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즈모빌 토로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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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smobile Toronado'''
미국의 자동차 회사인 제너럴 모터스가 올즈모빌을 통해 1966년부터 1992년까지 생산한 대형 쿠페의 명칭이다. GM에서 처음으로 양산화시킨 앞바퀴굴림 차종이면서, 캐딜락 엘도라도와 함께 코드 L29 이후 최초의 미국산 앞엔진 앞바퀴굴림 설계의 차종으로 기록되었다.
토로나도의 디자인 큐는 미국 GM에서 올즈모빌 자동차의 디자인을 담당하던 디자이너 데이비드 노스(David North)는 "Flame Red Car"라고 알려진 디자인 렌더링에서 유래가 되었다. 이 그림은 소형 스포츠 쿠페 겸 퍼스널카[1] 로 의도한 디자인이였으며, 딱히 생산을 할 의도로 그려진 것은 아니였지만 뷰익 리비에라와 캐딜락 엘도라도의 차기 버전의 개발 프로젝트인 E-바디 플랫폼[2] 의 개발 과정에서 디자인을 양산화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 Flame Red Car는 엘도라도 수준의 큰 차가 아니었던지라, 당시 GM의 수석디자이너인 빌 미첼을 비롯한 몇몇 수석들이 A-바디를 기반으로 하는 훨신 작은 차로 만들려고 했다가 비용 문제로 좌절되었고, 대신 데이비드 노스의 곁에 다른 디자이너들을 붙여 대형 쿠페다운 모습으로 디자인을 손보았으며 빌 미첼도 디자인 보완에 참여했다. "토로나도"라는 이름의 유래는 스페인어로 황소를 의미하는 Toro와 토네이도(Tornado)를 합성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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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즈모빌 토로나도는 GM 최초의 앞엔진 앞바퀴굴림 구성을 갖춘 차로서 미국 미시건의 랜싱(Lansing) 공장에서 생산이 시작되었고, 반응도 상당히 뜨거웠다. 세로배치 앞바퀴굴림 구성과 더불어 "터보-하이드라매틱(Turbo-Hydramatic) 400" 3단 자동변속기, 배기장치의 움직임을 자유롭게 하는 구 모양의 배기 매니폴드 플랜지 가스켓이 적용된 4배럴짜리 로체스터 쿼드라젯(Rochester Qudrajet) 카뷰레터, 앞문의 삼각창을 없에면서 풍절음을 크게 줄인 환기 구조, 파이어스톤(Firestone)에서 토로나도 전용으로 타이어의 사이드월을 두껍게 바른 TFD(Toronado-Front-Drive) 15인치 타이어 등의 혁신적인 기술들도 들어가 있었다.
엔진은 기술적으론 비교적 무난했지만 대신 흡기 매니폴드를 눈에 안 띄는 곳으로 옮기고 출력을 강화시킨 7리터 슈퍼 로켓(Super Rocket) 385마력 V8엔진이 제공되었고, 변속기는 터보 하이드라매틱 변속기를 손봐 앞바퀴굴림 설계에 최적화된 "TH425" 버전이 적용되었으며 기존의 TH400 변속기와 많은 부품을 공유하면서도 유성 기어(planetary gearset)와 분리된 토크 컨버터, 토크 컨버터와 기어의 운동을 조절하는 데 쓰인 51mm 넓이의 Hy-Vo 구동체인이 추가되었다. 구동체인의 경우, GM의 하이드라매틱 디비젼과 보그워너(Borg-Warner)의 모스 체인(Morse Chain) 디비젼의 합작으로 개발되었으며, 생산 과정에서 공장의 특수 기계를 통해 체인을 미리 늘려 놓았기 때문에 텐셔너(tensioner)[3] 나 아이들러 풀리(idler pulley)가 필요없는 구성이었다. 다만 이미 자동변속기로도 충분히 성능을 봅아낸다는 개발진들의 평가와 함께, 당대 미국 고급차들이 자동변속기를 기본으로 달고 나오던 시절이라 수동변속기는 제공되지 않았다.
또한 토로나도는 GM차 최초로 모노코크+서브프레임 결합 구조가 체용된 차였으며, 뒷서스펜션으로 쓰인 리프 스프링의 앞쪽 끝부분과 엔진 및 변속기, 앞서스펜션, 차체 바닥에 총 2개의 서브프레임이 적용되어 엔진과 지면에서 오는 진동을 크게 줄였다.[4] 서스펜션 구조의 경우, 올즈모빌에서는 토로나도의 엔진 룸 공간을 확보하고자 앞바퀴 서스펜션으로 토션 바를 GM 승용차 최초로 사용했으며, 덤으로 위아래 부품의 길이가 다른 비대칭형 더블 위시본도 추가되었다. 뒷서스펜션은 그저 빔 액슬과 리프 스프링을 조합하는 정도였지만 가로로 하나, 세로로 하나가 적용되는 이중 쇼크 업소버[5] 를 적용시켜 승차감을 개선했다. 브레이크는 유압식 11인치 드럼브레이크가 쓰였는데, 토로나도가 2톤이 넘어가는(2268kg) 거구임을 감안하자면 브레이크가 잘 과열되고 차가 멈출 때까지의 정지거리가 길어지는 문제가 발생하면서 1967년부터 통풍식 디스크브레이크로 교체했다.
