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리어스급 항공모함
1. 제원
2.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 해군의 주력 항모이며 본격적으로 비행갑판이 장갑화된 항모이었다.
3. 함선 일람
4. 영국 해군의 주력 항모
4.1. 배경
1918년도에 아거스(HMS Argus, I49)를 취역시키면서 세계 최초로 현대 항모의 표준을 보여준 영국이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개전 시기 쯤에 가면 아크 로열(HMS Ark Royal, 91)을 뺀 나머지 항모들은 구식화 되어가고 있었기에 영국 해군은 새로운 항모를 필요로 했고 그에 따라 등장한 것이 일러스트리어스급이었다.
영국 해군의 항공모함은 북대서양 혹은 대서양에서 활동할 것이 상정되었는데, 이 해역에서는 함대가 지상발진 항공기의 위협을 받을 가능성이 컸다. 이 경우 지상발진 항공기는 일반적인 함재기가 탑재하는 폭탄보다 더 무거운 폭탄을 싣고 올 경우가 컸으므로 이에 대응하기 위해 갑판을 장갑화하고 대공화기를 증강한다는 컨셉으로 개발된 것이 본 함급이다.
4.2. 함선이 가진 세부사항
일러스트리어스급은 장갑항모이지만 아크로열 이후로 진수되어 기존 항모보다 더욱 발전된 형태를 가진다.
4.2.1. 고도화된 피해 대응 대책
일러스트리어스급은 기존 항공모함에 비해 화재 대응능력에 신경쓴 항공모함이다. 만약 폭탄이 갑판을 관통및 내부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그 즉시 격납고 격벽으로 차단, 추가적인 화재의 번짐을 막을 수 있었으며 인화물질의 취급 및 보관 역시 선진적이였다. 그리고 항공유 탱크가 흘수하에 있었으며 이는 해수 탱크 내부에 설치되어 탱크와 갑판은 항공유파이프가 연결했다. 또한 수압을 이용하여 항공유를 탱크로 부터 끌어올려 피격시 기화된 유증기등 인화가스가 함내에 퍼지는것을 원천 차단 할 수 있었다. 이 점은 동일한 장갑항모였던 다이호보다 안정적인 구조였으며 차별점이라고 볼 수 있다.
4.2.2. 레이더의 채용
영국은 전간기부터 레이더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레이더가 2차 대전의 해전 양상의 중요포인트가 될것임을 알게 된다. 따라서 레이더를 일러스트리어스급에 탑제하기 위해 초도함인 일러스트리어스의 진수를 3개월 미루며 레이더 장비를 탑재하기에 이른다. 또한 함내 레이더 관제를 위한 장비를 아낌없이 추가하였으며 더욱 효과적인 전투 초계임무를 할 수 있게 된다.
4.3. 장갑갑판
일러스트리어스급의 핵심적인 요소인데, 실제로 이 3인치짜리 장갑갑판은 일러스트리어스급의 상징으로써 전쟁 동안 일러스트리어스급이 단 한 척도 격침되지 않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물론 이에 따른 항해안정성의 하락, 갑판 수리의 난해함과 같은 단점도 있었지만 그래도 2차 몰타 항공전 당시 폭탄 지근 5발, 명중 7발을 맞고 견뎌낸 일러스트리어스나 카미카제에 충돌하고도 심한 손상이 없었던 빅토리어스 등 일러스트리어스급의 명성을 퍼트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요소.[3]
그러나 이 장갑갑판에 대해서는 다소 평가가 엇갈린다.
4.3.1. 비판
우선 장갑갑판에 의한 무게중심의 상승 등이 문제가 되어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타국의 항공모함보다 함재기 숫자가 부족한 편이었다. 심지어 1번함인 일러스트리어스의 함재기는 36대였다.[4] 다른 자매함 역시 55대 이하의 함재기만을 적재할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요크타운급 항공모함이나 쇼카쿠급 항공모함이 80대 이상의 함재기를 운용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상당히 차이가 있는 셈이다. 항공모함이 단순히 한두척으로 편성되어 돌아다니는게 아니라, 다수의 항공모함과 경항공모함들이 동시에 몰려다니었던 태평양의 상황을 감안해보면 그 함대에 편성된 함재기 수량 격차는 더더욱 벌어진다.
따라서 장갑갑판을 포기하고 함재기의 숫자를 늘리는 게 더 좋았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이는 태평양 전쟁 당시 항모 기동부대 간 항공전에서는 함재기가 기본적으로 수백 대가 투입되면서, 수십~100여기 이상이 갈려나가는 전투도 흔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함재기의 부족은 치명적이다.
