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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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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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6일 일본에서 치뤄진 중의원 의원 총선거. 선거 결과 야당이었던 자유민주당이 압승하여 자민당 정권이 복귀하고 아베 신조 2차 내각이 성립하였다. 통칭 '''가까운 시일 내 해산'''(近いうち解散)이라고 불리는데[1] , 이것보다는 '''가미카제 총선'''(...)이라고 더 많이 불린다. 민주당 노다 요시히코 당시 총리가 선거에서 민주당이 전혀 이길 가능성이 없는(...)상태에서 중의원 해산을 했기 때문이다.[2] 예상대로 선거 결과는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폭망. 3년 전의 자민당보다도 망한 건 물론이고 심지어 1993년 총선에서의 일본사회당(70석/512석)보다도 망해버렸다. 그나마 민주당이 위안으로 삼을 것이라면 압승한 자민당이 2009년 압승한 민주당보단 의석을 덜 차지했다는 것 정도.(...)
2. 상세
2.1. 배경
2009년 8월 30일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를 통해 성립한 민주당 내각은 집권 초기부터 선거자금 스캔들로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졌고, 이후 동일본 대지진 당시 보여준 부실함과 소비세(한국의 부가가치세에 해당) 인상(5% → 10%) 결행, 2차 대전 이후 유례없는 살인적인 엔고 방치 등으로 인하여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이에 노다 요시히코 내각은 여러 가지 무리수를 써가면서 중의원 해산을 연기하려고 시간을 끌었지만, 여당인 민주당에서 오자와 이치로를 포함한 유력인사들이 미래당으로 분당하면서 중의원 과반수가 힘겹게 된 데다 여론에 밀려 결국 2012년 11월 중의원 해산을 선언하고 만다. 그리고 이에 따라 선거가 발생하게 되었다.
2.2. 선거결과
2.3. 주요 정치인 당락
- 노다 요시히코(내각총리대신): 당선 (치바 4구)
- 하토야마 유키오(전 내각총리대신): 불출마 (홋카이도 9구)
- 간 나오토(전 내각총리대신): 당선 (도쿄 18구 낙선, 석패율제 비례대표 당선)
- 요코미치 다카히로(중의원 의장): 당선 (홋카이도 1구 낙선, 석패율제 비례대표 당선)
- 겐바 고이치로(외무대신): 당선 (후쿠시마 3구)
- 다루토코 신지(총무대신): 낙선 (오사카 12구)
- 나카가와 마사하루(문부과학대신): 당선(미에 2구)
- 센고쿠 요시토(전 내각관방장관): 낙선 (도쿠시마 1구)
- 후루카와 모토히사(전 내각관방부장관): 당선 (아이치 2구)
- 조지마 고리키(전 재무대신): 낙선 (가나가와 10구)
- 하라구치 가즈히로(전 총무대신): 당선 (사가 1구 낙선, 규슈 비례대표 당선)
- 마부치 스미오(전 국토교통대신): 당선 (나라 1구)
- 나가츠마 아키라(전 후생노동대신): 당선 (도쿄 7구)
- 가이에다 반리(전 경제산업대신): 당선 (도쿄 1구 낙선, 석패율제 비례대표 당선)
- 에다노 유키오(전 경제산업대신): 당선 (사이타마 5구)
- 호소노 고시(전 환경대신): 당선 (시즈오카 5구)
- 다나카 마키코(전 문부과학대신): 낙선 (니가타 5구)
- 마쓰모토 류(전 환경대신): 낙선 (후쿠오카 1구)
- 호소카와 리쓰오(전 후생노동대신): 낙선 (사이타마 3구)
- 가노 미치히코(전 농림수산대신): 낙선 (야마가타 1구)
- 마쓰모토 다케아키(전 외무대신): 당선 (효고 11구)
- 가와바타 다쓰오(전 총무대신): 낙선 (시가 1구)
- 야마다 마사히코(전 농림수산대신): 낙선 (나가사키 3구)
- 히라오카 히데오(전 법무대신): 낙선 (야마구치 2구)
- 하치로 요시오(전 경제산업대신): 낙선 (홋카이도 4구)
- 후지무라 오사무(전 내각관방장관): 낙선 (오사카 7구)
- 히라노 히로후미(전 문부과학대신): 낙선 (오사카 11구)
- 오하타 아키히로(전 경제산업대신): 당선(이바라키 5구)
- 후루카와 모토히사(전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당선 (아이치 2구)
- 아즈미 준(민주당 간사장 대행): 당선 (미야기 5구)
- 쓰지모토 기요미(전 내각총리대신 보좌관): 당선 (오사카 10구 낙선, 석패율제 비례대표 당선)
- 이즈미 겐타(전 내각부대신 정무관): 당선(교토 3구 낙선, 석패율제 비례대표 당선)
- 구로이와 다카히로(전 법무대신 정무관): 낙선 니가타 3구)
- 시나 다케시(전 변호사): 당선 이와테 1구)
- 가메이 시즈카: 당선 (히로시마 6구)
- 오자와 이치로: 당선 (이와테 4구)
- 아베 신조(자유민주당 총재): 당선 (야마구치 4구)
- 아소 다로(전 내각총리대신): 당선 (후쿠오카 8구)
- 다니가키 사다카즈(전 자유민주당 총재): 당선 (교토 5구)
