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온 색채
1. 개요
'''The Colour Out of Space'''
1927년 9월에 <어메이징 스토리즈>지에 발표된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대한민국에서는 황금가지에서 2009년에 번역 출간한 <러브크래프트 전집> 2권과 현대문학에서 2014년 번역 출간한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에 실렸다.
이 소설에서는 '실체화된' 공포의 존재가 등장하지 않는다. 제목 그대로 여기서 나오는 공포의 존재는 우주에서 떨어진 운석에서 나타나게 된 '''괴상한 색채'''이다. 주인공이 아캄의 한 시골 농촌에 도착하여 농촌 한가운데에 있는, 사방이 온통 잿빛인 '마의 황무지'에 관한 이야기를 이 황무지가 만들어진 계기가 된 사건의 목격자인 '아미 피어스'라는 노인에게서 듣는 것으로 진행된다. 즉, 여기서 나오는 이야기는 첫부분과 끝부분을 제외하면 모두 화자인 아미의 시점으로 진행되고 있다.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인색한 평을 내리던 러브크래프트 본인이 이 작품을 아주 맘에 들어해서 자신의 소설 중 이 작품을 최고로 쳤다고 하며,[1] 스티븐 킹은 이 작품의 오마쥬격인 작품 《토미노커》(The Tommyknockers)를 쓰기도 했다. 그리고 저서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이 소설 속의 대사를 '''형편없는 대화문의 예시'''로 인용하면서 "'''러브크래프트 같은 외톨이는 마치 자기 모국어 아닌 언어로 글을 쓰는 것마냥 생기없고 뻣뻣한 대화문만 써내기 마련인데, 그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대화 장면이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자기가 대화문 형편없게 쓰는 줄을 러브크래프트 본인이 아마 더 잘 알았을 것'''"이라고 깠다.[2]
그리고, 러브크래프트 본인이 이 작품을 아주 마음에 들어하고 최고라고 자평했듯이, 평단과 독자들도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이 작품은 러브크래프트 사후까지 따로 출간은 되지 않았지만, 미국 대표 단편집을 비롯해 여려 선집에 실리기도 했으며, 어메이징 스토리에 실릴 무렵에는, SF의 전기를 마련했다라는 평을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평가를 받은 이유는 분명한데, 크툴루의 부름 이후 후기 작품의 중요한 특징인 자리잡은 공포와 SF의 결합이 본격화되고 정점에 오른 소설이었기 때문. 어느 날 불쑥 우주에서 찾아든 색채는 순박한 농부 나훔과 가드너 일가를 파멸시켰으며, 색채는 나훔의 파멸에 대해 아무런 이유를 설명해주지도 않으며, 동정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럴듯한 이유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나훔과 그의 가족이 농장을 버리지 못했다는 것뿐, 이를 통해서 러브크래프트는 냉정하고 잔혹하며 거대한 우주와 상대적으로 나약하기 이를데 없는 인간 사이에 색채라는 실체 없는 분위기를 주입하는 것으로써 긴장감을 끌어가는데, 러브크래프트의 말대로 "분위기"로 승부를 보고, 성공을 거둔 작품인 것이다.
2. 줄거리
원래 마의 황무지는 나훔 가드너라는 농부의 땅이었는데, 어느 날 나훔의 밭 한가운데에 운석이 떨어졌다. 이 운석은 어떤 수용액에도 녹지 않았고, 가만히 놔뒀더니 열을 내면서 증발하여 사라졌다. 분광 스펙트럼을 분석한 결과 이 운석의 성분에는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색채(Color)'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후 나훔의 밭은 완전히 못 쓰게 되어버렸고, 밭에서 나는 식물은 괴상한 색을 띄며 거대하게 부풀어올랐다. 운석에서 발생한 괴상한 색채에 잠식된 존재들은 이내 푸석한 잿빛으로 변해서 부스러졌다. 나훔의 자식들은 하나둘 어딘가로 사라졌는데, 아내가 견디지 못하고 미쳐버린 뒤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나훔의 집을 자주 찾던 아미는 어느 날 나훔 본인마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것을 알아차리고 경찰을 불러왔지만, 간신히 의식이 남아 있던 '''나훔의 얼굴과 비슷한 알록달록한 얼룩'''에게 모든 것의 내막을 듣게 된다.
