 사이에 해병대 병으로 근무했다. 복무 기간으로 보아 방위병으로 추정된다.

9. 문제점



9.1. 인적 자원의 질 문제


해병대 창설 때부터 1958년까지 초창기 10년 동안은 지원이 아닌 '''전원 징집'''으로 신병을 충당하였다.[75][76] 그러다가 1958년부터는 지원제 위주로 선발하기 시작했고, 1967년부터 지원제와 징병제를 병용하였다.
그래서 1990년대까지의 해병대에는 자발적인 지원이 아닌 '''강제 징집'''으로 입대한 해병들도 상당수를 차지했다. 이렇게 징집기수와 지원기수를 병행했던 시기에는 홀수기수, 짝수기수 번갈아서 징집기수, 지원기수가 되었고,[77] 따라서 '''전체 해병의 약 절반이 징집 해병'''이었다.
즉, 과거에는 징병연령이 되어 입대 대상이 된 장정이 육군으로 입대할지 해병대로 입대할지를 무작위 추첨으로 결정했던 것이다. 공군과 해군은 전원 경쟁입시제로 신병을 선발한 반면 해병대는 무시험 추첨으로 육군 대신 해병대로 영장이 나와서 갈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해병대는 육군 전체보단 훨씬 적은 인원을 뽑기 때문에 매번 전국적인 징집으로 입영시켰던게 아니라, 예를들어 어느 기수는 경기, 다음 기수는 경남, 그 다음 기수는 서울,.. 이런 식으로 지역을 번갈아가며 각 기수마다 어느 지역에서 징집을 하는 지역별 집징기수제였다.
이런 지역별 징집기수 제도 외에도 비공식적이고 비정기적인 해병대 징집 케이스들도 있었는데, 박정희 정권 시절에 운동권들 및 과거에 무척 많았던 병역기피를 위해 숨어지내던 사람들을 잡아낸 뒤 "빡센 군대 갈래, 아니면 깜방 갈래"라며 군대 가서 고생 좀 하고 정신차리라는 의미로 반강제식으로 해병대로 입영시켜버리는 경우들도 있었다. 유명인들 중에도 이에 해당하는 실제 케이스가 있는데 바로 코미디언 임희춘씨다. TV는 사랑을 싣고에 훈련병 때의 소대장을 찾아 출연했을 때 사연을 밝혔는데, 당시 일정한 거처가 없이 전국을 떠도는 유랑극단 소속이라 영장을 못받아 늦은 나이까지 군대를 안 갔는데, 60년대 초반에 병역기피자 일제 단속에 걸려서 체포된 뒤 해병대로 강제 입영됐다고 한다.[78] 60년대 초반이면 공식적으론 징집기수제가 없을 때였지만[79] 그 때도 비공식적이고 변칙적인 강제징집 해병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1990년대 들어서부터 징집기수를 대폭 줄여나가서 90년대 중반부터는 징집기수는 1년에 두 기수로 줄어들었고, 2003년엔 이 약간만 남아있던 징집기수제마저도 완전히 폐지됐다. 과거보다 갈수록 해병대 지원자가 늘어나서 더 이상 굳이 강제징집을 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이 2003년부터는 상근을 제외하면 전원이 지원자이다.
과거엔 해병대 지원자가 별로 없어서 전체 해병 인원 중 절반만을 지원으로 뽑았는데도[80] 지원자가 충분치 않아서 지원만 하면 대부분 합격이었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론 해병대의 이미지도 많이 개선되고 언론홍보도 많이 하면서 지원자가 많아져서 경쟁률이 높아지자 2000년대 중반경부터는 해병 선발에 체력테스트(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도 도입됐다. 그리고 고교 생활기록부도 선발에 중요해졌다. 이렇게 요즘의 해병대는 합격하기가 쉽지는 않기 때문에, 체력테스트조차 없고 그냥 지원만 하면 대부분 무사통과식으로 합격됐으며, 뺑뺑이로 육군 대신 해병대 영장이 나와 입대하기도 한 과거의 해병대 선배들 시절과는 천양지차이고, 따라서 '''요즘 해병대 입대자들의 질적인 수준이 예전의 해병대원들보다는 훨씬 높아졌다.'''
하지만 요즘에 이렇게 지원자가 많아진 건 어디까지나 해병대 '병'의 얘기고, '''해병대 부사관은 여전히 지원자가 적어서 우수 자원 선발은 커녕 인원 유지조차 늘 애를 먹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모병관이 툭하면 병 지원자들한테 "넌 병으로 지원하지 말고 해병대부사관으로 지원해라"고 꼬실 정도. 스펙이 낮아서 불합격 가능성이 높거나 합격 가능성이 간당간당한 지원자들에게 "넌 해병부사관으로 지원하면 백퍼 합격이니 부사관으로 지원해라"며 꼬신다. 이렇게 '병'과는 달리 해병대 부사관의 인기가 낮은 이유는, '해병대는 병이다'라는, 즉 해병대는 '병'이 주인이고 중심이라는 병폐적인 인식, 해병대 부사관이 실무에서나 예비역 커뮤니티에서나 해병대 병들에게 그다지 대우를 못 받고 소외되어 있는 해병대 문화 및 해병대 부사관에 대한 열악한 처우 등이 그 원인이다.
연예인 등 해병대 출신 유명인들이 인터뷰에서 해병대에 왜 갔냐는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 이러이러한 이유로 지원했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실제로 그들 중 상당수는 지원이 아니라 징집기수들이다. 주변 현실에서도 자기가 지원해서 간 게 아니라 징집당해서 끌려갔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해병대 출신은 별로 없다. 굳이 징집이란 걸 밝혀서, 용감하게 빡센 부대에 지원했던 싸나이라는 이미지를 굳이 엎어버리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병대에 대해 큰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은 해병대에 징집기수라는 게 있었는지도 아예 모르고 당연히 다 지원해서 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지원해서 갔다고 굳이 속이지 않더라도 지원한 걸로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현재는 징집기수가 완전히 없어졌고 약 98%가 지원병으로 이루어지고 있다[81]. 과거엔 지원자가 많지 않았지만 2000년대 이후론 대학생 비율이 늘어나면서 복학시기를 맞추기 위해선 육군보다 빨리 갈 수 있는 해병대를 택하는 학생들이 많아지면서 꾸준히 지원자가 늘어나서 현재는 경쟁률이 높은 편이다. 그래서 전엔 체력검사도 아예 없었고 지원만 하면 대부분 합격이었지만 지금은 체력테스트(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가 생겼고 거기다 고교 생활기록부도 좋아야 합격 확률이 높아지는 등 여러모로 들어가기가 과거완 비교도 안 되게 어려워졌다. 이상은 다시 말하지만 어디까지나 해병대 '병'의 경우다. 해병대 부사관은 여전히 지원자가 적어서 부사관 인원 확보 및 유지에 늘 곤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9.2. 해병대 특유의 악습


해병들은 스스로가 자원입대한 정예병이라는 자부심이 있어서인지 상당히 마초적이며 자부심이 높기로 유명하다. 문제는 이러한 점들이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야 하나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구타, 가혹행위, 병영부조리는 대한민국 해병대의 상징처럼 되었다. 심지어는 전역 이후에도 예비군 훈련 때는 물론이고 심지어 민방위 때나 일반 사회에서 만났을 때도 선후임 따지다가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가 잦다. 이 때문에 나온 문구가 해병 잡는 해병대, 빤스를 남긴 해병대일 정도로 세간의 인식이 좋지 않다.
과거 해병대 시절에는 해병대의 자부심이 과한 나머지 마치 집단세뇌라도 당한 듯한 비정상적인 마인드로 인해 잘못된 문화를 많이 만들어냈는데, 특유의 허세 부리기, 받지도 않은 훈련을 받았다고 뻥치거나 실제보다 훨씬 과장해서 거짓말하기, 과거 역사를 조작, 왜곡하고 심지어 구라소설을 창작해내면서까지 해병대를 미화하거나 치부를 숨겨서 자부심을 고취시키기, 타군을 근거 없이 비하하고 해병대가 타군 때문에 피해를 본다는 피해망상적 카더라를 퍼트려 타군을 적대시하도록 후임들을 세뇌시켜서 반사적으로 자신들의 자부심과 결속력을 키우는 문화 등의 문제점들을 낳았다.
2015년을 기점으로 해서 현재 해병대의 모든 부대는 해병대사령부의 지시로 일명 "오리지널 단어" 사용을 엄금하고 3군 공통 용어로 대체했고 특히 해병대 특유의 구타, 가혹행위, 병영부조리, 기수열외 등의 악습을 없애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 결과 현재 2017년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그동안 해병대에 잔존해있었던 악습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일부 막장 선임들이 태형을 자체적으로 부활시키거나 식고문 악습을 하는 등 아직도 교묘한 악습이 남아있다.
어쨌든 간에 전혀 변화가 없을 거 같던 해병대 병영문화도 조금씩 바뀌고 있으며 특히 해병대 교육훈련단은 2011년 교육훈련단장 차동길 준장(예비역)[82]의 강한 의지로 파격적인 정책들을 쓰며 병영문화 혁신을 밀어 붙여 해병대 교훈단에서 잔존하던 악습을 많이 없앴다.
그러나, 2019년 5월 2일 또 폭행사건이 발생했다. 글 내용에는 각목과 진압봉 등 도구를 이용해서 폭행을 가하고 명치를 때렸다는 내용까지 나올 정도로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이다.
또한 이전부터 폭행당한 건 많지만 다 적을려면 길고 피해자도 많으며 아직도 폭행을 비롯한 병영부조리가 남아있음을 폭로하였다.

