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네바야시 히로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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米林宏昌(よねばやし ひろまさ)
일본의 애니메이터. 1973년 7월 10일 출생. (51세) 이시카와현 이시카와군 노노이치 정 (現 노노이치 시) 출신. 애칭은 마로(麻呂)
가나자와미술공예대학에서 상업 디자인과를 다니다 중퇴하고, 1996년 스튜디오 지브리 입사. 이례적으로 3년 만에 일찍 동화맨에서 원화맨으로 승격했다. 처음으로 원화를 그린 작품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아버지가 음식을 먹는 장면과 가오나시가 목욕탕 유야에 들어오는 장면. 작화감독이었던 안도 마사시에게 수정을 당했다.
이후 미야자키 고로가 감독한 게드전기에서는 작화감독 보조. 단편 영화 《空想の空とぶ機械達》에서는 작화감독. 메이와 아기고양이버스에서는 연출도 경험했다.
특히, 벼랑 위의 포뇨에서 담당한 원화 장면은 미야자키 하야오도 거의 고치지 않고 그대로 통과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는다. [1] 그런데, 그 전에는 일 때문에 잘 했다고 칭찬받은 기억은 별로 없고, 어느 날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스튜디오 건물의 다른 창문은 냅두고 자신이 앉는 자리의 창문만 닫는 그를 보고 미야자키가 화를 내며 "고향으로 돌아 가!"라고 혼난 경험도 있다고 한다.[2]
스튜디오 지브리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인재 발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0년작 마루 밑 아리에티의 감독으로 전격 발탁. 스튜디오 지브리에서는 최연소 감독 데뷔를 달성했다. 이 때 스즈키 토시오는 지브리에서는 가장 뛰어난 애니메이터라고 그의 그림 실력은 인정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딱히 감독을 맡길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 "감으로." 라고 딱 잘라 말했다. 미야자키는 인터뷰에서 "애초에 마로는 감독이나 연출을 목표로 한 사람이 아니라서, 마로에게 감독을 맡길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고 본심을 밝혔다. 하야오가 평하길 "성격은 성실하고 착한 놈"이라면서 그런 인덕이 있으니까, 지브리 내에서도 "자, 마로가 감독으로 발탁됐다면 어쩔 수 없네. 도와줘야 되겠네." 라는 분위기가 있다면서, 모난 놈이었으면 주변 동료들도 혼자서 알아서 해봐라는 식으로 나오면 감독을 못 한다고 말했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아무래도 스튜디오 지브리라는 브랜드 네임, 이름값으로 밥상에 숟가락을 얹은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일단 각본이 미야자키 하야오. 요네바야시 본인의 인터뷰에 의하면 매일 같은 공간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감시'''당하면서 일을 해야 했다고 한다. 스즈키 토시오도 미야자키 하야오는 말로는 자신이 간섭하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막상 제작에 들어가면 '손도 대고 발도 들이대고'해서, 추억의 마니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도 이 작품처럼 두 소녀의 섬세한 심리표현이 중요한 작품이라면 미야자키 하야오라도 작품에 참견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라고 밝혔다. 그리고 다른 이유로는 평소에 요네바야시가 미소녀를 그리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여하튼 본인도 그것을 마음에 담고 있었는지, 바람이 분다가 제작되고 있는 중에 스즈키 토시오를 찾아가 '마루 밑 아리에티에서는 못 다한 아쉬움이 있다'며 다음 작품의 감독을 맡겨 달라고 청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두 번째 감독작인 추억의 마니는 기존의 지브리 스타일을 계승하면서도 여러 실험적인 도전을 한 탈(脫)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이었지만, 흥행에서나 비평에서나 그저 그런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제88회 미국 아카데미상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에 노미네이트된다. 스즈키 토시오는 두 거장보다 절반의 짧은 제작 기간에 작품을 완성한 점을 칭찬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타카하타 이사오도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난 후 호평을 했다.
두 거장이 사라진 스튜디오 지브리의 현실에서 과연 다음 감독 작품을 선보일 수 있을련지? 추억의 마니 홍보를 위해 전국 극장을 돌아다니다 돌아와보니 지브리 제작 스텝들은 사라지고 없었고, 그도 2014년 연말 쯤에 지브리를 퇴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퇴사 후 2015년 4월 같은 지브리 출신으로 프로듀서였던 니시무라 요시아키와 함께 스튜디오 포녹을 설립했으며, 첫 번째로 2017년 7월에 개봉한 메리와 마녀의 꽃에서 평은 나쁘지 않았으며, 그럭저럭한 흥행을 하였다.