또한 제한된 함재기 탑재량은 사용목적에 맞춘 함재기의 수용여부 문제를 야기했다. 본질적으로 부족한 항공모함의 함재기 수용능력을 극복하기 위해, 멀티롤 함재기가 반드시 강요되어야만 했고 영국은 전쟁기간 내내 함재기 개발에 어려움을 겪었다. 일례로, 미국같은 경우에는 이미 41년도에 실전투입되는 요크타운급 항공모함들이, 전투기와 뇌격기, 급강하폭격기를 각각 20대 이상 씩 갖추어균형잡힌 편성이 가능했다. 반면 아크로열급은 수상제공권 확보를 위해서 수상전투기를 20대 이상 갖추는 순간, 적 함선을 직접 타격할 기체가 극히 부족해진다는 난점에 처하게 된다. 대전기의 대공포로 항공기를 요격하는게 꽤나 힘겨운 일이라고 하더라도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뇌격기들과 급강하폭격기들은 적 함대에 돌입하기 직전 요격에 취약해지는 순간이 반드시 존재했다. 이로 인한 피해를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미국과 일본의 항모기동부대는 함재기 데미지 컨트롤 능력뿐만 아니라, 충분한 공대함공격대 숫자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아크로열급은 부족한 함재기 수용능력으로 인해 단 한 번의 공습에 모든 것을 걸어야했고 연이은 2파 공습, 3파 공습은 공군에게 맡기거나, 수상함대가 가서 끝장을 내는 식으로 운용을 해야만 한다는 난점에 처하게 된다.
또한 함재기 개발 자체도 부진했다. 대전 전까지는 함재기를 개발하는데 쓸 예산마저 대공황으로 맛탱이가 가버린 해군을 복구하는데 써야했고 1939년 이전까지 해군은 자체적인 항공대가 없다시피 한 상태였다.[5] 막상 대전이 닥치자, 공군은 이미 순항최대속도 500-600km을 넘기는 최신식 레시프로 기체를 배치하고 운용하고 있을때, 여러 단점들을 가지고 있는 복엽기인 시 글래디에이터와, 소드피쉬를 울며겨자먹기로 써야하는 상황이 닥치게 되었다. 주로 상대했던 독일 해군이나 이탈리아 해군의 함재기들이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복엽기보다도 더 제공전에 불리한 수상기였기에 망정이었지, 만약 항공모함이 있었다면 꽤나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고, 실제로 영국해군은 독일 공군의 세력권 내부로 복엽기들을 투입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6] 함재기 자체개발을 위해 시 허리케인, 시파이어, 시퓨리, 페어리 바라쿠다 등 공군에서 사용하던 기체들을 해상용으로 리모델링하면서 다양한 기체들을 시험해보지만, 본질적으로 공군을 위해 개발된 기체들이 가지는 한계, 즉 함재기로 처음부터 설계된 기체들과 비교했을 때 이런저런 난점들을 가지게 되면서 한동안 함재기군 일체를 미해군 기체에 의존하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7]
항모가 아무리 튼튼해봐야 함재기가 없다면 즈이카쿠마냥 미끼 이외에는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 따라서 현재의 항모처럼 우월한 배수량을 확보할 수 없었던 당시로서는 갑판의 장갑화보다 함재기의 수량 확보를 더 신경쓰는 편이 나을 수도 있었다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8] 이 함재기 부족 문제는 다음 함급인 임플래커블급 항공모함에서 어느 정도 해결된다.
4.3.2. 옹호
하지만 이는 영국군이 일러스트리어스급을 개발할 때 처했던 작전상황과 교리를 무시하고, 태평양 해전의 항공모함 교리들에 기반한 후대의 시선으로 바라본 평가로, 영국이 일러스트리어스급의 설계를 진행할 당시에 장갑판을 갖추면서 함재기 탑재 수량을 줄인 것은 그렇게 비합리적인 행위가 아니었다. 게다가 후대의 평가를 보더라도 미국이 장갑항모를 채택한 것을 보면 해군 조약에 배수량이 제한된 상태에서 어쩔 수 없는 타협을 한 것이었다.
장갑이 가지는 방어력은 2000m이하 에서 투하된 220kg의 폭탄 또는 3500m 이상에서 투하된 110kg 폭탄의 공격을 버티도록 장갑이 설계된다.
