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파헬벨
'''완벽하고 흔치 않은 거장.'''
―다니엘 에벌린(Daniel Eberlin), 당시 아이제나흐 궁정의 카펠마이스터
1. 개요
바로크 시대 독일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 연도상으로 보면 북스테후데와 바흐의 중간 세대이다.
2. 생애
1653년, 뉘른베르크의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한스 파헬벨은 와인상이었다. 어릴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파헬벨은, 성 제발두스 교회에서 성가대의 수석 성가대원인 음악가이자 음악교사인 하인리히 슈베머에게서 기초적인 음악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같은 교회에서 오르간 연주를 담당한 뉘른베르크 악파의 중요한 음악가인 게오르그 카스파 베커에게서도 수학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 기록은 오늘날에 와서는 신빙성을 의심받고 있다. 슈베머와 베커는 모두 뉘른베르크 악파의 창시자로 꼽히는 요한 에라스무스 킨더만의 제자들이기 때문에 가능성은 어느정도 있지 않을까 싶다.
파헬벨의 생애에 대한 중요한 기록은 1740년 함부르크에서 요한 마테존이 쓴 전기 모음집 《개선문의 기초(Grundlage einer Ehrenpforte)》로, 이 책에 의하면 젊은 파헬벨은 학문과 음악에 대한 열정이 넘쳤고 매우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성 로렌츠 교회의 부속학교에서 초등교육을 마친 파헬벨은 1669년, 알트도르프 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부친의 재정난 때문에 1년만에 대학을 그만두어야 했다.
하지만 학업에 대한 열정을 멈출수 없던 파헬벨은 레겐스부르크의 김나지움 포티쿰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워낙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라 교수들이 캐감동을 먹고 학교밖에서 음악을 배우는것도 허락해 줬을 정도였다고 하니 알만하다. 이 시기에 파헬벨에게 음악을 가르친 선생은 킨더만의 요한 카스파르 케를의 제자인 카스퍼 프렌트로 그에게서 이탈리아 오페라나 가톨릭 교회 음악을 접하게 된것으로 보인다.
2.1. 음악 활동
파헬벨은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였던 빈의 성 슈테판 대성당에 오르간 연주자로 공식적인 음악 생활을 시작했으며 후에 1677년 아이제나흐 궁정의 오르가니스트로써 1년 동안 봉직했고, 에어푸르트로 옮겨가 그 자리에 12년 동안 일했다. 바로 이곳에서 파헬벨은 바흐 가문의 요한 암브로지우스 바흐와 인연을 맺기 시작하여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누나 요한나 유디타 바흐의 대부가 되었고, 형이었던 요한 크리스토프를 3년동안 가르치기도 했다. 이곳에서 결혼했지만 흑사병으로 부인을 잃었으며 재혼을 해 슬하에 일곱 자녀를 두었다. 이후 2년간 슈투트가르트에서, 3년간은 고타에서 오르가니스트로 일했고 말년에는 교향 뉘른베르크의 성 제발두스 교회에서 일한다.
3. 작품세계
음악적으로 보면 파헬벨은 매우 중요한 작곡가로 파헬벨의 코랄 전주곡이나 토카타, 환상곡 같은 오르간 곡들은 정교한 대위법이 적용된, 디트리히 북스테후데의 북부 독일 양식에 비견되는 남부 독일 양식의 대표적인 표본으로써 후배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파헬벨의 작품은 히데오 츠카모토(Hideo Tsukamoto)의 분류를 따라 T. 번호로 표기한다. 분명 나름대로 다작을 한다고 하긴 했는데 어째 역사의 평가는 원 히트 원더(…) [1]
- 요한 파헬벨의 카논
- 샤콘느, 푸가, 푸게타, 마니피카트 푸가 등
- 다양한 교회 음악들 (오르간용)
- 마니피카트 푸가 No.7, D.F.필체커의 오르간 연주 : ##
3.1. 카논과 지그
작곡가로서 여러 곡을 남겼지만 대표곡은 역시 카논. 정확한 이름은 《세 대의 바이올린과 지속저음을 위한 카논과 지그 라 장조》(독일어: Kanon und Gigue in D-Dur für drei Violinen und Basso Continuo)가 유일하게 대중적으로 알려진 그의 곡이다. 더 정확히는 이 곡 초반부가 파헬벨의 카논으로 알려진 것이다.
파헬벨의 카논은 클래식의 주류에서 잊혀졌다가 만들어진지 225년뒤인 1919년에 파헬벨의 음악에 관심을 가진 학자 구스타프 베크만(Gustav Beckmann)에 의해 악보가 출판되고, 21년뒤 1940년 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가 음반을 처음 냈으며, 다시 40년뒤에 아카데미 수상작인 1980년 영화 보통 사람들에 삽입되면서 비로소 대중에 알려지게 되었다. 즉, 대략 300년 가까이 묻혀있다가 부활한 곡이다.
[1] 실제로 파헬벨의 작품번호는 T.500(!)에 육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