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검(태조 왕건)
1. 개요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의 등장인물. 담당배우는 윤동원[2] (아역)→이광기. 당시 예능 등에서 코믹한 이미지로만 나왔던 이광기의 정극 연기를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중,후반부 개그 캐릭터로서의 일면도 엿볼 수 있다. 명대사라기 보단 말버릇으로는 일이 잘 안 풀릴 때 하는 '으이그으으으!', '이 일을 어이할꼬...!'와 견훤에게 갈굼 당할 때 하는 '아아버님!' 등이 있는데, 신검이란 캐릭터가 일을 말아먹고 견훤에게 갈굼당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보니 저 세 대사가 한 번에 튀어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2. 생애
견훤의 장남으로 견훤이 서남해에 파견된 도중 상주에 들렀을 때 왕후 박씨와 함께 첫등장[3] . 이후에는 그냥 아역으로만 뒤에 간간이 나오다 견훤이 간만에 아자개를 찾아갔을 때, 자신의 큰아들이라고 가장 먼저 소개한 게 다였다. 처음에는 나름대로 기대를 받았던 듯 했지만 대야성 공략에 실패한 것을 기점으로 견훤으로부터 끊임없이 질책받게 되고[4] , 이후에도 실패만 거듭하다가 자연히 이복동생인 금강과 계속 비교당하는 안습한 처지로 굴러 떨어진다. 오죽하면 견훤의 명대사 중 하나가 '이게 무슨 소리야?! 또 졌어!! 이젠 아예 전멸을 했다고!' 일 정도. 특히 두 번째 대야성 공략에서는 신검 형제들을 구하려다 추허조가 전사를 하자, 견훤은 제대로 화가 난 나머지 장수들과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너네들보다 몇 배 몇십 배 더 소중한 아우였다' 라는 말과 함께 신검 형제들에게 채찍질을 했고,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태자들을 끌고 가 목을 베라는 명[5] 을 내리기까지 했다.
견훤은 신검의 능력을 못미더워했지만, 그래도 경험을 쌓을 기회를 주고 자신감을 높여줄 겸 해서 능환과 박영규, 능애와 정예병 5천을 주고 벽진군을 공격하게 했다. 벽진군은 1천밖에 안 되는 병력이 주둔한 작은 고을이었으나 이총언은 기습을 가하여 후백제군을 궤멸시켰고, 단 한 번의 전투로 신검 휘하에 싸울 수 있는 병력은 500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이 어이없는 보고에 분노한 견훤은 남은 병력만으로 반드시 벽진군을 함락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신검이 이번 전투로 경험을 쌓고 고난을 뚫고 갈 의지를 갖추게 하려고 일부러 전투를 독촉한 것이었다. 독이 오른 신검은 남은 병력으로 공세를 펼쳤으나 이총언은 신검을 잡고자 일부러 성문을 열었고, 이상함을 느낀 능환은 함부로 진군하지 말 것을 간언했지만 신검은 그를 무시하고 진군했다가 또다시 매복에 걸리면서 전멸을 당하고 견훤은 이 보고[6] 를 받고 분노한 뒤 완산주로 돌아오게 된다. 그 후는 당연히 신나는 갈굼타임.
