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지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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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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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등의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곳이다.
1985년 6월 15일, 전년도에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만들기 위해 제작 거점으로 삼은 '톱 크래프트 스튜디오'를(이때는 나우시카 한 작품만 하고 스태프들은 해산), 이듬해 미야자키 하야오와 타카하타 이사오, 그리고 스즈키 토시오가 천공의 성 라퓨타를 제작하기 위해 토쿠마 쇼텐(서점)의 투자를 받아 파산한 상태의 톱 크래프트를 인수하였고, 이후 회사 이름을 변경하고 조직을 재편하여 탄생한 회사가 지금의 지브리다. 그래서 스튜디오 지브리의 공식 첫 작품은 천공의 성 라퓨타다. 정사원제를 도입하여 월급제가 된 것은 마녀 배달부 키키 이후부터다. 설립 시에는 도쿠마 서점의 사장인 도쿠마 야스요시가 CEO를 맡았으나, 실질적인 운영자는 톱 크래프트를 설립했던 하라 토오루[4] 였다.
2. 명칭
사명인 지브리(ghibli)는 '사하라 사막에 부는 열풍(熱風)'[5] 을 가리키는 이탈리아어로 리비아의 아랍어 방언에서 온 외래어(이탈리아 입장에서)이다. 2차대전 '''당시 이탈리아 군용정찰기에 붙은 명칭'''이고 마세라티 기블리의 유래이기도 했다. # 명명자는 미야자키 하야오. 그는 어릴 적부터 비행기 마니아로 이 단어를 먼저 비행기 이름에서 알고 나중에 그 어원을 알게 되었다. '애니메이션 업계에 선풍(旋風)을 일으키자'는 의미로 스튜디오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ghibli의 본 발음은 기블리(일어로는 '기브리')로 '지브리'는 미야자키가 발음을 잘못 안 것이다. 이탈리아어로 'ghi'는 '기'로 발음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도 '기브리'가 바르다고 인정했으나, 사명은 바뀌지 않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영어 트레일러에서도 '지브리'로 발음하고 있다.
3. 상세
본래는 처음부터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만을 만들기 위해 출발한 스튜디오였다. 그러다가 《이웃집 토토로》가 기획이 통과되지 않자, 《반딧불이의 묘》와 함께 '2편 동시개봉'을 하기로 계획하면서 타카하타 이사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고, 이 두 사람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제작 기간이 길어지자 그 사이를 메꾸는 방안으로 《귀를 기울이면》이 제작되었고, 그 밖에 다른 신인 감독의 작품들이 사이사이 땜빵 식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프로듀서였던 스즈키 토시오 인터뷰)
지브리의 이름으로 개봉한 첫 장편 애니메이션은 《천공의 성 라퓨타》. 이후 여러 장편 애니메이션들을 내놓으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던 도쿠마 쇼텐이 지브리를 흡수하여 일개 사업부문으로 격하시키기도 하는 등 영욕과 부침도 겪었다.
사실 90년대까지는 일부 일본 만화, 애니매이션 팬들을 제외하면 일본 밖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99~2000년에 《모노노케 히메》가 서방 국가에서 개봉되며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마침내 2002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세계적으로 역대급의 찬사를 받으며 알려지지 않았던 과거의 걸작들도 발굴되어 서방에 알려졌고 지브리와 미야자키 하야오는 세계적인 거장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모노노케 히메》를 내놓은 이후 지브리를 퇴사하였으나 지브리의 차세대 주자로 주목받던 콘도 요시후미가 1998년에 사망하는 바람에 1999년 다시 지브리의 소장으로 복귀했다. 이후 2004년, 도쿠마 쇼텐 소속의 사업부에서 주식회사로 복귀했고, 이듬해인 2005년에는 도쿠마 쇼텐 산하에서 완전히 벗어나 스즈키 토시오가 대표이사 사장으로,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티븐 앨버트가 이사로 취임했다. 2008년 2월, 스즈키가 대표이사 사장직에서 물러나 이사 겸 프로듀서에 전념하게 되며, 후임으로 호시노 고지(星野康二)[6] 가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흔히 자체 제작품, 특히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제작사로만 알려져 있지만 하청도 가끔 수주한다. 요미우리 신문의 CM이나 리소나은행의 CM이 대표적.
스튜디오 지브리 설립 31주년과 미야자키 하야오의 75세 생일을 기념해 지브리 소속 작가들이 손수 그린 스마트폰 배경화면이 공개되었다. 약 60장의 그림 중 56장 정보가 애니메이션 관련 이미지라고 한다. #
오카다 토시오의 인터뷰 중 역대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제작비와 흥행 수익이 공개되었다. 총 극장 흥행 수입의 25%가 지브리에게 돌아가는 구조라고. #
4. 작품 일람
4.1. 작품 특징
성우로 배우라든가, 가수, 작곡가, 기자, 감독 등, '애니메이션의 더빙과는 거리가 좀 있는 사람들'을 캐스팅한다. 전문 성우는 엑스트라로 몇 명 나오는 정도. 예를 들면 고양이의 보은에서는 타나카 아츠코, 시라토리 유리가 엑스트라로 나오고,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는 오오츠카 아키오가 조역으로 나오며, 게드전기에서는 나카무라 유이치, 카토 에미리가 엑스트라로 나오는 등.
