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 비즈켈

 

'''오마르 엔리케 비스켈 곤살레스
(Omar Enrique Vizquel González) '''
'''생년월일'''
1967년 4월 24일 (57세)
'''국적'''
[image] 베네수엘라
'''출신지'''
카라카스
'''포지션'''
유격수
'''투타'''
우투양타
'''프로입단'''
1984년 시애틀 매리너스 자유계약
'''소속팀'''
시애틀 매리너스 (1989~1993)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994~2004)'''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2005~2008)
텍사스 레인저스 (2009)
시카고 화이트삭스 (2010~2011)
토론토 블루제이스 (2012)
'''지도자'''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내야코치 (2013)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1루코치 (2014~2017)
1. 소개
2. 선수 시절
3.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
4. 기타
5. 관련 문서


1. 소개


'''발레리노'''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을 대표하는 수비형 유격수 중 한 명이었다. 공격력은 유격수라는 걸 감안하고 보면 아주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 비즈켈을 상징하는 것은 ''' 11개의 골드 글러브로 대표되는 수비능력'''. 아지 스미스의 계보를 이은 수비형 유격수로 현 시대로 치면 딱 안드렐톤 시몬스다. 다만 수비력은 스미스보다는 반수 정도 떨어지고, 공격력도 눈에 보이는 스탯은 더 낫지만 약물 시대에 전성기를 보냈다는걸 감안하면 스미스에 비해 나을 것이 없었다. 이점이 스탯에 정확히 반영되어 그의 통산 WAR은 스미스보다 20이상 떨어진다. 단 타격 누적 스탯은 스미스보다 더 쌓았다.
통산 성적은 10586타석 2877안타 1028타점 1445득점 80홈런 404도루 .272 .336 .352.

2. 선수 시절


[image]
베네수엘라가 고국으로 여기서 야구를 배워 1984년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을 맺으면서 본격적인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시애틀 마이너리그에서 수련을 거친 후, 1989년에 데뷔해 빅리거로서의 생활을 시작했고, 그 뒤로 정상급 유격수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역시 비즈켈을 대표하는 것은 수비. 그가 야구를 익히던 청소년 시기에 베네수엘라의 아마추어급 야구장의 시설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고 한다. 내야 그라운드의 흙이 고르지 않아 평범한 내야땅볼도 땅에 있는 돌멩이 때문에 불규칙 바운드로 돌변하는 곳에서 야구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수비 연습을 한 결과 땅볼타구에 대한 강한 집중력을 기를 수 있었고, 결국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우아한 맨손 수비'''를 단련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거기에 군더더기 없는 우아한 풋워크와 유연하고 여유로운 수비로 '''야구장의 발레리노'''라는 별명도 얻었다. 글러브질도 자연스러우면서 글러브에서 공을 빼는 동작이 무지하게 빠르......아니 글러브에서 공을 빨리 빼는게 아니라 아예 글러브를 이용해서 맨손으로 공을 잡는다. 감이 안온다면 이 영상을 보도록 하자. 글러브로 공을 잡는게 아니라 거의 글러브로 날아오는 공을 쳐서 손에 옮기는 수준.[1]
아지 스미스 이후 가장 많은 골드글러브인 11개를 수상하면서 수비형 유격수로서의 변모를 과시했다. 아지 스미스 이후, 유격수로서 가장 뛰어난 수비를 자랑하는 선수로 입지를 굳혔고, 아메리칸리그에서 1993년부터 2001년까지 9년 연속 수상, 리그를 바꿔서 내셔널리그에서 나이 38세와 39세에 다시 골드글러브를 수상했을 정도로 이미 수비로는 정평이 나 있다. 특히 클리블랜드에서 로베르토 알로마와 함께 만들어낸 키스톤 콤비는 최고의 명장면을 무수히 연출했다. 일명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을 커버하는 키스톤 콤비'''. 2000년 시즌에는 유격수 포지션으로 156경기를 뛰면서 실책을 '''고작 3개'''만 범하며 .995의 수비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물론 실책이라는 게 잡기 어려울 것 같은 타구를 안타로 만들어주면 기록되지 않는 것이긴 하지만 비즈켈은 그렇게 허접한 수비수가 아니었다. 수비범위도 넓고 허슬플레이도 아낌없이 하는 당대 최고의 수비형 유격수가 실책이 3개뿐이라는 건 상식을 초월한 일. 필딩률 기준으론 역대 1위 유격수다. [2]
그렇다고 공격력이 약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전성기였던 1990년대 강타선에서 테이블 세터, 혹은 하위타선에서 상위타선으로 득점권 상황을 만들어주는 역할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선수였다. 스피드도 준수했고, 적당한 공격력을 갖춘 선수였다. 단지, 동시대가 거포 유격수들의 전성시대가 열리는 바람에 묻혔을 뿐이다. 베네수엘라 출신으로는 가장 많은 안타를 쳐내며 대선배격인 루이스 아파리시오[3]를 제쳤다. 아울러 유격수로서 통산 안타 2위에 올랐다. 1위는 뉴욕의 여인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그 분 . 대신 가장 많이 유격수로 출전하였고 유격수로 출전한 최고령 기록을 가진 선수이기도 하다. 스위치 히터로도 영구제명된 피트 로즈만이 위에 있는 통산 안타 2위. 3위는 치퍼 존스. 다만 통산 조정 득점 생산 능력은 아지 스미스의 90보다 낮은 83에 불과하여 정말 언어 그대로 수비형 유격수의 표본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1년을 끝으로 은퇴하지 않을까 하는 전망을 깨고,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고 25인 로스터에도 포함되어 2012년에도 선수 생활을 이어갈 전망. 2012년 제이스의 주전 유격수인 유넬 에스코바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유격수 출장이 늘고 2루도 켈리 존슨의 백업으로 출장하면서 거의 주전급으로 출전(...) 물론 아름다운 수비를 보여주고 있다. 호수비를 보여줄때마다 앵커가 '''11-time Golden Glover Omar Vizquel!'''이라고 말하는데 역시 클래스는 영원한가 보다. 결국 2012시즌에 36안타를 추가. 아쉽게 3000안타 언저리까지 가 보지 못하고 2012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였다. 블루제이스는 2012시즌 마지막 홈경기를 오마 비즈켈의 은퇴경기로 선언해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명 수비수의 퇴장에 경의를 표했다.
[image]
2013년에는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의 내야 코치로 잠시 활동하다 같은 해11월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1루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고향인 베네수엘라의 감독직을 맡게 되었다.
2017년 12월 시카고 화이트삭스 구단의 싱글A 윈스톰-살렘 감독으로 부임했다.#

