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 토시오
鈴木敏夫
(1948년. 8월 15일 - ) (7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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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애니메이션 프로듀서이면서 동시에 스튜디오 지브리의 프로듀서이자 대표이사, 편집자이다.
나고야에서 태어나 게이오기주쿠대학 문학부를 졸업. 1972년 도쿠마 서점에 입사 <주간 아사히 예능> 기획부에서 기자로 일하다, 1973년 오일쇼크 등으로 인해 토쿠마 쇼텐의 기획부에서 아동소년편집부로 이동했다. 그러던 중, 1978년 애니메이션 전문 잡지 아니메쥬가 창간, 초대 편집장의 부탁으로 아니메쥬의 편집부로 이동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와의 인연은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을 제작하던 당시 스즈키가 미야자키의 취재를 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미야자키는 "아니메쥬? 그거 애니메이션으로 돈벌이나 하려는 거잖아? 그런거에 협력하면 내가 더러워지는 기분이 든다." 라고 취재를 거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스즈키는 미야자키에게 끌렸고, 미야자키가 매번 바쁘니까 제발 가라고 퇴짜를 놓아도 끈질기게 스튜디오를 출입했다. 그러기를 며칠, 이번에는 미야자키가 루팡과 지겐의 카 체이스 씬을 짤 때, 악당의 차를 "앞지르는" 장면에서 루팡이 어떤 대사로 받아칠 지 고민하다가 스즈키에게 "이럴 때 뭐라고 하면 될까요?"라고 먼저 말을 걸었다. 이 때 같이 갔던 아니메쥬의 편집부 직원 카메야마 오사무가 "まくるぞぉ!(마쿠루조! / 앞지르자!)"라는 경륜용어가 있다고 하자,[1] 이에 미야자키는 "아, 과연 그렇군." 이라고 바로 그 대사를 콘티에 집어넣었다. 그 때부터 점차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칼리오스트로성 문서 여담 항목 참고)
1981년, 미야자키의 여러 기획서를 도쿠마 서점에게 올리지만 원작이 없는 오리지널 기획이라는 이유로 퇴짜를 맞는다. 그래서 스즈키는 원작이 없다면 원작을 그리면 된다고 생각해서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아니메쥬에 연재할 만화를 의뢰했고 그렇게 그린 만화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만화를 그린다는 것이 싫어서 자신의 취향을 살린 그리고 싶은 내용을 그렸는데, 어찌하다보니 우여곡절 끝에 나우시카는 극장용 영화로 만들어졌다. 스즈키는 나우시카의 기획회의에서 단행본 첫 권이 5만 부 발행된 것을 50만 부 팔렸다고 뻥을 쳐서 영상화가 되도록 했다. 나우시카 단행본이 권당 페이지수가 적은 이유도 일부러 낮은 가격에 많이 팔려는 속셈이 있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성공 후, 아니메쥬의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이웃집 토토로, 반딧불의 묘 등등 스튜디오 지브리의 제작을 도와준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권유로 1989년 도쿠마 서점을 퇴사, 스튜디오 지브리로 이직. 붉은 돼지, 추억은 방울방울, 모노노케 히메 등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들의 프로듀서를 도맡아 흥행에 성공하면서 명프로듀서의 위치를 확립한다.
원래 마녀 배달부 키키 이전까지는 지브리는 영화의 선전 활동에 무심했다. 미야자키도 타카하타도 작품만 잘 만들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결국 스즈키가 미야자키에게 '''"그래서 영화관에 손님이 없어 텅빈 것이 좋습니까?"''' 라고 돌직구를 날리자 미야자키는 숙연해졌다고 한다. 스즈키는 평소 친분이 있던 니혼 테레비의 윗분을 찾아가서 밀월관계를 맺고 TV를 통해서 대대적인 홍보 활동을 했고, 키키 이후로는 지브리의 작품은 나올 때마다 일본 영화 흥행순위 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거의 현재의 지브리를 있게 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타카하타 이사오가 양질의 작품들을 쏟아내자 스즈키 토시오는 그 영화들이 작품성에 걸맞은 흥행을 거두기 위해서 열심히 뒷바라지하는 데 애썼다. 그의 노력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의 흥행을 보면 결실을 맺었다 볼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여성들이 198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직장인이 되어 돈을 많이 쓸 것이라고 예상하였으며 지브리 작품을 성인 여성 취향으로 맞추기 위해 작품에 조언 및 이미지 마케팅을 하기도 했다. 이는 정확히 성공을 거두었다.
