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냐 하딩 사건

 


1. 개요
2. 배경
3. 습격
4. 수사 진행
5. 결과
6. 뒷이야기
7. 유사 사례
8. 관련 문서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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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피겨 스케이팅 선수 토냐 하딩(Tonya Maxine Harding)의 지인이, 하딩의 라이벌인 낸시 케리건(Nancy Kerrigan)[1]을 습격한 사건이다. '''인기 절정이었던 미국 피겨 스케이팅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사건이자, 미국 피겨 스케이팅 역사상 길이 남을 악몽이자 최악의 흑역사가 된 사건이다.'''
이 사건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이때 식은 대중적인 인기를 미국 피겨 스케이팅계는 '''아직까지도''' 극복하지 못했을 정도다. 토냐 하딩과 낸시 케리건의 뒤를 이어서 등장한 중국계 미국인 선수인 미셸 콴이 다시 미국의 피겨 스케이팅 레전드 계보를 이어 갔지만, 그럼에도 토냐 하딩 사건 이전 미국에서 전성기를 구가했던 여자 피겨 스케이팅의 인기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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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격 사건 다음날''' 뉴욕 뉴스데이 표지[2]
1994년 1월 당시 미국피겨 스케이팅(특히 여자 싱글)인기가 하늘을 찌를 무렵이었다. 외모도 수려하고 순수한 피겨 실력도 좋아서 미국의 투탑이 된 여자 싱글 스케이터 낸시 케리건토냐 하딩은 서로를 라이벌로 여겼다. 그 시절에는 이들이 미국 여자 피겨계를 이끌었다. 바로 아래에는 떠오르는 별인 미셸 콴이 천천히 올라왔다. 이 때가 미국 피겨 스케이팅 황금기였다.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 대회이기도 한 전미선수권 일정이 잡히고 선수들이 국가대표로 선발되기 위해 대회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낸시 케리건과 토냐 하딩, 미셸 콴도 마찬가지였다. 이 경기에서 성적이 제일 좋은 2명만 올림픽에 출전이 가능했다. 많은 사람들은 슈퍼 루키인 미셸 콴은 예비 선수, 낸시 케리건과 토냐 하딩이 올림픽에 나간다고 점찍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3. 습격


여자 싱글 프리경기를 이틀 앞둔 1월 6일, 웬 괴한이 낸시 케리건을 습격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괴한은 둔기[3]로 낸시 케리건의 무릎위 허벅지[4]를 내려쳤고, 그 후유증 때문에 낸시 케리건은 경기를 완전히 포기해야 했다. 이 대회에서 토냐 하딩이 1등, 미셸 콴이 2등을 차지했다.
다들 토냐 하딩과 미셸 콴이 동계올림픽에 참가한다고 예상했지만, 낸시 케리건의 부상은 예상보다 심하지는 않았다. 미국 피겨 스케이팅 연맹은 자체 규정에 '연맹은 올림픽 선발전에 참가하지 않은 선수를 선발할 수도 있다.'는 조항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용해서 출전하지도 못했던 낸시 케리건을 올림픽 경기로 내보내고, 미셸 콴을 올림픽 후보 선수로 발탁했다.

4. 수사 진행


낸시 케리건을 습격한 남자가 토냐 하딩을 경호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미국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 더군다나 범인은 이 사건을 사주한 장본인이 토냐 하딩과 이혼한 전 남편인 제프 길루리라고 진술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토냐 하딩이 모든 일을 계획했다고 의심했다. 토냐 하딩은 전혀 몰랐다고 했지만 의혹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별로 부유하지는 않았지만[5] 화목한 집안[6]에서 예의바르고 엄격하게 자라온 낸시 케리건과는 달리, 토냐 하딩은 가난한 집안에서 어머니가 자기를 압박할 때 피겨 스케이팅을 시작했다. 그러나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미국 연맹이 토냐 하딩의 연습비용을 전액지원 했으며 기업스폰서도 많았다. 하딩의 불량스런 행동[7]에 기업스폰서가 떨어질 때에도 개인스폰서는 여럿 있었다.
하딩은 성격이 활발했지만 심리적 문제가 있어서 사고 역시 많이 쳤다. 심지어는 '하딩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소문이 날 정도였다. FBI는 제프 길루리를 추궁해서 올림픽을 며칠 앞둔 2월 1일에 그가 감형받는 조건으로 '''사건을 청부하지는 않았지만 미리 알고 있었다'''는 증언을 얻어냈다. 그 결과 미국 빙상연맹은 하딩을 징계하고자 절차를 밟았다. 그러던 2월 10일에 토냐 하딩은 미국 빙상연맹에게 2천만 달러를 물어내라고 소송을 걸었다. 결국 2월 12일에 미국 빙상 연맹은 토냐 하딩이 올림픽에 나가도 좋다고 승인했으며, 징계 절차는 올림픽이 끝난 뒤에 밟는다고 밝혔다.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은 2월 13일에 개막했고, 피겨 스케이팅 일정은 23일부터였다.