2톤이 넘는 중량에도 불구하고, 토로나도는 0~97km/h까지 7.5초에 400미터 거리까지 주행하는 데 16.4초와 150km/h를 기록하고, 최고시속도 217km/h[6] 를 기록해 나름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고, 무거운 앞부분 때문에 언더스티어가 자주 생기기는 했어도 일반적인 주행에서의 핸들링은 다른 미국 대형차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평을 받았다. 훨씬 자세가 잡 잡히고 반응도 더 좋은데다가 극한으로 몰아도 핸들링이 매우 뛰어나다는 평이 있다는 호평도 있었던 반면, 기술력을 과시하겠다고 딱히 필요하지도 않은 라인업을 쓸데없이 추가한데다가 오버스티어가 심각하다는 비판도 존재했다.[7]
또한 다른 쿠페형 차량들이 그랬듯이 뒷좌석에 타기 쉽도록 문을 크게 만들었고, 고급 사양에서는 실내의 문 잠금장치(도어 래치)를 2개 설치해 뒷좌석 승객들이 문을 쉽게 열 수 있도록 배려한 점도 눈에 띄는 장점이였다.[8] 선택사양으로는 52달러짜리 헤드레스트와 tilt-telescopic 방식의 스티어링 칼럼이 포함되어 있었고, 슬롯머신처럼 구성이 된(즉 바늘 대신 원기둥 모양의 숫자판이 움직이는) 속도계가 포함된 계기판들은 운전자가 한번에 모든 정보를 알아보기 쉽게 배치되었다. 1966년 첫해동안 40936대가 만들어졌으며, 미국 나사(NASA)의 머큐리 프로젝트(미국 최초의 유인 우주 비행 계획)의 전 공보장교였던 존 파워스(John "Shorty" Powers)와 유명한 카레이서를 보비 운저(Bobby Unser)를 초청해 만든 광고가 방영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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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즈모빌에서 공개한 2세대 토로나도는 이전의 "GT카" 스타일링에서 벗어나 훨씬 전형적인 고급차 스타일링을 취해, 엘도라도의 스타일링과 일부 맥을 공유했다.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고객들을 많이 유치해 판매량이 크게 늘었는데, 여진히 엘도라도에게 한동안 밀리기는 했어도 뷰익에서 생산하던 형제차인 리비에라를 처음으로 판매량으로 재끼는 수준까지 이르기도 했다. 덩치도 예전보다 키웠고, 트렁크와 뒷창문 사이에 추가적인 후미등을 장착해 방향지시등과 브레이크등 역할을 맡겼으며, 앞바퀴 디스크브레이크를 기본사양으로 돌리고 뒷바퀴 서스펜션을 코일 스프링으로 대체한 것은 물론 심지어는 뒷바퀴에 ABS를 장착하는 옵션도 존재했다. 다만 이번에는 모노코크 차체 대신 올즈모빌 델타 88과 98에서 쓰는 것과 비슷한 분리형 차대를 사용하는 "기술적 퇴보"도 있었고, 기존의 7.5리터 로켓 V8엔진을 그대로 사용하되 미국의 새로운 배기가스 규정에 따라 무연 휘발유에 대응되는 구조로 손볼 필요가 있었기에 엔진 압축비를 낮춰 350마력으로 출력이 낮아졌다.
인테리어는 일반적으로 벤치시트와 중앙 팔걸이가 적용된 "커스텀 스포츠(Custom Sport)" 트림에서 천이나 비닐로 마감되었고, "브로엄(Brougham)" 사양을 선택할 경우 커트파일(cut-pile) 카펫과 암레스트가 딸린 60/40 분할식 벤치시트, 문에 장착된 실내등과 함께 천이나 벨로어, 비닐 인테리어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었다. 또한 1971년부터 1973년 동안에는 동시대의 다른 올즈모빌 대형차들과 비슷하게, 인체공학적인 면을 최대화해 중앙에 위치한 커다란 사각 속도계, 왼쪽에 위치한 냉난방 장치와 전조등/와이퍼 스위치, 오른쪽에 위치된 담대 라이터와 라디오 장치로 구성된 돠우 대칭형의 "커맨드 센터(Command Center)" 계기판을 제공했다. 사양도 "고급차"답게 꽤 화려해 터보 하이드라매틱 변속기와 가변 감속비 파워스티어링(조향각이 커질수록 스티어링의 감속비를 크게 하는 가변 조향 장치), 앞바퀴의 파워 디스크브레이크, 전자시계, 카펫과 고급 휠커버가 기본으로 장착되는 것은 물론, 선택사양으로는 에어컨과 8트랙짜리 카세트플레이어를 갖춘 AM/FM 스테레오 라디오, 전동 트렁크 계폐장치, 파워윈도우, 파워 도어락, 6방향 전동 시트, 크루즈 컨트롤, 각도 조절이 가능한 스티어링 휠, 비닐 마감된 지붕 등을 고를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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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대 토로나도는 석유파동과 일본 및 유럽차들의 점유율 확장에 대비해, 회사 전반에 걸쳐 모든 라인업을 훨씬 작게 만드는 줄이는 데 몰두하던 GM의 정책에 맞춰 형제차들과 함께 엄청난 다운사이징을 거쳤으며, 심지어 생산지도 이전의 랜싱에서 린덴 뉴저지(Linden New Jersey)로 이동했다. 이때 출시된 토로나도는 전장에서 약 51cm, 중량에서 약 450kg를 줄여 1세대 기준 5359~5456mm, 2세대 기준 5585mm라는 거구를 5182mm으로 줄여 놓았고, 엔진 크기도 170마력짜리 5.7리터 V8 엔진을 장착해 전보다 크기를 줄였으며, 변속기의 경우는 1981년까지 기존의 3단 자동이 쓰이다가 4단으로 대체되어 1982~1985년까지 쓰였다.