계기는 이웃집 토토로 캐스팅 당시에 자매의 아버지 역인 쿠사카베의 캐스팅을 위해 성우들을 모아놓고 오디션을 봤는데, 전부 딸들에게 자상한 교과서적인 아버지의 연기였던지라 미야자키 감독이 모두 퇴짜를 놨다고 한다. 생활감각이 결여돼있고 딸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그런 아버지 상을 원했기 때문.[7] 이후 미야자키 감독이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이토이 시게사토(기자, 작사가, 그리고 MOTHER 시리즈의 제작자)를 직접 캐스팅하게 된다. 그리고 1995년작 귀를 기울이면에서는 주인공 시즈쿠의 아버지인 츠키시마 세이야 역에 일본의 전설적인 기자 다치나바 타카시에게 배역을 맡겼다. 주, 조연에 마지막으로 전문 성우가 기용된건 모노노케 히메로, 지브리 단골 성우 중 한명이였던 시마모토 스미 한 명이 전부. 그나마도 20번 넘게 NG가 나는등 상당히 힘든 녹음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결국 이 작품을 끝으로 시마모토 스미도 지브리와의 연이 완전히 끊기고 이후에는 지브리 작품에서 전문성우를 거의 찾아볼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후로 지브리는 전문 성우를 기용하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애니메이션 전문성우는 거의 캐스팅하지 않는 편. 미야자키 왈, "성우는 목소리가 아니라 그 인물 자체의 존재감이 필요하다"는 모양. 한 마디로 뛰어난 '연기'가 아니라 '캐릭터 그 자체'를 원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여자성우들의 귀여운 척 하는 목소리는 지긋지긋해서 어떻게든 하고 싶다고. 프로듀서인 스즈키 토시오 역시 전문 성우의 목소리를 들으면 '실생활에서 저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잖아?'라고 생각한다면서 미야자키에게 동의하는 모양이다. 이는 주, 조연 캐스팅뿐만 아니라 엑스트라 캐스팅에도 어느 정도 반영되어 단역 성우진의 대부분이 극단 출신이다. 그리고 지브리 작품 주역 데뷔 후 성우계 입성 케이스를 밟는 경우도 있다. 오카무라 아케미[8] , 이리노 미유, 혼나 요코, 시라이시 하루카 등.
사실 초기에는 지브리도 주역들에 전문 성우들 위주로 배치했다. 첫작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비롯해서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마녀 배달부 키키등 주인공의 성우가 전문 성우인 작품들이 적지 않으며 다른 캐릭터들도 대부분 전문 성우가 배치되어 있다. 전문 성우가 아닌 사람을 안 쓴 건 아니지만 초기엔 대부분 조연이나 잠깐 지나가는 단역 정도에만 캐스팅했다. 그러나 상기한 여러가지 일들로 인해 전문성우를 기피하게 되면서 추억은 방울방울 이후로 주연들에 전문 성우를 잘 기용하지 않는다.
한국어 더빙판은 최덕희, 손정아, 김영선, 정미숙, 김서영 등의 베테랑 성우들을 많이 기용하여 퀄리티가 높다. 성우진이 많이 고정되어 있는 편인데, 이는 지브리 본사에서 특정 성우들을 원한다는 풍문이 있다.
한국에선 초창기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해외 배급으로 극장수도 많이 잡고, 안정적인 상영을 할 수 있는 장점 덕에 흥행상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일본에 개봉한 지 20년이 넘은 나우시카나 이미 볼 사람은 다 본 애니들은 별로 기대하지 않아서 극장을 많이 잡진 않았다. 최신작들에 한해서 상영관이 안정적이다. 신작의 경우 이러한 이점을 업고 전국 200만 관객을 넘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전국 300만)이 대박을 거두면서 일본 언론이 한국에서 하울류가 흐른다는 설레발까지 나왔으나, 게드전기가 부진한 뒤로 가까스로 포뇨나 아리에티가 전국 100만 관객을 넘기는 수준에 그쳤으며다. 이후 2011년에 개봉한 코쿠리코 언덕은 개봉 한 달이 다 되어서도 전국 20만 수준 관객에 그치면서 애니 흥행 수표 보장이란 인식은 타격을 받은 지 오래다. 대원미디어 배급 이후 작품들은 흥행 성적이 영 시원찮은 편.
지브리의 영화를 2~3번 본 사람이면 스쳐가면서 보더라도 '지브리 작품이구나'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림체가 주류 애니메이션 그림체와 차이가 많이 나는데, 선이 깔끔하다기 보다는 서정적인 느낌이 조금씩 난다. 붉은 돼지에서의 하늘이나 모노노케 히메에서의 자연 풍광을 보면 이런 특징을 잘 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이런 그림체를 '서정화'라 부르는 듯 한데, 세월의 흐름을 덜 타는 편이기에 라퓨타나 토토로와 같이 나온지 20년이 넘은 작품들이 여전히 롱런하고 있는 큰 이유중 하나이다. 반면에 다른 면으로 보면 코쿠리코 언덕에서와 같은 최근 작품이더라도 나온지 꽤 된 것 같은 느낌을 주게 만든다. 80년대 정도 까지만 하더라도 지브리와 비슷한 그림체을 가진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있었으나, 현재 애니메이션 판도를 주도하는 것은 알다시피 보다 선이 깔끔한 그림체이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일부 매니아 층이 소비 대상인 다른 애니메이션들과는 다르게 대중이 주요 타깃이기 때문에, 그들이 거부감을 가질 수 있는 서비스 신이나 모에 요소가 노골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은 편이다. 다만 모노노케 히메에서는 예외적으로 화살에 사람 머리가 꿰뚫려 뜯겨나가는 등의 잔혹한 묘사가 있었다.
거의 모든 작품들의 주인공이 여성이다. 그것도 성평등 인식이 널리 퍼지기 전부터 여주인공, 그것도 여성성을 부각하는 다른 제작사들과 달리 74년 발표된 모노노케 히메등 기존의 여주인공의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작품을 많이 내놓았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특유의 꾸준함을 들 수 있는데, 지브리의 작품 중 게드전기 정도를 제외하고는 평가나 흥행이 크게 망한 작품이 없다. 그 게드전기마저도 흥행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이는 평론가들도 자주 언급하는 지브리의 특징 중 하나.
또한 나온 작품들이 일부를 제외하고는 개봉이 전부 7월(일본 기준)에 했다는 점이다. 7월 개봉을 기준으로 년 단위로 작업하는 듯하다.
참고로 지브리는 단편용 애니메이션도 만들었다. 《기브리즈 애피소드》가 그 예. 고양이의 보은과 같이 극장에서 상영되었는데, 이는 단편용 애니매이션을 먼저 상영하고, 그다음에 고양이의 보은이 상영되었다. 역시 단편인지 25분. 그 외에도 꽤 알려진 단편 작품 중에는 차게 앤 아스카라는 일본 락그룹의 On Your Mark 뮤직 비디오가 있다. 6분짜리이지만 심오함이 있는 작품. 그리고 유화영상집 <이바라드 시간>이 있다. 귀를 기울이면 영화 속 소설의 세계관이 되는 배경이 나온다. 대사가 없이 그림만 이어진다.