5. 결과


올림픽이 시작되고, 낸시 케리건은 미국에서 엄청난 응원을 받으면서 출전했지만 은메달을 받는 데에 그쳤고, 금메달은 옥사나 바이울이 가져갔다. 토냐 하딩은 프리에서 트리플 악셀을 싱글로 처리했고, 경기 도중 스케이트 끈이 끊어져 경기를 중단한 후 다시 시작하는 바람에 점수가 낮게 나왔다.[8] 미셸 콴은 혹시 있을지 모를 2차 습격사건이나 부상을 대비해서 피겨 스케이팅 경기가 있는 날까지 노르웨이에서 기다렸다. 이때 토냐 하딩은 발목을 삐었지만 주치의가 출전해도 된다고 결정했다. 올림픽이 끝난 후 토냐 하딩은 미국 빙상연맹으로부터 징계를 받아 선수 자격을 완전히 박탈당했다. 3월 18일 토냐 하딩은 혐의를 인정했지만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9] 결국 감옥만 안 갔을 뿐 범죄자가 된 것이다. 6월 30일 미국 피겨 스케이팅 연맹은 토냐 하딩이 1994년에 취득한 전미선수권 타이틀을 없앴다.
토냐 하딩은 미국 피겨 스케이팅 연맹에서 제명당했다. 미국 빙상연맹이 주관하지 않는 다른 이벤트에는 나갈 수 있지만 하딩은 피겨 스케이팅을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6. 뒷이야기


토냐 하딩은 저 사건 이후 5개월 후인 6월에 제프 길루리와의 섹스 테이프가 유출된 적이 있다.
습격 사건이 발생한 뒤, 낸시 케리건은 올림픽에서 토냐를 만났을 때는 반가워했다가 토냐와 연습하기 싫다고 말했는데, 케리건 역시 토냐를 의심했기 때문이었다. 1998년에는 미국에서 진행하는 어떤 토크쇼에서 토냐 하딩과 어색한 만남을 가졌다. 여기서 토냐는 남편과 경호원이 일을 꾸민 걸 아냐고 물었을 때 아니라고 대답했다. 낸시와 함께 연습했던 때를 이야기하며 미소짓기도 하였다고 한다. 또 이제는 서로 가는 길이 다르니 서로 연관짓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후 2008년 토냐가 쓴 책에서는 FBI에 신고하려 했으나 제프가 협박해서 무산되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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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토냐 하딩은 격투기 선수로 전직했지만[10] 수년 뒤 건강을 해쳐서 은퇴했고, 그 후 재혼하여 평범하게 살았다. 사실 그 때에도 진짜 격투기 선수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사고도 엄청 많이 쳤는데, 사진기자 폭행, 남자친구를 자동차 휠과 주먹으로 폭행 등으로 이미지 실추가 이어졌다. 2002년 2월에 프로복서데뷔한 후, 3월에 전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이 자기를 성추행했다고 법원에 고발한 폴라 존스와 3라운드 권투 시합을 벌이기까지 했다. 한 마디로 <악녀 대 악녀> 대결이란 노이즈 마케팅으로 돈을 벌려고 짠 셈이다. 여기선 그래도 운동 선수 출신이라 그런지 폴라 존스가 울며 도망갈 정도였다. 2008년에는 종합격투기 선수로 데뷔했다. 또 전 남편과의 섹스 비디오가 인터넷에서 퍼져 나가서 유명해졌다.
낸시 케리건은 올림픽 이후 은퇴해서 아이스 쇼에 출연하고 피겨 스케이팅 해설자로 지냈으며, 이는 전형적인 은퇴 선수 생활이다. 그리고 2004년 미국 피겨 스케이팅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는데 이번엔 엉뚱하게 낸시 케리건의 오빠가 아버지를 살해하는 사건이 생겼다. 참고로 이 사건은 스펀지 2.0이 2010년 4월 9일에 소개했다. 또한 2014년 12월 7일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소개되었다.
토냐 하딩은 현재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고, 토냐의 어머니는 인터뷰에서 손자를 만나보지도 못 했다고 밝혔다. 영화 아이,토냐에 나오는 토냐의 어머니를 보면 피도 눈물도 없는 악녀 그 자체다.
2017년 스티븐 로저스가 각본과 제작, 크레이그 질레스피 감독이 연출을 맡아 <아이, 토냐(I, Tonya)>라는 이름으로 영화화되었으며, '''마고 로비'''가 토냐 하딩 역할을 맡았다. 영화는 이 사건을 독특하고 어두운 블랙 코미디 스타일로 그려내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해당 영화는 토냐의 고향 지역에서 꽤 논란이 되었다. 토냐를 조사했던 지역 언론들은 토냐 하딩을 싸이코패스로 본다.[11]