앞바퀴에 이어서 뒷바퀴에도 디스크브레이크가 옵션으로 제공되었으며, 또한 캐딜락에서 설계한 독립식 뒷바퀴 서스펜션이 이식되면서 승차감을 버리지 않고도 핸들링이 개선되는 것은 물론 뒷좌석과 트렁크 공간을 지난 세대 수준까지 늘리는 데 기여했다.[14] 또한 GM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가 디젤 버전으로 인기몰이를 하던 것을 참조해, 기존의 5.7리터 V8 엔진에다가 블럭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디젤 버전을 만들었고, 이 엔진도 벤츠 버전 못지않게 연비도 꽤 좋았던 탓에 처음에는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디젤엔진이라는 것 자체가 휘발유 버전보다 강한 압력을 버티도록 설계되어 있었던지라 기존 엔진을 개조해서 쓰는 데는 무리가 있었고, 결국은 심각한 품질 문제로 되돌아와 평판을 크게 흐리고 말았다.[15] 3세대 토로나도의 다운사이징은 시기가 잘 맞아떨어진 덕분에 1978년의 24,815대에서 1979년의 50,056대로 다른 형제차들과 함께 판매량이 크게 올랐고, 단종 때까지 매년 평균 4만 3천대 가량이 생산되어 나름 판매고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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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대 토로나도는 또다시 덩치가 줄어들면서 전장 4762mm을 기록해 5미터급을 처음 벗어났고, 모노코크 차체로 돌아온 한편 엔진도 더 작아져 V8은 옵션으로도 제공되지 않는 형태로 뷰익제 3.8리터 V6 엔진 하나만 제공되었다. 다만 초대 토로나도에서 잠시 쓰였던 개폐식 헤드램프도 전용 대시보드 및 변속기 레버와 같이 적용되는 스트라토제 버킷시트와 함께 돌아왔으며, 새로운 디지털 대시보드 및 제어판, 음성 경고 시스템 옵션을 비롯한 고급 편의장비들이 적용되었다. 기본 시트는 60/40의 비로 분할되는 등받이와 중앙 암레스트를 갖춘 직물 벤치시트였고, 인테리어 마감으로는 천이나 가죽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었다. 또한 토로나도의 E-바디 플랫폼을 돌려쓰는 차들 중에서 유일하게 벤치시트가 기본 적용되는 차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무리하게 다운사이징을 하다 보니, 이때는 마침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면서 유가가 크게 떨어지던 시기였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소형차 대신에 링컨 타운카나 크라이슬러 피프스 애비뉴같은 덩치 큰 고급차들을 찾아갔고, 자동차 매체들은 무리한 다운사이징만 지적하는 게 아니라 다운사이징만큼이나 심각해지면서 훨씬 저렴해 보이기까지 한 "뱃지놀이" 문제까지 지적하고 있었다. 때문에 4세대 토로나도의 첫 해 판매량은 20주년 기념판까지 출시했는데도 지난해의 62% 이상까지 곤두박칠졌고, 판매량을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수준까지 이르고 말았다.
(1989년식 올즈모빌 트로페오. 1988년부터는 원톤 컬러 위주로 출고되었다.)
'''Oldsmobile Toronado'''
1. 개요
미국의 자동차 회사인 제너럴 모터스가 올즈모빌을 통해 1966년부터 1992년까지 생산한 대형 쿠페의 명칭이다. GM에서 처음으로 양산화시킨 앞바퀴굴림 차종이면서, 캐딜락 엘도라도와 함께 코드 L29 이후 최초의 미국산 앞엔진 앞바퀴굴림 설계의 차종으로 기록되었다.
2. 역사
2.1. 배경
토로나도의 디자인 큐는 미국 GM에서 올즈모빌 자동차의 디자인을 담당하던 디자이너 데이비드 노스(David North)는 "Flame Red Car"라고 알려진 디자인 렌더링에서 유래가 되었다. 이 그림은 소형 스포츠 쿠페 겸 퍼스널카[1] 로 의도한 디자인이였으며, 딱히 생산을 할 의도로 그려진 것은 아니였지만 뷰익 리비에라와 캐딜락 엘도라도의 차기 버전의 개발 프로젝트인 E-바디 플랫폼[2] 의 개발 과정에서 디자인을 양산화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 Flame Red Car는 엘도라도 수준의 큰 차가 아니었던지라, 당시 GM의 수석디자이너인 빌 미첼을 비롯한 몇몇 수석들이 A-바디를 기반으로 하는 훨신 작은 차로 만들려고 했다가 비용 문제로 좌절되었고, 대신 데이비드 노스의 곁에 다른 디자이너들을 붙여 대형 쿠페다운 모습으로 디자인을 손보았으며 빌 미첼도 디자인 보완에 참여했다. "토로나도"라는 이름의 유래는 스페인어로 황소를 의미하는 Toro와 토네이도(Tornado)를 합성한 것이라고 한다.