그가 패한 전투들이 완전히 방심하다[7] 김락과 신라군의 협공으로 대야성을 내어준 것을 제외하면 유금필이나 신라 백전노장들[8] 같은 견훤도 어찌하지 못한 강자들을 상대한 것이었고, 조물성 전투 이후 능환, 능애를 거느리고 신라 영토를 쳤을 때는 순탄하게 진군할 수 있었으며, 최승우의 도움을 받았다지만 개경 기습전에서 유금필에게 패하기 전까지는 잘 싸운 것을 보면 장수로서 어느 정도의 능력은 갖춘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늘 마지막에 과욕을 부려서 전부 말아먹거나, 견훤이 아끼는 장수를 전사하게 만들거나[9] , 장수끼리의 1대 1 대결에서 불문율을 깨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등[10] 난세에 창업군주의 뒤를 잇기에는 어딘가 못미더운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렇듯 과욕을 부린 것은 대야성 전투에서 패한 이후 아버지에게 계속 질책만 받는데다 매번 승승장구하던 금강과 비교당하면서 압박과 초조함을 계속 느낀 것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강의 공적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물론 신검의 공이 평가절하당한 적도 많았는데, 삼년산성 전투에서 별동대를 맡은 금강이 전투를 벌이지 않고 상주 지역 호족들의 항복을 받아내자 견훤은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니 정말 잘했다"며 크게 칭찬했지만 같은 때 직접 본대를 이끌고 왕건과 맞닥뜨려 대승을 거둔 신검을 처음에는 기뻐했으나 백제군이 점령한 삼년산성을 양검과 용검의 실수로 유금필에게 일시적으로 빼앗긴 것과[11] 왕건을 놓친 일로 오히려 더 큰 책망을 받았다.[12]
그뿐만 아니라 신검이 문소성 일대로 군사를 이끌고 가서 아예 싸움 없이 호족들의 항복을 받았다는 보고를 받자 잘했다고 칭찬하면서도 "하지만 별 싸움도 없이 성을 얻었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발언을 하기도 하는것도 모자라서 "그건 후백제의 위상때문이지 꼭 신검 때문이라고만 할 수가 없고 거긴(문소성 일대) 누가가든 마찬가지고 금강이 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는 말까지 하며 애써 신검의 공적을 깎아내렸다. 쭉 보고 있으면 안습을 넘어 불쌍의 극치. 예성강 기습전 직전에는 능환과의 술자리에서 '나는 철이 든 이후 단 하루도 '맑은 머리' 를 가져본 적이 없소이다. 늘 눈치나 보면서 어떻게 하면 혼이 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아버님 마음에 들 수 있을까. 그렇게 살아왔지요.' 라고 하기도 했다.
다만 견훤도 신검을 미워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강하게 단련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으며 종종 최승우에게 이런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고, 웬만한 큰 일에는 신검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신검은 좀처럼 눈에 차지 않는 모습만 보이는데다 금강이 조금씩 더 나은 모습을 보이니 그만큼 신검은 답답하고 금강은 기특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감정적인 문제로 인해 백제에 결정적 타격을 준 원인이 된 고창 전투에서 견훤과 금강을 죽게 하기 위해 일부러 핑계를 대며[13] 원래 예정되어 있던 협공을 포기하여 백제군이 대패하게 만드는 일까지 저질렀다. 물론 이 내용은 후백제의 후계자 문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드라마의 각색이지만[14]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견훤도 금강도 살아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들은 신검은 아우 양검과 용검에게 아버지를 마중 가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자... 가서 또 욕도 듣고, 매도 맞자꾸나!'(...)
고창 전투 이후 견훤의 마음은 더욱 금강에게 기울어졌으나, 최승우의 간곡한 청으로 결국 신검에게 최후의 기회를 주기로 한다. 개경 공략전에 대한 지휘권을 맡기면서, 이 작전에 성공해 고려 왕의 목을 가져올 수 있다면 옥좌를 넘겨주겠으되 실패한다면 금강에게 물려주겠다고 한 것이다. 이 때 견훤은 신검에게 '아무리 그래도 자식인 너를 내가 미워할 리가 있겠느냐' 라며 애정어린 말을 해 주었고, 정말 오랜만에 '부자지간의 정' 이라는 것을 느낀 신검은 감동한 나머지 울먹이기까지 하며 작전 성공에 대한 의욕을 더욱 불태운다.
이때 견훤의 대사는 다음과 같다.
40여 평생 처음으로 아버지의 정을 느낀 아들은 복받쳐 오르는 감정으로 아버지에게 다음과 같이 답한다.너는 나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미워하는 이유 중에는 그 근본에 부자 간의 정이 있기 때문이야. 아느냐? 내가 너를 미워한다고? 아니다... 미워한 것은 네가 아니라, 바로 너의 허약함과 부족함 때문이었어. 내가 너를 그 동안 때리고 채찍질한 것은 너의 그 많은 단점들을 덜어주기 위함이었어...
이 애비는 지금도 너를 사랑한다. 네 그 많은 증오를 이번 전투에다 불태워 보거라. 그리고 진정으로 이 나라의 태자로서 거듭나거라. 그리고 보이거라! 내게 보이거라! 그리하여 볼 것을 내게 보인다면... 나는 약속대로 너에게 이 옥좌를 줄 것이다. 다음 보위에 관한 일을 종지부를 찍을 것이야! 알겠느냐 신검아. 이 애비의... 약속이다!