4.2. 작중 설정에 따른 연표
5. 연표
문서 참고.
5.1. 제작팀 해산
익명의 지브리 관계자에 따르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바람이 분다를 자신이 감독을 맡는 마지막 작품으로 정하고 2013년 9월 1일 은퇴를 선언했을 때부터 스튜디오 해체설이 나왔으며, 2014년 봄에 와서 스즈키 토시오도 그런 식의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 다만 이렇게 커다란 스튜디오가 단번에 없어진다는 충격이 큰 만큼, 그걸 발표할 타이밍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며 앞으로는 신작을 만들지 않고 회사 차원에서 판권 관리만 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12]
여기에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가구야 공주 이야기가 흥행수익 23억 엔에 그치면서 망했다. 매년 작품을 발표할 수 없는 이상, 이 높은 장벽을 넘지 못할 경우 해산 밖에 없을 것이라고 한다. #
결국 2014년 8월 지브리 주주총회에서 제작팀 해산을 발표했다.
또한 8월 5일 산케이 신문이 도완고 미디어 스쿨, 도완고 뮤직 엔터테인먼트, 니코니코 동화를 운영하는 니완고 등의 자회사이자, 카도카와와 경영통합을 발표한 주식회사 도완고 산하에 인수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직원 300명이 근무 중인 지브리를 인수합병하는 계획을 진행 중이며, 지브리의 제작 인력, 기술 뿐만 아니라 콘텐츠의 저작권 관리도 도완고가 맡을 전망이라고 한다. 지브리의 대표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가 지브리의 해체를 발표하면서 "재구축"이라는 낱말을 꺼낸 것은 도완고의 인수 합병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카도카와가 도완고를 통해 지브리를 인수하려는 배경에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웃집 토토로' 콘텐츠 저작권 및 방영권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고 한다. 기사 하지만 8월 6일 드왕고가 지브리를 인수한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 드왕고의 카와카미 노부오 회장은 ITmedia의 취재에 "완전히 엉터리"라고 부인했다. 기사
스즈키 프로듀서도 지브리 해체설을 부인하고 나서서 일각에서는 추억의 마니의 흥행을 위한 전략이라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또한 제작팀 해체가 애니메이션 제작 중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기존의 제작 스텝 정규직 채용이란 고용방식으로는 연 20억원의 인건비가 지출된다. 스튜디오 지브리 입장에서는 이 인건비가 매우 부담되었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은퇴 이후 이런 고민은 더 깊어졌다. 결국 재정 건전성을 위해 과감히 칼을 빼들고 제작팀을 해체했다는 것. 작품을 제작하면 스텝을 모으고 개봉하면 해체하는 식으로 고용방식을 바꾸는 것이지[13] 제작 중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견이다.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제작 방식을 바꾸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브리의 대표이사인 스즈키 토시오의 인터뷰가 공개되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지브리의 차후 방향성에 대한 답변으로 '''한마디로 말하면 스튜디오 지브리의 미래는 모색 중입니다. '''라고 밝혔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지브리 미술관을 위한 단편 애니메이션 애벌레 보로를 제작 중이라고 한다. 다만 추억의 마니를 마지막으로 제작부문을 해체했기 때문에 현재 지브리엔 애니메이터가 없어 외부에서 모인 CG스태프, 애니메이터 미술부 스태프 등 총 10명이 작업 중이라고 NHK 방송에서 밝혔다.
참고로 제작팀이 해산된 후, 스튜지오 지브리 출신 인력들은 너의 이름은., 이 세계의 한 구석에 등 화제성과 작품성이 높은 작품에서 활약하거나 스튜디오 포녹처럼 새로운 스튜디오로 독립해서 지브리의 작풍을 이어나가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준비기간이 몇 년 이상 걸리는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의미의 은퇴 선언이지, 단편 및 작품 활동은 계속 해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서 다시 은퇴를 번복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5.2. 미야자키 부자의 신작 착수
결국 또 다시 은퇴를 번복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을 위한 직원 (신입) 모집공고가 2017년 5월 19일에 올라왔다. 이번이야말로 연령상 정말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고 하며, 모집직종은 동화 파트와 배경 미술 파트로 7월 하순 서류전형을 시작으로 9월 중순 최종 합격 통보까지 젼형이 이뤄지며 10월 1일에 입사 예정 날짜가 잡혔다.
2017년 10월부터 3년 계약으로 공개는 2020년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이며, 지브리 측은 이 영화의 제작을 위해 젊은 힘을 빌려달라 호소했다. # 그리고 본격적으로 프로젝트가 시동한 것이 8월 10일에 알려졌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본인이 메인스태프에게 이미 작품 설명을 했다고 스튜디오 지브리 공식사이트에서 알렸으며, 신인 제작진 스태프 모집이 해외에서도 응모가 쇄도했다는 사실도 알렸다. 지브리 소식지 8월호에서는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기 위해 지난달에도 쓴 것처럼 7월초 사내에서 이사를 하고 제작계열 각 부서를 새로운 장소에 배치했다고 한다. 메인 스태프와 제작진행은 이전과 같은 위치로 돌아갔다고 한다.
7월 3일에는 미야자키 감독이 메인 스태프들에게 직접 작품 설명을 하면서 제작부문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뜻에서 행했다고 한다. 이후 점차 스태프가 늘어날 예정이며, 제작이 본격화되었다며 시동을 알렸다. 출처 번역 출처 그리고 작품의 제목이 공개되었다.
2019년 4월 채색 담당 인원을 추가 채용했다. 계약기간은 1년 반으로, 신작의 마무리를 위한 채용이라고 하며 2019년 10월부터 업무를 시작했다고 한다.
2020년 6월 3일 아들인 미야자키 고로의 신작 작품 제목이 공개되었다.
6. 사원 처우 및 복지
6.1. 제작팀 해산 이전
노동 운동가이기도 했던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회사라서 일본 애니메이션계에서 몇 안 되게 사람 대우를 해주지만 그만큼 경쟁이 너무 높아 들어가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업계 최고 수준의 천재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회사였고 무라타 카즈야 말로는 직원을 뽑을 때 미야자키가 내는 시험을 봤어야 했다고 한다.
