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사나 바이울

 

'''옥사나 바이울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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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선수권 여자 싱글 챔피언'''
[image]

'''옥사나 바이울
(1993, 1994)'''

율리아 라브렌척
(1995)




[image]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금메달 획득 당시'''
<colbgcolor=#e0a7c6> '''이름'''
옥사나 세르히이우나 바율파리나
Оксана Сергіївна Баюл-Фаріна
Oksana Baiul
'''국적'''
우크라이나[image]
'''출생'''
1977년 11월 16일(46세)
소련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드니프로
'''신체'''
160cm
'''종목'''
피겨 스케이팅
'''링크'''

1. 소개
2. 생애 및 선수 경력
3. 은퇴 이후
4. 수상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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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우크라이나의 前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며,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다.
토냐 하딩 사건 때문에 1993 세계선수권 금메달리스트이면서도 초반 스포트라이트는 사건의 피해자였던 미국의 낸시 케리건[1]에게 더 쏠렸다. 그러나 지금도 회자되는 흑조라는 명작으로 부상 중에도[2]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다. 많은 피겨 선수들에게 영향을 준 작품으로, 미국의 남자 싱글 선수 조니 위어가 피겨 선수가 된 계기였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독립 후 자국의 첫 올림픽 금메달 수상자로서 의미있는 기록을 남겼다.[3]

2. 생애 및 선수 경력


아버지와 프랑스어 교사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으나 2살 때 부모가 이혼했다. 이후 어머니와 외조부모 밑에서 자랐으나 조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데다가, 바이울이 13세 되던 해엔 어머니마저 난소암으로 갑자기 돌아가셔서 그야말로 고아가 되었다. 다행히 현역 시절 코치였던 갈리나 즈미에브스카야와 사위인 빅토르 페트렌코[4]의 도움을 받아 피겨 스케이팅 훈련을 계속 할 수 있었다.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낸시 케리건을 제치고 만 16살의 나이에 금메달을 땄음에도 이러한 뒷이야기 때문에 미국 언론에도 크게 주목을 받았으며 바이울의 이야기가 미국 내에서 드라마로도 만들어지기도 했다.[5]

3. 은퇴 이후


비록 올림픽 금메달을 땄으나 심각한 부상과 극심한 생활고가 겹쳐서[6], 일찍 은퇴하고 프로 선수로 전향하였다. 당시 엄청난 상금으로 미국 아이스 쇼 러브콜을 받았으나, 상술한 어린 시절과 어린 나이에 이른 성공이 합쳐져 1997년 알콜 중독과 함께 음주 운전에 적발되어[7] 방황하던 시기도 있었다. 이후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은 바이울은 올림픽에서 우승하는 것보다 중요한 경험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자신의 10여 년 후배 격인 김연아와 같이 찍은 사진들도 있으며 2014 소치 동계올림픽/피겨 스케이팅 판정 논란 당시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땄어야 했다고 인터뷰를 했다.

4. 수상 기록


올림픽
금메달
1994 릴레함메르
여자 싱글
세계선수권
금메달
1993 프라하
여자 싱글
유럽선수권
은메달
1993 헬싱키
여자 싱글
은메달
1994 코펜하겐
여자 싱글
[1] 직전 대회인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다.[2] 그것도 올림픽 경기장에서 연습 도중 독일의 타냐 슈첸코와 크게 충돌하여 다리를 꿰맸다.[3] 우크라이나는 1994년부터 단독으로 출전했고 이전부터 우크라이나인들이 메달을 땄어도 소련에 합산되었다.[4]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이다.[5] 에드워드 펄롱의 현 여자친구이자 프레디 VS 제이슨의 주인공 로리 캠벨을 연기했던 모니카 키나가 바이울을 연기했다.[6] 당시 막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경제가 좋지 않아 피겨 스케이팅에 투자할 형편이 안 됐다.[7] 롱 아일랜드 아이스 티를 무려 4~5잔을 마시고 메르세데스를 몰다가 적발되었다. 당시 만 19살이었으며 법적으로 음주가 가능한 나이보다 2살 아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