2.2. 1세대 (1966~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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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즈모빌 토로나도는 GM 최초의 앞엔진 앞바퀴굴림 구성을 갖춘 차로서 미국 미시건의 랜싱(Lansing) 공장에서 생산이 시작되었고, 반응도 상당히 뜨거웠다. 세로배치 앞바퀴굴림 구성과 더불어 "터보-하이드라매틱(Turbo-Hydramatic) 400" 3단 자동변속기, 배기장치의 움직임을 자유롭게 하는 구 모양의 배기 매니폴드 플랜지 가스켓이 적용된 4배럴짜리 로체스터 쿼드라젯(Rochester Qudrajet) 카뷰레터, 앞문의 삼각창을 없에면서 풍절음을 크게 줄인 환기 구조, 파이어스톤(Firestone)에서 토로나도 전용으로 타이어의 사이드월을 두껍게 바른 TFD(Toronado-Front-Drive) 15인치 타이어 등의 혁신적인 기술들도 들어가 있었다.
엔진은 기술적으론 비교적 무난했지만 대신 흡기 매니폴드를 눈에 안 띄는 곳으로 옮기고 출력을 강화시킨 7리터 슈퍼 로켓(Super Rocket) 385마력 V8엔진이 제공되었고, 변속기는 터보 하이드라매틱 변속기를 손봐 앞바퀴굴림 설계에 최적화된 "TH425" 버전이 적용되었으며 기존의 TH400 변속기와 많은 부품을 공유하면서도 유성 기어(planetary gearset)와 분리된 토크 컨버터, 토크 컨버터와 기어의 운동을 조절하는 데 쓰인 51mm 넓이의 Hy-Vo 구동체인이 추가되었다. 구동체인의 경우, GM의 하이드라매틱 디비젼과 보그워너(Borg-Warner)의 모스 체인(Morse Chain) 디비젼의 합작으로 개발되었으며, 생산 과정에서 공장의 특수 기계를 통해 체인을 미리 늘려 놓았기 때문에 텐셔너(tensioner)[3] 나 아이들러 풀리(idler pulley)가 필요없는 구성이었다. 다만 이미 자동변속기로도 충분히 성능을 봅아낸다는 개발진들의 평가와 함께, 당대 미국 고급차들이 자동변속기를 기본으로 달고 나오던 시절이라 수동변속기는 제공되지 않았다.
또한 토로나도는 GM차 최초로 모노코크+서브프레임 결합 구조가 체용된 차였으며, 뒷서스펜션으로 쓰인 리프 스프링의 앞쪽 끝부분과 엔진 및 변속기, 앞서스펜션, 차체 바닥에 총 2개의 서브프레임이 적용되어 엔진과 지면에서 오는 진동을 크게 줄였다.[4] 서스펜션 구조의 경우, 올즈모빌에서는 토로나도의 엔진 룸 공간을 확보하고자 앞바퀴 서스펜션으로 토션 바를 GM 승용차 최초로 사용했으며, 덤으로 위아래 부품의 길이가 다른 비대칭형 더블 위시본도 추가되었다. 뒷서스펜션은 그저 빔 액슬과 리프 스프링을 조합하는 정도였지만 가로로 하나, 세로로 하나가 적용되는 이중 쇼크 업소버[5] 를 적용시켜 승차감을 개선했다. 브레이크는 유압식 11인치 드럼브레이크가 쓰였는데, 토로나도가 2톤이 넘어가는(2268kg) 거구임을 감안하자면 브레이크가 잘 과열되고 차가 멈출 때까지의 정지거리가 길어지는 문제가 발생하면서 1967년부터 통풍식 디스크브레이크로 교체했다.
2톤이 넘는 중량에도 불구하고, 토로나도는 0~97km/h까지 7.5초에 400미터 거리까지 주행하는 데 16.4초와 150km/h를 기록하고, 최고시속도 217km/h[6] 를 기록해 나름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고, 무거운 앞부분 때문에 언더스티어가 자주 생기기는 했어도 일반적인 주행에서의 핸들링은 다른 미국 대형차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평을 받았다. 훨씬 자세가 잡 잡히고 반응도 더 좋은데다가 극한으로 몰아도 핸들링이 매우 뛰어나다는 평이 있다는 호평도 있었던 반면, 기술력을 과시하겠다고 딱히 필요하지도 않은 라인업을 쓸데없이 추가한데다가 오버스티어가 심각하다는 비판도 존재했다.[7]
또한 다른 쿠페형 차량들이 그랬듯이 뒷좌석에 타기 쉽도록 문을 크게 만들었고, 고급 사양에서는 실내의 문 잠금장치(도어 래치)를 2개 설치해 뒷좌석 승객들이 문을 쉽게 열 수 있도록 배려한 점도 눈에 띄는 장점이였다.[8] 선택사양으로는 52달러짜리 헤드레스트와 tilt-telescopic 방식의 스티어링 칼럼이 포함되어 있었고, 슬롯머신처럼 구성이 된(즉 바늘 대신 원기둥 모양의 숫자판이 움직이는) 속도계가 포함된 계기판들은 운전자가 한번에 모든 정보를 알아보기 쉽게 배치되었다. 1966년 첫해동안 40936대가 만들어졌으며, 미국 나사(NASA)의 머큐리 프로젝트(미국 최초의 유인 우주 비행 계획)의 전 공보장교였던 존 파워스(John "Shorty" Powers)와 유명한 카레이서를 보비 운저(Bobby Unser)를 초청해 만든 광고가 방영되기도 했다.