9.3. 작전능력 부족


한국군의 육군 위주의 전력 때문에 해병대에 대한 예산지원은 언제나 뒷전이며 해군의 정책에 밀렸었으나 독자적으로 예산을 받아쓰게 되었다.[83]
독도급 강습상륙함을 제작해도 여전히 자체수송능력은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미 해군의 도움 없이는 상륙작전 1회에 고작 1000여 명 정도를 투입할 수밖에 없으며 상륙 시 한번에 투입가능한 전차 대수가 한손에 꼽을 정도 밖에 안된다는 점이 매우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독도함 기준으로 한 번에 보낼 수 있는 전차가 고작 2대이다.[84] 공격이 방어의 3배여야 승산이 있다는 법칙도 있고 상륙작전의 특성 상 선두는 지뢰밭으로 걸어들어가는 '''막대한 희생'''을 치루어야한다.
해병의 상륙전력 구성 자체가 한미연합작전을 상정하고 구축된 것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 해병대는 한국 육군이나 공군과의 공조보다는 미해병대나 미해군과의 공조가 많은 편이며 오히려 이쪽이 훨씬 빠르고 쉬운 편이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있지만 그게 전부 돈으로 귀결되는 문제이다. 즉, 언제나 그렇듯 예산이 문제다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서북도서를 방어하는 해병 부대(6여단, 연평부대)는 장비 확충이 집중적으로 이뤄졌으며 전원 방탄복을 구비하고 있고 보병의 경우 거의 전원이 특전조끼를 사용한다고 보면 된다. 특히 보병의 경우 야간투시경의 보급이 폭넓게 이뤄졌으며 신형헬멧의 경우 병과 가리지 않고 교체가 되었다. 특히 김포시인천광역시를 담당하는 해병대 제2사단은 열악한 근무 요건으로 악명이 잦았다. 오죽하면 2011년 강화도 총격사건의 원인을 지나치게 많은 격오지로 인한 전투피로증으로 보고 최대한 격오지를 줄이라는 김관진 국방장관의 지시가 있었을 정도. 사실 해군의 인천해역방어사령부가 수도권 전 해안경계를 넘겨 받으면 끝나긴 하지만 이쪽도 부대가 작은 규모이고 무엇보다 NLL에 인접한 지역 특성상 육상에도 경비병력이 필요해서 할 수 없이 해병대가 해안경계를 맡는다. 어차피 해군 인방사든 육군이나 경찰이든 어딘가에 이 임무를 이관한다는 건 2사단이 상륙사단으로 거듭나는 게 아니라 그만큼의 병력을 그 이관받는 쪽에 넘기고 해체될 운명에 처해질 뿐이므로, 별자리 포함 장교 TO가 왕창 사라지는 걸 해병대가 바랄 리 없으므로 이관에 적극적이지 않다.
거기다 독도함은 탑재할 헬리콥터가 없었다. 가끔 행사할 때 쓰는 건 육군 헬리콥터를 빌려오거나 해군이 소유한 일반 UH-60를 쓰는 정도. 바다에서 운용할 장비는 염분이나 바닷바람 등의 문제 때문에 별도처리를 해야만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데, 지금 독도함에서 운용 중인 해군의 UH-60은 그런 장비 따위가 없어서 제대로 굴려먹질 못한다. 그러다가 2017년부터 시작해서 2020년까지 수리온 상륙헬기를 해병대 단독소속으로 36대 이상 배치, 2개 기동대대를 만들고 추가되는 공격헬기로 1개 대대를 추가하여 해병대 직할항공단을 창설한다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관련기사 1 관련기사 2 그러나 운용능력을 제대로 갖추려면 도입 후에도 상당기간이 걸리는 만큼 단시일 내에 능력 확보는 어려워 보인다. 게다가 2018년에 마린온 헬기 시험비행 중에 추락 전소하여 조종사와 정비사 등의 해병대원들이 사망한 포항 해병대 헬기추락 사고가 발생한 것도 불운한 악재이다.
2007년 12월엔 민간인 한 명이 강화 초소 경계근무를 마치고 복귀하던 해병대원 2명을 차로 덮치고 흉기로 찔러서 그중 1명을 살해하고 1명에겐 중상을 입힌 뒤 총과 실탄, 수류탄, 유탄 등을 탈취해 도주한 강화 해병대 총기 탈취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건 1주일 뒤 경찰에 붙잡힌 범인 조모 씨는 애인과 헤어진 것에 대한 화풀이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과다한 경계근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해병대원들이 저지르는 많은 사고들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데, 2016년에도 서해 대청도에서 근무하던 해병대 이병이 섬 경계근무가 답답하다는 이유로 생활관에다가 수류탄을 투척하여 폭발시키는 어처구니 없는 사고를 저지르기도 했다. 관련기사

9.4. 과다한 병력 규모


병력 규모면에서 전 세계 해병대 중 미 해병대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85] 매우 이례적인 경우라고 볼 수 있는데 한국 해군이 보유한 상륙수송능력을 훨씬 초월하는 규모이다. 이는 유사시 미 해군의 상륙수송능력에 기대기 때문이다. 동시에 다수의 부대가 상륙전이 아닌 지역방어 등을 위한 부대라고는 한다.
미국 본토가 아닌 전 세계가 작전 무대라서 해군과 해병대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는 미군을 제외하면 '''해병대가 비대칭적으로 지나치게 대규모인 국가는 대한민국 국군 밖에 없다.''' 이는 북한이라는 적국과의 휴전 대치 상황이라는 특수성과 역사적 원인에서 기인한 측면이 강하긴 한데 6.25 전쟁 시기에 기술군인 해군을 키우기 어려운 와중에 그나마 양성하기 쉬운 데다가 3면이 바다인 한반도 특성상 상륙작전 및 도서지역 방어, 해안선 방어 등으로 수요가 많던 해병대 인원을 늘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다른 대부분의 국가들, 특히 유럽 국가들의 해병대는 미국이나 한국의 해병대와는 달리 해군의 소규모 특수부대 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병대라고 번역은 하지만 실질적으론 해군 UDT/SEAL이나 해병수색대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86]
한국군보다도 바다 건너 전투병력을 투입해야할 일이 더 많은, 즉 한국군보다 작전지역이 훨씬 넓다 못해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강대국들도 해병대 인원은 한국군보다 매우 적다. 세계 3위 러시아 해군의 경우 정식 명칭은 '해군 보병'이고 해군 소속의 5개 연대 16,000여 명으로 구성되며, 러시아 해군 각 함대마다 1개 연대씩, 태평양 함대에는 2개 연대가 배속되어 따로 활동한다. 영국 해군의 경우 1개의 코만도 여단을 중심으로 하는 소수정예 편제로 총 7,420명의 정규군과 예비군 970명으로 구성된다. 세계 4위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의 경우 공식 명칭은 '해군 육전대'로 4,000여 명의 병력이 중국 해군 3개 함대에 각 1개 여단씩 배치되어 있다. 단 중국 인민해방군은 군 조직개편을 통해 육군 병력을 줄이고 해군육전대 병력을 10만 명으로 대폭 증강하기로 했다.
중화민국군의 경우 1997년 국군정실방안으로 복무제도가 바뀌기 전까지 35,000명의 비대한 해군 육전대 병력을 운용했다. 대만군의 궁극적인 목표는 본토 수복이었으므로 그 선봉인 해병대에 투자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본토 수복 임무는 현실적인 문제로 포기하고 2개 여단 규모, 9000여 명으로 대폭 줄었다. 운용 개념 또한 해안선, 도서지역 방어와 침공에 대응하는 전략기동군으로 나뉘는 등 한국군과 거의 유사하다.
한국 해병대의 상륙병력 투사능력이 비대한 규모에 비해 기형적으로 뒤떨어지는 것은 절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이는 애초에 투사능력 대부분을 미군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기인한 구조적 문제이다. 독도급 강습상륙함 실전배치, 수리온 해병대 사양 개발 배치 및 해병대 항공대 창설로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탈피하려고 노력하기는 한다.
즉, (다시 한 번 말하자면) 현재 한국 해병대의 병력과 편제는 대만, 중국, 러시아처럼 주변국에 대응하거나 단순히 해안선 및 도서방어 용도로는 매우 대규모이며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이 하듯이 전 세계에 전력을 투사할 일도 없고 그럴 여건도 절대 안 된다. 한국과 직접 맞대고 있는 북한의 위협에 대한 대응을 제외하고는 매우 실효성이 떨어진다.