기본적으로 원양에서의 작전을 기본으로 한 미국과 일본 해군과 달리 영국 해군은 좁은 지중해와 북해, 그리고 대서양에서의 주요 교전이 펼쳐질 것이라 예측했고, 이 경우에는 적의 육상 비행장과 함대의 거리가 대양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짧아진다. 실제로 태평양 전쟁 중반부에, 드넓은 태평양에서 기동 작전을 펼친 미 해군과 일본 해군의 기동거리와 작전거리를 보면 작전 하나에 기본적으로 일천km단위를 찍는 반면, 영국이 실제로 2차대전에서 숱하게 맞이한 지중해에서의 교전들은 적과의 거리가 짧으면 100km까지 줄어드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따라서 함대가 적기를 발견하고 방공 태세에 돌입하면서 함재기가 요격에 나설 시간이 극도로 짧았으며, 이는 다음과 같은 요소를 야기하게 된다. 적의 해군 항공대가 아니라 적 공군의 직접적인 공격을 받음과 동시에 함대 또한 우군 공군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어차피 항공모함이 함재기를 무식하게 싣고 다녀봐야, 미 해군처럼 항모를 풀빵 찍듯 찍어낼 게 아니면, 공군이 작정하고 굴리는 기체의 숫자에 당연히 밀릴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비교적 적기를 조기에 발견하고 차단할 수 있거나, 아예 항모를 적 함대로부터 숨기는게 가능한 태평양과 달리, 북해, 지중해, 북대서양에서 언제든지 적 공군에게 항모가 공습당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어야 했으며, 따라서 항공모함의 생존력을 염두에 둔 자체 방어력 확보가 불합리한 판단은 아니다. 실제로 일러스트리어스급들은, 잦은 피격기록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살아남았으며, 일례로 포미더블의 경우 카미카제를 직격으로 맞고 버틴다음 5일후 또 카미카제 공격을 당했는데도 멀쩡히 버텨냈다.
또한 대전 전에 각 해군의 교리는 어디까지나 전함이 재해권을 가져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지, 무슨 항공모함의 시대가 찾아올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항공모함의 능력에 크게 집착한 일본해군은 함대결전사상에 따른 점감요격을 하기 위해 보조전력으로서 항모를 크게 대우한 것이고, 미 해군도 드넓은 태평양에서의 종심거리를 감안해서 항공모함을 맞춘 것에 가깝다. 반면 영국해군은 항공모함이 적 함대를 발견하거나, 적 함대의 발을 묶는 수준, 우군 공군의 손이 닫지 않는 곳에서의 최소한의 개함방공 혹은 우군 공군이 오기 전까지의 시간끌기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고 인식하고 있었으며[9] , 일러스트리어스급이 취역할 당시에는 비교적 적은 함재기 탑재 수량은 단점이기는 하지만 제한된 목적으로 사용하기에 충분하다고 여겨질 수 있었다.
거기다 영국 해군이 주 전장으로 상정한 북해/북대서양의 일기는 미 해군이 주로 활동했던 태평양에 비해 '''매우 불량하다.''' 태풍이 불지 않는 한 바람이 적고 잔잔한 열대 태평양과 달리, 영국 해군이 활동한 북해/북대서양은 5m 너울 쯤은 일상에 가깝고 10m급 너울도 드물지 않은, '''사시사철 황천이 휘몰아치는''' 험악한 바다다. 잔잔한 바다에선 미 해군처럼 일부 함재기는 재출격도 빠르게 할 겸 교대로 비행 갑판에 주기시키고, 격납고는 공간 활용을 넓게 하고 예열 작업도 비행 갑판에 올라가기 전 미리미리 할 수 있게끔 개방 격납고를 채택해도 별 탈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험악한 바다에서 그러다가는 함재기가 파도 맞고 소금기에 쩔어 못 쓰게 되거나 아예 파도와 바람에 쓸려가는 수가 있으므로 영국 해군처럼 함재기 수량과 소티 효율을 희생하더라도 폐쇄 격납고를 채택하고 격납고 주기를 원칙으로 운용할 수밖에 없다. 격납고 주기를 원칙으로 하던 영국 해군도 대전 말 태평양에서 활동할 때는 탑재기 수를 늘리기 위해 일부 비행 갑판 주기를 채택하였고[10] , 후일 프롭기보다 외부 환경에 더 민감한 제트기 시대가 열리자 미 해군도 에식스급과 미드웨이급을 대개장하여 폐쇄 격납고를 채택한 것이 이런 부분을 잘 보여준다.
