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바스티안 다이슬러
1. 소개
'''부상에 사그러진 독일의 비운의 축구천재. 전차군단의 마지막 판타지스타.'''
'''2000년대 초반 독일의 암흑기 탈출을 기대하게한 두 명의 S 중 하나'''[1]
2. 선수 시절
사실 1998년 유럽 청소년 축구대회 준우승에도 일조했지만, 이름을 알린 건 유로 2000부터였다. 환상적인 드리블, 빠른 스피드, 바이에른에서도 맡길 만한 데드볼 기술, 천재적인 테크니션.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당시 독일 국가대표팀을 연상시키는 단어는 '투박함'이었지만 다이슬러는 차원이 다른 테크니션의 면모를 갖추고 있어 독일의 알레산드로 델피에로,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선수, 독일 축구를 구할 사나이 등으로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2001년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한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950만 유로(당시 약 133억원)의 이적료로 이적한 바이에른에서 무려 다섯번에 걸쳐 부상을 당하며 제대로 경기를 뛰지 못했다. 미로슬라프 클로제, 미하엘 발락, 올리버 칸 등이 합심해 결승까지 진출한 2002년 월드컵에서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지 못했다. 커리어 내내 크고 작은 부상에 고통받았으며, 계속되는 부상 속에 몸상태는 점점 나빠져갔다. 결국 다이슬러는 잦은 부상으로 인한 우울증으로 정신병원에까지 입원하기에 이른다.
이후 자국에서 열린 2006년 월드컵에도 부상 때문에 선발되지 못한 다이슬러는 2007년 1월, 27세의 나이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많은 축구팬들은 그의 은퇴를 아쉬워했다. 바이에른 팬들은 더욱. 연이은 부상으로 기량이 줄어드는 게 보이면서도 뛰기만 하면 그래도 뭔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이후 다이슬러는 인터뷰에서 "난 축구를 할 수 없게 만들어졌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은퇴 당시의 회한을 정리했다.
2002/03 시즌이 시작되기 전 바이에른 뮌헨은 라인을 적당히 내리고 조직력과 피지컬로 상대를 압박하고 한 방으로 경기를 끝내는 선 굵은 축구에서 당시 레알 마드리드의 지네딘 지단-루이스 피구 중심의 화려하면서 보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만드는 패스 축구로의 전환을 시도했었다. 그런 리빌딩의 일환으로 영입된게 다이슬러와 미하엘 발락, 제 호베르투였고 당시 리빌딩의 핵심은 다이슬러와 제 호베르투였고 오히려 미하엘 발락은 저 둘을 받쳐주는 포지션이었다. 그러나 다이슬러가 부상으로 이런 바이에른 뮌헨의 계획은 무산되었다. 뮌헨 팬들은 실망을 했지만 이후 뮌헨의 스타 선수에겐 많은 돈을 투자 않는다는 구단 운영 방침을 깨고 무려 2500만 유로라는 거금을 투자하면서 데려온 프랑스 신성 프랑크 리베리가 레전드급 활약을 펼치면서 그의 그리움은 생각보다 크진 않은듯......
다만 일각에서는 당시 독일의 선수층이 암흑기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돋보인 것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주변환경과 선수 자체의 불운함 때문에 부각되어 실제보다 더 큰 가능성을 가졌던 유망주로 기억된다는 소리. 당장 현재 독일의 대형 유망주들인 마리오 괴체나 율리안 드락슬러 등과 비교해서 다이슬러가 더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고 확언할 수는 없다. 이런 종류의 선수들과 함께하는 평가는 어느정도 걸러들을 필요가 있을듯.
3. 기록
3.1. 대회 우승
- 헤르타 BSC 베를린 (1999/00 - 2001/02)
- DFB-리가포칼 (1): 2001
- FC 바이에른 뮌헨 (2002/03 - 2006/07)
-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 UEFA U-18 선수권 대회 준우승
- FIFA 2005 컨페더레이션스 컵 3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