9.4.1. 반론


해병대 병력의 2/3은 해안 및 도서방어에 투입된 실상 육군과 다를 바 없고 순수하게 전력투사가 가능한 병력은 고작 1개 사단뿐으로 전체병력을 상륙부대로 판단하여 규모를 논하는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즉, 순수한 투입규모만본다면 그다지 크지는 않다. 물론 서해도서방어를 육군으로 투입할 수 도있겠지만 특성상 해군의 지원이 필수적이고 유사시 역상륙 등의 다양한 작전을 위해서는 해병대를 운용할 수 밖에 없다. 한때 국방개혁 검토과제로 강화, 김포를 육군병력으로 교체하려 했는데 현재 해병1개 사단지역을 육군으로 대체하면 장비나 편성 등이 다른지라... 무려 2.5개의 육군사단이 필요하여 없던일로 하였다.[87] 또한 북한군은 해병1개사단의 상륙을 대비해서 후방지역에 2개의 기계화군단을 배치하고 있다. 한반도 한정으로는 엄청난 장기말인 셈이다.
한국군병력이 여타 국가에 비해 총인구대비 많은 편이지만 이 또한 북한이라는 병영국가의 대병력을 막아내기 위한 최소한의 배치이다. 그러다보니 다른국가에선 보기힘든 해안, 도서방어에 과도한 병력이 투입된 것이다.

9.5. 해군과의 갈등


사실 해병대는 해군의 육전대 성격이 있어서 해군과의 합동작전이 매우 중요하며 일부 직별의 경우 해군 소속 인원이 해병대로 파견되기도 한다.
여기서 파생되는 문제점은 주로 합동 훈련중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에 전차상륙함에 동승했을 때 경우에 따라 함정 내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하는데 부식창고를 털어가는 것은 기본에다 심한 경우 자신들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는 갑판 장구류나 각종 공구류를 훔쳐가기도 했다.[88] 지금은 많이 사라진 상황이지만 전차상륙함 승조원 입장에선 함정 내 각종 장구류나 비품이 없어진 경우 직전까지 동승했던 해병들을 의심하기 일쑤다.
또한 과거에 해병대는 별도의 의무병과를 두지 않아 해군 소속 의무병과 수병 및 부사관들이 파견되는데 의무대에 직속되지 않을 경우 해당부대 해병들과 마찰이 일어나기도 했다. 육상용 전투복 없이 해상 전투복만 지급받은 의무수병들을 훈련을 빙자해서 복장과 맞지 않는 조건의 훈련을 소화하도록 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며 그 외 내무생활에서 침상, 관물대를 안좋은 자리로 밀어넣거나 한다든지...[89]
그러나 위 문제들은 결국 해군사관학교 동기, 또는 선후배 관계인 지휘장교들의 노력으로 대부분 '''눈에 보이지는 않을 정도로''' 사라진 상태이다. 즉, 지휘부에서 눌러서 못하게 한 것이지, 제도와 부대편제를 개선하지 않는 한 언제든 재발 가능한 우려가 있다.
이는 보급문제로 설명할 수 있다. 부식 문제는 함정근무 해당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흥부네 집밥, 놀부네 집밥 하는 식으로 비교하는 상황은 피할 수 없으며 '''질 좋은 군수물자는 해군이 먼저 가져다 쓰고 해병대로는 B급만 보내준다.'''는 식의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 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의외로 해군도 군견을 키워 사용한다. 도서지역 R/S나 기지방어 용도로 쓰기 위함인데 이 군견 또한 해군 군수사령부에서 일괄 관리, 보급하면서 똘똘하고 말 잘듣는 군견은 해군에서 먼저 챙겨가고 해병대로는 말 안듣고 교미만 밝히는 모자란 군견들을 보내준다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고 있다.
정리하자면
악습과 관련된 부분이야 기수서열을 엄격히 챙기는 해군, 해병대 공통의 의식을 활용하여 상호 존중하는 의식개선으로 충분히 해소한 수 있는 부분이며 그동안 해병대에서 발생한 각종 사건사고로 인해 해병대 또한 많이 개선된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공존'''이라는 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게 아니므로 군령권과 제도의 수시 정비와 개선이 당연히 뒤따라야 한다.
부사관 이상 간부들의 경우는 조금 덜 하겠지만 원하든, 원치 않든 병역 이행을 위해 입대한 해병, 수병들은 각자의 입장에 따른 마찰이 일어날 여지가 많다. 위와 같은 군령과 제도 이외에도 해병, 수병 본인들의 의식전환 또한 매우 중요하다. 해병, 수병들은 가만히 있어도 들어가는 육군을 포기하고 스스로 군종을 선택하여 입대하는 기회를 사용했다. 해병, 수병으로 복무중이거나 입대가 예정된 위키러라면 그렇게 자신의 미래를 선택했던 마음가짐으로 내 선임, 내 후임이라는 생각으로 마음편히 지내보도록 하자.
해병대 예비역들은 대한민국 해군 수뇌부를 상당히 안 좋게 보고 있다. 해병대용 상륙수송헬기 도입을 앞두고 불행히도 해군과 해병대가 서로 자기관할이라고 싸웠던 적이 있어서 해병대 측의 피해의식에 일조하고 있다. 일단 양측 다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명분[90]은 그럴듯하지만 결국 속사정은 밥그릇 챙기기로 보인다. 해군의 경우엔 수십대의 헬기가 늘어날 경우 해군항공부대의 급이 올라가 소장급 지휘관 자리가 생기고 해병대는 준장급 자리가 새로 생긴다. 육군과 달리 해군/해병대의 규모로 볼 때 준장이나 소장급 지휘관자리가 하나 더 생기는 것에 목숨거는 것도 나름 이해는 간다. 한국군은 육군만 유일하게 장성이 수백 명이지 다른 군의 경우는 장성의 숫자가 그야말로 손에 꼽는다.