원래 한 작품을 만들 때마다 스탭들을 모으고 개봉 이후에 해산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다가, 안정적인 작품 제작과 인재육성을 위해서 고정 스태프제로 전환했고, 스태프들에게 수당제로 지급되던 보수지급도 고정 급료제로 전환하여 업계 내에서 손꼽히는 처우를 자랑한다. 기본 8만 ~ 10만 엔 정도의 고정급을 주고 그 이후로는 그리는 만큼 더 주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물론 이는 지브리의 작품들이 나올 때마다 흥행하는 탓에 나름대로 여유가 있어서이기도 하다.
사원 복지 역시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상당히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애니메이션 업계 최초로 사원들의 육아를 위해서 지자체와 협력하여 시설을 건설했으며, '지역 주민들과 사원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아울러 외주, 아웃소싱[14] 이 만연한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미술, 촬영 등을 정규직으로 채용한다. 아울러 애니메이터는 토요타의 후원으로 일정 기간 연수를 한 다음에 채용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나 급료 사정이 좋은 대신, 한 명의 애니메이터로서 창의력을 발휘할 여지는 거의 없는 곳이기도 하다. 평생 인물만 그리거나, 평생 배경만 그리다가 다른 업무가 불가능해지거나, 비(非)지브리식 연출에 익숙하지 않아 다른 애니메이션 업체에 채용되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한다. 연출을 아예 미야자키와 타카하타 이사오가 다 해버리니 연출을 지망하는 사람들은 회사를 나갈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고 미야자키도 제자들이 나간다면 말리지 않고 오히려 권장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지브리에 입사하는 것은 곧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림 도구가 된다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으며, 오시이 마모루도 이러한 지브리의 내부 상황에 대해 지적했는데, 미야자키는 홀로 사나운 백수의 왕이고, 지브리는 그 백수의 왕을 기르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사바나라고 비유했다. 출처
또한 회사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애니메이터 지상주의라 애니메이터 이외의 스탭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모양.
6.2. 해산 이후 현재
2014년 제작팀의 해산 이후로는 정규직 제작 스탭 채용을 하지 않고 있어서 위에 서술된 좋은 고용조건은 옛말이 되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 번복이 있은 뒤 신작 제작을 위해 2017년 신입 채용을 할 때도 계약직으로 뽑았고 급여도 그냥 업계 평균 수준이었다고한다.
7.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展
비교하면 한 눈에 알 수 있지만 한국판 포스터는 애니메이션지 가장자리의 그림이 좀 많이 잘려 나갔다.
2011년 2월 후쿠시마 현립미술관, 2013년 5월 오키나와 미술관등 일본 각지에서 열렸던 동명의 전시회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2013년 6월 22일부터 9월 22일까지 현대카드 주최로 열렸다. 1300여점의 레이아웃이 전시되었고 극장판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미래소년 코난, 알프스소녀 하이디, 빨간머리 앤같은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다 이사오가 참여한 TV시리즈의 레이아웃역시 작게나마 소개되어있다. 전시회 마지막에는 토토로 포토존과 신작 포스터 바람이 분다, 가구야 공주 이야기 두점이 크게 놓여져있다.
한국 전시회 개장 첫날 인파가 몰리는 바람에 입장권과 별도로 번호표를 배부하여 번호표 순서대로 끊어서 입장시키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고, 방학을 끼고 있는 기간의 특성상 주말에는 이러한 현상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여성에게 인기가 많은 스튜디오 지브리 애니메이션 특성상 여성 관객들이 매우 많은 것도 특징. 전시 도록도 괜찮게 나온 편이고 한국어판, 일본어판 두 가지 도록을 판매하는데 도록의 판형은 같으나, 일본어판은 전시품 전작이 수록되어 있고 한국어판은 전시품의 일부가 수록되어 있다, 즉 수록된 레이아웃의 차이이며 이를 통해 페이지수와 가격이 달라졌다. 뮤지엄샵에서 인형과 국내 정발판 OST 등 각종 굿즈를 판매하므로 관심 있는 사람은 필히 들러보자.
다만 한 가지 오해(?)가 많은 경우를 꼽자면 이번 전시회에서는 애니메이션의 화려한 한 컷 같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말그대로 레이아웃, 애니메이션 완성 과정의 초입이자 일부인 스케치만을 모아둔 것이다.[15] 전시작도 딱 위의 포스터에 나온 정도 내외이다. 전시 시작부터 각종 애니메이션 용어를 나열하며, 별반 특이할 만한 것이 없는 옅은 색감의 스케치와 그 위에 각종 일본어가 남발되어 있는 것이기에 거의 이쪽 분야에서 공부하려는 학생 내지는 현직 종사자들이 아닌 이상 이해를 확실히 하기는 어렵다.
애니메이션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일부 과정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전시회이며, 해당 분야의 학생 혹은 현직 종사자에게는 익숙한 용어들이 많이 보일 것이다.
그래도 지브리만의 일반적인 애니메이션 제작과정과는 다른 특징적인 작업방식을 이해하는데는 이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그리고 일반인도 음성안내기를 빌리거나 도슨트[16] 의 안내를 들으면서 보면 훨씬 재미있게 전시회를 관람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레이아웃전을 시작으로 매년마다 스튜디오 지브리 관련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 2014년 말에는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스튜디오 지브리 입체조형전이, 2015년 9월에는 부산 시립미술관에서 스튜디오 지브리 입체건축전이 열렸다. 2017년 말 세종 미술관에서 스튜디오 지브리 대 박람회 - 나우시카에서 마니까지가 열렸다.
8. 지브리 미술관
미타카의 숲 지브리 미술관 문서 참고.
9. 지브리 파크
200헥타르(약 60만 평) 규모로 아이치 현에 들어설 예정이며, 테마별로 5구역으로 마련되었다. 투입될 금액은 약 10억 엔 가량으로 집계되고 있다. 또한 지브리 미술관과 마찬가지로 미야자키 고로가 설계에 참여 중이라고 한다. #
정문에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같은 19세기 말 공상과학적 요소를 채용한 엘리베이터 동이 설치된다. 주변에는 귀를 기울이면의 골동품 가게를 재현한 건물도 설치한다. 모노노케 히메 구역에는 타타라장을 모티브로 한 건물과 재앙신 오브제가 설치된다. 마녀 계곡 지역에는 마법을 소재로 한 작품이 테마로 키키의 집이 재현되어 미니 놀이공원도 만들어진다. 또한 기존에 있던 사츠키와 메이의 집도 정비되며 숲 산책로도 재정비한다고 한다. 이외 실내 지브리 대형창고 에리어는 온수수영장을 개장해 만들며 전시실, 영상 전시실, 어린이 놀이터가 설치된다고 한다.