4.3.3. 소결
종합적으로 보면 영국의 빈곤한 사정과 2차 런던 해군 조약의 23,000톤 배수량 제한이 발목을 잡았던 셈이다. 사실 2차 대전기의 항모들은 자기들끼리도 뭉쳐다녔기 때문에 1개 기동부대의 함재기 총량이 육상비행장에 주기된 항공기 숫자를 압도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었다. 미 해군은 이렇게 압도적인 숫자의 함재기들을 바탕으로 수시로 CAP[11] 를 돌리면서 적 항공기의 습격에 대비했다. 그렇게 해서 항모의 피해를 원천차단한 경우도 있었지만 일격을 허용한 사례도 제법 된다. 미국이야 항모의 숫자가 워낙 많았으니 금방 다른 항모로 대체할 수 있었다. 대체하지 못하더라도 항모 하나 빠지는 정도로는 작전에 큰 영향이 없는 경우도 있었고. 그러나 영국 해군의 경우 항모의 숫자가 워낙 부족했기 때문에 한 척이 잠시라도 이탈하는 경우는 상당히 뼈아팠다. 그래서 탑재량을 다소 포기하고 생존성을 추구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탑재량이 부족하다보니 함재기도 멀티롤 기종을 추구하게 되었지만 결국 자체적으로는 쓸만한 기종을 개발하지 못하면서 일러스트리어스급의 탑재량 부족이 더 큰 약점이 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는 미국으로부터 F4U 콜세어 등 걸출한 함재기를 도입하게 된다.
이 장갑갑판의 충격이 용골까지 그대로 전달되어서 함 자체의 수명에도 악영향을 준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실제로 일러스트리어스급 4척중 3척은 1955년 이전에 퇴역했으며 포미더블은 1947년에 퇴역했다. 빅토리어스만이 1968년까지 운용되었으며 후계함인 임플래커블급 항공모함도 1955년에 전부 퇴역하는 등 영국의 항공모함들은 대부분 퇴역이 빠른 편이었는데 에식스급 중 가장 오래 운용한 렉싱턴이 1991년까지 운용한 것과는 대조적이다.[12] 하지만 이에 대해서 장갑갑판을 갖춘 건 전함 등도 마찬가지인데 항공모함이라고 특별히 수명이 크게 단축되지는 않으며 영국 항모들이 빠르게 퇴역한 것은 종전후 영국군이 대대적으로 감축하는 과정에서 함재기 운용능력도 떨어지고 구식 설계사상으로 건조된 함선을 운용하기 힘들어서라는 측면도 고려할 수 있다. 일단 종전후 영국군이 대대적으로 감축된 것은 사실이며 임플래커블급 항공모함의 경우에도 제트기를 운용하기에는 격납고가 너무 협소해서 개장 비용문제로 퇴역했다. 이후 미국도 장갑갑판을 도입한것을 생각하면 수명에 악영향을 준다고 해도 감당할만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4.4. 함재기의 문제
사실 모든 단점 역시 장갑에서 나온 문제인것 같았으나 일러스트리어스급의 경우 복합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장갑때문에 희생된 탑재량은 더더욱 압박하는것이 바로 함재기였다. 일러스트리어스급이 취역한 당시 일러스트리어스급이 사용할 함재기는 페어리 풀머와 페어리 소드피쉬였다. 우선 페어리 폴머의 경우 당시로선 독특한 방식이였던 복좌식 구조에 멀리롤 운영을 위해 비행을 할때 해상초계 임무를 동시에 수행하기 위해 뒷좌석에 항법사가 탑승해야 했다. 안그래도 1035마력인 엔진과 만나면서 페어리 폴머의 속도는 초기 미 해군이 사용하던 와일드캣보다 100km/h나 부족했으며 이는 1942년 실론 해전에서 제로기에게 전멸당하는 원인이 된다.
페어리 소드피쉬는 시대가 2차 대전임에도 불구하고 복엽기였다. 일본의 97식 함상공격기, 미국의 TBD보다 한참이나 느렸다. 특히 TBD는 느린 속도때문에 미드웨이해전 당시 축차 투입된 뇌격도중 엔터프라이즈 소속, 요크타운소속 일부를 제외한 모든 TBD가 제로기에게 격추된적이 있다. 그런데 소드피쉬는 이 TBD보다 110km/h 정도 더 느렸다.