10. 사건·사고


조국을 수호해야할 군인들인 해병대가 특전사와 사이좋게 손잡고 5.16 쿠데타를 일으킨 과오를 범하였다. 그것도 김포 최전방을 방어하는 역할을 하던 해병대 제1임시여단(현재의 2사단) 병력을 빼돌려서 서울로 진격하게 하였다. 만약 북한이 사전에 정보를 알았거나, 쿠데타 직후 해병대 병력이 김포로 아직 복귀하지 않았을 때 이 기회에 김포 쪽으로 남침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실로 큰 일이 날 뻔 했었다. 게다가, 이들은 쿠데타에 대해 상급 기관인 해군본부에 단 한마디의 언질도 주지 않았으면서도 쿠데타 지휘부에는 자신들이 해군을 완벽하게 설득해 협조를 약속받았다고 생구라를 치는 병크를 저질렀다. 이로 인해, 쿠데타 성공 직후 쿠데타 세력들이 해군참모총장이었던 이성호 제독(중장)을 만나 약속된 협조를 요구했다가 내막을 알 리 없던 제독으로부터 "군인이 나라는 안 지키고 반란이라니, 뭐하는 짓거리냐?"는 욕만 들어먹었고, 옆방에서 이를 듣던 육군 영관급 장교들이 "해참이 이제와서 말을 바꾼다. 죽여버리자!"며 권총을 빼들고 난입하는 사태를 초래했다. 이성호 제독은 상황을 읽은 전속부관이 그를 잡아끌고 잽싸게 차에 태워 해군본부로 피신시켜 화를 면했고, 이후 해공군만으로는 대세를 바꾸기 어려워졌다고 판단해 쿠데타 세력을 인정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해병대 장군들이 자신의 영달을 위해 상관을 죽음에 몰아넣을 뻔한 가히 하극상에 준하는 범죄를, 그것도 일종의 허위보고를 통해 저지른 것. 이 사건 이후, 해군에 대한 악감정을 가진 쿠데타 세력들이 박정희 장군에게 해군을 음해하여 감찰토록 했는데, 감찰 결과 해군이 전군에서 가장 부정이 적다는 사실이 드러났다.[91] 그 때문인지, 육군 출신임에도 박정희는 재임 기간 내내 해군 함정이나 부대를 꽤 자주 방문하는 등 해군에 관심을 많이 기울였고,[92] 기어링급 구축함 등을 들여오는 등 해군의 전력도 매우 크게 향상됐다. 단 해군 산하의 해병대는 사령부를 없애고 해군의 참모부로 격하시켜 버렸는데 아무래도 5.16 군사정변 당시 진상을 안 뒤에 괘씸죄가 걸렸을 수가 있다. 그리고 상급부대인 해군도 규모가 작았는데 그 예하인 주제에 별 4개를 해병대사령관이 달고다니는 모양새도 안 좋고 이래저래 상관 팔아먹은 댓가로 해병대를 말아먹은 셈이다.
해병대 장교 129명이 공군 비행학교를 습격했다가 비행학교에서 근무하는 공군 장병 300명에게 얻어터지고 엉망이 되어 도망가고 심지어 해병대 장교 한 명은 도망치다가 사망한 사건. 말로는 일당백이라고 하지만 실제론 1:2 정도에도 깨진 것. 수적으로 열세였다고 해도 공군 장병들은 새벽에 자고 있다가 아무 준비도 없이 기습을 당했고, 지상전투병과 인원들도 아니고 항공기 및 지상 기술행정관련 등 비전투병과 인원들 상대로 기습을 했는데도 해병대 장교들이 패배한 것.
무엇보다 전시도 아니고 평시에 그것도 자고 있는 아군을 야습한다는 상황 자체가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며 의식이 깨어있지 않던 시절에 일어난 엄연한 장교단의 부끄러운 역사이다. 현재는 서북도서방위사령부 등에 육공군 장교들이 파입되고 합동 근무를 하는 등 타군 장교와 해병대 장교들이 접촉할 기회가 많고 올바른 정신교육도 받기 때문에 현역 장교들이 타군을 비하하는 경우는 없다. 아니 그전에 그 육공군 장교가 자기 상관으로 오는 경우도 많으며 이들에게 찍히면 군생활이 피곤해질 수도 있기에 알아서 조심하는 추세다.
초소근무서던 병사가 민항기를 적기로 오해하여 경계작전중 "선조치 후보고"의 명령 체계에 따라 민항기에 수십여발 사격을 한 사건. 다행이 유효 사거리가 넘는거리여서 피해는 없었지만 군외에서는 질타를 받았던 사건. 하지만 군내에서는 실수는 하였지만 "선조치 후보고"를 잘 실행함의 따라 질책을 받지는 않았다 한다
2011년 7월 4일 오전 취침시간에 총소리가 들리자 다른 생활관에 있던 해병들이 누가 쏘는 건지도 모르고 무작정 활동복차림으로[93] 집단 근무지 이탈 후 부대 주변 민가로 도망쳤다. 총격이 벌어진 그 생활관 내에서는 혼자서 가해 해병의 총을 붙잡고 몸싸움을 하던 권혁 이병 있었고 옆에 다른 선임 해병들은 그를 도와주기는커녕 무서워서 차마 나서지도 못하고 벌벌 떨고만 있었다. 그 바람에 권 이병은 혼자서 가해 해병과 서로 총을 붙잡고 밀고 당기는 평형 상태만 계속되다가 총이 아래로 발사되어 결국 고환에 총상을 입고야 만다. [94] 권 이병이 총을 뺏진 못했지만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범인을 생활관 밖으로 밀쳐내고 문을 걸어 잠군 다음 문을 열지 못하게 침대를 밀어 막았다. 그제서야 총을 맞았던 하반신에서 피가 솟구치고 있는 걸 깨닫고 방 안의 선임 해병들에게 자신을 지혈시켜 달라고 부탁했으나 선임들은 지혈할 줄 모른다며 그 도움 요청마저 회피했고 결국 옷을 찢어 스스로 지혈을 했다. 권 이병이 아니었다면 자신들이 죽었을 수도 있었으니 생명의 은인인 셈인데 지혈 방법을 모른다며 무작정 회피하고 목숨이 오가는 위기상황 속에서 최소한의 용기와 전우애도 없이 그저 보고만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해병대의 명성을 실추시키는 흑역사로 남게 된다.
그리고 해병대 장성들은 권혁 이병을 영웅으로 만들어 준다면서 사탕 발린 말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싹 잊고, 네 돈으로 사회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배상해 준 웃지 못할 일화도 있다. 이 일은 해병대의 이미지를 크게 실추 시켰으며 그 뒤에도 악성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는 바람에 유낙준 해병대 사령관[95]은 결국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에 짤렸으며 최악의 사령관으로 기억 남게 되었다. 다행히 다음 사령관인 이호연 사령관이나 이영주 사령관은 이 사건을 계기로 해병대 병영문화 개선에 과감히 나섰고 실제로 2015년경 이후부터는 과거 해병대와 비교해 크게 개선되고 있다고 한다.
이건 해병대 '부대'와 직접 연관된 사고는 아니지만, <해병대라는 명칭이 붙어 있고 실제 사고에 책임이 있는 캠프교관들도 모두 해병대 출신 예비역들이었기 때문에> #, #, 어쨌든 해병대의 이미지에 타격이 되는 사건일 수밖에 없다.
해병대 사령부에서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해병대 캠프는 포항의 제1사단이 운영하는 캠프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해병대 사령부측의 허락 없이 생긴 사설 업체들이다.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참사 이후 해병대 사령부 측에서는 '해병대 캠프'를 상표등록하는 것을 고려하는 중이라고 한다.
난립해 있는 많은 사설 해병대 캠프들도 대부분 해병대 출신들이 교관이긴 하다. '해병대' 체험 캠프이기 때문에 타 군 출신보다는 당연히 모군인 해병대식 훈련과 훈육방식에 대해 잘 알 수밖에 없는 해병대 전역자들을 우선적으로 교관으로 채용하는 건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설 해병캠프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서 교관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다 보니, 교관으로서의 실질적인 능력과 자격을 갖췄는지를 철저히 검증하지 않고 해병대 출신이기만 하면 무작정 채용해왔던 안일한 행태가 결국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참사라는 비극적인 사고로 터지고 만 것이다. 참고로 정식 1사단 해병캠프의 교관들은 해병대교육훈련단 훈련교관 출신과 해병대 특수수색대 출신 등 숙련된 현역 간부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위험요소 등을 잘 인지하고 있다. 1사단 정식 캠프의 교관 중엔 현재는 D.I가 아니라도 과거에 D.I를 역임했던 경력의 군인도 많다. 다행히 해병대사령부에서 사고 직후 상표권 등록을 하여 이제 더 이상 해병대 캠프라는 이름은 공식적으로 쓸 수 없다. 참고로 해병대 현역간부들은 이러한 종류의 사설 캠프를 되게 싫어했다. 그 이유는 해병대 정식 캠프도 아닌 주제에 해병대 이름으로 돈을 벌고, 해병대 출신들 중 함량 미달인 자들도 수두룩하게 민간해병캠프의 교관, 조교를 하기 때문에 안전사고 위험이 늘 있고 훈육방식도 서투르고 엉망인 등 제멋대로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사고도 끊이질 않아서 해병대 사령부는 어떻게든 없애 보려고 매의 눈으로 노려보던 참이었다. 대형사고가 터지자 바로 상표권 등록으로 제동을 걸어버렸다. 물론 사령부 말 더럽게 안듣는 해병대 예비역들의 꼬장을 볼 때 효과가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렇지만 해병대사령부에게도 골칫거리였던 존재들인 만큼 앞으로는 예전처럼 우후죽순으로 사설 캠프가 난립하지는 못할 것이다.
2017년에 탈북한 뒤 한국에서 생활하던 김모씨가 한국 여성을 강간하는 중범죄를 저지른 후 북한으로 도망가기 위해 2020년 7월 19일 새벽에 해병대 경계망을 뚫고 월북한 사건이다. 범인은 해병대 제2사단의 경계 섹터인 강화도 북단 최전방지역 철책 밑의 배수로를 통해 빠져나가 한강하구를 헤엄쳐서 북한으로 건너갔다. 그 배수로 바로 옆에 해병대 막사와 초소가 있었고 해병대 경계병들이 새벽에 그 사람을 목격하고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후 범인이 배수로를 거쳐 한강 하구를 헤엄쳐 북으로 넘어가는 일련의 과정이 해병대 감시장비에 총 10번이나 포착됐는데도 이중 한 건도 상부에 보고되지 않았고 이후에도 해병대는 월북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심지어 그 1주일 후에 북한측에서 탈북자가 월북해서 들어왔음을 뒤늦게 발표할때까지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중대한 경계실패 책임을 물어 해병대 2사단장해임되었고, 해병대 사령관[96]수도군단장이 엄중경고 처분을 받았다.