이후 신검이 이끄는 백제군은 기습전으로 고려의 수군을 궤멸시켰고, 고려의 황궁에 침입하는 데 성공한다. 비록 왕건은 때마침 서경에 올라가 있었기 때문에 그의 목을 취할 수는 없었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전과였다. 하지만 신검은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또다시 과욕을 부리고 마는데, 애술과 다른 장수들의 제안에 따라 유금필이 유배를 가 있는 곡도를 치기로 한 것. 최승우는 물론 신덕, 종훈 등 다른 장수들이 반대했건만 신검은 '이미 고려 수군은 전멸했는데 천하의 유금필이라고 해도 별 도리가 있겠느냐' 라며 밀어붙였는데, 결국 50척이 넘는 백제군의 함대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던 유금필의 소수 정예부대에게 박살이 나고 말았고 기껏 세워놓은 전과도 크게 깎아먹게 된다.예, 아바마마. 참으로 그 동안 미욱하고 어리석었사옵니다. 이처럼 큰 기회를 주시고, 자식으로서 자애하여 주시니 눈물이 날 것 같사옵니다. 반드시... 아바마마의 크신 자애함을 갚겠사옵니다.
참으로 오늘의 이 자리가 소자에게는 크고도 너무나 의미가 깊은 자리이옵니다. 반드시... 아버님의 뜻을 이루겠사옵니다. 참으로...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어떻게 보면 이 작전은 신검이 왕이 되었을 때 어떠한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를 미리 확인할 수 있게 해 준다고 볼 수 있는데,[15] 최승우를 책사로 이끌고 나온데다 아버지로부터 생전 처음으로 응원을 받았고 옥좌를 넘겨준다는 막강한 동기 부여를 받았음에도 이 꼴이 나고 말았으니 후삼국시대의 패자로는 안 될 인물이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실보다 득이 큰 작전이었기에 어느 정도의 전공은 인정받았고, 왕위 계승에 대한 희망은 이어갈 수 있었다.[16] 하지만 이후 벌어진 운주성 전투가 신검에게는 치명타가 되고 만다. 견훤의 눈 앞에서 전과를 올려 후사 결정에 쐐기를 박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등창과 감기로 인해 고생하는 견훤을 억지로 전장에 데리고 갔던 것. 하지만 전투는 전투대로 말아먹고 아버지의 신망까지 잃고 말았다.
견훤이 신검을 포기한 것은 단순히 신검이 전투에 패배했기 때문인 것은 아니었다. 물론 견훤 스스로가 출진하겠다고 고집을 부리긴 했으나, 한편으로 견훤은 자신의 주장에 단 한 번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아버지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세 아들들에게 은근히 실망했다. 운주 근처에 이르러 맹추위가 몰아치자 그 고집 센 견훤마저도 자존심을 꺾고 철군을 명령하는데, 왕위 계승에 필사적이었던 신검은 계속 진군할 것을 요청한다. 최승우와 박영규 넷째 아들인 금강이 아버지의 건강이 염려되는데다, 견훤의 건강이 나쁘다는 소문이 퍼져 군사들의 사기도 떨어졌으며 월동 준비까지 안 되어 있어 여러모로 아군이 불리하니 전투를 포기하고 돌아가자는 의견을 계속해서 내놓은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결국 견훤은 왕위를 금강에게 물려줄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이에 최승우의 조언을 받아들여 신검의 아우인 양검과 용검을 지방 도독으로 임명하여 신검과의 연결 고리를 끊으려 했고, 신검은 지방 순행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수도 완산주에서 추방하도록 명했다[17] . 위기에 몰린 신검은 마지막까지 갈등하다가 결국 이찬 능환을 비롯한 신료들이 권하는 대로 쿠데타를 일으켜 견훤을 몰아내고 말았다.
