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 아키히로

 

'''일본 중의원 (도쿄 12구)'''
'''제41~42대'''
야시로 에이타

'''제43~44대
오타 아키히로'''

'''제45대'''
아오키 아이
'''제45대'''
아오키 아이

'''제46~48대
오타 아키히로'''

''현직''
'''일본 국토교통대신'''
'''제17대'''
하타 유이치로

'''제18~19대
오타 아키히로'''

'''제20~21대'''
이시이 게이이치

<color=#373a3c> '''일본 제18~19대 국토교통대신'''
'''제2대 공명당 대표
(おお((あき(ひろ
오타 아키히로
'''
'''출생'''
1945년 10월 6일 (78세)
아이치현 신시로시
'''학력'''
교토대학 토목공학 학사
교토대학 대학원 공학연구과 석사과정 수료
'''신체'''
175cm, 80kg
'''소속 정당'''

'''의원 선수'''
'''8''' (중)
'''의원 대수'''
40, 41, 42, 43, 44, 46, 47, 48
'''지역구'''
도쿄 12구
'''경력'''
공명신문 기자
창가학회 청년부장
신진당 부간사장
도쿄도 제12구 중의원
공명당 간사장 대행
제2대 공명당 대표
국토교통대신
1. 개요
2. 생애 및 정치 활동
3. 소속 정당
4. 기타
5. 동명이인
6. 둘러보기


1. 개요


일본의 정치인. 도쿄도 제12구 중의원, 제2대 공명당 대표, 국토교통대신 등을 역임했다.

2. 생애 및 정치 활동


아이치현 신시로시에서 태어나 토요하시시에서 자랐다. 아이치현립 지슈칸 고등학교, 교토대학 토목공학과를 졸업했으며, 교토대학 대학원에서 공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71년 공명당 기관지국에 취직해 공명신문 기자로 근무했으며, 1982년 창가학회 청년부장 등을 지냈다.
1990년 제3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공명당 소속으로 구 도쿄도 제8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1993년 제4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구 도쿄도 제9구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원내에 진출했다. 중의원 당선 후 공명당 부서기장을 맡는 등 ‘공명당의 프린스’라고 불렸다. 그러다가 중도에 신진당으로 이적해 신진당 부간사장이 되었고, 1996년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도쿄 권역 비례대표로 출마해 당선된다. 신진당 해산 이후에는 공명당 출신 신진당 의원들끼리 만든 ‘신당평화’라는 당에 있다가 신당평화가 공명당과 합당하면서 공명당으로 복귀해 간사장 대행이 되었다. 이후 제42회 총선거에서도 비례대표로 당선된다.
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때는 도쿄도 제12구로 출마해 자민당의 지지를 받으면서 당선되었다. 이후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도쿄도 제12구에서 당선되었다. 2006년 간자키 다케노리 대표의 뒤를 이어 공명당 대표로 취임한다. 당시 오타 아키히로 이외에는 대표 선거 출마자가 없었기 때문에 무투표로 당선되었다. 허나 당 대표에 선거 운을 너무 많이 썼는지 당 대표가 된 이후에 치른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당시 지역구인 도쿄도 제12구에서 민주당의 아오키 아이에게 밀려 낙선한다. 공명당 대표가 선거에서 낙선한 사례는 창당 이래 오타 아키히로가 최초라고 한다. 선거에서 낙선한 최초의 공명당 대표라는 타이틀을 얻은 셈(...)이다. 선거 당시 원래는 오타의 지역구에 '''오자와 이치로가 직접 출마하려고 했으나''', 오자와가 자신의 최측근인 아오키 아이 전 참의원을 공천한 것이다. 오자와랑 맞붙어서 졌다면 거물과 싸워서 졌다는 평가라도 받겠지만 반대로 자객 공천으로 출마한 사람한테 졌다는 건 연립 여당 대표인 오타에게는 망신일 수 밖에 없다(...).[1]
어쨌든 낙선한 오타는 당 대표직에서 사퇴하고[2] 후임 대표로 야마구치 나쓰오가 취임한다. 그러다가 이듬해인 2010년 제22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 공명당 비례대표로 출마하려고 했으나, 오타의 참의원 출마에 대한 창가학회 내부의 부정적인 의견으로 인해 공천이 취소되면서 출마가 불발되었다.[3] 당 대표를 역임했던 거물임에도 불구하고 참의원 선거 공천을 취소당하는 굴욕을 겪었음에도 오타는 당 의장을 맡는 등 원외에서 정치 활동을 이어 나갔다.
이후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지역구였던 도쿄도 제12구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3년 간의 원외 생활을 마치고 원내로 복귀한다. 원래는 당 규정 때문에 공천을 못 받을 위기였으나, 오타만 예외로 당에서 공천을 준 것이다. 원내 복귀 이후 아베 신조 2차 내각에서 국토교통대신을 역임했다.[4] 이후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중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불출마를 표명했으며, 지역구인 도쿄도 제12구에 대신 출마할 후계자로 오카모토 미쓰나리 기타칸토 비례대표를 지명했다.

3.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71 - 1994
정계 입문
공명신당
1994
창당

1994 - 1997
합당

1998
창당

1998 -
합당

4. 기타


  • 취미는 독서, 스포츠, 도예라고 한다.
  • 좋아하는 음식은 생선요리, 니쿠자가, 멜론빵이라고 한다.
  • 2007년 당시 가두연설 중 기초연금제도에 대해 비판하면서 기초연금제도 수립 당시 후생대신이었던 간 나오토, 고이즈미 준이치로, 사카구치 치카라 등을 싸잡아서 “다 나쁘다(みんな悪い)”라며 비난했다.

5. 동명이인


오오타 아키히로[5]

6. 둘러보기



[1] 게다가 아오키 아이는 치바현 출신으로 치바현 제12구에 출마했다가 비례대표 참의원 의원을 거쳐 도쿄로 전략공천 된 사람으로, 이전까지 도쿄에 출마했던 경력마저도 없는 사람이었다.[2] 또한 낙선한 기타가와 가즈오 간사장도 같이 사퇴했다.[3] 공명당창가학회가 운영하는 정당인 걸 감안하면 당의 입장에선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4] 오타의 대학 전공이 토목공학인 걸 감안하면 전문성 있는 인사라고 볼 수 있다.[5] 나무위키에 오타 아키히로나 오오타 아키히로 라고 검색해도 이 사람 문서가 뜨기 때문에 헷갈리지 않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