11. 기타



11.1. 귀신 잡는 해병대의 유래


마가렛 히긴스는 미국인 종군 기자로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사람이다. 히긴스는 인천 상륙 작전 한달 전에 해병대가 통영에서 상륙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보면서 1950.8.23자 미국 뉴욕해럴드트리뷴지에 "'''They might capture even the devil'''.(그들은 마치 귀신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라는 기사를 실었는데, 이것이 "귀신 잡는 해병"의 시작이라고 알려져 있다.
반면 제6대 해병대사령관이었던 공정식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대부분의 해병은 진동리 전투에 이은 통영상륙작전을 계기로 뉴욕 해럴드 트리뷴지의 종군기자 마거릿 히긴스가 쓴 ‘귀신 잡는 해병(They might capture even the devil)’이라는 기사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지만 이 기사는 입증되지 않은 반면, 진동리 전투에서 가진 UPI 인터뷰 타전은 기록으로 보관돼 있습니다. 이때부터 귀신 잡는 해병 닉네임이 잉태됐습니다."라고 말하며, '마가렛 히긴스'가 출처가 아니라 'UPI 인터뷰'에서 그 기원을 찾아야 된다고 주장한다.
뉴욕헤럴드트리뷴은 1966년 폐간됐고 이 과정에서 과거 기사자료 다수가 유실됐었기 때문에, 'They might capture even the devil(귀신 잡는 해병대)' 기사의 출처를 알 수 없는 것은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정식 전 사령관의 주장만을 맞다고 하기에는 어렵다. 기록으로 찾을 수 없다뿐이지 마거릿 히긴스가 쓴 'They might capture even the devil'이라는 기사 제목에서 유래됐다는 수많은 전 사령관들의 주장과 함께, 또한 이것이 해병대 현역과 예비역에게 가장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가렛 히긴스가 말했거나 아니면 다른 기자가 말했거나 어찌됐든 '통영 상륙 작전'을 통해서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별칭이 붙은 것은 사실인 듯 보이고, 또한 거기서 말한 '귀신'의 유래가 영문으로 'ghost'가 아니라 'devil'이었다는 점도 특이할만 하다. devil은 악마로 해석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당시는 정식 번역가나 제대로된 사전도 없었고 번역 규칙도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라, 번역을 담당한 사람이 제마음대로 '귀신'이라고 의역했을 가능성이 있다. 사실 외국인들은 해병대가 귀신을 잡는다고 하면 이해를 못하는데, 악마를 잡는다고 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악마 잡는 해병대'가 실제 유래이기도 하고 좀 더 멋있어 보이긴 하지만, 이미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별칭으로 오랜 세월 굳어져 버려서 쉽게 바뀌지는 않을 듯.

11.2. 전우회


기수와 전우애를 중요시하는 해병대답게 전역 후에도 전우회 활동을 하는 해병대 전역자들이 많이 있다. 일부 대학에서는 전우회 가입을 강요하는 등 다소 눈살이 찌푸려지는 모습들과 과한 조직문화 때문에 농담 삼아 3대 마피아라고도 불렸다. 일단 취지는 동료애와 지역사회 도움이다.


11.3. 해병대와 해군의 군사경찰


[image]
해병대가 해군을 모체로 하여 떨어져 나온 부대인만큼, 지금도 해병대에서 사용하고 있는 각종 용어와 군 문화의 상당수가 해군에서 유래된 것들이고 병과도 해군에서 빌려왔던 것과는 반대로, 대한민국 해군의 군사경찰 병과는 해병 군사경찰에서 분리되었다. 그래서인지 옛날 해군 군사경찰은 성향이 좀 해병같고, 해군과 해병 군사경찰의 제복이 매우 비슷하다고 한다.[98] 그래서 해군 군사경찰과 해병대 군사경찰의 복장은 상당히 비슷하다. 예복이나 행사복 복장을 보면 마크와 명찰만 빼면 거의 똑같다. http://www.instiz.net/pt/3399899
근데 시간이 꽤 지난 지금, 해군 군사경찰들은 해군 군사경찰대가 해병대 군사경찰대에서 분리된지 모르는 경우도 태반이고, 분위기도 해병대와 별 연관이 없다. 원래 해병대의 기원이 배 안에서 선상반란을 막는 등 치안유지 임무를 수행하다 적과 조우 시 적 함정으로 건너가 육박전을 벌이는 스페인 무적함대의 육전수병들이었단 것을 생각하면 해군군사경찰의 기원이 해병대에 있는 건 당연하다. 참고로 해군 군사경찰에는 일반 치안유지를 맡는 군기군사경찰과 조기경보전대,[99] 항만방어전대,[100] 기지 외곽초소 경비 등을 맡는 경계군사경찰으로 나뉘는데 경계군사경찰은 해병대로 대체하고 없애라는 주장이 많으며 해병대 예비역중에서도 병력 증강하고 좋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과거에는 경계군사경찰의 임무는 해병대 보병이 전담했다.
군사경찰에 의한 해병대원들의 단속과 처벌 수위가 높아지고 군기 순찰도 신촌, 홍대거리, 서면역 같이 전혀 안 뜰거 같은 곳으로도 잘 뜬다. 한 예로 해병대 제2사단의 군기순찰은 인천해역방어사령부 군사경찰의 지원을 받아 신촌홍대거리 등에 뜨기도 하고 해병대 제1사단의 군기순찰이 해병대사령부 군사경찰단 및 3함대 군사경찰과 함께 서면역이나 남포역 등지에 뜨기도 한다. 그래서 깽판 치면 거의 100% 그 자리에서 잡히고 자인서 쓰거나 심하면 군기교육대로 직행한다. 특히 해군 군사경찰이나 간부들은 해병대와 서류상 동일 군종이므로 타군은 웬만해선 안잡는 그런 것도 없고 복잡한 인계 절차도 없어 거리낌없이 잡는다. 한국 해병대의 명찰은 빨간색이라 한 눈에 띈다. 그리고 전투화가 육면 가죽으로 되어 있다.

