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왕(주)
1. 개요
주나라의 제23대 왕. 간왕의 아들이며, 경왕(景王)의 아버지다. 간왕이 죽고 그 뒤를 이었다.
2. 치세
당연히 주나라 천자는 실권이 없으므로 그의 치세보다는 아무래도 그 당시 일어난 진(晉)나라와 초나라 사건을 기록해보겠다.
영왕 17년(기원전 556년), 송나라의 대부 상수(向戍)[1] 는 진(晉)나라, 초나라를 송나라의 수도 상구에 초청해서 회맹을 했다. 거기에는 송나라, 진(晉)나라, 초나라, 노나라, 위(衛)나라, 진(陳)나라, 정나라, 조나라, 허나라, 채나라 등 10여개 국가가 참여했다. 초나라와 진나라가 공동 패자가 되는 것이 이 회맹의 내용이었다. 이것을 미병 회맹이라고 한다.
영왕 18년(기원전 555년), 미병 회맹으로 진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평화가 왔다.[2] 정나라는 그 틈을 타서 명재상 자산(子産)의 도움으로 진(晉)나라와 초나라와의 불평등 조약을 개선한다. 그리고 자산의 능력에 힘입어 정나라는 중흥하게 된다. 그런데, 거나라에서는 거나라 군주가 학정을 펼쳐 백성들이 원망하였다.
영왕 20년(기원전 551년), 노나라의 관리 숙량흘의 아들이 태어났다.
영왕 21년(기원전 550년), 진(陳)나라의 귀족인 경(慶)씨 가문은 백성들을 징용하여, 성을 쌓았다. 그러나 축성 중에 널빤지가 떨어지자 경씨는 백성들을 잔인하게 죽여 벌했다. 그리하여 부역에 시달린 백성들은 반란을 일으켜 경씨 가문의 가주인 경호(慶虎)를 죽였다.
영왕은 장자인 희진(姬晉)이 총명하여 그를 아꼈으나 17세의 나이로 죽었다. 그리하여 영왕은 그 아우인 희귀를 태자로 삼았다.
영왕 26년(기원전 545년), 영왕이 붕어하여 그 아들인 희귀가 즉위하니 그가 바로 경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