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돌또기
1. 제주도 민요
들어본 사람은 적어도 시험 문제 때문에 외운 사람은 많다.
2. 한국 애니메이션
한국 애니메이션의 베이퍼웨어.
섬마을 어린이들의 눈에 비친 4.3 사건을 내용으로 한 박재동의 필생의 작업이었다. 그는 시사 만화로는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하기에 애니메이션을 만들고자 한다고 하면서 1996년부터 기획, 1997년에는 오돌또기의 제작을 위해 동명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만들기까지 했다.[1]
당시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일본의 반딧불의 묘에 필적할 리얼리즘 시각으로 4.3을 다룬다고 했는데...
하지만 IMF로 인한 한국 경제의 위축에다 지지부진한 제작 진척 속에 처음에 거창하게 언론을 타다가 완성도 못 되고 사라진 수많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기획들 중 하나...가 되는 줄 알았는데, (주)오돌또기에서 마당을 나온 암탉의 후속 작품으로 오돌또기의 제작에 들어간다고 발언한 일이 있고 이 때문에 마당을 나온 암탉의 흥행 추이에 따라 기획이 다시 살아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4.3 사건을 소재로 한 장편 애니메이션이 과연 투자를 받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이 기획이 처음 나올 때에나 2010년대에나 그대로이기에 실제 제작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일단 박재동 자신의 의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듯. 마당을 나온 암탉을 진행하던 와중에도 오돌또기는 여전히 기획중이라고 하기까지 했으니.
90년대에 제작 발표 당시 여러 언론을 통해 상당한 주목을 받았는데, 여기에는 박재동 본인의 이름값과 더불어, 일본 애니메이션 따위와는 다른 한국 애니메이션이 나온다는 식의 애국심 마케팅 비슷한 요소 또한 사실 좀 있었다. 이런 연장선에서 90년대 후반에 나온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곡해와 편견 가득한 지뢰인 저패니메이션이 세상을 지배하는 이유 라는 책이 이 책을 구입하면 수익 10%를 오돌또기 제작에 보태겠다고 한 일도 있다.
하지만 박재동의 성추행으로 인한 만화가협회 영구제명으로 영원히 베이퍼웨어가 사실상 된거라고 봐야할듯 하다.
3. 애니메이션 제작사
박재동이 오돌또기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차린 애니메이션 제작사.
그러나 정작 목적이던 오돌또기는 준비만 줄창 하면서, 한편으론 OVA 형태로 고인돌을 제작한 한편 티비용 단편 애니메이션이나 첫사랑사수궐기대회 같은 영화에 삽입된 애니메이션 등을 만들었다.
장선우와 함께 바리데기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바리공주'를 제작하려 하기도 했으나, 기확 초기만 해도 흥행 감독이던 장선우가 바리공주의 본격 제작 직전에 임은경과 김진표를 말아먹는 모 영화를 만든 덕에 결국 바리공주도 좌초.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제대로 된 소식이 없어서 그대로 망한 줄 안 사람도 많았는데, 그렇게 소식 없는 몇 년 동안 마당을 나온 암탉을 만들고 있었다. 개봉 연기를 거듭하던 마당을 나온 암탉은 2011년에 와서야 바로소 날아올랐고, 마당을 나온 암탉을 통해 오돌또기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만든 한국 애니메이션 제작사들 중 공식적으로 단일작품을 통해 가장 많은 관객을 모은 제작사가 되었다.
설립 당시부터 마당을 나온 암탉을 제작 중이던 시절까지 박재동이 대표를 맡고 있었으나, 2011년에는 설립 초기 멤버 중 한 명인 이춘백이 대표를 맡고 있다. 박재동이 2011년 8월 경에 한 인터뷰에서 여전히 오돌또기를 우리 회사라고 말한 걸 보면 박재동이 대표를 맡고 있진 않아도 오돌또기 회사와의 관계는 그대로인 듯 한데 마당을 나온 암탉이 화제가 된 이후 언론들의 인터뷰 등을 보면 마당을 나온 암탉의 감독이자 제작이사인 오성윤을 대표라고 적고 있는 기사가 종종 나오고 있다. 오성윤의 의도인지 언론들의 몰이해인지는 불명. 박재동 성추행 이후 제명 이후엔 딱히 엮이진 않은듯 하다.
2010년에는 영화 26년의 초반부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본사는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 있었다가 부천 춘의테크노파크로, 이후 과천으로 이전하였다.
3.1. 애니메이션 작품 목록
[1] 다만 이 기획을 위해 한겨레를 떠날때 공개한 제목은 오돌또기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