- 고무라 마사히코(자유민주당 부총재): 당선 (야마구치 1구)
- 이시바 시게루(자유민주당 간사장): 당선 (돗토리 1구)
- 스가 요시히데(자유민주당 간사장 대행): 당선 (가나가와 2구)
- 호소다 히로유키(자유민주당 총무회장): 당선 (시마네 1구)
- 가와무라 다케오(전 내각관방장관): 당선(야마구치 3구)
- 이부키 분메이(전 재무대신): 당선 (교토 1구)
- 누카가 후쿠시로(전 재무대신): 당선 (이바라키 2구)
- 고이케 유리코(전 방위대신): 당선 (도쿄 10구)
- 아마리 아키라(전 경제산업대신): 당선(가나가와 13구)
- 이시하라 노부테루(전 국토교통대신): 당선(도쿄 8구)
- 기타가와 가즈오(전 국토교통대신): 당선 (오사카 16구)
- 하토야마 구니오(전 총무대신): 당선 (후쿠오카 6구)
- 오시마 다다모리(전 농림수산대신): 당선(아오모리 3구)
- 에토 세이시로(중의원 부의장): 당선(오이타 2구)
- 니시무라 야스토시(전 내각관방부장관): 당선(효고 9구)
- 모치즈키 요시오: 당선(시즈오카 4구)
- 고이즈미 신지로: 당선 (가나가와 11구)
- 에토 다쿠: 당선(미야자키 2구)
- 시모무라 하쿠분: 당선(도쿄 11구)
- 오타 아키히로(전 공명당 대표): 당선(도쿄 12구)
- 아카바 가즈요시(전 재무부대신): 당선(효고 2구)
- 시이 가즈오: 당선 (미나미칸토 일본 공산당 비례대표)
- 데루야 간토쿠(사회민주당 국회대책위원장): 당선 (오키나와 2구)
- 와타나베 요시미(다함께당 당수): 당선 (도치기 3구)
- 에다 겐지(다함께당 간사장): 당선 (가나가와 8구)
- 아사오 게이이치로(다함께당 정조회장): 당선 (가나가와 4구)
- 이시하라 신타로(일본 유신회 대표): 당선 (도쿄도 일본 유신회 비례대표)
- 오자와 사키히토(전 환경대신): 당선 (야마나시 1구 낙선, 석패율제 비례대표로 당선)
- 나카야마 나리아키(전 국토교통대신): 당선 (규슈 일본 유신회 비례대표)
- 히라누마 다케오(전 경제산업대신): 당선 (오카야마 3구)
- 스즈키 요시히로(전 사이타마현의원): 당선(사이타마 14구 낙선, 기타칸토 비례대표 당선)
- 나카무라 기시로(전 건설대신): 당선(이바라키 7구)
2.4. 해석
민주당과 미래당은 다같이 뭉쳐도 모자랄 판에 분당까지 해가지고 '''같이 망했다'''. 물론 민주당 정권에서 소비세를 5%에서 10%로 인상했을 때 이미 결정된 선거였기 때문에 분당한다고 뭘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단계는 아니었다.
당시 민주당의 일본 내 여론이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에 분당하지 않고 45회 중원선때처럼 단일 여당으로 선거를 치렀다고 해서 결과가 좋았을리는 당연히 없다(;;;)
민주당과 미래당 대표인 노다 요시히코와 오자와 이치로는 자기 지역구를 수성했지만, 간 나오토나 가이에다 반리 등 민주당의 주요 인사들이 줄줄이 지역구에서 낙선하고 석패율제 비례대표로 간신히 살아남는 굴욕을 당했다. 게다가 서남부 지역은 가가와현의 다마키 유이치로를 빼면 의석이 없었다. 미래당은 현역 의원 대부분이 낙선하고 오자와 이치로와 가메이 시즈카만 지역구에서 살아남았다.
자민당은 비례대표에서 27%의 득표를 얻는데 그쳐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지만 선거구에서 40% 초반의 득표를 기록해 지역구에서 20%대의 득표를 그친 민주당을 완전히 떡실신시켜서, 자민당 + 공명당 연립정권은 중의원 2/3를 장악하는 엄청난 선거 결과를 거뒀다.
극우 성향의 정당인 일본 유신회는 간사이 지역의 선전을 기반으로 54석을 얻었지만 목표치인 100석에는 한참 미달하였으며, 간토 지역구에서 전멸하는 등 별로 좋은 결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다함께당은 18석을 얻어 나름대로 입지를 구축했다.
일본 공산당은 1석만 줄어드는 등 나름 선방했지만, 사회민주당은 대참패했고, 기타 정당과 무소속은 위의 표대로 나왔다.
3. 관련항목
[1]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다니가키 사다카즈 자민당 총재와 면담 후 "개혁 법안이 처리된다면 가까운 시일 내에 중의원을 해산하겠다."고 큰소리를 친 것에서 유래.[2] 사실 더 버텨 봤자 1년 밖에 더 못 버티는 상황이었다. 2013년 말에 중의원 임기가 끝나기 때문. 비슷한 상황에 있던 자민당의 아소 다로 전 총리는 의회해산을 최대한 미뤄 4년 임기를 거의 다 채운 뒤 의회해산을 단행하여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가 치러졌는데, 이때는 다들 알다시피 '''자민당이 대폭망'''하고 민주당이 압승해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역사적인 정권교체에 성공하였다. 선거 전 상황이나, 의회해산 당시 총리대신의 정치적 입지로나, 선거 결과로나 모두 직전 선거의 미러 버전. 다나카 마키코는 아예 대놓고 '''자폭테러 해산'''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