12. 관련 영상







12.1. 훈련



2012년 뻘 극복훈련

2014년 3월 한ㆍ미 연합 훈련 "쌍용훈련"

2014년 실전 전투체력, 사격훈련

2014년 전투체력훈련

2014년 7월 21일 림팩(RIMPAC, 하와이 전지)훈련

2014년 11월 18일 해군과 해병대의 호국합동상륙훈련

2015 한ㆍ미 해병대 연합 대규모 상륙훈련

2015 한ㆍ미 해병대의 대대급 연합작전 강화를 위해 실시된 KMEP(케이맵) 훈련

2015 해군, 해병대 연대급 합동상륙훈련

2015 독수리 연습의 일환, 한ㆍ미 해군·해병대 연합 상륙훈련 "쌍룡훈련"[101]

2016년 코브라 골드 훈련

2016년 3월 한ㆍ미 연합 훈련 "쌍용훈련"


2017 한국 해병수색대미 해병대가 함께한 한ㆍ미 해병대 연합 동계전술훈련

2019년 코브라 골드 훈련

2019 전투수영 훈련

13. 관련 문서


상륙함 종류 보기


14. 둘러보기



[1] 봉담중에서도 좀 떨어져있다.[2] 병 2만 명, 부사관 7천 명, 장교 2천 명.[3] 헥스 코드 CC101F[4] 대한민국 해병대의 모토[5] 常勝 : 언제나 이긴다.[6] 초대 해병대사령관을 역임한 신현준은 해병대 창설 직전엔 해군 통제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신현준이 일제강점기 만주군 육군 예하 간도특설대에서 지휘관으로 근무했던 경력 때문에 (그로 인한 민족적/도덕적 흠결은 차치하고) 어쨌든 육상작전 지휘 경험이 인정되어서, 해군이 운용하는 육상 전투부대라고 할 수 있는 대한민국 해병대사령관으로 임명된 것이다. 물론 해병대의 필요성을 처음 건의하고 창설과정을 주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7] 대한민국 해군의 총 병력은 약 70,000명으로, 해군 41,000명과 해병 29,000명을 합산한 수치다.[8] 마스코트 해병이, 품종은 진돗개이다. 공식 마스코트가 라는 점에 대해서 개병대 관련 의견, 너무 나약하게 생겨 싫다는 의견, 귀엽고 대민친화적이며 한국산 품종인 진돗개라 좋다는 의견이 대립한다. 호남고속도로 대전방향 벌곡휴게소 벽에 하늘이와 푸르매, 해돌이와 함께 스티커로 붙여져 있다. [9] 박정희대통령이 해병대를 해체한 진정한 이유를 두고 아직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10] 해병대 2여단(현 해병대 제2사단)은 '청룡'을 경례구호로 쓰는 등 부대상징을 경례구호로 쓴 해병부대도 있었다. 그러다가 1973년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해병대사령부를 해체하고 해군으로 강제적으로 배속시켰기 때문에 경례구호도 해군과 통일시키기 위해 1976년경에 해병대의 경례구호도 해군과 같은 '필승'으로 바뀌었다. 이 이후론 더 이상의 변화 없이 지금까지 수십 년간 '필승'을 써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병대의 경례구호는 해군, 공군과 마찬가지로 '필승'으로 하고 있다.[11] 지금의 육군참모총장지상작전사령관처럼[12] 대장이 7명이므로 현역 의전 서열 8위가 된다.[13] 6.25 전쟁 초반만 해도 해군 장교였는데, 그의 능력을 눈여겨본 해병대 수뇌부 측의 설득으로 인해 해병대로 전과하였다.[14] 1959년 2월 26일에 해병대 제1사단 1연대를 기반으로 창설된 제1임시여단이 김포지역에 계속 남아서 주둔하게 되어, 그때까지 경기 서북부에 주둔하면서 서부전선을 지키다가 1959년에 포항으로 이전하게 된 해병대 제1사단 대신 서부전선 방어를 맡게 되었다. 이후 1사단에서 새로 창설된 제5여단이 김포 경비를 제1임시여단과 임무교대하여 1967년부터 김포 방어를 맡았고, 1임시여단은 1사단으로 복귀/흡수되었다. 1972년에 월남 파병을 종료하고 돌아온 제2여단(청룡부대)이 김포에 주둔하게 되면서 이때부턴 2여단이 김포 경계임무를 맡게 되었고, 67년부터 김포를 지켜왔던 5여단 병력은 1사단으로 흡수되면서 5여단은 없어진다. 2여단은 1981년에 해병대 제2사단으로 증편된다.[15] 당시 김포 해병여단 여단장은 '''김윤근''' 준장이었는데,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처형당한 육군 준장 김윤근 장군과는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무관한 인물이다.[16] 이렇게 전방에 배치돼 있는 부대를 쿠데타를 위해 빼돌리는 짓은 이후 12.12 군사반란제9보병사단 예하 29연대에 의해 다시 되풀이된다.[17] 이후 해병대 출신자들의 고위간부 승진은 해병대의 독자적인 용어체계 사용 등 대책없는 병크들을 불러일으킨다.[18] 당시 제6군단 포병여단장 문재준 포병대령, 박치옥 당시 제1공수특전단장, 채명신, 김재춘 등이 있음[19] 그 이유에 대해 박정희 대통령이 해병대를 너무 키워놔서 앞으로 쿠데타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이유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이는 명확한 근거로 밝혀진 것은 아니고 해체 이유에 대해서 해병대 예비역들 사이에서 도는 하나의 추측성 카더라일 뿐이다. 월남파병 종료 후 경제적인 군조직 재정비가 당시 군조직 개편과 축소의 공식적인 명목이었다.[20] 원래는 육군만으로 파병부대를 꾸리기로 되어 있었으나 파월 결정이 나자 해병대가 왜 우린 빼냐고 항의했고, 육군 역시 파병 병력이 늘어나는 거 자체는 좋은 일이라 그냥 수락했다.[21] 박정희 정부는 지상군 병력인 해병대를 축소한 대신 해군에는 많이 투자했는데, 당시에는 없는 형편에 기어링급 구축함을 도입하여 최초로 미사일 운용 함정을 들여오기도 했으며, 이 기어링급은 1990년대까지 해군 주력함 중 하나였고 나중에 KDX로 광개토대왕급 구축함충무공 이순신급 구축함으로 대체되었다. 이후 해군전두환, 노태우대통령의 시기가 끝난 뒤인 문민 정부때부터 KDX 사업을 추진함에 따라 참여정부 시기에 이르기까지 광개토대왕급 구축함충무공 이순신급 구축함, 그리고 이지스함세종대왕급 구축함 획득에 성공했다.[22] 해병대는 엄연히 해군 소속이었고 해군의 지휘 하에 있는 조직인 데다가 더구나 그 당시는 해군에의 종속성이 심할 때라서 해병대에 대한 해군의 영향력과 입김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부대명도 해군 측이 자기들이 원하는대로 하려고 했다.[23] 당시 직책명칭은 해군제2참모차장[24] 이런 해병대 부활 당시의 상세한 뒷이야기는 여기에서 볼 수 있다.[25] 1사단의 별칭이 해룡과 황룡으로 의견이 나뉘는데, 1사단의 별칭은 해룡이 맞다. 황룡은 2연대(현재 2여단)를 황룡이라 칭한다. 일개 연대(2연대>현재 2여단)가 별칭을 갖는다는게 이상할 수도 있지만, 해병 1사단 의 2연대(현재 2여단)는 선봉부대의 상징성이 높아서 자체적 황룡이라 지칭한 듯 하다. 2사단(청룡), 6여단(흑룡), 9여단(백룡)이 색깔별 용이이서 1사단이 황룡이 아닐까 생각도 하지만, 연평부대(공룡)를 보니 꼭 색깔별로 칭한 건 아닌 것 같고, 1사단을 '바다를 지키는 용'(해룡)으로 칭하는 게 맞는 것 같다.[25]해군 제주방어사령부에서 개편[26] 구 상륙지원단, 군수지원단[27] 하지만 공식문서상이 아닌 일상에서의 해병들은 옛 습관대로 해병대라고 불렀다.[28] 참고로 수장이 사성장군#s-1이란 것과 육해공군 3군과 독립한 부대라는건 전혀 별개의 얘기다. 대한민국 해병대는 3성 장군 시절과 4성 장군 시절 모두 해군 산하의 부대였다.[29] 심지어 미합중국 해군 상륙함이 미 해병대 소속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해병 출신이 많다.[30]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에 해병대 전우회의 한 간부는 해병대에 1973년 이전처럼 독자적인 권한이 있었다면 더욱 강력한 대응을 할 수 있을 거라며 강력히 주장하며, 해군이 해병대를 지휘하는 것은 수영선수 출신이 축구감독을 하는 것과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축구 선수에 해당하는 군종은 육군이니, 이런 비유는 스스로 육군과 다를 바 없으니 언제 육군에 합쳐져도 할 말 없다는 자충수일 뿐이다.