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스루에 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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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를스루에에 위치한 빌트파르크슈타디온을 근거로 하는 독일의 축구 클럽이다.
2. 역사
1894년 카를스루에 FC 피닉스 라는 이름으로 창단했다. 창단 초반부터 2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이 팀이 독일 내에서 엄청난 강호로 손꼽힌다. 그러나 세계대전이 끝나고 오베르리가에 참가하는데, 강등되고, 재정상황도 나빠져서 결국 1952년 9월 2일 VfB 뮐부르크 라는 팀과 합병하고 카를스루에 SC라는 이름으로 바뀐다. 그 뒤에 팀 성적에 변화가 생기는데 1955년과 56년 샬케 04를 이기고 DFB-포칼우승을 달성하더니 리그에서도 1956년, 1958년, 1960년에 우승을 하며 독일 남부에서 강팀으로 손꼽히게 된다.
그러던 1963년 분데스리가가 창단되며 분데스리가 원년멤버 16클럽중 한 클럽이 되는데, 분데스리가에선 5시즌동안 하위권에 있다가 결국 2부리그로 강등되고 만다. 그뒤 계속 승격, 강등을 반복하다 1987년 승격하는데... 이후 10년동안 빈프리트 셰퍼감독 아래서 구단 최고 성적을 기록한다. 1990년부터 우리가 잘 아는 올리버 칸이 주전자리를 잡더니 1993-94시즌엔 UEFA컵에서 PSV 에인트호번, 발렌시아, 지롱댕 드 보르도, 보아비스타 FC 등 강팀을 꺾고 준결승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고, 그 과정에서 8강에서 만난 스페인의 명문 발렌시아 CF에게 메스타야 원정에서는 3:1로 패했으나, 홈에서 올리버 칸의 환상적인 활약에 더불어 에드가 슈미트가 4골을 퍼부으며 '''7:0'''이라는 믿기 힘든 스코어로 대승을 거두며 4강에 진출한다.[6] (독일에서는 이를 '''빌트파크슈타디온의 기적'''이라 칭한다.) 이는 카를스루에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성적이라고 할 만 하다.
그러나 90년대 카를스루에는 너무 비싼돈으로 선수들을 사오거나 무리한 투자 등의 이유로 인해, 클럽의 재정 상태가 많이 위태로웠다. 결국 팀의 에이스들이었던 메멧 숄, 올리버 칸 등을 바이에른 뮌헨에 팔 수밖에 없었고, 팀의 에이스들이 사라진 카를스루에는 최하위로 강등되게 된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1999-2000시즌 2부리그에서도 재정난에 시달리며 단 1승밖에 거두지 못하고 3부리그까지 강등되고 만다. 그러다 2005-06시즌 새로운 감독이 오면서 6위를 차지하고 2006-07시즌에 2. 분데스리가를 우승하며, 1부리그로 복귀한다. 2007-08 시즌 전반기 한때 2위에 오르는 등 돌풍을 일으켰지만 전력의 한계로 11위로 마쳤고 2008-09 시즌 최종전 끝에 한끝차로 승강플레이오프에 오르지 못하고 17위에 그쳐 강등되게 되었다. 이때 많은 선수들이 팀을 떠났고, 또다시 찾아온 재정위기로 인해 2009-10 시즌에 적은 예산과 적은 인력으로 시작했다. 결국 구단 회장이 사임하게 되고 2011-12시즌엔 다시 3부리그인 3. 리가로 강등되게 된다.
2012-13시즌 DFB 포칼 1라운드에서 함부르크 SV를 4대 2로 이기는 이변을 보이더니 3. 리가에서 우승하며 다시 2. 분데스리가로 승격했다. 2013-14시즌 5위를 거두는 돌풍을 일으켰고, 2014-15 시즌에는 3위를 기록, 승강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상대는 함부르크 SV. 1차전 원정에서 루벤 헤닝스의 골로 1대1 무승부를 거두고 2차전 라인홀트 야보의 골로 종료직전까지 1대0으로 승격을 눈앞에 두었으나 마르셀로 디아즈에게 프리킥골 실점, 니콜라이 뮐러에게 역전골을 허용하며 아쉽게 좌절되었다.
