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스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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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도시. 1775년 부터 1918년 바이마르 공화국에 편입되기전 까지 바덴 대공국의 수도. 표기법 상으로 '카를스루에'라고 주로 쓰지만 맨 끝 모음은 [ə](슈와)로 '어/으'에 더 가깝다.[1]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와 연방(일반)법원(한국의 대법원 격)가 이곳에 있다. 카를스루에 공과대학(KIT), 카를스루에 교육대학, 카를스루에 음악대학, 국립 조형예술 아카데미 등 많은 대학이 소재하고있다.
2. 교통
동서 방향으로 프랑스 파리-스트라스부르에서 독일의 슈투트가르트/뮌헨을 잇는 노선과 남북으로 프랑크푸르트, 프라이부르크와 스위스 취리히를 잇는 노선이 교차하는 철도 교통의 요지라서 도이치반에서도 이 역을 1급역으로 지정했다. 그래서 30만의 도시치고는 비교적 큰 철도 역사를 소유하고 있다.
2012년부터는 도심을 통과하는 트램과 간선도로를 지하화하는 공사를 시작하였다. 따라서 트램노선은 변경되고 도심의 도로는 모두 파헤쳐져 시민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는 상황. 당초엔 도시 건설 300주년을 맞이하는 2017년을 겨냥하여 완공 시기를 맞췄다. 하지만 어디서나 그렇듯 철도 공사는 시간을 맞추기가 힘든지, 완공시기는 지속적으로 늦어지고 있다. 개통 예정일은 계속 밀려 2020년 3월 현재 2021년 6월로 개통 예정일이 지연되고 있다. 왠지 이렇게 써놓으면 안좋은것만 있는 줄 알겠지만 사실 노면전차가 일반 간선철도를 운행할 수 있게 개량한 상호직결 운행시스템 (Tram-Train)이 최초로 상용화 된곳이다. 이 때문에 이걸 카를스루에 모델이라고 부른다. 철도 동호인들에게는 TGV와 교행하는 전차로 유명하다. 시내에선 도시철도로서 노면전차로 운행하던 노선이 시외로 나가선 장거리 철도 선로를 공유해 광역철도로서 고속으로 운행할 수 있다. 이 노선을 달리는 열차는 직교류에 모두 대응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도이체반과 지역 교통공사가 운영하는 철로를 갈아탈 때마다 절연 구간에서 전력 공급 방식을 전환한다. 이전에 칼스루에 광역권에 살던 시민들은 철도를 이용해 시내로 오기 위해 반드시 중앙역 등에서 환승을 했어야 했지만 이 시스템이 상용화 된 이후 환승 없이 시내로 들어올 수 있게 되면서 편의성이 늘어 이용객이 늘었고, 대중교통 수송 분담률을 끌어올리는데 기여하였다.
철도교통이 상당히 활발하게 돌아가는 동네인 만큼 S반도 돌아다닌다. 카를스루에 S반 참조. 그리고 트램 등 기타 교통수단은 카를스루에 교통연합체(KVV)를 참조.
3. 역사
1715년 카를 빌헬름 두얼락 후작에 의해 도시가 세워지기 전 두얼락, 크닐링엔, 노이로이트, 뮐부어그, 학스펠트 등 주변에 이미 여러 도시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 중 두얼락이 1565년 후작 카를 2세가 이곳으로 중심지를 옮기는것이 계기가 되어 중심도시로서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그후 30년 전쟁, 1689년 9년 전쟁에 의해 두얼락 지역 일대는 초토화가 나게 된다.
그리하여 1715년 카를 빌헬름 후작은 두얼락에서 조금 떨어진 지금의 카를스루에 성을 중심으로 카를스루에라는 도시를 세우기 시작한다. 이후 도시로서 번성하게 되고 바덴 대공국의 중심지가 된다. 이 도시를 세우게 된 데에는 일화가 있다. 지금의 카를스루에 성 주변은 원래 후작의 사냥터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사냥을 하다 낮잠을 자게 되는데, 그곳을 중심으로 도시를 지으라는 계시(?)를 받는 꿈을 꾸고 그것을 그대로 실행에 옮겨 지금의 카를스루에가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신도시를 계획하면서 바로크 도시로서 면모를 갖추고자 당시부터 뚜렷한 건축 가이드라인이 존재하였다. 또한 자신의 권력을 뒷받침하는 시민을 해외에서 데려오기 위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건축부지와 건축비를 제공하였다. 그런 까닭에 18세기에는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등에서 이주한 시민들이 2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다문화 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제 2차 세계대전중 연합국의 공습에 의해 도시중심부의 건물이 대부분 무너졌다. 무너진 건물들은 전후 대부분 복원되었으나 지금까지 조금씩 조금씩 뜯어 고치는 복원작업을 하고 있다.
연방 헌법재판소와 연방대법원이라는 도시 규모에 걸맞지 않는 최상위 사법 기관이 위치한 도시로 이는 카를스루에가 수도였던 바덴 대공국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바덴주 및 프랑스와 미국이 점령했던 북바덴 지역과 뷔르템베르크, 호엔촐레른 지역을 묶어 바덴-뷔르템베르크주로 통합시키려는 과정에서 바덴주와 바덴주의 모태격인 바덴 대공국의 수도 였던 카를스루에는 이 조치에 강력히 반발하였다. 주의 수도가 기존 뷔르템베르크 왕국의 수도였던 슈투트가르트로 정해졌으며[2] 따라서 카를스루에는 수도 기능을 잃을 것이기 때문. 이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연방 쪽에서 던졌던 당근이 바로 연방의 중요한 기능인 최고 재판소 두 곳을 카를스루에에 할당하는 것이었다. 이후 이 연방 헌법재판소까지 두 지역의 합병에 관한 헌법 소원이 올라가게 되지만 합헌 결정이 내려져 카를스루에는 콩라인으로 주저 앉게 되면서도 연방 재판소를 두 곳이나 유치하게 되었다. 덕분에 뉴스에서는 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전할 때 간략하게 ™칼스루에에서는...™ 이라고 도시명만을 말하면서 시작하더라도 연방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뜻하는 고유대명사처럼 쓰이게 되었다.
2015년에는 건립 300주년을 맞이했다.
4. 경제
독일 전체는 물론이고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안에서도 굉장히 잘 사는 도시 중 하나다. 슈투트가르트와 만하임에 이은 3위의 GDP를 자랑한다. 단일 연구기관으로는 규모가 독일에서 제일 큰 KIT를 비롯해 독일 최대의 드럭스토어인 DM의 본사, 독일 3위의 전력 생산 및 공급 업체인 EnBW의 본사 등이 위치하고 있다. 이 밖에도 지멘스의 연구 및 생산기지, 1&1를 자회사로 두고 있는 인터넷 및 통신망 공급 업체인 United Internet의 데이터센터,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립은행의 4개 본사 중 하나, 주립 특수 은행인 L-Bank의 본사 등이 위치해 있다.
5. 기타
문가영의 고향이자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