[31] 또한 언론에서는 육군, 공군, 해군의 삼군이 아닌 해병대를 포함한 4군 체제로 말해야 하며, 참모회의 등에서 해병대기를 삼군기와 나란히 두지 않는 것은 위법이라고 말할 정도로 강력히 독립성을 설파하였을 정도였다. 당연히 전 세계 해병대 중에서도 단연 제일 잘나가고 파워가 좋다는 미 해병대도 그 정도까지 해군에서 독립한 건 아니라는 실제 예가 있어 위와 같은 독립 주장은 성사될 가능성이 없다. 원래 해병대 자체가 해군의 상륙 전투부대라는 개념인데다 상륙 함선도 해군이 운용하며, 상륙작전 시에도 해병대가 상륙하기 전까지는 해군이 지휘한다.[32] 물론 편제 조정 등으로 해병대사령관을 '해병참모총장'으로 격상시키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이건 되려 해병대에게 손해'일 것이다. 왜냐하면, 겨우 2개 사단밖에 안 되는 인원인데 계급을 하나씩 다 격상하면 말단 전투원이 하사가 되는데 그러면 그것에 맞게 편제를 뜯어고치게 되고 결국 규모가 현저히 줄어들게 될 것이다. 대위 계급으로 소대장이나 대령 계급으로 중대장을 하게 되는 꼴인지라 계급이 올라가는 대신에 규모가 작아지게 되는 것이다.[33] 이미 복무신조에 해당하는 '해병의 긍지'의 첫 구절이 '나는 국가전략 기동부대의 일원으로서 선봉군임을 자랑한다.'이기는 하다.[34] 거기에 애당초 국가 전략 기동군을 만들고 싶으면 병력이 많다 못해 쓸데없이 과잉상태에 달한 육군에서 인원 빼서 만들지, 고정 상륙작전이라는 주 임무가 있는 해병대를 굳이 국가 전략 기동군으로 전환해야 할 이유는 없다.[35] 대한민국처럼 징병제를 실시하는 국가는 생각이 없어서 군 복무에 부적합한 사람들을 징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36] 실제로 해병대에 입대하면 매일같이 육해공을 넘나드는 훈련을 하고 고무보트헬리콥터, 상륙장갑차를 타고 다닐 것으로 알고있던 사람도 많다[37] 미 해병대를 제외하면 해병대 2개 사단급을 (나눠서 혹은 한 곳에 몰아) 상륙시킬 능력을 갖춘 국가는 사실상 없고, 대한민국 해병대마저 미 해군미 해병대의 자산 일부를 빌려 상륙할 것을 상정하고 전술을 짜고 있어, 해안 경계를 포기하면 2사단은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38] 요즘은 그런 장병은 현역부적합심사를 통해 그냥 내보내버리기는 한다. 예전처럼 형평성이 어쩌고, 남자가 어쩌고, 국민의 의무가 어쩌고 하면서 꼰대처럼 붙잡고 있어봤자 간부나, 동료나, 당사자나 서로 손해이기 때문에. 당사자에게나 주변에게나 그나마 다행이고, 헬조선의 병역의무가 그나마 쥐꼬리나마 선진화된 사례라 볼 수 있을 것이다.[39] 다른 모든 군대가 마찬가지겠지만 본부와 멀어질수록 의식주마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끔찍한 상황이 발생한다[40] 영국 해병대미국 해병대와는 많이 다른 성격의 부대로서, 경보병#s-1.2 코만도 여단을 중심으로 하는 소수정예 편제이기 때문에 비교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 영국 해병대 경우는 1960년부터 대부분의 전투부대를 말 그대로 "코만도"화 해서 일반적인 해병대보다는 오히려 경보병 부대와 비슷한 면이 많고, 미 해병대는 말 그대로 '미군'이라서 전 세계를 무대로 하는 원정군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타군들이 미 해병대를 MARINE (My Ass Riding In Navy Equipment/난 해군 장비 타고 있다)라는 식으로 열약한 지원을 비꼬는데도 웬만한 다른 나라의 육군보다도 더 많은 지원을 받는다. 그래서 대한민국 해병대는 미 해병대나 영국 해병대 등과는 성격이 아주 다르고, 대한민국의 실정과 현실에 맞게 운용되고 있다.[41] 물론 이도 훈련부대가 계속 해보려는 강한 의지가 있고 훈련부대 지휘관이 어필할 때의 이야기지, 그렇지 않고 그냥 성의 없이 임하면 초반에 싱겁게 종료될 수 있다.[42] 반대로 육군에서 쭉 충성으로 경례를 하다 해병대 부대에 와서 다시 필승으로 경례를 하려니 헷갈리는 것도 마찬가지다.[43] 1사단에 3개의 보병연대가 있고 각 연대에 3개의 보병대대(특화대대)가 있으니, 총 9개의 보병대대가 있는 것이고 특성화별로 나눠보면 기습/공정/유격 대대가 각각 3개씩 있는 것이다. 1사단 외에는 현재 6여단의 제63대대가 기습대대의 편제를 갖추고 있다.[44] 당시의 명칭은 사령관이 아니라 해군 제2참모차장[45] 그 전인 1960년대에 대한민국 육군에서 기존 보병사단 3개를 공정/상륙/산악 사단으로 각각 개편시킨 특화사단 체제를 몇년간 시행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것에서 힌트를 얻고 벤치마킹하여 해병대 1사단에 응용해서 도입시킨 것이다.[46] 그러나 개인적으론 무척 비극적인 삶을 살았는데, 조현병(정신분열증)에다 간질병을 앓는 장애인아들살해한 뒤 운전기사와 함께 아들의 시신을 대청호 호수에 유기하여 실종된 것처럼 위장했다가 아들의 시체가 떠올라 발견되고 유력한 용의자로 수사망이 좁혀오자 결국 자살했다. 사건수사 기사 수사결과 기사[47] 빡세보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일부러 지나치게 가혹해 보이는 장면을 연출하여 찍은 사진. 당연히 군사보안에도 저촉된다. [48] 해병대 군장학생이 존재하는데, 이 과정은 육군과는 달리 3학년 때도 지원가능하다. 3학년 때 지원한 해병대 군장학생의 경우 의무복무기간이 일반 학사장교 3년에 장학금 수혜기간 2년을 합쳐 5년.[49] 단기 자원만 지원 가능하며, 육군에서 장학금을 받은 군장학생은 지원 불가하다.[50] 기갑 특기 포함[51] 해병대 학군단은 한국해양대제주대에만 있다. 그러나 육군 학군단 소속 후보생이 해병대로 지원할 수 있으며,[49] 선발되면 육군에서 해병대로 전군되어 해병 소위로 임관하게 된다. 육군 학군장교보다 의무복무기간이 4개월 짧아지기 때문에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출신들도 많이 지원할 정도로 경쟁율이 높다. 보병,[50] 포병, 공병, 통신 등 전투병과는 물론 비전투병과인 정훈, 군사경찰, 여군까지 모집한다.[52] 이들도 학사장교로 임관한다.[53] 해병대 기행병과를 원하면 해병대 전투병과로 복무하다가 중~대위 때 신청해 옮겨야 한다.[54] 물론 그들 중에서도 해병대에 잘 맞는 성격이라 해병대 문화에 적응을 잘 하고 해병대 군생활을 즐겁게 잘 하는 이들도 소수 있긴 하다.[55] 어떤 경우는 해병들이 휴가나 행사 시에 입는 정모와 근무복을 구해서 입기도 한다.[56] 견장없는 해군식 디지털 전투복[57] 영화 아버지의 깃발에서 주인공이 해군 의무부사관으로 해병대와 같이 이오지마에서 굴러다닌 사연이 나온다.[58] 이건 의무병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해군은 6개월 이상 함정이나 도서지역, 격오지, 해병부대 등에서 근무한 수병에 대해 육상의 후방 부대로 발령을 갈 기회를 준다. 보통 함정 근무자나 해병대는 7~80%, 도서나 격오지는 4~50% 정도가 발령을 간다. 해군은 덕분에 함정이나 도서 등은 일이병이 수두룩해 일이 힘든 대신 남게 되면 선임이 거의 없어 내무 생활이 빨리 편해지고, 육상은 일이 편한 대신 상병장이 수두룩한 역피라미드 구조라 끗발 세우기 힘들다. 한 번 배치받으면 거의 무조건 그 부대에서 군생활을 해야 하므로 누군 끝까지 고생하고 누군 끝까지 편한 육공군보단 어느 정도 공평한 셈. 그러나 애초부터 육상에만 근무하는 직별인 군사경찰은 해당사항 없다.[59] 비단 의무병들 뿐만 아니라 다른 수병들도 동일하게 겪는 상황이다. 모 수병의 경우 120명이 근무하는 부대에 상병 4~5호봉때 발령받아 갔더니 병장만 100명이었다는 일화도 있다.