3.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


11개의 골드글러브로 대변되는 수비력에 통산 2877개의 안타와 404개의 도루로 누적 스탯도 상당히 쌓았기에 명예의 전당 입성이 확정적인 선수다. 다만 명예의 전당 보증수표인 3000안타에는 결국 도달하지 못했고, 포지션 보정을 감안하더라도 전체적인 타격성적이 조금은 아쉬운지라 빠른 입성은 조금 힘들 것이라는 게 중론. HOF 후보 동기들 중 짐 토미는 HOF 첫해에 헌액되었고 안종수는 몇해안에 탈락이 유력해서 비즈켈이 생각보다 일찍 HOF에 들어갈 확률도 없지는 않다.
2018년 투표 첫 턴에서 37.0%를 득표하는 것으로 기나긴 명예의 전당 여정의 시작을 알렸다. 비즈켈의 업적에 비해 1년차 득표율은 예상보다 적게 나왔다. 2회차인 2019년에는 소폭 상승한 42.8%를 기록했다. 3회차인 2020년에는 52.6%를 기록하며 전년보다 득표율이 크게 올랐다. 이 정도의 득표율이면 최소 3~4년안엔 명예의 전당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다만 2020년 가정폭력 혐의로 구설수에 오르면서 명예의 전당에 걸림돌이 생겼으며, 투표율 추이에서도 40%를 넘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좋은 누적과 수비의 달인이라는 일반적인 평에 비해 타격 비율성적이 유격수 기준으로도 좋지 않고 수비 조정스탯도 매우 뛰어나지만 명전 최약급의 공격력에 비해 명전 최강급까진 아니어서 세이버 쪽 팬덤의 비즈켈 명전 입성에 대한 반응은 생각보다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그래도 득표율이 높은 편이라 결국 들어갈 확률이 높지만, 문제는 저런 소위 클래식-현장 선호 성향의 선수의 경우 지속적으로 투표권을 가진 기자들이 물갈이되며 세이버 선호 기자들이 충원되는 과정에서 다소 손해를 볼 것이 자명하다는 것이다. 거기에 개인 논란까지 겹친 상황이라...
그 여파로 2021년 투표에서는 오히려 득표율 49.1%로 감소하였다.

4. 기타


  • 모국인 베네수엘라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는 선수이자 지도자다. 2006 WBC베네수엘라 야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했을 뿐만 아니라 2017 WBC에서는 감독으로 팀을 이끌었다. 특히 협회와 갈등으로 감독 자리에서 해임됐을 때 킹 펠릭스, 미겔 카브레라 등 자국 슈퍼스타들이 대회 보이콧을 할 정도로 존경심을 표하기도 했다.
  • 고향인 베네수엘라에서 아나콘다를 잡은 걸로 화제가 되었다.
  • 3,000K 클럽에서도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다. 300승 클럽이나 3,000K 클럽에는 300승/3,000K 달성 경기의 상대팀과 타자도 같이 기록하는데, 그렉 매덕스가 3,000번째 탈삼진을 비즈켈 상대로 기록했기 때문.
  • 은퇴하고 코치직을 수행하는 와중에도 가끔 파울타구 나오면 전성기 시절 수비 실력 어디 안갔다는 듯 여유있게 맨손으로 잡아낸다. 송구폼까지 잡으며 팬서비스를 하고는 관중석에 공을 던져주는 것이 압권.

5. 관련 문서



[1] 글러브로 공을 잡는 것이 아니라 날아오는 공의 코스와 속도를 글러브로 조정해서 맨손으로 넣어버리는 식이다. 글러브에서 공을 빼는 동작이 없어지니 더 빠른 송구가 가능하고 원래대로라면 내야안타가 될 것이 땅볼이 되는 것이다.[2] 다만 실제로 필딩률과 수비실력이 그렇게 직결되지는 않는다. 역대 최고의 수비수로 꼽히는 아지 스미스는 필딩률 순위에서 역대 24위에 불과하다.[3]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뛰며 맹활약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유격수. 여담으로 커리어 동안 13번을 달아온 비즈켈이 화이트삭스로 이적하자 선배 아파리시오를 기리기 위해 영구결번된 11번을 썼다. 물론 아파리시오에게 허락을 받고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