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상점

 


1. 소개
2. 상세
3. 나라별 실상
3.1. 소련
3.2. 북한
3.3. 동유럽권
3.4. 중국
3.5. 쿠바


1. 소개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에 있었던, 자국 돈이 아니라 외화 혹은 바꾼돈표(태환권)만 받고 사치품을 판매하던 특수한 상점.

2. 상세


1990년 평양 보통강구역 서장동에 있는 외화상점에서 웃지 못할 희극이 벌어졌다.

농촌 할머니 하나가 송신농민시장에서 마늘을 팔아 생긴 돈을 가지고 여기저기 물건을 사러 다니다가 어떻게 이 외화상점에 들어왔다. 다른 상점에는 물건이 하나도 없었는데 이 상점에는 즐비하였다. 할머니는 이것저것 다 마음에 드는 대로 상품을 골라 전표를 떼게 하였다. 그리고 출납구에서 일이 터졌다.

할머니는 김일성의 머리가 그려져 있는 1백원 짜리 돈 2장을 구멍 안에 들이밀었다. 출납원이 보니 외화가 아니고 국내돈이어서 다시 내밀었다.

“이런 돈은 쓰지 못해요. 다음 손님!”

할머니는 리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 돈을 쓰지 못한다니 무슨 소린가. 할머니는 다시 디밀었다.

“자, 그러지 말고 빨리 돈을 받아!”

“할머니, 이런 돈은 못써요. 외화를 가져오라요!”

“외화가 뭐나? 난 그런 것 없어. 날이 저물기 전에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야 하니 빨리 표를 끊어 달라!”

“할머니, 떼를 쓰지 말라요! 여기는 국내 돈을 안 쓰고 외국돈만 쓰는 데야요.”

“외국돈만 쓰다니, 어떤 돈 말인가?”

“예, 미국 딸라, 일본 엔, 서독 마르크 같은 것들만 써요.”

“이런 미친년 보았나. 양코배기 돈을 쓴다고? 쪽발이 놈들 돈을 쓴다고? 이년아, 이 돈은 귀하신 수령님 초상이 있는 귀한 돈인데 이 귀한 돈을 쓰지 않고 더러운 양코배기 돈만 쓴단 말이가? 이년이 환장을 했나?

물론 결과야 뻔하다. 할머니는 끝내 아무 물건도 사지 못했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북조선 정권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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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환, <평양 25시>

그 본질은 자국에 방문하거나 체류하는 외국인 혹은 외화를 소유한 자국민[1]들로부터 귀중한 자원인 외화를 모으기 위해 생겨난 수단이다. 계획경제의 비효율성 탓에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뭇 사회주의 나라의 종특이라 할 만한 만성적인 외화 결핍 그리고 소비재의 양의 부족 및 질의 하락이 맞물려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즉 한편으로는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한 영리를, 다른 한편으로는 구하기 어려운 소비재와 사치품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물론 주 목적은 전자였지만, 어쨌든 외화상점은 사회주의 국가의 공민이 공식 유통망에서는 구할 수 없는 상품들을 합법적으로 구입할 수 있었던 유일한 통로였다.
비단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라더라도 초인플레이션이나 전쟁같은 일이 발생했을 때 그냥 상점에서도 자국화폐보다 외화를 더 선호해서 외화상점처럼 운영되는 경우도 있다. 가장 최근의 예로는 베네수엘라가 있고[2], 짐바브웨, 유고슬라비아 내전기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대표적인 예이며 심하면 아예 자국 통화를 폐지해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짐바브웨[3]에콰도르가 대표적인 예이다. 외화가 없으면 자국화폐를 가치가 더 떨어지기 전에 재빨리 쓰는 방식으로 최대한의 구매력을 확보하는 방법도 있다.

3. 나라별 실상



3.1. 소련


시초는 1931년~1936년 동안 있었던 토르그신(Торгсин, "외국인과의 거래"를 뜻하는 러시아어 Торговля с иностранцами의 약자)으로, 외화·귀금속·보석 등을 받고 물건을 팔았는데 훗날과 달리 내국인의 외화 사용을 특별히 제지하지는 않았다.
1964년에는 '''베료즈카'''(Берёзка)라고 불리는 외화상점이 생겨났다. 외화 또는 외화와 바꾼 수표를 가지고 물건을 살 수 있었는데, 외국인과 달리 일반 소련 공민은 외화를 직접 사용할 수 없었고, 반드시 소련 루블로 액수가 표시된 태환수표를 환전하여 쓰도록 되여 있었다. 소련 정부가 자국민의 외환 소지와 거래를 중대한 범법행위로 단속했기 때문이다.
당시 베료즈카에서 팔리던 다양한 부류의 상품들. 소련 하면 바로 연상될 만큼 널리 알려진 텅 빈 매대와 기나긴 대기 줄도 베료즈카에서는 다른 나라 이야기였다. 베료즈카가 문을 열게 되면서 세수확충에는 기여했지만 동시에 시장에서 외화거래가 급속히 활발해지는 바람에 공식환율과 암시장 환율간의 격차가 커지게 만드는데 일조했다. 값싼물품을 구매하는 정도야 큰 부담은 없었지만 자동차나 명품제품같은 비싼 물품은 몇년치~몇십년치 봉급수준이라서 부담이 컸다.
당시 소련에서 나고 자란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의 에 따르면, 소련사람들이 가는 외화상점에는 흔히 생각하는 각종 외제 사치품들이, 외국사람들이 가는 외화상점에는 소련제 고급 기념품이나 심지어 반체제서적(!)이 팔리는 등 품목에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고르바초프 시기 개혁의 일환으로 개인의 자유로운 외환거래와 대외무역이 합법화되면서, 존재 의의가 없어진 베료즈카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다만 이후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은 이전과는 반대로 일반인들의 구매력이 곤두박질치는 바람에 인구의 대다수가 여전히 비싼 외제품은 고사하고 국산품도 못 사는, 다른 의미에서의 부조리상이 펼쳐졌다(...).