2015-16 시즌 5위를 찍고 다시 하락세를 보이더니 2016-17시즌 다시 강등되었다.
3. 역대 시즌
3.1. 2018-19시즌
32라운드가 끝난 현재 16승 10무 6패로 2위에 올라있다. 그리고 37라운드에 2위를 확정지으면서 2. 분데스리가 승격에 성공했다.
3.2. 2019-20시즌
시즌 초반페이스가 좋다. DFB-포칼 1라운드에서는 어려운 상대인 하노버 96을 만났으나 2대0으로 승리를 거뒀고, 리그에선 3승 6무 3패로 8위에 올라 승격팀들중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경록도 폼이 좋은지 요즘들어 선발로 자주 나오기 시작했다.
16라운드에선 현재 리그1위인 DSC 아르미니아 빌레펠트를 만나 선제골을 넣었지만 2대2로 비겼다. 특히 연장전 3분동안 2골이 나온게 압권.
그러나 얀 레겐스부르크전 이후로 5경기 무승을 달렸으며, 알로이스 슈바르츠 감독이 경질됐다. 후임은 크리스티안 아이히너.
포칼 2라운드에선 SV 다름슈타트 98를 만나 필리프 호프만의 결승골로 1대0승리를 거뒀다.
포칼 16강에선 4부리그의 1. FC 자르브뤼켄을 만나 쉬운 승리가 예상되었지만 승부차기까지 가는 끝에 5대3으로 충격패했다. [7] 여담으로 이게 크리스티안 아이히너의 데뷔전이었다.
슈바르츠 경질 다음에는 괜찮게 돌아가고 있다. 포칼 16강에선 패배하고 리그에서도 1무 1패를 거뒸지만, 그 후 잔트하우젠한테 승리하며 무승행진을 끊었다. 순위도 16등로 상승.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17위이다.
리그가 재개된 후 1승 3무 1패를 기록하며 16등으로 올라갔다.
30라운드가 끝나고 4경기가 남은 지금, 15등 뉘른베르크랑 3점, 17등 비스바덴이랑 2점차가 나며, 뉘른베르크랑은 골득실이 같다. 그러나 빌레펠트, 슈투트가르트랑 붙어야하는등 일정은 다른 팀보다 좋지 않다.
31라운드 VfB 슈투트가르트와의 라이벌전 2대1로 승리를 거두며 잔류에 희망이 생겼다.
32라운드 SSV 얀 레겐스부르크전 2대1로 패배하며 또 강등위기에 빠졌다.
33라운드엔 이미 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DSC 아르미니아 빌레펠트를 만나 3대1로 끌려가다 막판에 2골을 넣으며 3대3 동점을 만들었다. 동시에 슈투트가르트가 뉘른베르크를 6대0으로 이겼다. 최종순위는 15위로 잔류에 성공했다.
3.3. 2020-21시즌
지난시즌까지 주전골리였던 베냐민 우포프를 떠나보냈고 대신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SV 마테르스부르크에서 뛰던 마르쿠스 쿠스터를 자유계약으로 데려왔다.
4. 소속 선수
[1] 1993-94 시즌 UEFA 유로파 리그의 전신인 UEFA컵에서 여러 강호들을 이기고 4강에 오른걸 보고 생긴 별명이다.[2] VfL 볼프스부르크 유스 출신으로 볼프스부르크 1군 데뷔는 하지 못하고 카를스루에로 넘어왔다. 여기서도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이후 덴마크 수페르리가와 스위스 슈퍼 리그를 거쳐 현재는 K리그 1의 FC 서울에서 뛰고 있다.[3]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의 리그로, 각 지역 리그의 우승자들끼리 경기를 해서 전국 챔피언을 가려내는 방식이었다.[4]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의 리그로 이 리그에서 우승한뒤 다른 지역 리그에서 우승한 팀과 붙는 방식이었다.[5]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의 리그로 이 리그에서 우승한뒤 다른 지역 리그에서 우승한 팀과 붙는 방식이었다.[6] 이때 발렌시아 감독은 우리가 잘 아는 거스 히딩크였다.[7] 그런데 그 자르브뤼켄이 준결승까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