개장은 2단계로 나누어 오픈될 예정이다. 우선 3군데 구역을 2022년 가을에 개장하고, 대략 1년 후에 나머지 2군데 구역이 오픈한다.
10. 미국 시장 판권
2011년 월트 디즈니 컴퍼니가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에 대한 미국 영화 시장 판권 전부를 GKIDS에 넘겼다. 이에 따라 모든 지브리 작품의 미국 영화 배급사는 GKIDS로 고정되어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디즈니가 지브리 영화를 제한적 상영으로 공급하다보니 미국 영화 시장에서 자사가 회사의 여력을 낭비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GKIDS로 지브리 판권이 전부 넘어가버리면서, 지브리 영화는 미국 영화 시장에서 와이드 릴리스될 기회 자체가 박탈되고 말았다.
단, 이 계약은 미국 내에서만 적용된다.
11. DVD / 블루레이 / 스트리밍
블루레이 시대에 접어들고도 꿋꿋이 DVD로만 작품을 내다가 2009년 벼랑 위의 포뇨를 시작으로, 팬들의 등쌀에 못이겨 2010년을 기점으로 기존작들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의 야마다군 등을 발매하면서 블루레이 시장에 데뷔했다. 이후 2011년에는 마루 밑 아리에티, 귀를 기울이면을 출시하는 등 속속 자사 제작 애니메이션을 BD화 했으며 2014년 6월 18일에는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집(BD 박스)'이라는 이름으로 기발매된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 11작[17] 의 BD를 모아 BoxSet으로 발매한다. 정가는 6만엔(소비세 별도). 다만, 단품 블루레이를 살때 넣어줬던 영상특전들이 박스Set에는 없다. 각 작품마다 본 영상만 들어있어서 현지 일본 지브리팬들은 특전영상을 위해 박스가 아닌 단품으로만 수집하는 경우가 많다. 구매 시 참고.
상기 박스를 제외한 지브리 블루레이들도 대개 정가 7000엔에 육박해서 한국 팬들에게는 눈물나는 가격이지만 아마존닷컴 재팬 등에선 할인가로 대략 4천~5천엔 대라 그럭저럭 살만...하다. 홍콩에도 지브리 블루레이가 출시되어있긴 한데, 이쪽은 한글자막/더빙이 전혀 없으므로 일판에도 한글자막/더빙이 없는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아예 눈길을 주지 말자(...). 여간한 대작영화들도 몇 년쯤 지나면 떨이를 한 두 번 해주는데 비해, 지브리의 가격방어는 가히 우주방어 수준이다. 그러니 세일은 기대하지 만고 환율만 바라보도록 하자. 참고로 블루레이는 일본과 한국이 같은 코드A 권역이라 일본 직수입 디스크도 정식 발매된 PS3를 포함한 한국내 블루레이 플레이어에서 재생이 가능하며 또한 지브리 블루레이는 거의 대부분의 작품에 '''한글 자막과 더빙'''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 점도 어필한다. 단, 반딧불의 묘와 마녀 배달부 키키,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바다가 들린다, 추억의 마니에는 한국어 더빙 및 자막이 들어있지 않으니 주의. 그리고 가구야 공주 이야기에는 한글자막만 수록되어있다. 이외에 탐나는 작품이 있다면 지브리 DVD/BD 발매 리스트를 참고해 보자.
지브리에서 출시한 DVD/BD는 월트 디즈니 컴퍼니 재팬이 배급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블루레이 판권이 워낙 비싸서 대원미디어에서 출시할 생각 자체를 안한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만 반딧불의 묘의 경우 한국 판권이 대원미디어에 없다보니 2015년 5월 '더 블루'에서 출시했다.[18] 2017년 8월 '더 블루'에서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도 출시했다.
시장이 스트리밍 위주로 변화함에 따라 넷플릭스와 지브리의 협업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많아졌는데, 이에 대해 스즈키 토시오는 자신들의 영화가 '''싸구려 취급받을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협업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혀 잠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 미국 내의 판권 문제 때문인지, 아니면 이런 지브리 상층부의 고집 때문인지는 몰라도, 넷플릭스 등의 OTT 서비스들에는 현재 지브리 작품들이 올라와 있지 않다.
그러나 워너 미디어와의 계약을 체결하면서 미국 내 한정으로 지브리 영화들은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등을 제외하고 오로지 HBO 맥스를 통해서만 볼 수 있게 될 예정이라는 공식 보도가 올라오자, 네티즌들은 그렇게 OTT 시장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하더니 결국 돈에 굴복한 거냐는 반응들이 오가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스즈키 토시오가 신작 영화의 제작비를 마련할 수 있다고 미야자키 하야오를 설득한 덕에 지브리의 디지털 스트리밍 금지 방침이 해제되었다고 한다. 추가적으로 스즈키 토시오는 우디 앨런이 아마존 스튜디오와 협업하여 영화들을 내놓은 것을 보고서 스트리밍에 대한 기존의 생각이 바뀌었다고 하며, 특히 HBO 맥스와의 계약에 대해서는 본인이 평소 워너 브라더스와 같이 일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기회가 생겨서 성사된 것이라고. # #
또한 이후에 넷플릭스와 지브리와의 계약이 추가로 체결되면서, 2020년 2월부터 북미와 일본을 제외한 전세계 지역에서는 넷플릭스를 통해 지브리 영화들을 볼 수 있게 될 예정이다. #1 #2
다만, 넷플릭스는 한국을 포함한 190개국만 가능하고 [19] , 미국은 HBO Max 독점. 일본은 BD/DVD으로만 고수 중이다. 특이하게도 몇몇 작품은 새로 더빙하였다. #
넷플릭스 계약 뒷이야기
11.1. 관련 상품, 굿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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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자사의 작품을 소재로 일본우정에서 기념우표를 찍었다.
