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가와 가즈오

 

'''일본 중의원 (오사카 16구)'''
''선거제도 개편''

'''제41~44대
기타가와 가즈오'''

'''제45대'''
모리야마 히로유키
'''제45대'''
모리야마 히로유키

'''제46~48대
기타가와 가즈오'''

''현직''
'''일본 국토교통대신'''
'''제3-4대'''
이시하라 노부테루

'''제5-6대
기타가와 가즈오'''

'''제7-8대'''
후유시바 데쓰조
'''일본 제5-6대 국토교통대신
(きた(がわ(かず(
기타가와 가즈오
'''
'''출생'''
1953년 3월 2일 (71세)[1]
오사카부 오사카시 이쿠노구
'''신체'''
168cm, 70kg
'''학력'''
소카 고등학교 졸업
소카 대학 법학부 법학과 졸업
'''가족'''
아버지 기타가와 요시카즈[2]
'''정당'''

'''의원 선수'''
'''9''' (중)
'''의원 대수'''
39, 40, 41, 42, 43, 44, 46, 47, 48
'''지역구'''
오사카 16구
'''약력'''
변호사
세무사
오사카부 제16구 중의원
국토교통대신
관광입국담당대신
공명당 간사장
중의원 총무위원장
공명당 중앙간사회장
1. 개요
2. 생애
3. 소속 정당
4. 기타
5. 둘러보기


1. 개요


일본의 정치인, 변호사, 세무사.

2. 생애


1953년 오사카부 오사카시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재일 조선인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 살았는데, 본인의 회상에 따르면 소학교와 중학교 시기에는 같은 반 친구들 중 3분의 1에서 4분의 1 정도가 재일 조선인이었다고 한다. 이후 도쿄로 상경해 소카 고등학교를 거쳐 소카대학 법학과를 졸업한다.
대학 졸업 후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되었으며, 변호사를 등록할 때 세무사 등록도 같이 했다. 변호사 시절에는 주로 다중 채무, 알박기, 악질 방문판매 등의 피해자 구제에 힘써 서민파 변호사로 불렸다. 그러다가 1990년 제3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공명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한다. 중의원을 역임하면서 호소카와 모리히로 내각에서 대장정무차관 등을 지냈으며, 2004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 당시 국토교통대신을 역임했다. 국토교통대신직을 역임한 이후에는 공명당 간사장을 역임했다. 그러다가 정권교체 바람이 불었던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당시 지역구인 오사카부 제16구에서 민주당 모리야마 히로유키에 밀려 낙선한다. 낙선 후 같이 낙선한 오타 아키히로와 함께 당직을 사퇴했고, 원외 인사 신분으로 공명당 부대표를 맡는다.
이후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공명당의 공천과 자민당, 일본 유신회의 추천을 받아 지역구였던 오사카부 제16구에 재출마해 민주당 모리야마 히로유키를 꺾고 당선되면서 원내에 복귀했다. 이후 47, 48회 총선거에서도 연임에 성공한다.

3.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90 - 1994
정계 입문
공명신당
1994
창당

1994 - 1997
합당

1997 - 1998
정당 해산

1998
창당

1998 -
합당

4. 기타


  • 2007년 11월, 재일본대한민국민단에서 주최한 영주외국인 지방참정권 조기 입법화 촉구 대회에 참가했다. 상술한 학창시절 이야기 등을 고려하면 친한 인사로 추정된다.
  • 좋아하는 음식은 냄비야키우동이라고 한다.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의 팬이라고 한다.
  • 존경하는 인물은 저우언라이라고 한다.
  • 중선거구제 시절 대립했던 후보들 중 같은 오사카변호사회 소속 변호사였던 니시무라 신고[3]가 있었다. 니시무라 신고와는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당시에도 오사카 16구에서 상대 후보로 만났으며, 당시 니시무라는 차세대당 후보로 출마해 3위로 낙선했다.

5. 둘러보기



[1] 불과 하루 전인 3월 1일에 전 법무대신 가미카와 요코가 태어났다.[2] 기업인이자 공명당 소속 중의원 의원이었다.[3] 한국에 우호적인 성향인 기타가와와 달리 니시무라는 혐한, 우익 성향이 강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