비록 그 동안의 실적이 부족하기는 했지만 일단 장자인데다 여러 전투에 참여해왔기 때문에, 두 아우를 비롯한 중신들의 대다수는 신검을 지지하고 있었다. 즉 신검은 인맥 면에서는 꽤 탄탄한 입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견훤은 말년으로 갈수록 신검을 후계자로 결정할 것을 요청하는 신료들과 갈등을 빚고 있었는데, 결국 이러한 점을 무시하고 지지 기반이 취약한 금강을 후계자로 정하는 실책을 저질렀다. 금강의 후견인으로 임명된 사람은 박영규와 최승우였는데 최승우야 원래 중립에 가까웠고[18] 박영규 역시 중립이였으나 신검의 편을 든적도있었고 나중에가서 신검으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견훤의 뜻에 동참한 거라 제대로 된 금강의 지지 세력은 사실상 전무했다. 견훤은 기존에 군부를 통솔하던 신덕과 나라의 공무정사를 담당하던 능환의 권력을 줄인후에 최종적으로는 숙청하려 했으며 박영규와 최승우에게 군부의 통솔권과 능환의 권력을 부여하여 금강의 세력 기반으로 삼고자 했으나, 장기간 군부를 장악했던 신덕의 영향력이 남은 바람에 박영규의 실권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여기에 견훤이 와병 중이었던데다 금강도 곧 황제가 된다는 생각으로 방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검의 쿠데타는 너무나도 간단히 성공할 수 있었다.
그래도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작은 아버지인 능애를 보내는 한편, 왕사인 경보 대사의 금산사 방문을 허락하는등 갖은 노력을 다 했지만, 결국 견훤은 금산사를 탈출해 고려로의 귀부를 선택했다.[19] 그리고 조정에서는 금강보다 신검 쪽의 지지 세력이 월등히 많았으나 견훤의 존재감은 신검파와 금강파의 대립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견훤 자신이 작중의 표현을 빌리자면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호걸이었던 데다 말년의 궁예와 달리 폭군은 결코 아니었고[20] 좀 거칠어서 그렇지,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개념인이였기에 후백제라는 국가보다는 견훤 개인에게 충성을 바치는 이들이 많았던 것. 이를 보여준 좋은 예가 견훤이 망명길에 유금필의 전함에 올랐다가 후백제의 전함과 대치한 것이었는데, 분명한 신검파인 상귀를 제외한 휘하 부장들과 병사들은 견훤을 보고 동요하기 시작하더니 모두 전의를 잃고 견훤에게 길을 내주었다.
결국 쿠데타에 성공하기는 했으나 기반이 불안하다고 느낀 신검은 몇 개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정식으로 왕위에 올라 고려군과의 마지막 일전을 준비했으나, 일리천 전투에서 고려군 선봉에 선 견훤을 본 후백제군은 처음부터 사기를 잃고 와해되었으며, 선봉에 나섰던 장군 애술과 김총이 포로로 잡히고 상귀 등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고려는 황산으로 후퇴하는 후백제군의 경로를 파악하여 미리 매복을 했고, 결국 이 전투를 끝으로 후백제는 멸망하고 말았다.
망국 후에는 동생 양검과 용검은 유배 후 처형되었으나 신검은 남의 권유에 의해 왕위 찬탈을 한 것이므로 두 동생보다는 죄가 가볍다 하여 왕건이 용서해주고 벼슬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21] . 하지만 그 이후 신검에 관한 기록은 전혀 없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끝까지 고려에 대항한 만큼 천수를 다했을 것으로는 보지 않는 견해가 우세하며 본작에서도 이 설을 채용했다. 신검이 처형되는 장면을 지나가듯이 보여주면서, 나레이션으로 망국 후의 행적에 대해 설명하는 식으로 처리한다[22] . 한편 신검이 처형되는 신은 드라마에서 마지막에 나오는 장면은 아니지만 가장 마지막에 촬영한 장면이다. 마지막회 종료 후 이어 방송된 제작 다큐멘터리는 이 장면을 찍은 후 촬영진이 샴페인을 터뜨리며 200화 대장정의 끝을 자축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3. 평가
비록 아버지에게는 죽을 때까지 미덥지 못한 자식이라고 미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외 주변 사람들에게는 꽤 인망이 두터운 것으로 묘사된다. 전투에 참전할 때마다 거하게 말아 먹고 왕인 견훤이 대놓고 싫어하는데도 불구하고 주변 신료들이 일만 터졌다 하면 그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 한 증거. 이는 신검 본인이 비록 부자지간에 독은 올랐을지언정 사람들끼리의 정과 도의에 신경을 쓰는 묘사가 여러 번 등장하고, 엄하고 무서운 아버지를 둔 영향인지는 몰라도 주변 사람들의 청은 웬만하면 다 들어주고 인간적으로 잘 지내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예성강 기습전에서 애술의 고집을 받아들여 곡도에서 졸전을 벌이거나, 파달이 경계를 소홀히 하여 견훤이 고려로 탈출하는 일이 벌어졌음에도 그 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거나 처벌하지 않았다.