2.2.1. 연식별 변경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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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7년식 토로나도는 약간의 페이스리프트가 이루어져 그릴을 격자형으로 바꾸었고, 승차감을 살짝 부드럽게 손보면서 디스크브레이크와 스테레오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옵션을 추가했지만 판매량이 절반으로 깎여 22062대만 판매되었다. 출시 이후의 급격한 판매량 감소는, 토로나도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에 힘을 싣기도 했다.
- 1968년식 토로나도는 나름 눈에 띄는 페이스리프트가 다시 이루어져 접이식 헤드렘프가 커진 크기의 둥글려진 그릴 속으로 완전히 통합되었고, 기존의 7리터 V8 엔진을 7.5리터 V8 엔진으로 바꿔 기본형 375마력에 W-34 튜닝 옵션을 더한 400마력 버전이 제공되었다. 또한 뒤에는 테일 핀도 생겼고, 기본 서스펜션의 세팅이 바뀌면서 승차감도 해가 가면서 크게 부드러워졌고, 처음에 쓰이던 튼튼한 서스펜션은 아예 옵션화되었다. 스트라토(Strato)제 버킷시트 밎 바닥에 설치된 변속기(플로어 시프트)를 포함한 스포티한 대시보드가 선택사양으로 제공된 것도 이때부터이다.[9] W-34 튜닝 옵션의 경우, 공기 청정기에다 차가운 공기의 이동을 유도하는 시스템과 전용 캠축, 빠른 변속과 저속에서의 토크를 개선한 전용 변속기 세팅이 추가되었으며, 외양상으로는 다른 형상의 머플러가 적용되었다.
- 1969년식 토로나도는 시동 잠금장치(이그니션 록)을 추가했으며, 1970년에는 접이식 헤드램프를 고정식으로 바꾸고 펜더를 사각형으로 바꾸면서 나름 큰 폭으로 디자인을 바꾸었다. W-34 사양 한정으로는 GT 엠블럼이 추가되었다.
2.3. 2세대 (1971~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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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즈모빌에서 공개한 2세대 토로나도는 이전의 "GT카" 스타일링에서 벗어나 훨씬 전형적인 고급차 스타일링을 취해, 엘도라도의 스타일링과 일부 맥을 공유했다.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고객들을 많이 유치해 판매량이 크게 늘었는데, 여진히 엘도라도에게 한동안 밀리기는 했어도 뷰익에서 생산하던 형제차인 리비에라를 처음으로 판매량으로 재끼는 수준까지 이르기도 했다. 덩치도 예전보다 키웠고, 트렁크와 뒷창문 사이에 추가적인 후미등을 장착해 방향지시등과 브레이크등 역할을 맡겼으며, 앞바퀴 디스크브레이크를 기본사양으로 돌리고 뒷바퀴 서스펜션을 코일 스프링으로 대체한 것은 물론 심지어는 뒷바퀴에 ABS를 장착하는 옵션도 존재했다. 다만 이번에는 모노코크 차체 대신 올즈모빌 델타 88과 98에서 쓰는 것과 비슷한 분리형 차대를 사용하는 "기술적 퇴보"도 있었고, 기존의 7.5리터 로켓 V8엔진을 그대로 사용하되 미국의 새로운 배기가스 규정에 따라 무연 휘발유에 대응되는 구조로 손볼 필요가 있었기에 엔진 압축비를 낮춰 350마력으로 출력이 낮아졌다.
인테리어는 일반적으로 벤치시트와 중앙 팔걸이가 적용된 "커스텀 스포츠(Custom Sport)" 트림에서 천이나 비닐로 마감되었고, "브로엄(Brougham)" 사양을 선택할 경우 커트파일(cut-pile) 카펫과 암레스트가 딸린 60/40 분할식 벤치시트, 문에 장착된 실내등과 함께 천이나 벨로어, 비닐 인테리어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었다. 또한 1971년부터 1973년 동안에는 동시대의 다른 올즈모빌 대형차들과 비슷하게, 인체공학적인 면을 최대화해 중앙에 위치한 커다란 사각 속도계, 왼쪽에 위치한 냉난방 장치와 전조등/와이퍼 스위치, 오른쪽에 위치된 담대 라이터와 라디오 장치로 구성된 돠우 대칭형의 "커맨드 센터(Command Center)" 계기판을 제공했다. 사양도 "고급차"답게 꽤 화려해 터보 하이드라매틱 변속기와 가변 감속비 파워스티어링(조향각이 커질수록 스티어링의 감속비를 크게 하는 가변 조향 장치), 앞바퀴의 파워 디스크브레이크, 전자시계, 카펫과 고급 휠커버가 기본으로 장착되는 것은 물론, 선택사양으로는 에어컨과 8트랙짜리 카세트플레이어를 갖춘 AM/FM 스테레오 라디오, 전동 트렁크 계폐장치, 파워윈도우, 파워 도어락, 6방향 전동 시트, 크루즈 컨트롤, 각도 조절이 가능한 스티어링 휠, 비닐 마감된 지붕 등을 고를 수가 있었다.
2.3.1. 연식별 변경사항
- 1972년식 토로나도는 출력 측정방식을 바꾸면서 기존의 7.5리터 엔진이 250마력으로 출력 수가 떨어진 반면, 디스크브레이크에 소리가 나는 마모 지시기(wear indicator)를 적용했다.
- 1973년식부터는 미국 법규의 개정에 따라 대형 5마일 범퍼를 앞에 장착하는 동시에 후미등을 수직 형상으로 바꾸었다.