[60] 중대급부터 지휘관의 지휘권이 철저히 보장된다. 게다가 의무중대의 경우 중대장이 대부분 군생활에 별 욕심없는 군의관이 많기 때문에 상급 지휘관들도 의무중대를 함부로 건들기 어렵다.[61] 물론 해병으로 간 의무병은 2차 발령을 쓰기만 해도 바로 간다. 심지어는 2차 발령을 쓰지 않았는데도 발령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의무병 상당수를 해병대로 우선 보내기 때문에 해군소속 병원부대들은 항상 의무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62] 게다가, 이제는 세계적인 해군국인 현재의 대한민국 해군과 달리 60/70년대 옛날 시대 해군은 미국에서 중고로 구해 온 고물 배를 운용해서 함정생활이 매우 열악했다. 말 그대로 배타면 진짜 죽을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좀만 풍랑이 불어도 배에 물이 새거나 하는 건 흔했다. 기어링급 구축함은 물 새는 배로 유명했고 쥐가 수병의 살을 갉아 먹기까지 했다! 당연히 배 안에서의 구타도 심해 기어링급은 과거 곡소리 배로 악명 높았고 노후화된 포항급 역시 현재 악성 사고사례의 기본 진원지이다. 반면 해병대는 배를 안 타서 상대적으로 생명의 위협까진 느끼진 않았기 때문에 해군 대신 해병대를 선택할 유인이 있었다.[63] 여동생은 가수 윤복희이다.[64] 해병대 징집기수는 지역별로 돌아가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김흥국의 기수인 401기는 서울 징집 기수다.[65] 연상녀인 가수 백지영과의 결혼 등으로 화제를 모았으나, 2018년에 호주에서 필로폰을 투약한 것이 들통나서 긴급체포되었다.[66] 진짜 사나이 해병대 편에서 내레이션을 맡기도 하였다.[67] 당시엔 이찬혁은 5월에 제대를 앞둔 말년 병장이었고 민호는 옆 부대로 배치되었다. 근데 연예계에선 민호가 선배이고 나이도 5세 더 많은데, 해병대에선 이찬혁이 훨씬 선임이라 난감해 했다.[68] 국군체육부대(상무)가 생기기 전엔 A급 운동선수들이 육군, 공군, 해군/해병대의 각 체육종목팀으로 입대해서 군생활 동안 해당 종목 운동선수로 계속 활동했었다.[69] 예술체육요원이기 때문에 훈련 과정이 3주 정도지만, 빨간 명찰을 받으며 병적 기록은 해병 이등병으로 남게 된다.[70] 06년 군번[71] 박선호는 예비역 해병대 대령이었다. 참고로 박선호는 김재규가 중학교 교사를 하던 시절 김재규가 맡은 반의 중학생이었다. 김재규가 아끼던 제자였던 박선호는 졸업 후에도 계속 서로 연락하고 만나며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고. 이 인연으로 김재규가 중정차장이던 시절에 박선호를 중정으로 취직시켜줬던 것이다. 김재규는 재판정에서 박선호 등 부하들에 대해 "그들은 나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다. 관대한 처분이 있기를 바란다" 라며 선처를 호소했으나 결국 교수형당했다.[72] 박선호가 죽인 경호실요원도 해병대 출신이었다. 박정희 때 해병대사령부를 해체하고 축소시키면서 구조조정으로 인해 갑자기 예편당한 해병대 간부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 인원들 일부를 경호실이나 중정에서 채용하게 되면서 들어간 인원들이었다.[73] GTA온라인 업데이트로 나온 군복을 보고 군복을 보여주거나 군대 얘기를 하는 등의 표현도 볼 수 있다.[74] 지금은 병역을 수행하면 이중국적 유지가 가능하지만, 최 총장의 아들이 입대할 당시에는 해당 규정이 없었다.[75] 휴전한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인 데다가, 한반도 도서 지역 전체를 일일이 병력을 보내 지켜야 해서 해병대의 규모가 커야 했기 때문으로, 이때는 해병대가 해군보다 인원 수가 두 배에 달할 정도였다. 전반적으로 후진국 해군들일수록 해군 내 해병대나 육전대 등 지상전 전담 부대의 규모가 크다. 함정보다 단가가 싸게 들기 때문이다.[76] 단 제주도인들로 구성된 3,4기엔 강제징집 뿐 아니라 자발적 지원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77] 학사장교와 비슷한 맥락이 됐다. 학사장교의 경우는 초기에는 홀수기수, 짝수기수 번갈아가며 보병, 비보병이 되었다.[78] 그 뒤 해병연예대에서 근무했다.[79] 해병대 징집기수제는 67년에 생겼다.[80] 나머지 반은 징집으로 충당[81] 2%는 상근예비역, 그리고 해병대에서 근무하는 해군의무병들이다. 자세한 건 밑에서 설명.[82] 해병대 내 엘리트로 손꼽혔으며 예편 후 단국대학교 해병대군사학과 교수가 되어 후임 정예 해병장교 양성에 힘쓰고 있다.[83] 미국 해병대도 어느 정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고 한다. 사실 사용할 데가 없다. [84] 독도급 강습상륙함은 3척 운용할 예정이다.[85] 중국군이 해군육전대의 규모를 10만 명 대폭 늘리기로 결정하면서 한국 해병대는 3위로 밀려날 전망이다.[86] 단, 스페인 해군은 유렵에선 비교적 대규모 해병대를 보유한다. 애초 원조가 이쪽이다. 유럽 국가들의 해병대는 해군 소총부대라 불리며 상륙작전보다는 군항 지역의 육상 해안경계, 도서방어에 더 주력한다. 해군기지가 있는 항구나 섬 등을 적군에 점령당하면 이들이 탈환해야 한다.[87] 2사단의 작전 범위는 매우 광범위하며 대대 간 차량 이동을 해야 할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다. 예하 연대가 실질적으로 사단급 경계 근무를 하고 있는 것이다.[88] 해병대 용어로 긴빠이라고 한다.[89] 2차 발령으로 인해 떠나는 해군 의무병을 해군 부대로 이동하기 전날 밤 구타하는 사례도 있었다.[90] 해군은 이미 기존에 있는 인력과 시설을 활용하면 되니 운용예산이 절감된다고 하고 있고 해병대는 도입목적자체가 해병대 상륙수송용이니 당연히 자신들이 관할해야 하며 해군이 관할하면 상륙수송용 외의 용도로도 쓰이게 되는 걸 우려하는 듯하다.[91] 당시엔 이미 예편해 있던 초대 해군참모총장 손원일 제독도 부정축재 의심자로 명단에 올랐는데, 박정희가 "내가 그분을 잘 아는데, 그분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며 넘기기도 했다. 실제로 부정축재의 근거도 없었다.[92] 대통령 별장도 있는 진해를 하도 들락거려서 당시 전국 도로들 중 진해 도로가 가장 관리가 잘 되어 있다고 소문이 날 정도였다.[93] 짧은 반바지였는데 민간인들에게 팬티로 오인됐고 이후 빤스런이라는 단어를 탄생 시킨다.[94] 그래서 권 이병의 아버지는 그때 단 한 명만이라도 도와줘서 힘을 합쳤다면 총을 쉽게 뺏었을 테고, 그러면 아들이 고환에 총알을 맞는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며 선임 해병들을 원망하는 글을 해병대 가족카페에 올리기도 했다.[95] 20대 총선에서 남양주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려 했으나 새누리당 경선에서 탈락하여 출마하지 못했다.[96] 해병대 2사단은 지상작전사령부 - 수도군단 순서대로 지휘를 받기에 해병대사령관에게 엄중경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97] 단추에 새겨진 무늬와 명찰색만 다르다.[98] 해군과 해병 군사경찰의 병과 마크(군사경찰 근무복과 행사복에 다는 배지의 모양)이나 흰색 헬멧, 그리고 동/하 행사복의 형태가 동일하다.[97][99] 섬지역에 주둔하는 해군의 도서 방어 부대로 섬은 육군이 아닌 바다에서 싸우는 해군이나 해병대가 지키는 것이 원칙이라 서북 도서에는 해병대가 후방 지역의 섬에는 해군이 주둔한다. 정확히는 1982년 도서 방어가 육군에서 해군으로 이관되었다.[100] 부산항 등 항만지역에서 해안경계를 맡는 부대[101] 슬프게도 한국군만 조준경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