문제는 병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겠다고 보초고 뭐고 제쳐놓고 술잔치를 벌이기도 하고, 부하들이 쓸데없이 고집부리는 것까지 오냐오냐해 주다가 그간의 전과를 다 말아 먹는다는 것. 거기다 결정적인 순간에 최승우나 능환 등 책사들이나 지장들이 간언하는 것은 잘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반대로 끝이 뻔히 보이는 청탁은 그냥 받아주는 대단한 판단능력도 가지고 있으니, 하는 일마다 잘 될 리가 없었다.
한편 이러한 모습을 옹호하는 시선도 있는데, 견훤에게 혼나는 것이 거의 일상이 되다시피 한 입장에서는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리기가 매일반이었고 역사적으로 자수성가형 군주나 명군을 부모로 둔 후계자들은 '나는 부모와 다르다' 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23] 또 '책사들이나 지장들' 이라는 사람들이 거의 다 견훤이 키우고 발탁한 경우들이라서, 자신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과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에 이들의 조언을 무의식적으로 밀쳐 왔다는 것. 그러나 그 결과는 '신검이가 또 졌어?!' 였을 뿐이다.
드라마의 후반쯤 가면 신검의 또다른 단점이 드러나는데, 발전이 없고 군주로서 책임감도 없다는 것이다.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끝까지 같은 유형의 실수와 실패를 반복한다는 점에서 패배로부터 교훈을 얻고 발전하는 면모가 전혀 없었음을 알 수 있고, 차기 군주로서 무언가 제대로 책임지고 나서는 모습도 보여주지 못했다. 벽진군 전투만 해도 첫 전투에서 매복에 걸려 대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에서도 무리하게 진군했다가 또다시 매복에 걸리고 말았다. 심지어 두번째 전투에선 책사 능환이 적의 계략을 의심하여 신검을 만류하였으나, 신검은 그대로 군사들을 밀어 붙였고 또다시 매복에 당하고 만다. 신검 생애의 큰 기회였던 예성강 기습전에서도 마찬가지로, 무리하게 곡도까지 갔다가 유금필의 매복에 걸려 패했다. 특히나 이 부분은 변호가 안 되는 게, 곡도로 향하던 도중 '너무도 운이 없었소이다. 늘 하는 일마다 잘 되다가, '''끝에 가서 엉망이 되고는 했지요.''' 그러나, 이번 전과는 내가 생각해도 그 동안 백제가 싸워 왔던 전투 중 최고일 것이올시다.' 라는 대사를 쳤기 때문이다. 본인의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아닌데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으니 답이 없다.
또 책임감이 없다는 것은 견훤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확연히 드러나는데, 견훤은 실책을 저지르면 신하들 앞에서 내 책임이라고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고 신하의 잘못도 자신이 뒤집어쓰고 다독여주는 모습을 보였다. 가령 신검의 책임이 가장 큰 운주 전투에서도 신하들 앞에서는 신검 탓을 조금도 하지 않고 다 자신의 잘못으로 돌렸다. 물론 이런 것은 정치적 발언에 불과하다고도 할 수 있겠으나, 신검은 자신이 하지 않은 잘못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모습을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다[24] . 또한 '내 군사/수군'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자신이 실패한 것만 한탄할 뿐 장졸들의 안위를 염려하는 모습도 보여준 적이 없다고 해도 좋을 지경인데, 이는 신검이 대야성 전투에서 패하고 물러났을 때 '내가 보물처럼 아끼는 백성들' 을 잔뜩 죽였다며 질책하는 견훤과 좋은 대비를 이룬다.
요약하자면 걸물까지는 못 되더라도 평균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황소고집 + 부하의 현명한 제안은 거부하면서 패배의 지름길로 가는 제안은 귀신같이 받아들이는 판단 능력 + 금강에 대한 열등감 + 아버지 견훤에 대한 억하심정 + 성급한 판단 등으로 모든 것을 말아먹은 셈이다. 다만 드라마 상의 신검은 군사 지휘관으로서는 낙제점이지만, 인덕은 무난한지라 만약 평화로운 시기에 태어났거나 견훤 대에서 후백제 주도의 통일이 성사됐더라면 왕위를 물려받아도 큰 문제가 없었을 인물이다. 또는 유능한 장군들에게 군사를 맡기고 자신은 내치에 전념했다면 나았을 것이다. 딱히 신검의 계파도 아니고 신검 능력의 한계도 잘 알고있던 최승우 또한 신검이 왕위를 물려받는게 차라리 금강이 물려받는 것보단 나을거라고 견훤에게 필사적으로 설득을 시도했었다.