국내에도 지브리 공식 굿즈 샵이 있다.
12. 지브리의 고민
12.1. 후계자 문제 및 세대교체의 실패
21세기 이후 지브리의 최대 고민은 미야자키 하야오와 타카하타 이사오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감독이 없다는 것이다. 유력한 후계자 포지션에 있던 콘도 요시후미(귀를 기울이면 감독)는 1998년 대동맥 박리로 사망했다.[20] 내용 중 제작 당시의 이야기저는 여러 후계자를 양성했어요.
근데 보내 주지 못하고 집어 삼켜버렸습니다.
그들의 재능을 삼켜버렸죠.
다큐멘터리 《미야자키 하야오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中 미야자키 하야오의 발언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이지만, 안노 히데아키나 오시이 마모루가 한때 지브리와 연을 맺기도 했다. 오시이의 경우는 미야자키의 SF 구상들을 애니화하는 기획이라든지 《묵공》의 애니화 기획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실제 제작에까진 이르지 못했다.
안노나 오시이가 미야자키와는 스타일이 맞지 않는 등의 이유로 결국 각자의 길을 가게 되고[21] , 이후 미야자키는 젊은 스탭들을 육성하기 위해 여러 차례의 시도를 하게 된다. 《마녀 배달부 키키》는 젊은 감독 카타부치 스나오에게 맡기기로 했다가, 어른들의 사정으로 결국 미야자키가 맡아야 했고(문서 참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안도 마사시에게 감독을 맡기려 했는데 본인이 거절했다.
모리타 히로유키가 감독을 맡은 《고양이의 보은》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도쿠마 쇼텐 회장[22] 은 만족할 만한 흥행을 거두지 못했단 사유[23] 로 크게 격노하여 결국 호소다 마모루가 감독을 맡아 제작할 예정이었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미야자키가 떠맡게 된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을 정도다.[24][25]
프로듀서였던 스즈키 토시오가 미야자키와 주변의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장남인 미야자키 고로에게 《게드전기》의 감독을 맡기는 실험을 벌였지만, 게드전기는 혹평을 듣고 원작자 어슐러 K. 르 귄에게서도 신랄한 비평을 들었다. 제작 비화 1 제작 비화 2 게다가 같은 년도에 지브리에서 쫓겨났던 호소다 마모루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발표하고 호평을 들었다. 매출 자체는 지브리 네임파워로 초반 낚시에 성공한 게드전기 쪽이 더 높았지만 《게드전기》가 평론가와 관객에게 신나게 까이는 동안 시달소는 극찬과 함께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싹쓸이... 그나마도 일본에서 흥행 성공을 거뒀지만 해외에서 흥행은 참혹했다. (전세계에서 프랑스와 한국에서만 100만 달러를 넘기는 흥행을 거뒀다.) 미국 흥행수익은 겨우 5만 달러도 되지 않아서 종전 지브리 애니들이 미국에서 극장수익으로만 200~1000만 달러를 넘었던 걸 생각하면 확실히 망했다. 2017년 시점에서 두 작품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고, 두 감독의 위상도 마찬가지다.
이후 미야자키 하야오는 다시 힘든 몸을 이끌고 최전선에 복귀, 《벼랑 위의 포뇨》를 완성했다. '''CG를 쓰지 않고 손으로 그린 애니메이션'''으로 영상미에 절정의 공을 들인 영화로,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일본내 반응과 수익도 성공적이라 다시 지브리의 재림을 알렸다. 하울이 193억 엔에 비해 포뇨는 155억 엔. 그러나 흥행 성적은 갈수록 떨어졌다.
이걸 미야자키 본인도 아는지, 안노가 가이낙스에서 독립해서 스튜디오 카라를 세웠을 때, "지브리"라는 깃발을 단 배가 '''가라앉고 있고''' 수평선에서 "카라"라는 배가 지나가는 그림을 그려서 축전을 보내줬다.(...)
한국에서 강연회를 가졌던 모리타 히로유키 감독[26] 의 발언에 따르자면 미야자키 하야오에게는 연출자를 키우는 재능보다는 교묘하게 '''망가뜨리는''' 재능이 있다고 한다. 자신은 미야자키가 슬럼프에 빠져있던 순간을 파고들어서 감독 데뷔를 할 수 있었다고...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도 잡지의 비공개 인터뷰에서도 이와 비슷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외부에서 신인 감독을 영입하려고 하면 미야자키 하야오가 매번 "그 녀석이 이것을 제대로 할 턱이 없어" 라면서 반대를 하고, 지브리의 내부 스탭들은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주눅이 들어서 재능을 키울 수 없다고. 이 분은 이 발언 외에도 은근히 미야자키 감독에 대해 너무 간섭이 많다고 여러 곳에서 많이 지적한 편.
안노 히데아키도 스즈키 프로듀서와의 대담에서도 이 점을 지적했다. "미야상은 자신이 마음에 들거나, 써 먹을 수 있는 (안노의 표현에 의하면 게다짝 취급으로 일을 맡겨놓고는 본인은 그림을 고치는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가르쳐 주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27]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도 자신의 이러한 (젊은 인재의 재능을 키우기보다는 짓눌러버리는) 문제를 자각하고 있고 고민하고 있다.[28]
2009년부터 스튜디오의 본격적인 위기를 느낀 미야자키 감독의 주도 하에 지브리 5개년 계획이 진행되었다. 구체적으로는 3년 동안 젊은 감독의 작품 세 편을 매년 내놓고 남은 2년은 대작을 내놓겠다는 구상. 이 계획에 따라 2010년에 《마루 밑 아리에티》, 2011년에 《코쿠리코 언덕에서》가 나왔다. 구상대로라면 2012년에 젊은 감독의 신작 3탄이 나와야 했으나 일단 신작은 다음해인 2013년으로 넘어간 듯. 2013년에 나올 작품으로 홋타 요시에 원작의 테이카와 초메이였지만 불발됐다. 다카하타 이사오의 가구야 공주 이야기는 예정보다 연기되어 개봉됐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공식 장편 영화 은퇴 선언작 《바람이 분다》가 2013년에 나왔다.
