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국
1. 개요
독일 제국이 우크라이나에 세운 괴뢰국이다.
2. 역사
1917년 러시아 제국에서 일어난 2월 혁명 이후에 옛 러시아 제국의 영토 안에서는 많은 국가들이 독립하였다. 그 중에서 우크라이나에서는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얼마 못가 우크라이나의 행정부 격인 우크라이나 중앙 라다는 정치 경험이 부족하였기에 해산되어 버렸고, 1918년 4월 우크라이나를 동부전선에 주둔하는 독일군의 식량을 제공하는 거점으로 하기 위한 독일 제국에 의해 괴뢰 국가인 우크라이나국이 수립되었다.
우크라이나국은 당시 독일 제국의 반공ㆍ반사회주의 정책을 본받아 중앙 라다 정부가 농민에게 분배하고 있었던 농지를 과거 토지를 가지고 있던 지주에게 돌려주었다. 하지만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이후 독일군의 주둔으로 인해 볼셰비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독일 제국이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한 직후, 중앙 라다 세력이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의 부활과 독일 괴뢰 정권을 퇴출시키기 위해 키예프에서 정변을 일으켰다. 파울로 스코로파즈키는 항복하였고,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이 1918년 12월 초, 다시 건국되었다. 그러나 볼셰비키 러시아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이 사실상 파기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행동을 개시하였고, 비록 중앙 라다는 협상을 요청했지만, 우크라이나군은 소비에트 러시아군에 밀려 패퇴하였고, 키예프가 함락되었다.
이후 우크라이나는 혼돈 그 자체였다. 남부에서는 네스토르 마흐노의 아나키스트 봉기가 이어졌고, 캅카스에서 세력을 키운 안톤 데니킨의 백군 세력이 우크라이나 동부로 진군하였다. 또한 새로 독립한 폴란드 공화국의 군대가 서우크라이나로 진군해 들어왔고, 그들과 소비에트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외세의 침공으로 사면초가에 빠진 세묜 페틀류라가 이끄는 서우크라이나 잔존 군대는 1920년 6월, 폴란드와 바르샤바 조약을 맺어 동맹을 맺었다.
그 즈음은 소비에트 러시아가 남러시아 백군을 무너뜨린 때였고, 서우크라이나의 페틀류라 군대와 연합한 유제프 피우수트스키의 폴란드군은 소비에트에 공세하여 키예프를 탈환했지만, 세묜 부됸니와 미하일 투하쳅스키의 소련군에 역습을 당해 패주하였고, 8월에 바르샤바 인근까지 후퇴하였다. 하지만 폴란드군은 '비스와강의 기적' 으로 역전에 성공하여 다시금 소련군을 패퇴시키고 진군하였으며, 내전에 집중하기 위해 블라디미르 레닌의 소비에트 정부는 교섭을 제안하였다. 리가 조약으로 폴란드-소련 전쟁은 마무리되었고 페틀류라 세력은 그 동안 타르투프에 망명 정부를 수립하였지만 폴란드 정부는 전쟁 직후 그들을 내쫒았다. 페틀류라는 파리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