4. 기타
드라마에서는 견훤과의 관계가 끝까지 회복되지 못했지만, 드라마가 방영할 당시 나왔던 소설에서는 견훤이 죽기 직전 꿈에서 신검이 양검과 용검과 함께 나타나 그저 아버지의 따뜻한 한 마디가 듣고 싶었다며 자신들이 그렇게나 미웠냐고 섭섭함을 토해내자 견훤이 뉘우치며 숨을 거두는 걸로 간접적인 화해를 묘사한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삼년산성에서 유금필에게 패배하고 성을 빼앗겨 신검의 본진으로 도망 온 용검과 양검은 신검에게 퇴각을 종용한다(164화). 그러잖아도 신검 자신은 중요한 전선을 금강에게 내어준 대신 왕건의 본대를 공격할 기회를 잡았고 실제로도 본대를 궤멸시켰는데도 정작 왕건을 잡지 못해 심기가 불편한 상황인데, 동생들이 겁에 질려 도망가자며 한심한 꼴을 보이자 뚜껑이 열렸는지 '너희들이 그러고도 태자들이냐! 못난 놈들!' 이라며 소리를 지르며 동생들을 총채로 때린다. 그런데 그 모습이 패전하고 돌아온 신검을 두들겨 패는 견훤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주는 두 동생 때문에 혈압이 올라 '으이구 못난 놈들!' 하고 책망하는 모습까지 판박이. 나중에 양검이 형에게 직접 '그러고 보면 형님도 아버님의 급한 성정을 많이 닮지 않으셨습니까.' 라고 하자 신검도 '하긴 그 피가 어디로 가겠느냐" 하면서 체념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 중장년에 들어가면서 신검의 언행이 견훤을 닮아가는 경향이 짙어지는데[25] , 배우 이광기가 의도적으로 견훤역의 서인석의 연기를 적극적으로 모사한 것이고 시청자들의 반응도 좋았다고 한다. 이광기가 견훤과 신검의 캐릭터 설정과 인간관계를 제대로 이해했다는 증거.
신검 역을 맡은 이광기에게는 배우로서의 인생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이었는데, 2001년 연기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함으로써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무명 배우라는 딱지를 떼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몇 백년 지난 평행세계에 환생하여, 환생한 아버지가 지키려 한 국가를 무너뜨리는데 일조한다. 그리고 쿠테타에 성공하여 환생한 이복동생을 허수아비로 만들어버린다. 재미있는 건 아버지는 진짜로 죽게 만들고, 이복동생은 그래도 살려주는 반대상황인 배우개그가 성립.
2020년 10월 15일부터 KBS Drama Classic에서 태조 왕건 200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무료 스트리밍 1회차를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10월 21일 오전 11시 45분 경에 신검 역을 맡았던 배우 이광기가 직접 댓글을 남겼다. 당시 스트리밍에는 신검이 송악을 기습하여 휘젓던 에피소드가 나오고 있었는데, 이 때 날씨가 무척 추워 고생했다고. 공식 다큐멘터리 영상에서도 해상전을 찍을 때 제작진이 던져주는 불덩어리 앞에서 실감나게 연기하느라 고생한 이광기의 모습이 나온다.
이광기는 벽진 이씨인데 그 벽진 이씨의 시조인 이충언을 공격했다가 박살나는 에피소드 촬영으로 인해 문중 어르신들이 꾸중했다는 소문이 있다.
