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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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당나라의 역사가로 당나라 초기 역사편찬에서 가장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2. 생애
영호덕분은 583년에 의주(宜州) 화원현(華原縣)에서 태어났다. 영호덕분의 조상은 대대로 돈황에서 살았으며, 하서 지방의 명문가 집안이었다. 영호덕분은 박학하고 문사에 통달하여, 일찍부터 명성을 얻어왔다. 대업 연간 말에 약성현장(藥城縣長)이 되었지만, 당시의 혼란으로 인하여 약성현으로 가지는 못하였다. 이후 영호덕분은 이신통 휘하에 들어가 기실참군이 되었다. 수나라 말 이연이 승상이 되면서, 영호덕분은 대승상부의 기실로 들어간다.
618년, 이연이 수공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당나라를 건국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는데, 이가 초대 황제인 당고조이다. 영호덕분은 고조의 치세에서 기거사인, 비서승으로 승진하였고, 진숙달 등과 함께 예문유취(藝文類聚) 편찬에 참여하였다. 수말당초에는 수많은 전란으로 인해 많은 서적들이 산일되어, 영호덕분은 고조에게 천하의 흩어진 서적들을 모으도록 상주하여 몇 년 동안 수많은 서적들을 확보하였다.
이후 태종의 치세가 되어, 영호덕분은 양나라, 진나라, 북제, 북주, 수나라의 역사서를 편찬할 것을 주청하여, 영호덕분은 북주의 역사서 편찬과 더불어 위징과 함께 오대사의 편찬을 담당하였다.영호덕분은 여러 차례 예부시랑으로 승진하고, 수국사를 겸임하였으며, 태자우서자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영호덕분은 진서의 개수 작업에도 참여하여, 비서소감으로 제수되었다. 이렇게 해서 당나라 시기에 양서(梁書), 진서(陳書), 북제서(北齊書), 주서(周書), 수서(隋書), 진서(晉書), 남사(南史), 북사(北史) 등의 역사서가 나올 수 있었다.
고종의 치세에서 영호덕분은 예부시랑 겸 홍문관 학사가 되었으며, 태상경, 국자좨주, 숭현관 학사를 지냈다. 영호덕분은 662년에 표문을 올려 관직에서 물러났고 4년 뒤인 666년에 사망하였다. 사후의 시호는 헌(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