이런 처참한 성능들로는 태평양전선 이었으면 진작에 도태했을 함재기들이다. 하지만 상대했던 옆 나라들 또한 항모는커녕 함선공격에 지상발진 호위전투기 없이 장거리 초계기나 둔중한 공격기정도나 보낼정도로 처참한건 마찬가지라 유럽전선에선 그적저럭 적절하게 쓰였다. 실제로 비스마르크의 격침에 중요한 역할을 한 건 선술한 소드피쉬 편대였으며. 이때 비스마르크는 어이없게도 이들을 단 한대도 격추못하고 소드피쉬에게 어뢰맞고 속력감소와 조타가 불가능해져서 예정대로 도망치지 못하고 끝내 로드니와 킹조지V에게 최후를 맞이했다.
종합하자면 일러스트리어스급 항모 자체는 그런대로 쓸 만한 배들이었지만 탑재할 함재기들이 삼류 이하였다.
4.5. 활동
영국 해군의 주력항모답게 많은 지역에서 작전을 펼쳤다.
- 일러스트리어스 : 이글과 함께 타란토 공습에 참전하였다. 지중해에서 몰타 항공전에 참전하였으며 독일군의 공습 등으로 큰 피해를 입었으나 살아남았다.
- 빅토리어스 : 비스마르크 추격전에 참여하였으나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잠깐동안 미 해군에게 대여되어 로빈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영국 태평양 함대에 편성되어서 오키나와 전투와 일본 본토 공습에 참여했다. 대대적인 개장을 받고 앵글데크(v형태의 착함 전용갑판)로 바뀌었으며 드 해빌랜드 시빅슨과 블랙번 버캐니어를 운용하기도 했다.
- 포미더블 : 인도미터블과 함께 실론 해전이 벌어졌을때 있었으나 별 다른 성과는 없었다. 지중해에서 마타판곶 해전에서 활약했다. 활동 중 폭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으나 버티어냈다.
- 인도미터블 : 동양함대에 소속되어 작전을 수행할 예정이었으나 암초를 들이받아서 수리를 받으러 가게되고 그 사이에 말레이 해전이 벌어진다. 그후 실론 해전 당시에도 인도양에 있었으나 별 다른 성과는 없었다. 지중해에서 몰타 항공전에 참전하였으며 독일군의 공습 등으로 큰 피해를 입었으나 살아남았다.
5. 기타
- 빅토리어스는 후계함인 임플래커블급 항공모함이 퇴역한 이후에도 현역에 남아서 활동했다.
- 일러스트리어스라는 이름은 후에 인빈시블급 경항공모함에 계승된다.
- 포미더블은 진수식 직전 거치목이 부러지면서 스스로 선대를 벗어나 진수되었다. 이 와중에 생긴 파편을 맞고 관람객 1명이 사망하고 20명이 다치는 사고는 덤. 하여튼 이러한 일화로 인해 붙은 별명이 '스스로를 진수한 배'(The ship that launched herself). 불행중 다행인지, 귀부인의 임기응변 덕분에 진수식의 핵심인 '와인병 깨기'는 배가 움직이는 와중에 가까스로 성공한다.
-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러스트리어스에 승선한 승무원들에게는 러스트(Lust. (강한) 성욕. 욕망)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6. 외부 링크
wikipedia:Illustrious class aircraft carrier
HMS Illustrious British Aircraft Carrier of WW2
ARMOURED AIRCRAFT CARRIERS IN WORLD WAR II BAPTISM OF FIRE Armoured aircraft carrier action and damage reports, 1940-1945
7. 미디어에 등장
- 네이비필드에서 영국 3차(순서로는 4차) 항모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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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람항로에서는 SSR급 항모로 등장한다. 일러스트리어스 참조. 유니콘과는 자매로 취급되어 같이 편성할 경우 유니콘의 특수 상호 대사가 출력된다. 실제로 유니콘은 일러스트리어스의 설계를 기초로 전투기 수리기능이 부여된 경항모다. 2018년에는 자매함 빅토리어스가 SSR급 항모로 추가되었다. 2019년 9월에는 3번함 포미더블도 추가. 아래 전함소녀도 그렇지만 벽람항로도 장갑항모라는 요소가 의인화를 했을 때 거유라는 설정으로 재해석된다는 특징이 있다.
- 전함소녀에서는 네임십 일러스트리어스가 팜플렛에서 공개되었으며, 4번함인 인도미터블이 2017년 사상최대작전 E-5 보상으로 등장했고, 3번함인 포미더블이 아이기스 작전 이벤트 보상으로 등장한다.
- 월드 오브 워쉽에서 8티어 프리미엄 항모로 4번함 인도미터블이 출시 되었다.
