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먼

 



1. 개요


'''Yeoman'''
중세 잉글랜드의 사회 계급 중 하나.
잉글랜드에서 14~15세기의 봉건 사회 해체기에 출현한 독립 자영 농민[1]으로 '향사' 정도로 번역하는 글들이 많지만, 실질적인 의미로는 중산층 농민에 가까우며, 정확히는 '지방에서 힘 꽤나 쓰는 유지 또는 토호' 정도가 된다. 우리 역사로 치자면 지방 향리, 마름, 부농, 자작농, 소지주 정도가 되겠다. 정말 쉽게 표현하자면 돈이 엄청나게 많은 평민이 요먼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어원은 당시 잉글랜드의 명품 무기였던 장궁의 주 재료인 주목나무를 뜻하는 Yeo에서 따왔다. 어원에서 보듯, 중세 시절 기사 계층처럼 장궁수들은 전문적인 훈련이 필요했기 때문에 직업으로 세습했고 소집 시 중요한 병력 자원이었다.[2] 이들이 안심하고 궁술에 집중하려면 기사 계층처럼 일정한 규모의 토지가 필요했고 역시 대대로 상속되면서 요먼 계층이 형성되었다. 물론 중세가 지나면서 이들이 장궁술은 계속 연마한 건 아니고, 자연스레 사회계층에 편입되어 젠트리 계층에 이어서 지식인-상공인층으로 변모한다. 대략 튜더 왕조 시기 연수입 2파운드 이상의 토지 보유자(젠트리는 20파운드)가 되어야 요먼 계층으로 분류되었다.
인클로저 운동 당시에는 수완 좋은 요먼들은 상품작물 재배 등으로 경영형 부농이 되어 지주인 젠트리로도 상승할 수 있었고, 이들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교육을 받아 군 장교, 성직, 학자 등으로 출세가 가능했기에 중세 시절 귀족처럼 신분이 고착된 것이 아니고 유동적이었다. 물론 흔한 케이스는 아니나 단순 농민이 자작농이 되어서 2~3세대 후 젠트리로 편입되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았다는 것. 대체로 영국 농촌경제를 좌지우지 하는 중산계급이 되었다. 이후 자본주의의 발달에 따라 해체되었고, 특히 산업 혁명 시기의 농업 혁명에 의해 사라졌으나, 요먼 경비대 등 흔적은 아직 남아있다.
영국군에는 요먼대(Yeomanry)라는 부대가 있다. 나폴레옹 전쟁프랑스군영국에 상륙할 것을 대비해 동네 요먼들을 모아 만든 기병대가 시초. 지금도 예비군 연대로 존재한다.

2. 관련 문서


[1] 본래는 봉건적 기사 비슷한 사람들이었으나 노르만인들의 정복으로 봉건적 신분에서는 몰락했다.[2] 브레이브 하트에서 에드워드 1세가 장궁수들은 아끼고 보병들은 맞아죽던 말든 버리는 장면도 나온다. 보병은 아무나 끌어다 기본적인 무기만 쥐어줘도 최소한의 역할은 해내지만 궁수들은 제대로 써먹자면 장기간의 훈련이 필요한 고급 병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