감독으로서 메리와 마녀의 꽃까지의 실력은... 미야자키 하야오에에서 각본 능력을 뺀 정도로 연출과 그림 자체는 정말 미야자키 하야오를 빼다박아서 지브리란 이름값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정도지만 말 그대로 하야오의 클론이나 각본능력이 빠져버린 상태로 극 초반의 묘사로 힘을 꽉 잡지만 중반부 이후로는 맥빠진 시나리오와 연출을 보여주는 것이 고질병이다. 당위성이 부족한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사건이라던지 매끄럽지 못한 시나리오의 연결성 그리고 다소 부족한 복선과 마무리 등 정말 그림의 분위기만 타고 시나리오는 어떠한 흐름도 못타서 결말에서 일말의 감동조차 느끼기 어렵게 해버리는 단점이 심하다. 그러나 그나 스탭들이나 이러한 각본의 문제를 못느끼는 것인지 메리와 마녀의 꽃에서도 본인이 각본까지 계속 다하는 중. 단점을 커버하기 위한 타 각본가와의 협업이 보이지 않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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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콘티는 미야자키 급으로 끝장나게 잘 그린다. 각본만 좀 어떻게 했으면 좋았을 감독.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가오나시의 모델이라고 한다. 자신이 그린 가오나시의 그림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보고선 "마로(요네바야시)와 똑같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한다.
안노 히데아키 말로는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이 부려 먹을 (자기 대신 그림을 그려줄 수 있는) 사람에게만 가르쳐준다고 했는데, 요네바야시의 인터뷰(2015)를 들어 보면,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꾸중을 들으면서도 비행기를 날리는 법, 부유감(浮遊感)를 낼려면 어떻게 하는 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가장 영향을 받은 사람은 미야자키 하야오라고 밝혔다.
참가 작품 리스트 일본 작화위키 참조
1. 이력
米林宏昌(よねばやし ひろまさ)
일본의 애니메이터. 1973년 7월 10일 출생. (51세) 이시카와현 이시카와군 노노이치 정 (現 노노이치 시) 출신. 애칭은 마로(麻呂)
가나자와미술공예대학에서 상업 디자인과를 다니다 중퇴하고, 1996년 스튜디오 지브리 입사. 이례적으로 3년 만에 일찍 동화맨에서 원화맨으로 승격했다. 처음으로 원화를 그린 작품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아버지가 음식을 먹는 장면과 가오나시가 목욕탕 유야에 들어오는 장면. 작화감독이었던 안도 마사시에게 수정을 당했다.
이후 미야자키 고로가 감독한 게드전기에서는 작화감독 보조. 단편 영화 《空想の空とぶ機械達》에서는 작화감독. 메이와 아기고양이버스에서는 연출도 경험했다.