운석이 사악하거나 불길한 무언가 정도가 아니라, '살아' 있었다. 모든 이변의 원인은 이 색채가 나훔의 집 뒤편에 있는 우물에 눌러앉은 뒤 우물물이 뿌려진 모든 것을 산채로 빨아먹고 생명을 태워버렸기 때문. 물론 우물물을 마신 나훔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훔이 눈치챘을 때는 이미 아들들은 전부 우물의 녹이 된 상태였다.[3] 그리고 이 고백이 끝나기가 무섭게 색채가 아미 일행이 있는 나훔의 집을 덮친다. 이때 마차를 버리고 도망치는 말들과 나훔의 마굿간에서 이 세상 것이 아닌 듯 울부짖는 나훔의 말의 모습이 백미."아무것도... 그 어떤 것도 아니야... 색깔이 모든 것을 태워... 차갑고 축축하지만... 뭐든지 태워버려... 우물에 살고 있지... 작년 봄에 피었던 꽃들 색이랑 똑같다네... 밤마다 우물이 빛을 뿜어냈어... 메르니랑 제나스, 살아있는 건 모두 붙잡아서 남김없이 빨아먹었어... (이하 생략)"
겨우 뒷문을 통해 나훔의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언덕까지 도망친 아미 일행은 나훔의 집이 잿빛으로 변해 스러지고, 집터 상공에 우주공간으로 연결된 것으로 보이는 포털이 열리고 기괴한 빛깔이 나훔의 우물로부터 거칠게 솟구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3. 기타
나훔의 집이 있는 마의 황무지는 소설 속의 현재 시점에서도 넓어지고 있다고 한다. 색채가 아직도 그 땅에 남아있는 듯하다... 마지막 부분에서 색채가 다시 우물로 떨어지는 걸 오직 아미 혼자만이 목격했다고 한다. 그 후에는 아미도 공포에 질려 우물 안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문제는 이 작품의 주인공이 아캄의 그 동네를 찾아간 이유가 '''조만간 그곳에 댐이 지어져서 마의 황무지가 물에 잠겨 저수지가 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아미에게서 색채 이야기를 듣고는 바로 자기가 하고 있던 저수지 관련 일을 그만 두고 다시는 아캄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물론, 이 양반도 아미도 곱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미도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죽을 거란 암시가 뜨고[4] 주인공은 이야기 마지막에 아미의 생존에 대해 공사 진행자에게 편지로 계속 알려달라고 당부하며 오늘도 악몽을 꾼다는 대사를 보면 죽을 때까지 악몽에 시달릴 듯하다.
묘하게 방사능이 연상된다. 실제 이 작품이 쓰이던 시기부터 방사능의 위험성이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4. 영상화
[image]
- 악령의 미스테리 (Die, Monster, Die!) (1965년)
- 저주 (The Curse) (1987년)
영화배우인 데이빗 키스(David Keith)의 감독 데뷔작. 데이빗 키스는 이 영화 이후로도 겨우 두 편 정도 더 연출했을 정도로 감독으로는 썩 행보가 좋지 못하다.
[image]- 컬러 프롬 더 다크 (Colour from the Dark) (2008년)
이탈리아의 호러 영화 감독 이반 주콘(Ivan Zuccon)이 연출한 이탈리아 영화. 원작과 달리 피칠갑 영화가 되어서 평이 매우 안좋다.
[image]- 더 컬러 (Die Farbe) (2010년)
독일의 영화 감독 후안 부(Huan Vu)가 연출한 독일 영화. 지난 영화들과 달리 모두 흑백으로 촬영되어 색이라는 요소를 잘 살렸다. 영화 자체의 평은 가장 좋은 편이다.
- 컬러 아웃 오브 스페이스 (The Color out of Space)
닥터 모로의 DNA의 각본을 쓰고 중도까지 연출[5] 했었던 리차드 스탠리가 연출을,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을 맡았다. 공개된 사진에서는 다소 보랏빛의 색채를 사용하였다. 배경을 현대로 옮겼지만 원작이 잘 반영되었으며, 로튼 토마토에서 신선도 86%로 평가는 좋다.
5. 매체에서
크툴루 신화를 시각적으로 미디어 믹스하는 시도는 오래 전부터 많이 있어왔지만 우주에서 온 색채만큼은 '''지구 상에 존재하지 않는 색'''같은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니만큼 표현 방식이 추상적이고 분위기의 영향을 크게 받는 편인데, 일반적으로는 여러가지 색을 기묘한 느낌으로 그래디언트하는 식의 상당히 추상적인 방식이나, 그냥 현존하는 색 하나를 사용하되 분위기를 기괴하게 조성하는 방식을 채용한다. 보드게임 아캄 호러에서 사용된 일러스트는 후자를 채택해서 그냥 초록색에 가깝게 표현되었다.[6]
이 소설이 원작은 아니나 모티브를 가져온 듯한 영화 서던 리치: 소멸의 땅에서는 미지의 존재를 비눗방울 막이나 기름막 같은 무지개빛 굴절로 나타냈다.
다키스트 던전의 세번째 DLC인 광기의 색채(Colours of Madness)의 모티브가 되었다. 여기서 색채와 비슷한 역할의 물건을 표현하는 주요 색깔은 하늘색 계열의 형광색이다.
모바일 게임 영원한 7일의 도시의 리리코 신기의 모티브다.
후지타 카즈히로의 만화 쌍망정은 부숴야 한다의 주요 소재이다. 쌍망정은 우주에서 운석처럼 떨어져 온 어느 악의적인 존재로 인해 오염되어 형형색색으로 변하던 물의 색에 반한 화가 데이도가 그 물로 그린 그림으로 채워져 있는 죽음의 저택이다.
[1] 그리고 에리히 잔의 선율도 러브크래프트 자신이 생각해서 가장 잘 쓴 작품이라고 자평했다.[2] 황금가지판과 현대문학판에서 표준어로 번역된 나훔의 대사는 원본에서는 사투리이다. 유혹하는 글쓰기에 인용된 대사 역시 사투리로 번역되었다.[3] 나중엔 색채 쪽도 숨길 생각 뭐 그런 게 없었는지, 제나스를 서서히 무너뜨리더니 우물로 유인해 잡아먹었다고 한다.[4] 애당초 나훔이 아미에게 버텨봤자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말 하면서 그곳을 벗어나지 않았다.[5] 도중에 강판되어 존 프랑켄하이머로 교체되었다.[6] 공포체크 실패시 정신력이 4나 깎인다. 꽤나 무섭게 생긴 괴물도 정신력 감소는 3 정도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치명적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