2013년 9월 1일, 미야자키 하야오가 은퇴를 선언했다. 지브리 작품에 더 관여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후계자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일각에선 미야자키 고로나 다른 젊은 감독들을 돌려본 뒤에 그중에서 먹히는(...) 사람을 지브리의 주력 감독으로 삼을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으나 어찌 될지는 두고 봐야할 듯. 그러나 2014년 연초부터 은퇴번복의 분위기가 스멀스멀 일어나는 상황이라 결국 다시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미야자키 감독의 후계자에 대한 언급이 나온게 20년은 넘었고 콘도 요시후미의 사망(1998년 1월 21일) 후, 제작 스튜디오 폐쇄(2014년 8월)까지는 17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 있었음에도 후계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을 보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나 스튜디오 지브리의 인재 육성방법에 문제가 있는 게 확실하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말하길, 물을 주지 않으니까 말라버린 것도 있고, 아무리 물을 주어도 싹이 돋아나지 않은 것도 있었다며, 재능이란 타고난 것이지 누가 키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2017년 미야자키 감독이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일선에 뛰어들기는 했으나, 2018년 4월 5일 타카하타 이사오가 사망하면서 스튜디오 지브리의 앞날에 깔린 먹구름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그나마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이 스튜디오 포녹을 설립해서 몇몇 옛 지브리 인력들과 함께 독자노선을 걷고 있는게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에서 지브리의 계보가 끊기지는 않을 거라는 측면에서는 다행일 정도.
여러모로 가이낙스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가이낙스 역시 안노 히데아키라는 거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명작들을 배출해내며 세계로 뻗어나갔지만, 그가 독립한 후 뒤를 이을 마땅한 명감독을 만나지 못하고 방황 중이다. 이후 인력들이 스튜디오 카라, 곤조, 트리거 등 다른 제작사로 빠져나가는 것까지 지브리와 비슷하다(...).
사실 재패니메이션의 역사를 만들었다고 평가받는 거장들의 출신회사들은 그 감독이 독립하거나 은퇴하면 하나같이 방황하는게 공통점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라는 두 거장의 다음 타자가 없어 길을 못잡는 지브리, 안노 히데아키의 독립 이후 겨우겨우 인력을 모아 만든 천원돌파 그렌라간 이후 마땅한 대표작 없이 방황하다가 성추문에 휩싸이며 옛 명성까지 실추된 가이낙스, 토미노 요시유키의 사실상의 은퇴 이후 의욕없는 참여와 부진으로 시리즈물만 찍어내는 양산공장이 되버린 선라이즈, 오시이 마모루의 이탈 이후 마찬가지로 양산형 애니만 찍어내는 프로덕션 IG 등. 하나같이 그 기업을 대표하던 거장들이 없어지니까 단순 양산형 기업이 되거나 가이낙스, 지브리처럼 해체위기까지 맞게 된다. [29]
2019년 기준으로 후계자 양성은 포기한 상황이고, 미술관 운영과 미야자키 부자의 신작 제작에 집중하고 있다. 그나마 정규직 제작인력이 유지될 때에는 여러 신진 감독을 불러다 쓸 수라도 있었으나 제작팀 해체로 그런 능력도 잃은 상황이라 미야자키 고로가 각성하지 않는 한, 지브리의 미래는 어렵다고 보인다.
12.2. 일본의 디즈니?
'일본의 디즈니'라고 많이 비유되기도 했는데, 스튜디오 지브리가 해외 배급을 위해 디즈니와 계약을 맺는다거나, 토이 스토리 3에 토토로 인형이 나오는 등 두 회사도 그런 평가를 의식하는 친밀한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스튜디오 지브리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데 비해 디즈니는 전세계 영화 시장을 장악했다는 소리가 나올 만큼 커졌고, 애니메이션이 현재 디즈니 내에서 차지하는 포지션은 그저 여러 사업분야 중 하나가 되었기에 지금에 와서는 비교 불가이다.
특히나 단순히 애니메이션 분야만 따져봐도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나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집단 창작을 통해 꾸준히 좋은 작품들을 내놓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반면, 지브리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의 재능에만 의존해왔기 때문에 이 둘을 제외하면 사실상 빈 껍데기나 다름 없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지브리 출신들이 직접 지적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 # #
혹자는 현재 지브리의 상태를 월트 디즈니의 사후 침체일로를 걸으며 존립의 위기를 겪었던 디즈니의 사례에 비교하기도 했다. 디즈니의 경우 유능한 경영자와 유능한 제작자의 영입으로 다시 부활할 수 있었지만, 위의 후계자 문제만 봐도 지브리가 유능한 인재 영입을 통해 회사를 쇄신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이런 현실 때문에 일본 내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사후에 지브리가 픽사나 마블 엔터테인먼트처럼 디즈니에 인수합병될 수 있다는 소리도 나온다. 물론 전성기 때 이루어놓은 게 워낙 많기 때문에 여전히 일본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굴지의 이름인 것만은 사실이며, 지브리에서 내놓는 보도자료는 곧바로 미국, 프랑스 등지의 외신들이 물어다가 전세계로 타전할 정도의 위상을 갖고 있다.[30]
스즈키 토시오가 밝힌 바에 따르면 지브리는 일부러 회사 규모를 키우지 않았고, 해외에서까지 실사화 제의가 쇄도했지만 계속 거절해 왔다고 한다. 거기에 캐릭터 라이센싱 사업도 원래는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미야자키 하야오의 허가를 받고 토토로만 예외적으로 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즉, 상업성을 배제하고 철저한 작품성과 예술성을 추구하는 타입인 것. 자사의 IP를 활용한 적극적인 상업화를 전개하는 디즈니와는 상극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13. 관련 인물