5. 관련 문서
[1] 오프닝에서의 금강과 신검, 오른쪽 인물이 바로 배우 이광기가 맡은 신검이다. 독기어린 표정을 등을 보이며 금강에게서 숨기는 신검의 모습이 훗날에 대한 복선처럼 여겨지게 만든다.[2] 젊은이의 양지(드라마)에서 어린 소매치기 대풍, 은실이에서 은실이의 이복오빠 영학 역을 맡았다.[3] 이 당시는 아직 어린 아이였다. 직후 박씨가 둘째를 임신했다자 견훤이 기뻐하며 무조건 아들을 낳으라며, 이름을 미리 양검으로 지어놓고 '큰 놈은 신검이, 작은 놈은 양검이고. 검검검! 이 얼마나 강한 이름이에요?' 라고 말한 걸로 보아 이때는 자녀가 신검 밖에 없던 모양. 허나 그냥 박씨 옆에만 있게 나와서 비중은 없었다. 여담이나 설정 오류인지 견훤이 상주에서 처자식을 데리고 갔을 때, 신검이 7살이라고 했는데 이후에 동생이 생겼고, 누이가 15살에 박영규한테 시집 갔으며 이후에 신검이 대야성 전투에 참전했는데, 작중엔 정작 동생들과 나이차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동생인 양검과 무예 대련을 할 정도[4] 대야성에서의 첫 전투에서부터 지고도 돌아왔다는 이유로 채찍으로 머리를 수없이 맞은데다 죽음까지 강요당했다. 이것이 기점이 되어 신검은 아버지께 공을 세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앞서 유리한 전투를 그르치는 경우가 잦아진다. 또한 견훤의 행동은 부하들과 여론 관리에는 적절했는지는 몰라도 자식 교육면에서 그리 좋지 못했다. 신검의 과오를 질책하는 것은 좋은데, 문제는 이것이 2020년 현재의 관점으로 보면 충분히 아동 학대로 비춰질 정도로 혹독한데다 이후로도 계속 신검을 질책하기만 하고 아버지로서 정을 보여주지 않었다. 그러다보니 신검은 발전하기는 커녕, 아버지를 두려워하고 증오하게 되었다.[5] 김유신도 아들 김원술이 전투에서 지고도 살아 돌아오자 의절과 동시에 문무왕에게 아들을 죽이게 해 달라고 청원했다. 공교롭게도 태조 왕건의 견훤과 삼국기의 김유신 역을 맡은 배우는 똑같이 서인석이다.[6] 여기서 나온 장면이 트위치 영상 도네이션으로 유명한 '''또 졌어?! 이젠 아예 전멸을 했다고?!''' 장면이다.[7] 측근들과 술을 마시는 것으로 모자라 병사들에게까지 술과 안주를 지급했다가 기습에 당해 성을 잃어버렸다. 적이 금강이 지키는 용주를 먼저 공략할 거라 생각한데다가 견훤의 깃발을 꽂아 놓았으니 함부로 공격하지 못할 거라 예상했다고는 하지만, 보초병들까지 창을 팽개치고 병나발을 부는 꼴을 방치했다는 데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8] 작중 견훤은 3차례 대야성을 공격하는데 첫 번째는 김효종, 두 번째는 계강을 비롯한 신라의 노장들에게 수천의 병사를 잃고 격퇴당하고 그들이 너무 늙어 전장에 나오지 못하고 애술과 안과 밖으로 협공한 세 번째에야 성공한다.[9] 대야성을 두 번째로 공략할 때 전공을 세웠으나 무리한 추격으로 복병을 만나 추허조가 전사했다. 당시 추허조 역을 맡았던 강재일과 견훤 역의 서인석 사이에 마찰이 있었던지라 실제 역사에서보다 훨씬 일찍 전사하는 것으로 처리되었는데, 극중에서는 견훤과 신검의 관계가 더 악화되는 장치로 활용되었다.[10] 박술희와 애술이 일기토를 벌이는데 애술이 밀리는 기색을 보이자 부달과 소달을 보내 3대 1로 공격하게 한다. 그러자 유금필이 달려나와 부달과 소달을 눈 깜짝할 새에 베어버렸고, 사기가 완전히 떨어진 백제군은 참패했다. 한편 부달과 소달 역시 추허조처럼 실제 역사에서보다 일찍 전사한 셈이 되는데, 역사 기록에서 이들의 이름은 일리천 전투 당시 능환 등과 함께 항복했다고 나오는 것이 유일하기 때문.[11] 왕건의 주력이 궤멸하면서 삼년산성을 지킨다는 게 의미가 없어지자 유금필이 철수해 다시 백제군이 되찾았다.[12] 그러나 견훤 본인도 공산전투에서 왕건을 놓친 적이 있었고, 적어도 본대를 이끈 신검은 자신의 책임하에서는 큰 성공을 거뒀다. 양검과 용검의 실책도 신검의 승리 덕에 충분히 만회가 되었기에 이는 명백히 견훤의 불공평한 처사였다.