3.2. 북한


아마 오늘날 남한에서 가장 잘 알려진 사례일 것이다. 개중 많은 수가 구매력이 뒷받침되는 평양에 있지만, 지방에도 없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장마당과 함께 북한의 시장경제화를 견인하는 쌍두마차라 할 수 있다.
계획경제가 작동했던 김일성 시대에는 바꾼돈표(태환권)를 발행하였지만, 김일성 사후 기존 사회구조가 완전히 붕괴하면서 번거로운 태환권을 폐지하고 그냥 대놓고 외화를 쓰는 모양이다. 2009년의 화폐개혁이라는 대참사가 있고 나서는 아예 자국 화폐가 천시받는 지경이 되어, 그 뒤로는 '외화'상점이 아닌 곳을 찾기가 더 어려워졌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도 갈수록 숫자가 꾸준히 늘어나는 실정이며, 종류도 종합봉사시설, 백화점, 식당 따위로 점점 다양해졌다.

3.3. 동유럽권


동독에서는 '''인터숍'''(Intershop), 폴란드에서는 '''페벡스'''(Pewex, "내부 수출 기업"을 뜻하는 폴란드어 Przedsiębiorstwo Eksportu Wewnętrznego의 약자),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투엑스'''(Tuzex, "국내 수출"을 뜻하는 체코어 Tuzemský export의 약자)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다. 소련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1960~70년대 생겨났다가 체제 전환기에 소멸했다. 처음에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가게였지만 1970년대 중반 이후로 일반인들에게도 개방하면서 외화만 있다면 얼마든지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3.4. 중국


'''우호상점'''(간체 友谊商店, 번체 友誼商店)이라는 이름으로 1958년에 개점한 이래 대도시나 외국인들이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문을 열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의 광풍은 우호상점들도 피할 수 없어서, 홍위병들에 의해 상당수의 우호상점들이 자본주의와 부패의 상징이라며 약탈당하거나 강제로 폐점당했고 다시금 제기능을 하게 된 것은 문혁의 바람이 잦아든 1970년대에 와서였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하면서, 고급 외제품을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한 사람들도 매년 급속히 늘어난데다가 수많은 해외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하면서 중국으로 수많은 외제품들이 들어왔고 동시에 중국이 외제품의 하청 제조일도 같이 맡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 속에 우호상점들도 일반 중국인들에게도 개방했지만, 중국이 경제성장을 가속화함에 따라 곳곳에서 외제품을 취급하는 백화점, 쇼핑물, 대형마트들이 잇따라 들어서자 쇠락하여 대다수가 문을 닫게되었다. 처음에 개방되었을때야 호기심이나 명품구매를 이유로 들르는 사람이 많았지만 경제력의 향상에 따라 시설이 훨씬 좋고 접근성도 괜찮은 쇼핑물과 백화점에서 우호상점에서 파는것과 똑같은 명품을 동시에 팔고있으니 우호상점 차제의 경쟁력이 떨어지게 되어서 자연스럽게 사장된 것이다. 그래도 남은 우호상점들은 명품판매를 주로 하면서 여전히 운영되고 있기는 하다.

3.5. 쿠바


쿠바에서는 1990년대 초반까지는 외국인만 갈 수 있도록 지정되었으나, 쿠바가 경제난에 빠지자 경제개혁조치의 일환으로 일반인들이라도 달러만 있으면 누구나 갈 수 있는 상점이 되었다. 쿠바가 태환권 사용을 권장하면서 2004년 이후로는 태환권으로 물건을 사는 곳이 되었다가 2019년부터는 미국의 경제재제와 코로나19 여파로 다시금 달러로 결제가 가능하게 되었다. 다만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었다고 해도 파는 물건의 가격대가 쿠바 물가 기준으로 비싸기 때문에 부유층이 아니라면 문턱이 높은 축이다. 다만 물건의 품질이 상당히 높고 수량도 꽤 풍족하기 때문에 인기는 꽤 높다.
[1] 외교관이나 파견인력, 대외무역일꾼, 송출 노동자, 기타 여러 목적으로 해외로 다녀올 수 있도록 허가받은 사람들, 그리고 외국으로부터의 송금 수급자들 등등.[2] 아이러니하게도 외화상점이 늘어나면서 물가상승률이 많이 낮아졌다.[3] 2019년에 발행이 재개되었다... 지만 사전에 확보한 외화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화폐를 많이 발행하다보니(주로 기업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용도이다) 혼돈 파괴 망가적인 상황을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