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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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과거에 존재했던 일본의 정당. 1994년 12월 20일 창당하여 1997년 12월 27일 해산, 소멸하였다. 일본 정치사에 짧고 굵게 한 획을 그은 바 있다.
2. 상세
존속기간 3년 1주일의 짧은 정당이지만, 일본사회당 몰락 이후 일본 비자민/비사회계열 야당들이 집결한 정당이라는 특이한 점이 있다.
오자와 이치로가 신생당, 신당 사키가케(일부), 민주사회당(민사당), 일본신당, 자유개혁연합, 공명당, 그리고 에다 사쓰키 등 기타 사회당과 자민당의 일부 구성원까지 한꺼번에 끌어모아서 만든 그야말로 당시 최대의 야당이었다. 초대 대표는 가이후 도시키 전 수상이었지만, 사실상 오자와 이치로가 모든 권력을 장악했다.
오자와가 이렇게 상당수 야당 세력을 규합한 이유는 딱 한가지, 자민당을 '''1:1'''로 꺾고 정권을 차지하자!는 것이었다. 1994년 연말에 창당해서 1995년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 도전장을 던진다. 이 선거에서 무라야마 도미이치 수상이 이끌던 일본사회당은 16석으로 '''폭망'''했고, 사회당과 대연정을 꾸리던 자민당은 46석에 그치는 참패를 했다. 이 때 신진당이 개선의석을 19석에서 40석으로 두배 이상 늘리며 최대 야당으로 성공하는 듯 했다.
가이후 도시키가 대표에서 사직하고 오자와가 1996년 초 당권을 잡고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를 맡게 되었다. 중대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제로 선거제도가 바뀌는 그 시기에, 그야말로 자민당과 '''1:1 드림매치(!)'''를 성사시키게 됐다. 자민당이 후보를 355명 냈을 때 신진당이 361명이나 후보를 내서 자민당보다 후보를 많이 낸 정당[2] 이 됐는데, 결과는 하시모토 류타로가 이끄는 '''자민당 239 vs 신진당 156이고 여야전체로 보면 256 vs 244였다''' 자민당이 중의원 해산 직전 211석에서 28석을 더 불리는 동안[3] 신진당은 중의원 해산 직전의 160석에서 '''오히려 4석이 깎이는 대참패'''를 했다. 공명당이 신진당에 합쳤기에 '''창가학회의 선거 몰빵까지 받았는데도!!''' 이는 결정적인 승부처라 할수잇는 간토에서 참패를 거두었기 때문이었다. 간사이에서 압승를 했고, 아이치현에서도 그럭저럭 의석수를 따냈지만 막상 핵심 승부처인 간토에서 민주당, 공산당과 표분산이 되면서 의석을 별로 못따냈던 것이었다. 도쿄 25석 가운데 6석만 건지고, 치바현에서는 고작 2석을 따냈으니 말 다한셈.
하지만 오자와는 선거결과 패배에 상관없이 당 대표직을 유지했고, 당 내에서는 분란이 커지게 된다. 오자와 이치로는 자민당과의 대연정으로 위기를 극복하려했지만 어차피 자민당이 과반의석을 확보한 상태라서 아쉬워할 상황이 아니었고, 이 분란 끝에 1997년 가장 먼저 신진당 내에서 탈당한 것은 창가학회 세력으로[4] 공명당을 창당하고 하시모토 류타로와 그 유명한 자민 + 공명 크로스 연정이 결성된다. 그러자 줄줄이 다른 세력이 탈당하여 결국 오자와의 자유당, 자민당 복당 등으로 줄줄이 끌려나가 3년 1주일만에 신진당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막을 내리게 된다. 이후로 신진당의 주류세력들과 지지층의 대다수는 민주당으로 흡수된다. 이후 오자와 이치로는 자유당이라는 군소야당을 전전하다가 2003년에 민주당에 합류하게 된다.
1990년대 중반 당시의 엔간핱 야당 세력을 모았기 때문에 바자민, 비사회계열의 일본 야당 인사들의 당적사에는 신진당 당적 기록이 한번쯤 꼭 들어가게 되어 있다. 신진당 당적 기록이 없는 야권 인사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수상 당시 일본우정 민영화에 반대해서 자민당에서 바로 민주당으로 이적하는 케이스나 1990년대 중반 이전에 일본사회당 소속이었던 의원들이다.
물론 당시 엄연히 간 나오토와 하토야마 유키오의 일본 민주당이 엄존했을 뿐더러, 일본 공산당, 일본사회당, 신당 사키가케 출신들은 참여하지 않았다. 애당초 1996년 민주당은 사회당 우파와 신당 사키카게가 연합해 창설된 당으로 나름대로 52석을 확보한다. 신진당이 1:1 매치를 부르짖었지만 민주당이 사회당 유권자들의 지지를 어느정도 얻는데에는 성공했고, 소선거구에서도 신진당에 고춧가루를 제대로 뿌려주었다.
3. 역대 당수
4. 역대 선거결과
4.1. 중의원 의원 총선거
※ 의석 증감은 선거 공시 당일 의석 수와의 비교임.
4.2.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5. 기타
- 고베 대지진 당시 신진당의 참의원이었던 나카무라 에이치가 당시 화재가 재일조선인의 방화에 의한 것이라고 망언한 적이 있다.
- 창가학회가 신진당에 들어온 적이 있어서 공명당 대표 야마구치 나쓰오도 이 신진당 소속이었던 적이 있다.
- 도쿄도지사 고이케 유리코가 2017년 총선을 앞두고 희망의 당을 창당하자, 일본 정치계와 언론사에서는 제2의 신진당 꼴 날 수도 있다며 우려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제1야당은 커녕 에다노 유키오의 입헌민주당에게도 밀려 제2야당이 되었다. 옛 민주당 출신들에게 알아서 기라고 말하며 대여공세보다 야권 내 밥그릇에 몰두하다가 신진당보다도 망해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