- 1974년식부터는 5마일 범퍼가 뒤에도 장착되었으며 동시에 옵션으로 고정식 오페라 윈도우를 추가하고 계기판에도 운전자가 연비 운전을 하는가가 아닌가를 표시하는 게이지가 추가되었으며, 계기판 디자인도 다른 대형차 라인업들을 따라 평면으로 교체된 뒤 속도계 아래에 연료계 등의 보조 계기장치들을 모두 모아 두었다. 1974년부터 1976년까지의 짧은 기간동안, 토로나도에는 GM 최초이자 미국 시판차 최초로 운전식 및 조수석 에어백이 장착되는 또다른 의의도 갖게 되었는데 "Air Cushion Restraint System[10] "라는 이름 하에 전용 스티어링 휠과 운전석 쪽의 무릎 보호대와 같이 적용되었고, 이후 쉐보레 정부 관용차와 뷰익 엘렉트라, 캐딜락 엘도라도 등의 몇몇 차종에도 추가로 장착되었지만 정작 소비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금방 옵션에서 사라졌다.[11]
- 1975년식 토로나도부터는 파워 윈도우가 기본사양이 되었고, 또한 직사각형 헤드램프를 수용하는 페이스리프트가 한 차례 있었다.
- 1976년식 토로나도는 7.5리터 엔진의 출력이 또다시 215마력으로 떨어졌으며, 또한 7.5리터 엔진의 마지막 해가 되었다.
- 1977년식 토로나도는 새로운 라인업으로 각각 썬루프 및 타르가탑, 기둥까지 감싸는 널찍한 뒷창문, 에어컨과 Astroroof제 썬루프를 장착한 XS 트림을 추가했다.[12] 1978년부터 적용되는 새로운 연비 기준[13] 에 대비해 기존의 7.5리터 V8엔진을 6.6리터 185마력 엔진으로 교체했다.
- 1978년식 토로나도는 크릴 디자인이 훨씬 중후하게 바뀌는 것 외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또한 1970년대 말에 급하게 진행된 GM차 전반의 소형화 작업으로 인해, 단종 때까지 2세대 토로나도는 당시 올즈모빌에서 가장 큰 차로 남아 1978년까지 생산이 이루어졌다.
2.4. 3세대 (1979~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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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대 토로나도는 석유파동과 일본 및 유럽차들의 점유율 확장에 대비해, 회사 전반에 걸쳐 모든 라인업을 훨씬 작게 만드는 줄이는 데 몰두하던 GM의 정책에 맞춰 형제차들과 함께 엄청난 다운사이징을 거쳤으며, 심지어 생산지도 이전의 랜싱에서 린덴 뉴저지(Linden New Jersey)로 이동했다. 이때 출시된 토로나도는 전장에서 약 51cm, 중량에서 약 450kg를 줄여 1세대 기준 5359~5456mm, 2세대 기준 5585mm라는 거구를 5182mm으로 줄여 놓았고, 엔진 크기도 170마력짜리 5.7리터 V8 엔진을 장착해 전보다 크기를 줄였으며, 변속기의 경우는 1981년까지 기존의 3단 자동이 쓰이다가 4단으로 대체되어 1982~1985년까지 쓰였다.
앞바퀴에 이어서 뒷바퀴에도 디스크브레이크가 옵션으로 제공되었으며, 또한 캐딜락에서 설계한 독립식 뒷바퀴 서스펜션이 이식되면서 승차감을 버리지 않고도 핸들링이 개선되는 것은 물론 뒷좌석과 트렁크 공간을 지난 세대 수준까지 늘리는 데 기여했다.[14] 또한 GM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가 디젤 버전으로 인기몰이를 하던 것을 참조해, 기존의 5.7리터 V8 엔진에다가 블럭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디젤 버전을 만들었고, 이 엔진도 벤츠 버전 못지않게 연비도 꽤 좋았던 탓에 처음에는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디젤엔진이라는 것 자체가 휘발유 버전보다 강한 압력을 버티도록 설계되어 있었던지라 기존 엔진을 개조해서 쓰는 데는 무리가 있었고, 결국은 심각한 품질 문제로 되돌아와 평판을 크게 흐리고 말았다.[15] 3세대 토로나도의 다운사이징은 시기가 잘 맞아떨어진 덕분에 1978년의 24,815대에서 1979년의 50,056대로 다른 형제차들과 함께 판매량이 크게 올랐고, 단종 때까지 매년 평균 4만 3천대 가량이 생산되어 나름 판매고를 올렸다.
2.4.1. 연식별 변경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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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식 토로나도는 페이스리프트와 함께 할로겐 헤드램프가 기본사양으로 추가되었고, 5.03리터 140마력짜리 V8엔진과 4.13리터 125마력짜리 뷰익 V6 엔진이 각각 1980년과 1981년에 하위 라인업으로 추가되었는데 5.7리터 버전이 그래도 평도 좋고 가속이 빠른 편인 것에 비해서, 저배기량 엔진들은 답답한 가속력 때문에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1980~1981년 사이에는 스포티한 디자인의 XSC 패키지를 선보였으며, 버킷시트와 스포티한 대시보드, 가죽으로 마감된 스포츠 스티어링 휠, 전용 계기판, 단단한 세팅의 서스펜션, 스포티한 백미러와 차체 색상의 휠 디스크, 스트라이프, 전용 뱃지가 적용되었다.