- Naval Creed:Warships에서 4번함 인도미터블이 프리미엄 4티어 2차 항공모함으로 등장한다, 특징이라면 월오쉽 사이판과 같은 컨셉(소수정예)라는것, 이후 영국 항공모함 정규트리 4티어 1차 함선으로 1번함 일러스트리어스도 등장, 이후 2번함 빅토리어스도 미 해군에 잠깐 임대 되었을 시절인 USS 로빈이 미국 프리미엄 3티어 항공모함으로 등장 예정이며, 이후 종전직후 엥글드덱 개장을 거친 빅토리어스도 프리미엄 5티어 1차 항공모함으로 등장예정, 전투기와 폭격기를 무려 F-4 팬텀 II를 갖고 온다고.
[1] 자매함별로 차이가 있으며 추후 개장을 통해 탑재량이 증가한다.[2] 인도미터블은 일러스트리어스급내의 소그룹에서 인도미터블급으로 구분하기도 한다.[3] 일러스트리어스가 카미카제로 인해 손상을 입었지만, 교대 전까지 작전을 수행하다가 물러났고 손상 조사 중 외판 일부가 찢어졌고 몇몇 횡늑골이 금 간 것이 발견되어 수리를 위해 종전까지 영국 본토에 머물렀고 다른 영 해군 항모들은 카미카제에 입은 손상을 응급 수리하고 작전을 재개했으며 작전에서 물러나 수리받을 때는 1개월 정도가 걸렸다. 미 해군 항모의 경우 카미카제에 입은 손상 정도에 따라 달랐으나 대부분은 작전에서 물러났고 수리에는 1개월에서 3개월 정도가 걸렸다.[4] 미 해군에서 운용한 '''경항모'''인 인디펜던스급 항공모함의 함재기 숫자가 33대다. 함재기 수용량을 생각하면 정말로 경항모 수준인 셈이다. 이유가 어땠든간에 태평양에서 항공모함으로 구성된 기동부대들을 주축으로 대규모 편대를 동원한 장거리 교전을 숱하게 수행한 미국, 일본과 달리 절대적인 함재기 탑재수량의 부족은 영국 해군에 있어서 항공모함이 보조 전력으로만 쓰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도록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호위항모'''였던 커먼스먼트 베이급 호위항공모함의 경우도 함재기가 34기였다. 호위항모의 구분은 탑재기 수량보다도 속도가 중요하긴 했지만. [5] 1차 대전 당시 활동했던 해군 항공대는 1918년에 공군에게 통채로 먹혔고 1924년에 '''공군 소속으로'''' FAA가 창설된다. 그리고 1939년에 FAA가 해군에 이관되면서 함재기를 직접 운용할 수 있게 되었다.[6] 반면에 미 해군은 충분한 숫자의 함재기가 갖춰지자마자 일본의 지상 비행장들을 방법하고 다녔으며, 지상비행장에서 발진되는 항공기들도 요격하는 것을 전제로 작전을 세우기도 했다. 따라서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작전수행이 가능했다.[7] 비행장에서의 운용이 전제된 공군용 항공기와 항모에서의 운용이 전제된 해군용 항공기는 골조부터 다르다. 공군용 항공기는 이착륙거리를 신경쓸 필요가 없다시피 하며 항모에 착함할 일도 없으므로 골조를 가볍게 만들어도 상관없다. 반면 해군용 항공기는 항모 갑판에서의 이착륙이 가능해야 하므로 단거리 이착륙이 필수인데, 이 착륙 과정이 기체 전체에 심각한 부담을 주기 때문에 골조부터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처럼 애초에 설계 이념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공군용 항공기를 해군용으로 개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8] 미 해군의 미드웨이급 항공모함이 그런 사례이다. 2차 대전에 사용되는 항공기를 기준으로 한다면 130기 이상을 탑재할 수 있으며 3.5인치의 갑판장갑을 두르고 있다.[9] 항공모함이 발을 묶고 전함들이 달려가서 두들겨 패면 된다는 발상은 실제로 2차대전 중 영국 해군의 교전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 기록들이다. 후드가 제대로 얻어맞기는 했지만, 비스마르크 추격전도 예시에 포함되는 사례.[10] 이렇게 하면 임플래커블급 기준으로 80기 이상의 함재기를 탑재할 수 있었다.[11] Combat Air Patrol. 전투초계비행[12] 다만 렉싱턴을 제외한 전 함선은 70년대 퇴역했다. 렉싱턴은 훈련함으로 91년까지 운용된 것.