특히, 벼랑 위의 포뇨에서 담당한 원화 장면은 미야자키 하야오도 거의 고치지 않고 그대로 통과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는다. [1] 그런데, 그 전에는 일 때문에 잘 했다고 칭찬받은 기억은 별로 없고, 어느 날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스튜디오 건물의 다른 창문은 냅두고 자신이 앉는 자리의 창문만 닫는 그를 보고 미야자키가 화를 내며 "고향으로 돌아 가!"라고 혼난 경험도 있다고 한다.[2]
스튜디오 지브리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인재 발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0년작 마루 밑 아리에티의 감독으로 전격 발탁. 스튜디오 지브리에서는 최연소 감독 데뷔를 달성했다. 이 때 스즈키 토시오는 지브리에서는 가장 뛰어난 애니메이터라고 그의 그림 실력은 인정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딱히 감독을 맡길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 "감으로." 라고 딱 잘라 말했다. 미야자키는 인터뷰에서 "애초에 마로는 감독이나 연출을 목표로 한 사람이 아니라서, 마로에게 감독을 맡길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고 본심을 밝혔다. 하야오가 평하길 "성격은 성실하고 착한 놈"이라면서 그런 인덕이 있으니까, 지브리 내에서도 "자, 마로가 감독으로 발탁됐다면 어쩔 수 없네. 도와줘야 되겠네." 라는 분위기가 있다면서, 모난 놈이었으면 주변 동료들도 혼자서 알아서 해봐라는 식으로 나오면 감독을 못 한다고 말했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아무래도 스튜디오 지브리라는 브랜드 네임, 이름값으로 밥상에 숟가락을 얹은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일단 각본이 미야자키 하야오. 요네바야시 본인의 인터뷰에 의하면 매일 같은 공간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감시'''당하면서 일을 해야 했다고 한다. 스즈키 토시오도 미야자키 하야오는 말로는 자신이 간섭하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막상 제작에 들어가면 '손도 대고 발도 들이대고'해서, 추억의 마니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도 이 작품처럼 두 소녀의 섬세한 심리표현이 중요한 작품이라면 미야자키 하야오라도 작품에 참견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라고 밝혔다. 그리고 다른 이유로는 평소에 요네바야시가 미소녀를 그리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여하튼 본인도 그것을 마음에 담고 있었는지, 바람이 분다가 제작되고 있는 중에 스즈키 토시오를 찾아가 '마루 밑 아리에티에서는 못 다한 아쉬움이 있다'며 다음 작품의 감독을 맡겨 달라고 청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두 번째 감독작인 추억의 마니는 기존의 지브리 스타일을 계승하면서도 여러 실험적인 도전을 한 탈(脫)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이었지만, 흥행에서나 비평에서나 그저 그런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제88회 미국 아카데미상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에 노미네이트된다. 스즈키 토시오는 두 거장보다 절반의 짧은 제작 기간에 작품을 완성한 점을 칭찬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타카하타 이사오도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난 후 호평을 했다.
두 거장이 사라진 스튜디오 지브리의 현실에서 과연 다음 감독 작품을 선보일 수 있을련지? 추억의 마니 홍보를 위해 전국 극장을 돌아다니다 돌아와보니 지브리 제작 스텝들은 사라지고 없었고, 그도 2014년 연말 쯤에 지브리를 퇴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퇴사 후 2015년 4월 같은 지브리 출신으로 프로듀서였던 니시무라 요시아키와 함께 스튜디오 포녹을 설립했으며, 첫 번째로 2017년 7월에 개봉한 메리와 마녀의 꽃에서 평은 나쁘지 않았으며, 그럭저럭한 흥행을 하였다.
감독으로서 메리와 마녀의 꽃까지의 실력은... 미야자키 하야오에에서 각본 능력을 뺀 정도로 연출과 그림 자체는 정말 미야자키 하야오를 빼다박아서 지브리란 이름값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정도지만 말 그대로 하야오의 클론이나 각본능력이 빠져버린 상태로 극 초반의 묘사로 힘을 꽉 잡지만 중반부 이후로는 맥빠진 시나리오와 연출을 보여주는 것이 고질병이다. 당위성이 부족한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사건이라던지 매끄럽지 못한 시나리오의 연결성 그리고 다소 부족한 복선과 마무리 등 정말 그림의 분위기만 타고 시나리오는 어떠한 흐름도 못타서 결말에서 일말의 감동조차 느끼기 어렵게 해버리는 단점이 심하다. 그러나 그나 스탭들이나 이러한 각본의 문제를 못느끼는 것인지 메리와 마녀의 꽃에서도 본인이 각본까지 계속 다하는 중. 단점을 커버하기 위한 타 각본가와의 협업이 보이지 않아보인다.
[image]
의외로 콘티는 미야자키 급으로 끝장나게 잘 그린다. 각본만 좀 어떻게 했으면 좋았을 감독.
2. 기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가오나시의 모델이라고 한다. 자신이 그린 가오나시의 그림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보고선 "마로(요네바야시)와 똑같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한다.
안노 히데아키 말로는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이 부려 먹을 (자기 대신 그림을 그려줄 수 있는) 사람에게만 가르쳐준다고 했는데, 요네바야시의 인터뷰(2015)를 들어 보면,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꾸중을 들으면서도 비행기를 날리는 법, 부유감(浮遊感)를 낼려면 어떻게 하는 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가장 영향을 받은 사람은 미야자키 하야오라고 밝혔다.
3. 작품 리스트
참가 작품 리스트 일본 작화위키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