- 1981년식 토로나도에는 새로운 알루미늄 스포츠 휠이 이때 한정으로 옵션으로 추가되었고, 직물시트 패턴도 교체하면서 기존의 사각형 패턴에서 골이 진 스티치 패턴으로 바뀌었으며, 반쯤 덮는 랜도우(Landau) 비닐 루프만 남긴 체 지붕 전체를 덮는 비닐 루프를 단종시켰다.
- 1982년식은 그릴 디자인을 변경하고 앞뒤 디스크브레이크, 틸트 스티어링, 크루즈 컨트롤이 기본 사양으로 변경되었으며 운전석에서의 자세를 기억하는 메모리 시트가 옵션으로 추가되었다. 또한 4단 자동변속기도 이때 도입되었고, 델코(Delco)제 전자 라디오와 디지털 시계가 추가되면서 대시보드가 일부 수정되었다.
- 1983년에는 다른 올즈모빌 차들이 그랬듯이 토로나도도 별 변화가 없었으며, 외관 뱃지가 변경되어 "TORONADO" 레터링이 그릴 안으로 들어갔고 "T"자 엠블럼이 추가되는 정도였으며, 또한 델코/보스(Bose)제 고급 음향 시스템이 옵션으로 추가되었다.
- 1984년식에서는 또다시 그릴 디자인이 심플하게 변경되어 그릴의 줄이 중앙의 두꺼운 줄 하나로 통합되었으며, 전동 Day-Night 룸미러와 진공 구조의 야광 디지털 조명이 추가된 제어판(인스트루먼트 패널)이 선택사양으로 추가되었다. 또한 특별 패키지로 추가된 "칼리엔테(Caliente)"는 그릴 위의 브러쉬드 메탈 마감과 전용 사이드 몰딩, 톡특한 디자인의 랜도우 루프, 전자 계기판과 가죽 인테리어가 기본으로 들어갔으며, 심지어는 양털로 된 인테리어 마감을 고를 수 있었다.
- 1985년식 토로나도는 3세대 모델의 마지막 해로, 4.1리터 V6 엔진을 삭제하고 V8 엔진만으로 판매되었으며 4세대 모델의 데뷔와 함께 같은 플랫폼의 차들과 함께 분리형 차대+앞바퀴굴림+V8 구성을 갖춘 마지막 GM차라는 의의를 남기고 단종되었다.
2.5. 4세대 (1986~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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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대 토로나도는 또다시 덩치가 줄어들면서 전장 4762mm을 기록해 5미터급을 처음 벗어났고, 모노코크 차체로 돌아온 한편 엔진도 더 작아져 V8은 옵션으로도 제공되지 않는 형태로 뷰익제 3.8리터 V6 엔진 하나만 제공되었다. 다만 초대 토로나도에서 잠시 쓰였던 개폐식 헤드램프도 전용 대시보드 및 변속기 레버와 같이 적용되는 스트라토제 버킷시트와 함께 돌아왔으며, 새로운 디지털 대시보드 및 제어판, 음성 경고 시스템 옵션을 비롯한 고급 편의장비들이 적용되었다. 기본 시트는 60/40의 비로 분할되는 등받이와 중앙 암레스트를 갖춘 직물 벤치시트였고, 인테리어 마감으로는 천이나 가죽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었다. 또한 토로나도의 E-바디 플랫폼을 돌려쓰는 차들 중에서 유일하게 벤치시트가 기본 적용되는 차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무리하게 다운사이징을 하다 보니, 이때는 마침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면서 유가가 크게 떨어지던 시기였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소형차 대신에 링컨 타운카나 크라이슬러 피프스 애비뉴같은 덩치 큰 고급차들을 찾아갔고, 자동차 매체들은 무리한 다운사이징만 지적하는 게 아니라 다운사이징만큼이나 심각해지면서 훨씬 저렴해 보이기까지 한 "뱃지놀이" 문제까지 지적하고 있었다. 때문에 4세대 토로나도의 첫 해 판매량은 20주년 기념판까지 출시했는데도 지난해의 62% 이상까지 곤두박칠졌고, 판매량을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수준까지 이르고 말았다.
2.5.1. 연식별 변경사항
- 1987년 중순, 올즈모빌에서는 토로나도의 판매량을 어떻게든 끌어올리기 위해 스포티 버전인 "트로페오(Troféo)"를 출시했으며, 트로페오에는 가죽 버킷시트와 모조 이중 배기관, 공격적인 스타일링 처리, FE3 패키지 사양에 맞춰 단단한 세팅의 서스펜션이 포함되었다. 또한 라인업 전반적으로는 새로운 색상 선택권도 추가했고, 제어판의 스테레오 라디오 및 냉난방 시스템을 키우면서 다루기 쉽게 손보기도 했지만 트로페오라는 특별 조치까지 취했는데도 판매량은 계속 추락해 1987년형은 트로페오 포함 15040대에 불과했다.
(1989년식 올즈모빌 트로페오. 1988년부터는 원톤 컬러 위주로 출고되었다.)
- 1988년식 토로나도는 트로페오를 토로나도와 독립시키면서 단색 페인트 도장과 리어 시글러(Lear Siegler)제 버킷시트를 적용해 지난해보다 스포티함을 더 강조했으며, 라인업 전반에는 와이퍼를 개선하고 공조장치 버튼을 키운 뒤에 좀 더 사용하기 편리하게 재배치했으며, 3점식 안전벨트가 뒷좌석에 적용되었고, 와이어 휠을 옵션에서 삭제하는 대신에 기존의 뷰익 3.8리터 엔진에 전자 연료분사 시스템과 밸런스축을 더해 성능을 개선했다.