2005~2008년까지 스튜디오 지브리의 CEO를 역임했고, 현재는 대표이사(代表取締役) 직함으로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나 타카하시 이사오가 말을 잘 못하는 것도 있어서 스튜디오 지브리의 공식 인터뷰나 썰풀기는 주로 스즈키가 대신 하는데 잡지 편집장 출신답게 말을 정돈있고 재밌게 잘해서 팬이 있기도 하다. 깐깐하고 히스테릭하고 오만한 천재 이미지였던 초기의 미야자키 하야오를 현재의 친근한 중년 신사 이미지로 새롭게 이미지 메이킹을 한 것이 바로 스즈키 토시오이다. 하지만 일부 발언은 신빙성이 부족한 걸로 드러나기도 해서 양념을 지나치게 치는 거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1948년. 8월 15일 - ) (7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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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애니메이션 프로듀서이면서 동시에 스튜디오 지브리의 프로듀서이자 대표이사, 편집자이다.
2. 경력
2.1. 지브리 이전
나고야에서 태어나 게이오기주쿠대학 문학부를 졸업. 1972년 도쿠마 서점에 입사 <주간 아사히 예능> 기획부에서 기자로 일하다, 1973년 오일쇼크 등으로 인해 토쿠마 쇼텐의 기획부에서 아동소년편집부로 이동했다. 그러던 중, 1978년 애니메이션 전문 잡지 아니메쥬가 창간, 초대 편집장의 부탁으로 아니메쥬의 편집부로 이동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와의 인연은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을 제작하던 당시 스즈키가 미야자키의 취재를 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미야자키는 "아니메쥬? 그거 애니메이션으로 돈벌이나 하려는 거잖아? 그런거에 협력하면 내가 더러워지는 기분이 든다." 라고 취재를 거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스즈키는 미야자키에게 끌렸고, 미야자키가 매번 바쁘니까 제발 가라고 퇴짜를 놓아도 끈질기게 스튜디오를 출입했다. 그러기를 며칠, 이번에는 미야자키가 루팡과 지겐의 카 체이스 씬을 짤 때, 악당의 차를 "앞지르는" 장면에서 루팡이 어떤 대사로 받아칠 지 고민하다가 스즈키에게 "이럴 때 뭐라고 하면 될까요?"라고 먼저 말을 걸었다. 이 때 같이 갔던 아니메쥬의 편집부 직원 카메야마 오사무가 "まくるぞぉ!(마쿠루조! / 앞지르자!)"라는 경륜용어가 있다고 하자,[1] 이에 미야자키는 "아, 과연 그렇군." 이라고 바로 그 대사를 콘티에 집어넣었다. 그 때부터 점차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칼리오스트로성 문서 여담 항목 참고)
1981년, 미야자키의 여러 기획서를 도쿠마 서점에게 올리지만 원작이 없는 오리지널 기획이라는 이유로 퇴짜를 맞는다. 그래서 스즈키는 원작이 없다면 원작을 그리면 된다고 생각해서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아니메쥬에 연재할 만화를 의뢰했고 그렇게 그린 만화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만화를 그린다는 것이 싫어서 자신의 취향을 살린 그리고 싶은 내용을 그렸는데, 어찌하다보니 우여곡절 끝에 나우시카는 극장용 영화로 만들어졌다. 스즈키는 나우시카의 기획회의에서 단행본 첫 권이 5만 부 발행된 것을 50만 부 팔렸다고 뻥을 쳐서 영상화가 되도록 했다. 나우시카 단행본이 권당 페이지수가 적은 이유도 일부러 낮은 가격에 많이 팔려는 속셈이 있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성공 후, 아니메쥬의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이웃집 토토로, 반딧불의 묘 등등 스튜디오 지브리의 제작을 도와준다.