7. 유사 사례


2019년 3월 20일 오전, 2019 세계선수권에서 우리나라 피겨 선수 임은수가 쇼트 공식 연습 도중 같은 클럽 팀메이트인 머라이어 벨의 스케이트 날에 찍혀 왼쪽 종아리 부위에 상처가 생기는 등 근육 손상을 입었다. 소속사 올댓스포츠에 따르면 벨은 이미 이전 몇 개월 간 임은수를 고의적으로 괴롭혀 경고를 받은 전적이 있고, 경기 직전에는 폭언까지 했다. 사고 직후 임은수는 엄청난 고통에 바로 경기장을 빠져나가 치료를 받았지만 통증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임은수는 출전 의사를 밝혔고, 72.91점으로 5위를 기록했다. 겨우 만 16세에 불과한 어린 선수가 혼자 출전한 세계선수권에서 그런 사고를 당하고도, 심지어 훈련 때도 괴롭힘을 당하고도 경기에서 클린해냈다는 사실은 박수를 받아 마땅한 일이다. 사고의 악재를 딛고 좋은 성적을 거둔 낸시 케리건을 연상케 한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반면 바로 뒷 순서로 나온 머라이어 벨도 클린했지만 71.26점으로 쇼트 6위에 그쳤다. 여담으로 토냐 하딩 사건이 일어난 1994년이나 25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이 묘하게도 유사한데, 사고를 낸 가해자 선수 쪽에서는 각각 남친이 있었다는 점이다.[12] 물론 하딩이나 벨 쪽에서는 사과라고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것도 덤이다. 차이점은 벨의 경우 직접 스케이트 날로 임은수의 종아리 쪽을 가격하고, 토냐 하딩은 본인이 아닌 자신을 경호한 사람을 시켜서 케리건의 허벅지를 둔기로 가격했다는 점이다.

8. 관련 문서


[1] 사라 케리건의 이름은 이 사람에게서 따왔으며 문서 참조.[2] 각자 훈련하던 두 사람의 사진을 합성했다.[3] 이는 나중에 타이어 렌치로 밝혀졌다.[4] 그동안 무릎이라고 알려졌는데, 진짜 렌치로 무릎을 내려쳤다면 부상이 심각해서 올림픽 출전은 불가능했고 심하면 은퇴를 했을지도 모른다.[5] 케리건의 아버지는 기술공이었다. 딸이 훈련할 때 필요한 돈을 벌려고 엄청 고생하였다.[6] 이 사건이 지나고 10년 뒤에 케리건의 오빠가 아버지를 살해한 것을 고려하면 과연 화목한 가정이었을지 의심스럽다.[7] 경기에 자주 늦어서 다른 선수들과 경기진행에 피해를 줬고 의상이나 스케이트 날도 제대로 관리 하지 않고 경기를 했다.[8] 스케이트 끈이 끊어져도 규정상 다시 시작할 수는 있지만, 확실한 감점요인이다. 게다가 모든 선수들이 만반의 준비를 해오는 올림픽 때 이러한 실수는 상위권일 수록 치명적이다.[9] 이 재판비용은 나이키 회장이 전액지불했다. 형벌이 이렇게 가벼운 것도 변호사가 유죄협상을 잘했기 때문이다.[10] 통산 전적은 3승 3패였다.[11] 사실 이들은 개인적으로 토냐 하딩을 무명 시절 부터 알고 지원했던 사람들이기도 하다.[12] 당시 하딩은 이혼한 제프 갈루리가 있었으며, 벨은 프랑스의 남자 싱글 선수인 로맹 폰사르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