[13] 물론 전 백제군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유금필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 예정된 시각을 지키기는 힘들기는 했지만, 이를 구실로 합류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게다가 유금필은 신검의 군대를 막은 뒤 박술희에게 군사 일부를 주어 수비를 맡기고 견훤의 본대를 향해 이동하여, 신검의 보고를 무색하게 만들어 버렸다.[14] 견훤의 언급에 따르면 '그나마 아들이니까 가만 놔 둔 거지 그놈은 군법을 적용해서 죄를 물을 수도 있었다' 는 말이 나오기는 했지만 사실 군령 적용하면 장남이고 뭐고 즉결 처형 감이다.[15] 고려 황궁을 장악한 뒤 왕건의 옥좌에 실제로 앉아보기까지 한다. 착잡한 심경으로 '이 자리에 앉기가 이렇게도 힘이 든단 말인가.' 하고 탄식하는 대사가 백미.[16] 그동안 패전하고 돌아와 견훤에게 질책을 당할 때마다 신검은 우물쭈물하며 기죽어 있거나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등 부족한 모습을 보였으나 이번에는 견훤의 평가가 끝나자마자 자신의 과실을 인정하면서 당당한 목소리로 용서를 빌었고, 견훤도 이러한 모습에 만족스러운 듯 전처럼 호되게 꾸짖지 않고 패배에서 교훈을 배우라는 덕담을 한 후 운주 전투에서 보다 더 성장한 모습을 보이고 자격을 입증하라며 다시 기회를 주었다.[17] 사실 최승우의 조언은 신검 형제를 불러들여 불문곡직 목을 베라는 것이었지만 비록 못마땅하긴 했어도 견훤의 자식인만큼 당연히 이 조언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에 차선책으로 낸 것이 지방으로 보내라는 것과 가능하면 지방에 보낸후에 목을 베어버리라는것. 그러나 최승우는 견훤이 목을 베라는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과, 그로써 후백제가 멸망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18] 신검이 쿠데타를 일으키기 얼마 전에는 금강과 독대를 청해서 황제가 되려는 뜻을 접으라고 권했을 정도였다.[19] 금산사를 탈출하기 전에 영순이 금산사를 방문해 신검의 즉위를 허락해달라고 하자 견훤은 "니들 알아서 해라"라고 짧게 말했고 신검은 이것을 허락으로 받아들였으나, 견훤의 탈출 소식을 듣고 나서야 '어차피 망할 나라, 네가 삶아먹든 볶아먹든 내 알 바 아니다' 라는 뜻이었음을 뒤늦게 알아챘다.[20] 서라벌을 함부로 약탈한 것과 더불어 경애왕을 자결시킨 것이 치명적인 자충수가 되었지만.[21] 당시에 왕건이 이런 결론을 내렸다면 그 이유는 아마 두 가지인데, 견훤을 견제하기 위함이거나 후백제의 민심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다.[22] 생략된 대본에는 능환, 능애 등이 처형되고 신검 형제가 끌려간 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왕건이 박술희에게 명령을 내려 잠시 생각을 잘못한데다 상부 어른의 원한을 달래드려야 하니 모조리 제거하라고 명령하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왕이 자신이 방금전에 내린 명령을 바로 번복하는건 워낙에 가벼워 보이고 생각없이 사는듯한 인상이라 왕건의 제왕으로서의 위엄을 일순간에 손상시킬 수 있기에 대본이 수정될 수 밖에 없었다. 본래 왕들은 번복할 사항이 있을때는 시간적 뜸을 들인 후에 왕의 뜻을 아는 몇몇을 동원해 관료들이 공론을 모으게 하고 왕이 이걸 못이기는 척 받아주는 형식으로 처리해 명령번복으로 인한 위엄의 손상을 막았다.[23] 이는 오늘날로 따지면 세계구급으로 유명한 운동선수 부모를 둔 자식이 부모와 같은 운동을 하면서 '부모님의 명성에 먹칠하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이기 쉬운 것과 비슷하다.[24] 대표적인 예시가 김락이 이끄는 고려군의 기습에 대야성을 내어주고 도망 나와서 한 대사인데, 병사들에게 술을 나누어준 것이 패인이라는 생각은 눈꼽만큼도 하지 않고 '이게 다 술 때문이야!' 라는 대사를 치고 앉았다.[25] 참고로 견훤 역의 서인석 역시 최 후반부(송악 공략전~신검의 쿠테타)에 이르러선 배우 김성겸이 연기한 아자개를 모사한 듯한 다소 코믹한 연기톤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