2.2. 지브리 입사 이후
미야자키 하야오의 권유로 1989년 도쿠마 서점을 퇴사, 스튜디오 지브리로 이직. 붉은 돼지, 추억은 방울방울, 모노노케 히메 등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들의 프로듀서를 도맡아 흥행에 성공하면서 명프로듀서의 위치를 확립한다.
원래 마녀 배달부 키키 이전까지는 지브리는 영화의 선전 활동에 무심했다. 미야자키도 타카하타도 작품만 잘 만들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결국 스즈키가 미야자키에게 '''"그래서 영화관에 손님이 없어 텅빈 것이 좋습니까?"''' 라고 돌직구를 날리자 미야자키는 숙연해졌다고 한다. 스즈키는 평소 친분이 있던 니혼 테레비의 윗분을 찾아가서 밀월관계를 맺고 TV를 통해서 대대적인 홍보 활동을 했고, 키키 이후로는 지브리의 작품은 나올 때마다 일본 영화 흥행순위 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거의 현재의 지브리를 있게 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타카하타 이사오가 양질의 작품들을 쏟아내자 스즈키 토시오는 그 영화들이 작품성에 걸맞은 흥행을 거두기 위해서 열심히 뒷바라지하는 데 애썼다. 그의 노력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의 흥행을 보면 결실을 맺었다 볼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여성들이 198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직장인이 되어 돈을 많이 쓸 것이라고 예상하였으며 지브리 작품을 성인 여성 취향으로 맞추기 위해 작품에 조언 및 이미지 마케팅을 하기도 했다. 이는 정확히 성공을 거두었다.
2005~2008년까지 스튜디오 지브리의 CEO를 역임했고, 현재는 대표이사(代表取締役) 직함으로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나 타카하시 이사오가 말을 잘 못하는 것도 있어서 스튜디오 지브리의 공식 인터뷰나 썰풀기는 주로 스즈키가 대신 하는데 잡지 편집장 출신답게 말을 정돈있고 재밌게 잘해서 팬이 있기도 하다. 깐깐하고 히스테릭하고 오만한 천재 이미지였던 초기의 미야자키 하야오를 현재의 친근한 중년 신사 이미지로 새롭게 이미지 메이킹을 한 것이 바로 스즈키 토시오이다. 하지만 일부 발언은 신빙성이 부족한 걸로 드러나기도 해서 양념을 지나치게 치는 거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3. 기타
- 매주 일요일 지브리의 땀투성이라는 라디오 방송을 하고 있다. 주내용은 지브리의 작품의 제작 비화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뒷담화. 2014년 지브리의 제작팀이 해체된 이후로는 지브리 이야기보다 본인이 관심있는 분야의 문화인을 초대해서 대담을 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에게 게드전기의 감독을 맡긴 장본인이다. 그 밖에 요네바야시 히로마사를 감독으로 발탁하고, 추억의 마니를 원작으로 선택하고, 두 감독에게 만들고 싶어하지도 않았던 바람이 분다와 가구야 공주 이야기를 억지로 설득해서 만들게 했다.
- 오시이 마모루와 30년지기 친구다. 다소 복잡미묘한 오시이와 미야자키의 관계와 달리 스즈키 토시오랑 오시이 마모루는 상당히 허물없는 사이다. 오시이가 대담 도중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을 대놓고 까도 질색하지 않고 부드럽게 받아주는 편.[2] 심지어 오시이 실사 영화에 출연해 머리가 날아가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 키타쿠보 히로유키는 애니메이션 잡지 시절부터 스즈키 토시오를 알았는데 "스즈키 토시오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타카하시 이사오 외에는 안하무인하고 남의 아이디어를 자신의 것으로 훔치는 사람" 이라면서 지브리의 일을 하자는 의뢰도 있었으나 스즈키 토시오 때문에 안 했다고 하기도 했다. #
- 한때 데즈카 오사무의 담당 편집을 맡았던 시기가 있었다.
