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콘급 항공모함
1. 제원
2. 개발
1930년도 영국은 아크로열급 항공모함과 같이 정규 항공모함을 배치하면서 항모전단을 따라다니며 지원과 수리를 해주기도 하고 또 자체적으로도 항모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지원형 경항모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1939년 4월에 영국 해군은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 있는 조선소에 주문을 하게 된다. 그러나 전쟁의 여파로 인하여 미뤄지다가 1941년 11월이 돼서야 건조가 시작된다. 당시는 영국 본토 항공전이 거의 끝난 상태였으나 독일 폭격기들이 계속 영국 본토에 야금야금 폭격을 하던 중이였고, 대서양에서는 영,미 수송함대와 독일 유보트와의 피말리는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으며, 동부전선에서는 이미 독일이랑 소련이 서로 뼈빠지게 싸우는 등 여러 전선이 다급하게 돌아가고 있는 중이였다. 거기에 한달도 안 돼서 일본이 미국과 영국에 동시에 전쟁을 선포하면서 유니콘급의 건조는 신속히 이루어 져야 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에는 원래 유니콘이 탑재할려 했던 수리장비의 탑재를 미루고 항모 자채만이라도 신속히 건조하기로 하여 1943년 3월에 이르러서야 운용을 개시했다.
유니콘급으로 시도한 항공정비모함이지만, 이후 영국이 경제의 악화를 비롯해서 항공정비모함의 필요성에 의문이 생겨 이후 콜로서스급 항공모함 2척을 개조한 것 이외에는 더이상의 항공기정비모함이 건조되지 않았다. 사실상 처음부터 항공정비모함으로 계획한 것은 유니콘급이 유일한 셈. 유니콘급은 개발 특성상 기존 항공모함의 개발과는 좀 동떨어져 있다.
3. 활약
[출처]
1944년, 실론에 도착한 일러스트리어스와 유니콘
유니콘은 막 취역했지만 정작 유럽 전선에서는 북아프리카 전선이 끝나가서 항공정비모함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1943년 10월, 유니콘은 HMS 일러스트리어스, 퀸 엘리자베스, HMS 밸리언트, HMS 리나운과 함께 인도양으로 파견된다. 1944년 1월 27일에 코친(Cochin)에 도착했고 그해 2월 2일에 실론섬의 트링코말리(Trincomalee)에 도달했다. 이후 영국이 본격적으로 대일전에 참가하면서 유니콘은 영국 기동함대를 보조했으며 오키나와 전투를 준비하기 위해 대만과 사키시마(先島)에 있는 비행장을 폭격하기도 했다. 일본이 항복하면서 유니콘은 자잘한 보수를 위해 호주 시드니로 이동했고 1946년 영국 플리머스로 귀항한 뒤 퇴역했다.
사세보항에 정박한 유니콘
그러나 1949년, 국공내전의 종결과 같은 극동지역의 정세가 심각하게 돌아가자 유니콘은 다시 재취역해서 싱가포르를 거쳐 일본 사세보항으로 향했다.[2] 유니콘이 일본으로 향하던 도중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마침 가고있었던 유니콘은 그대로 한국전쟁에 투입되게 된다. 유니콘은 주로 항공기 수송을 맡는 보조적인 임무에 종사했지만 재미있게도 한국전쟁 중에 해안 포격을 한 경력이 있는 유일한 항공모함이다. 손원일 제독 역시 유니콘에 방문한 적이 있다. 이후 전선이 교착되자 유니콘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고 항공기 수송 및 동남아시아 정세를 관찰하기 위해 싱가포르로 이동했다. 1953년, 한국전쟁의 휴전 협상이 진행될때까지 약 8개월간 싱가포르에서 머물었는데 7월 26일, 해적의 공격을 받아 구조를 요청한 상선을 구조하기도 했다.[3] 한국전쟁의 종결로 유니콘은 또다시 먼 바다를 건너 1954년, 영국으로 귀환했다.
유니콘은 1951년부터 고민한 문제가 수면위로 올라오는데 바로 신형 함재기를 운용 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였다. 영국이 머리를 굴려본 결과 유니콘이 제트기를 운용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개장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개장되지 않았고 대신 더 큰 크레인으로 교체해서 항공기 수송용으로 써먹는다. 유니콘은 사실상 1953년에 전투함으로는 퇴역했고 1958년에 완전히 일선에서 물러나서 1959년 스크랩된다.
4. 기타
전함 모에화 게임들에 등장한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고. 그리고 어비스 호라이즌에도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