13.1. 애니메이터 · 연출가
- 미야자키 하야오
- 타카하타 이사오
- 카타부치 스나오
-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 탄나이 츠카사
- 카나다 요시노리
- 안도 마사시
- 코사카 키타로
- 안노 히데아키
- 미야자키 고로
- 콘도 요시후미
- 콘도 카츠야
- 코니시 켄이치
- 오오츠카 신지
- 아오야마 히로유키
- 모리타 히로유키
- 오오츠카 마사히코
- 니키 마키코
- 미카엘 두독 드 비트
- 하네 유키요시
- 요시다 켄이치
- 타나카 아츠코(애니메이터)
- 토모나가 카즈히데
- 오오히라 신야
- 야마시타 아키히코
- 타나카 유이치
- 하마스 히데키
- 미야지 마사유키
- 타나베 오사무
- 무라타 카즈야
- 타카하시 아츠시
- 사사키 신사쿠
- 하마다 타카유키
13.2. 미술 · 채색 등
13.3. 제작
13.4. 기타
14. 관련 문서
[1] 전 월트 디즈니 컴퍼니 재팬 회장.[2] 전 지브리 미술관 관장. [3] 이를 포함해 스튜디오 건물이 7채 있다.[4] 原徹 1935~. 타카하타 이사오와는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입사 동기이자 미야자키 하야오의 선배다.[5] 열풍(熱風)은 지브리가 매월 발행하는 소책자 팜플렛 이름이기도 하다.[6] 전 월트 디즈니 재팬 초대사장, 월트 디즈니 인터내셔널 부사장, 주식회사 드왕고 사외이사. 캔디캔디의 만화가 이가라시 유미코(いがらしゆみこ), 라이트 노벨 작가 아이소라 만타와 같은 학교 출신.[7] 그런데 정작 본편에서 쿠사카베의 모습은 비록 돈을 아주 잘 벌지는 못하지만 딸들의 얘기를 귀기울여 들어주는 자상한 아버지로 그려진다.(...)[8] 뒤의 세 명이 아역배우 시절에 출연한 것과 달리 오카무라 아케미는 출연 당시 이미 20대 초반이였던데다가 엄연히 양성소까지 졸업한 전문 성우였다. 단지 양성소를 졸업한 후 데뷔작이 지브리 작품이라 눈에 띄일 뿐.[9] 원작인 어스시 연대기의 시간적 배경 기준[10] 작중 배경은 1980년이지만 주된 배경인 회상 장면은 1960년대이다[11] 단 1950년대 회상 장면이 있다[12] 이렇게 되면 현 데즈카 프로덕션처럼 회사 성격이 바뀌는 셈이다.[13] 선라이즈가 이러한 방식의 대표격이며(그 유명한 토미노 요시유키도 선라이즈의 정직원이 아니다.), 지브리나 쿄애니 같은 특이 케이스를 제외하면 상당수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고용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애니메이션을 제작하지 않을 때에는 인건비가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14] 일반적인 일본 애니메이션의 작화 하청만 봐도 한국인, 중국인, 베트남인이 대부분이다. 그마저도 최근에는 원가절감을 위해 한국인 대신 우간다, 니제르 등의 아프리카 국가들이나 북한(핵실험으로 인한 국제 제재 이전)에게 하청을 돌린다.[15] 일부 레이아웃과 그 완성된 영상들이 있지만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은 편. 그래도 몇몇 특이한 레이아웃은 사람 키만큼이나 길게 종이를 쓰는데 보는 순간 입이 벌어지는 진풍경이...[16] 전시회에서 일정 시간을 주기로 전시 감상 방향을 따라 작품의 안내를 한다.[17]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마녀 배달부 키키, 붉은 돼지,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벼랑 위의 포뇨, 바람이 분다. 단, 센과 치히로의 단품은 7월 16일/ 칼리오스트로의 단품은 8월 6일에 발매.[18] 단, 음성 판권이 대원미디어에 있는 모양인지 DVD판에 수록되어 있던 한국어 음성은 수록되어 있지 않다.[19] 시작하기 전 프랑스 배급사인 와일드 번치 로고가 뜨는데, 와일드 번치 측에서 일본과 미국을 제외한 해외 판권을 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20] 콘도 생전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의 연출에 사사건건 참견했고 콘도 요시후미가 타계한 후,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이 너무 몰아붙여서 그런 것은 아니었는지 자책하면서, 이후의 다른 감독들의 작업에는 될 수 있는 한 묵묵히 지켜보는 태도를 취하게 된다.[21] 일설에 의하면, 오시이의 경우는 본인이 지브리에서 감독직을 맡는 것을 거절했고, 안노의 경우는 지브리 스탭들이 곤란해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22] 도쿠마 야스요시 회장 사후 새로 직임한 마츠시타 타케요시 회장이다.[23] 참고로 극장 흥행 수입 금액은 '''50억엔'''.[24] 이 탓에 호소다 감독은 당시 지브리가《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자원을 올인한 데다, 외부인이라는 요인 탓에 별 지원도 받지 못해 자신이 직접 긁어모은 스태프 월급도 못주는 상황에까지 처하는 안습행보를 걷는다. 얼마나 사정이 처절했는지, 호소다 본인도 '''"이제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일하는 것은 끝장이구나"'''라고 생각했다고.[25] 그러나 시간적으로 봐도 호소다 감독이 맡은 하울의 제작이 중단된 것은 고양이의 보은이 개봉되기 전에 일어난 일이므로, 고양이의 보은의 흥행성적 때문에 호소다 감독이 강판당했다는 설은 앞뒤가 안 맞는 추측으로 보인다. 자세한 것은 호소다 마모루 문서 참고.[26] 고양이의 보은의 감독.[27] 미야자키 본인에 의하면 애니메이터가 그려온 그림(원화)를 다시 고치는 일이 작업량이 너무 많기 때문에 가장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손대지 않아도 되는, 또는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좋은 완성도의 그림을 그려오면 "아~! 이것은 좋다! 잘도 이해해 줬구나!"라고 기쁘다고.[28] 스튜디오 지브리의 인턴사원에 지원한 호소다 마모루를 불합격 처리하면서, "자네의 재능을 꺾어버릴 염려가 있어서 불합격시켰다"라는 손수 편지를 보낸 일화도 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때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 재능을 높이 사서 호소다를 직접 지명해서 감독으로 불러들이지만...[29] 단 이중 프로덕션 IG는 2010년 이후로 부활했다. [30] 가령 2019년 10월 17일, HBO Max가 지브리 작품들을 서비스할 것이라는 것이 발표되자, 뉴욕타임스가 곧바로 온라인으로 기사를 송출하고 다음 날 인쇄판 지면에 싣는다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