- 주니치 드래곤즈의 열혈 팬이다
- 주토피아를 관람하고는 "다른 작품들 이상의 걸작"이라고 평한데 이어 하야오에게 전화까지 걸어 "방금 대단한 걸 보았다"라고까지 했다고 한다.
- 너의 이름은. 개봉 전 시사회에서 불안해하는 관계자에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비교하며 반드시 히트한다고 했다. #
- 아사코(영화)를 관람한 뒤, 추천사를 남겨주기도 했고 자기 라디오에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를 불러 평론가와 함께 대담을 나누기도 했다.
- 최근 영상 매체 시장이 스트리밍 위주로 변화함에 따라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 업체와 지브리의 협업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많아졌는데 이에 대해 본인의 발언에 따르면 자신들의 영화가 싸구려 취급받을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협업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혀 잠시 논란이 된적이 있다.#
그러나 최근 워너 미디어와의 계약을 체결하면서 미국 내 한정으로 지브리 영화들은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등을 제외한 오로지 HBO 맥스를 통해서만 볼 수 있게 될 예정이라는공식 보도가 올라오자. 네티즌들은 그렇게 OTT 시장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하더니 결국 돈에 굴복한거냐는 반응들이 오가고 있다.
실제로는 우디 앨런 같은 원로 영화인도 스트리밍 서비스 독점 영화를 만들고, "이런 스트리밍 서비스가 많은 사람들에게 영화를 소개시켜준다" 라고 말하는걸 보고 마음을 바꾼거라고 하며 스트리밍 업체에 지브리 스트리밍권을 넘기면 애니메이션 제작비를 구할 수 있으니 여전히 부정적이였던 미야자키 하야오를 설득해 스트리밍을 계약을 했다고 한다. 북미 쪽만 HBO에 판 것이고 아시아에서는 넷플릭스가 독점 서비스하게 되었다.지브리의 땀투성이 스즈키 토시오 라디오 방송
실제로는 우디 앨런 같은 원로 영화인도 스트리밍 서비스 독점 영화를 만들고, "이런 스트리밍 서비스가 많은 사람들에게 영화를 소개시켜준다" 라고 말하는걸 보고 마음을 바꾼거라고 하며 스트리밍 업체에 지브리 스트리밍권을 넘기면 애니메이션 제작비를 구할 수 있으니 여전히 부정적이였던 미야자키 하야오를 설득해 스트리밍을 계약을 했다고 한다. 북미 쪽만 HBO에 판 것이고 아시아에서는 넷플릭스가 독점 서비스하게 되었다.지브리의 땀투성이 스즈키 토시오 라디오 방송
- 미야자키 하야오가 스즈키 토시오를 모델로 해서 만든 캐릭터를 가르쳐준 적이 있는데, 그 정체는 유바바. 그 이유는 그 신들이 찾아오는 그 온천장을 경영하는 것은 스튜디오 지브리를 경영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란다.
[1] まくる는 경륜용어로 뒤에 있던 자전거가 순식간에 상대방을 앞지른다는 표현으로 가메야마가 평소 경륜 팬이었다고 한다.[2] 스즈키 토시오 본인이 미야자키 하야오를 언급하는걸 들어보면 전담 프로듀서치고 의외로 솔직하고 중립적인 구석이 있다. 바다가 들린다 10주년 기념 대담회에서 미야자키와의 충돌을 털어놓으며 괴로웠다는 모치즈키의 입장을 어느정도 두둔해주면서 "싫어하는 작품이라면 그냥 넘어 갔겠지만, 자신이 만들지 못 하는 젊은 작품이기에 인정하기 싫어 그렇게 분개하였다."라는 얘기를 했다. 심지어 게드 전기 제작 당시 르 귄 여사 앞에서 아들의 그림과 자신의 그림을 비교하는 하야오의 행동을 보고 솔직히 때리고 싶었다라는 발언한데 이어, 자신의 아들을 인정 안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 (하야오)은 작품을 통해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라고 고백했을 정도. 그냥 예스맨이었다면 오시이와의 관계 역시 그리 살갑진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