- 1989년식 토로나도에는 ABS와 함께 라디오/냉난방장치 버튼을 포함한 스티어링 휠이 기본사양이 되었으며, 벤치시트를 옵션 처리하면서 버킷시트 사양이 기본화되었다. 또한 이때는 뷰익 레에타(Reatta) 스포츠카 등과 함께 "비쥬얼 인포메이션 센터(Visual Information Center. 이하 VIC.)"라는 이름의 터치스크린을 얻었는데, 이 터치스크린은 51가지 디스플레이를 통해 냉난방 장치와 라디오 등을 조작하는 역할을 맡았다. 또한 VIC를 구입할 경우에는 핸즈프리 기능이 첨부된 휴대전화를 장착할 수도 있었다.
- 1990년식 토로나도는 덩치를 도로 키워 보닛 외의 모든 철판을 새로 디자인했고, 트렁크를 305mm나 늘려놓음으로서 5미터대의 덩치를 도로 되찾을 수 있었다. 다만 트렁크와 범퍼 등의 외장 부품을 늘리는 데 초점을 두는지라, 실내공간은 그대로였다. 대신 실내공간도 어느 정도 손을 보아 대시보드 수납장을 키우고 운전석 에어백을 1976년 이후로 다시 기본사양으로 체택했으며, 디지털 계기판을 벤치시트와 함께 옵션처리함에 따라 아날로그식 계기판을 기본 장착했다.
- 1991년식 토로나도는 리모컨식 키레스 엔트리와 ABS가 모든 트림에 기본사양으로 적용되었으며, 엔진을 개선함으로서 성능이 살짝 개선되었다. 또한 아스트로루프제 썬루프가 벤치시트와 같이 딸려나오는 옵션으로 적용되었으며, 외장 색상 옵션을 손보면서 트로페오에 알칸타라[16] 인테리어를 추가했다.
- 1992년식 토로나도는 토로나도에게 와이어 휠커버가 도로 무료옵션으로 돌아왔고, FE3 패키지의 서스펜션을 사용함으로서 트로페오의 서스펜션 세팅을 단단하게 세팅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SUV 및 RV의 인기가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대형 쿠페가 발붙일 곳이 거의 없어져가고 있었고, 결국 모든 방법을 다 써보았는데도 한 세대 내내 판매부진을 극복하지 못하자, 올즈모빌과 GM에서는 1992년 5월 28일을 기점으로 토로나도를 퇴역시켰다.
3. 둘러보기
[1] 개인이 혼자서 사용하는 데 적당한 크기와 성능을 가진 차.[2] 앞바퀴굴림과 뒷바퀴굴림 모두를 수용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설계되었으며, 엘도라도와 리비에라, 토로나도는 비용절감을 위해 외장 부품 몇 가지를 공유할 예정이었다.[3] 타이밍 체인이 헐거운 것을 막는 장치.[4] 나중에는 이와 비슷한 설계가 1967년에 출시될 카마로/파이어버드에도 적용되었다.[5] 스프링과 함께 노면 굴곡에 따른 흔들림을 소멸시켜 승차감을 향상시키는 장치[6] 60~70년대 초고성능 머슬카들도 최고속도는 200km/h이하거나 겨우 근접해도 매우 빠른축에속하니 이는 현재로써는 300km/h이상에 달하는 속도다.[7] 참고로 토로나도는 "모터 트렌드"의 "올해의 차" 상과 "카 라이프"의 "Award for Engineering Excellence"을 수상했고, 심지어는 "유럽 올해의 차" 수상자들 중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8] 이러한 설계는 토로나도 외에 리비에라와 엘도라도 등의 다른 형제차들에도 적용되었으며, 1980년까지도 엘도라도에서 볼 수 있었다.[9] 고객들 다수는 앞바퀴굴림 설계의 장점인 평평한 바닥을 누리고자 벤치시트 사양을 그대로 가져갔다.[10] 번역하면 공기 쿠션 제지 장치. 약칭은 ACRS이다.[11] 게다가 GM과 포드에서는 은근히 에어백의 의무 장착화를 꺼린 탓에 정부에게 "에어백 의무화는 비현실적이고 부적합하다"는 식으로 로비를 벌이면서, 에어백은 1981년의 벤츠, 1985년의 포드 템포, 1987년의 포르쉐와 아큐라 레전드, 1988년의 크라이슬러와 올즈모빌 정도의 소수 사례를 빼면 1990년대 초까지 미국에서도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12] 그 외에도 버튼으로 계폐되는 전동식 타르가탑 지붕을 적용한 XSR이 라인업에 준비되어 있었지만, 시험차 단계에서 방수 처리가 제대로 안되어 실내로 물이 세는 일이 빈번했고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자, 결국 XSR을 포기하고 말았다.[13] 메이커당 평균 7.7km/l을 기록할 것을 법으로 정해 놓았다.[14] 다만 탑승인원 수가 6명에서 4명으로 줄어들었다.[15] 물론 GM도 이 문제를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아서 기존의 디젤차들을 휘발유 엔진으로 바꿔주고, 문제의 대상이었던 디젤엔진도 주요 문제점들을 고쳐냈지만 이미 때가 늦어버린 탓에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16] 미국에서는 울트라스웨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