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후 박씨

 


태조 왕건의 등장인물로 담당 배우는 아내의 유혹에서 막장 시어머니 백미인역을 열연한 금보라[1].
역사상 정식 명칭은 상원부인(上院夫人)인데도 이를 반영하지 않은 이유는, 견훤의 어머니의 이름 또한 상원부인이기 때문[2]. 일단 둘이 동일인일 가능성은 낮으며, 상원(上院)은 이름이 아닌 궁호로 본다.
후백제의 왕후이자 견훤의 첫 번째 아내이면서 신검, 양검, 용검, 국대부인[3] 등 3남 1녀를 낳았다. 극 초반에는 크게 두드러지는 캐릭터가 아니었으나, 극 중반 이후로는 그간 금보라가 해 온 연기와 어울리는 표독스러울 만큼 날카롭고 강단 있는 성격으로 그려져 주목받았다.
극 초반에는 일개 시골 지방 세력가의 맏며느리로써 본인의 말마따나 평생 농사만 지을 줄 알았으나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하자 황후가 되었으며, 이때까지는 극에서 크게 두드러지는 역은 아니었다. 다만 드라마의 내용을 다 아는 상황에서 다시 볼 때 걸리는 부분이라고 하면 아직 완산주에 궁궐이 들어서기 전 견훤이 순행을 다닐 때 몸종이자 측근 궁녀에게 했던 "나는 황후도 그리 달갑지 않느니라." 라는 말 정도?[4]
견훤과의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한 것은 후궁으로 승평부인 고비가 들어온 시점부터였다. 당시 박씨는 능환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끝내 반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므로 고비를 달갑게 여길 리가 없었고, 그런 마당에 견훤이 고비에게서 아들 금강을 얻은 뒤 그를 편애하고 박씨에게서 본 아들들인 신검 형제들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이자 관계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그녀는 극이 시작될 시점에서 견훤이 아니라 아자개와 함께 있었으므로 부자 간의 갈등을 직접 겪은 데다가 아자개의 후처가 부자 사이를 이간질한 것도 알고 있었다.[5] 결국 신검이 장성한 뒤에도 오래도록 후계자로서 자리를 잡지 못하자 신검을 옹호하는 조정의 신료들과 연계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본인 입으로 "내가 투기(질투) 때문에 이러는 줄 아느냐?"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지만, 시청자 입장에서 보면 질투의 화신 그 자체. 상대적으로 소심하고 주눅들어 있는 승평부인에게 숙청을 암시하는 협박이나 다름없는 덕담을 던지고, 견훤이 승평부인과 금강에게 애정을 보일 때마다 그 질투심을 숨기지 않는다. 늘 바가지나 긁으며 표독스럽게 구는 박씨가 사랑스러울 리 없으니 견훤은 더욱 승평부인을 가까이 하며 위로를 얻고자 하고, 그런 모습을 보는 박씨는 더욱 승평부인을 질투하며 견훤에게 바가지를 긁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후궁 고비와의 불화, 시가 식구들의 갈등 관계와 맞물려 박씨와 견훤의 사이가 틀어지게 만든 마지막 계기는, 고려에 볼모로 보내졌던 진호의 죽음이었다. 조물성 전투 이후 화친하기로 한 고려와 백제는 화해의 증표로 서로 볼모를 교환하기로 했는데 이때 백제의 대표로 떠나간 사람이 황후의 손아랫뻘 되는 친척인 진호였던 것. 하지만 그는 최응의 계책[6]에 의해 시신으로 돌아왔고, 박씨는 자신의 가문을 우습게 알았기에 진호를 볼모로 보내 죽게 만들었다고 분노했던 것.
이후 견훤이 최승우와 사위 박영규를 중심으로 새로운 조정을 꾸리고 금강을 후계자로 세우려 하자 이에 위기감을 느낀 능환, 능애, 신덕은 신검에게 ‘혁명’을 일으키라고 건의하나, 신검은 정통성이 없는 혁명은 쿠데타라고 반박했다. 이에 능환 등은 박씨에게 신검으로 하여금 보위에 오르라는 교지를 내려달라고 주청했고, 이 교지와 함께 능애 등을 처형하거나 삭탈관직할 것이며 신검 형제 역시 유배형에 처한다는 견훤의 명령서[7]를 보게 되면서 신검은 마침내 쿠데타를 일으키게 된다. 이때 박씨는 금강을 제거하고 ‘혁명’이 성공했음을 고하러 온 신검에게 고비와는 그 동안 이래저래 갈등을 빚어온 것이 사실이지만, 견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를 함과 동시에 아들의 정치적 입장을 고려하여 "부왕의 후비는 함부로 죽이는 게 아니다." 라고 승평 부인을 죽이지 말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막상 폐위당한 견훤과 마주했을 때는 분노를 내비치는 그 앞에서 냉담한 독설조로 ‘폐하도 상주 아버님의 망녕을 이어받았음을 보았다’라며 자신 역시 혁명에 가담했다고 고해 부부 관계가 사실상 단절되고 만다. 결국 견훤은 고비와 함께 금산사에 유폐되고, 이후 신검 형제와 함께 조정의 실세로 자리잡는다.
견훤을 유폐한 뒤에도 정통성을 확보하고 싶었던 신검은 한동안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고, 박씨는 제 아무리 사이가 틀어졌다고는 해도 수십 년 동안 남편이었던 사람을 쫓아낸 것과 신검의 우유부단함에 절망했는지 '황후가 다 무엇이란 말이냐. 이런 생활은 여염집 아낙보다도 못한 삶이 아니냐.' 라며 절망을 토로했다. 이후로는 등장이 없지만, 대본상에서는 일리천 전투에서 백제가 고려에 패망한 뒤에 자결한 것으로 되어있으며 드라마와 함께 나온 소설에서는 절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었다고 한다.
[1] 대주도금 역의 박윤선, 남원부인 역의 이미지 등과는 안양예술고등학교 동문이다[2] 드라마 131화 27~29분 무렵에 나오는 나레이션에서도 견훤의 왕비나 가족 관계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소개하며 왕후의 성씨는 불명이고 신검, 양검, 용검이 누구의 소생인지도 알 수 없으나 극중의 흐름을 위해 임의로 설정했다고 소개한다.[3] 승평(지금의 전남 순천)의 호족인 박영규의 아내.[4] 그런데 이런 말을 한 이유라는 것도 후궁이니 왕위 다툼이니가 아니라 '한 번 궁궐에 들어가면 다시는 밖으로 나오기 어렵게 된다' 라는 것. 즉 이때까지의 박씨는 그야말로 평범한 시골 아낙네 A 정도였다.[5] 이러한 모습은 아자개와 박씨가 처음 등장할 때부터 묘사되는데, 박씨 자신이 ‘부자간이 너무나 똑같은데 한쪽만 고집을 꺾으면 좋겠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6] 조물성 전투 이후 왕건은 사촌동생인 왕신이 후백제에 볼모로 잡힌 것 때문에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시간만 보내고 있었는데, 결국 답답함을 참다 못한 박술희 등이 최응에게 조언을 구했고. 최응은 왕신이 죽는다면 왕건이 지금처럼 가만히 있지는 못할 것이며 왕신을 죽이는 방법이 바로 진호를 죽이는 것이라고 답했다.[7] 당시부터 이미 몸이 불편했던 견훤은 하급 관료를 불러 자신의 명령을 받아적게 했는데, 하필이면 그 관료가 신검 일당의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